출처 : 한경닷컴 > 차길진의 魂테크 財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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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 미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 청나라 때 홍매(紅梅)라는 장안 최고의 기생이 있었다. 붉은 매화라는 이름답게 홍매는 타고난 미모와 가무, 거기다 시화실력까지 두루 갖춘 절세가인이었으니, 남정네라면 당연히 홍매와의 하룻밤을 꿈꿨다. 

  날이 갈수록 몸값이 뛰어서 웬만한 재력가나 권세가들도 홍매 집 문턱을 넘기가 힘들게 되었다. 한마디로 홍매는 보통 남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그런 그녀를 흠모하는 이가 있었으니 기름을 대주던 기름장수였다. 

  기름장수는 먼발치에서 홍매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안으나 서나 자나 깨나 홍매생각만 들더니 급기야 상사병이 걸리고 말았다. 기름장수는 상사병으로 죽을 때 죽더라도 말이라도 한번 건네 보고 죽자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숨어들었다. 기름장수는 산책길을 막아섰다. 

  “당신을 오래 전부터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홍매가 불쑥 앞을 가로막은 사내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니 기가 막혔다. 부채로 얼굴을 가린 홍매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당신이 나와 자려면 한 10년을 돈을 모아도 힘들 것이요.” 

  하지만 낙담하고 돌아설 줄 알았던 기름장수는 오히려 눈에 불을 켜고 채근하는 게 아닌가. 

“만약 내가 그 돈을 가져오기만 하면 나와 하룻밤을 보내주겠다고 약조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홍매는 기름장수가 하도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더 시간을 끄는 게 성가셔서 희망이라도 심어주자는 생각에 살짝 부채를 걷어 긍정의 미소를 보낸 뒤 산책길 너머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후 기름장수는 오직 홍매와의 하룻밤을 위해 소처럼 일했다. 입고 먹는 것에 하도 궁색해서 몰골이 거지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드디어 하룻밤의 화대를 마련한 기름장수는 홍매의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역시나 세월이 흘러도 그녀의 미색과 명성은 변함이 없었다. 

  홍매는 처음에 남루한 기름장사를 알아보지 못했다. 

“자, 여기 당신이 원하던 돈입니다. 내가 제대로 입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며 모은 것입니다.”

  홍매는 그가 기름장수인 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고생에 찌든 외형만이 아니라 그가 그런 거금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홍매가 머뭇거리자 기름장수는 소리쳤다.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하지 않겠소? 모일 모시에 올 테니 내 방으로 드시오.” 

 홍매는 내키지 않았으나 기름장수 말대로 약속은 약속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밤 홍매는 극심한 구토와 설사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10년간이나 오매불망 기다렸건만 곱게 단장한 홍매는 간데없고 토악질에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만 누워 있으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기름장수는 밤새 홍매의 배설물을 받아내고 병수발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어느덧 동녘 창문이 부였게 밝아왔다. 그제야 안정을 찾은 홍매를 확인하고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홍매는 미안한 마음에 “10년간 이 날을 기다렸다는데 나의 몸값을 못했으니 다른 날을 기약해 다시 만나면 그때 본전이 아깝지 않도록 해주리라.”고 말하자 기름장수가 댓구했다. 

  “괜찮습니다. 사정이야 어찌 됐건 나는 당신과 하룻밤을 보냈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기름장수는 아쉬운 기색 하나 없이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기약 없이 새벽길을 나섰다. 떠나는 기름장수는 속히 후련했으나 남겨진 홍매는 황량한 기분으로 멍하지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맨발로 기름장수를 뒤쫓아 갔다. 이후 기생 홍매는 화려했던 기방생활을 접고 평범한 기름장수의 아내가 되어 여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만약 기름장수가 홍매의 몸값과 본전을 생각했다면 과연 홍매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하룻밤 연정을 쌓을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평생 홍매와 같은 이불을 덮진 못했을 것이다. 머리와 셈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조금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순박한 진심과 본심이 있다면 세상을 얻을 수 있다. 내 앞의 고객과 거래처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빼앗을 것인가. 쟁쟁한 경영서적이나 치밀한 정보에 있는 게 아니라 기름장수같은 마음에 있지 않을까? (hooam.com)

출처 : 한경닷컴 > 서안나의 시와 그림에서 배우는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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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용 그림-<결-38-15> 나무에 단청기법, 82.5/48cm 

2001년 4월 11일 김덕용 단청 회화전

<분당 삼성 플라자 갤러리 전시>



 화가 김덕용은 소재의 새로움을 추구해 화폭을 자연 대상으로까지 확대 시키고 있는 작가이다. 해묵었거나 산골 폐가에 방치된 나무 조각들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작가는 나뭇결을 자연 그대도 살리면서 조각도로 인물의 모습을 석채로 그려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는다.


 위의 작품
<결-38-15> 을 보면,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조화의 미덕을 접하게 된다.   그림 속의 남자는 바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다. 우리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당신의 생애를 바친다. 날마다 힘겨운 일상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화가는 힘든 일상 속에서 버텨내야 하고 혼자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란 위치의 고달픔과 고독감을 주름진 이마와 나무의 나이테를 살리면서 인물의 삶의 고통의 굴곡을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아버지의 어깨 옆에 조각도로 파놓은 흠집들은 곧 우리 아버지의 몸에서 흘러나온 고통의 흔적일 것이다. 외부 현실이 험난하고 가파를지라도 그 현실의 파장은 아버지를 결코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느 사이엔가 한 가장의 아버지가 되었다. 손택수 시인의 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를 읽다 보면 아버지의 어법과 대화법을 알 수 있다. 살아생전 지게를 지고 다니셨던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난 뒤에야 시인은 자신을 데리고 목욕탕을 가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깊은 속마음을 알게 된다는 시이다. 자식에게 시커멓게 죽은 등짝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 지긋지긋한 가난의 형색을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늘 단단한 산맥처럼 우리를 지켜주시는 아버지라는 이름. 아버지가 존경스럽고 고마운 것은 나를 위해 당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희생 했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이나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남을 위한 배려나 희생 없이는 나에 대한 배려도 없는 법이다. 뛰어난 화술이나 아름다운 용모도, 배려심이 깊은 사람을 앞서지 못하는 법이다. 배려한다는 말에는 상대를 존중하고 높이는 마음이 깔려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인간관계의 관리 1순위로 배려와 관심을 꼽는다. 남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분명히 남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당신은 인간관계 속에서 얼마만큼 남에게 배려심을 갖고 있는가? 사랑받고 싶으면 먼저 상대를 사랑하고 배려하라. 아주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시인)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호랑이 발자국>(창비,2003), <목련전차>(창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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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박을 좋아해서, 좋은 꿈을 꾸면 복권(福券)부터 사게 된다. 복권에 복(福)자가 들어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당첨되면 ‘복이 터졌다, 복 받았다’고 하기도 한다. 누구나 꿈꾸는 이런 대박이 과연 자기 복일까? 그러나 복(福)과 운(運) 엄연히 다르다. 

언젠가 미국에서 역대로 거액의 복권에 맞은 사람들의 당첨 그 이후를 추적한 적이 있다. 하루아침에 천문학적인 거액을 거머쥐었던 사람들은 어떤 인생역전을 하며 살고 있을까? 기쁨의 괴성을 지르며 들떠있던 당첨자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취재진들은 너무나 의외의 결과에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10여명의 당첨 중 대부분이 패가망신이나 거지보다 못한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 대박의 행운이 결과적으로 보니 재앙이었던 셈이었다. 그런데 단 한명만이 패가망신을 면하고 있었다. 그 비결은 간단했다. 거액의 당첨금을 한 푼도 찾지 않았던 것. 아예 없었던 일로 여기며 산 것이다. 가지고 있던 직업도, 낡은 집도 그대로 생활을 그대로 유지했던 것이다.

복권에 맞은 사람은 복을 받은 게 아니다. 잠시 운(運)을 받은 것이다. 복(福)이란 한자를 풀어보며 ‘제사에 쓰이는 음식, 복을 내린다, 돕다’란 뜻으로 ‘조상에게 정성껏 제사상을 차려 올리면 복을 받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운(運)은 ‘돌다, 돌리다, 회전하다’란 뜻으로, 운은 받으면 반드시 돌려줘야한다.

복과 운의 실체를 더 알아보자. 복(福)은 자신이 전생에 지은 카르마(업)와 현생의 마음가짐에서 차곡차곡 쌓인 적금통장이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복통장’을 손에 쥐고 있게 된다. 그런데, 금액은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는 마이너스 통장일 수 있고 누구는 평생 걱정 안 해도 될 정도의 거액 통장일 수 있다. 하지만 통장액수가 현생의 복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예금액보다 현생에 인출을 더하게 되면 통장은 거덜 나게 되고 만약 마이너스가 된다면 내생에 까지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지금이라도 차곡차곡 복을 저축하며 아껴 쓰면 내생까지 풍요로워 지는 것이다.
 
반면, 운(運)은 대출통장이다.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은행으로부터 차압이 들어와 파산하듯이 하늘이 잠시 빌려준 운을 복으로 착각하여 갚지 않으면 패가망신하게 된다. 운은 ‘give-and-take’가 확실하다. 운을 받으면 받은 기간 동안 잘 썼다가 반드시 조상과 하늘에 돌려주어야한다.

복권은 엄밀하게 말해서 복권이 아니다. 운권(運券)인 것이다. 그래서 복 없는 사람이 큰 운을 소원해서 받는 다는 것은 패망의 지름길이 된다. 복과 운을 구별하지 못하면 스스로 화를 자초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과거에 한 식당주인이 구명시식으로 운을 받아간 적이 있다. 그는 한 달 동안이나 법당을 찾아와 정성을 대해 공을 들였고, 이후 식당을 확장하고 부동산을 매입해 건물을 짓는 등 빠르게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나 다시 찾아온 그는 성공한 부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무리한 대출로 사업실패를 하고 만 것. 자기 복인 양 착각하고 교만해져서 처음 기도했던 마음을 까맣게 잊고 되돌려주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구명시식은 은행에서 운을 빠르게 대출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식일 뿐 없는 복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예금액이 적거나 마이너스 복 통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빌려준 운을 자기 복으로 잘 돌릴 줄 알아야 잘 살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에게 온 운을 잠깐 대출 받은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 것과 조상과 주위 사라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복 통장에는 얼마가 들어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