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경닷컴 > 부동산Plus
원문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70931591&ltype=1&nid=210&sid=0103&page=6

"경부고속철도(KTX) 건설비용은 당초 5조8000억원에서 22조원으로 4배가량 늘어났다. 이용객도 당초 하루 20만명으로 추정했는데 실제로는 8만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비용은 터무니없이 적게,수익은 지나치게 많이 추정한 것이다. 여기서 생긴 부채 4조5000억원을 철도공사가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러나 그동안은 아무도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했다. 누가 감히 정부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겠나. "

2006년 4월 이철 당시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얘기다. 당시 철도공사의 막대한 적자가 KTX 사업에 대한 정부의 과욕과 판단 착오에서 비롯됐다는 것.

정부가 주도하는 국책사업의 실패는 이처럼 혈세를 허공에 뿌리게 되는,국민들의 막대한 부담으로 돌아온다.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고려가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는 논리를 외면하고 압도해 버렸기에 특히 그렇다"고 꼬집었다. 엄청나게 넓은 땅을 수용해 건설되고 있는 이들 도시의 주인들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부청사나 공기업들은 결코 지역 발전의 주역이 될 수 없다. 그들은 그저 몇개의 건물을 차지하고 들어가 자신들의 일을 할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견인차는 민간의 폭발적인 역동성이다. 오늘날 울산경제의 기반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석유화학공단이 만들었다. 포항에 포스코,창원에 기계공단,구미엔 전자공단이 해당 지역의 발전을 이끌었다. 가깝게는 삼성과 LG의 액정표시장치(LCD) 클러스터가 아산 · 천안과 파주 경제에 유례없는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투자 여력을 갖춘 기업이 들어가면 대학교와 베드타운형 신도시는 자동으로 따라 들어간다. 번잡한 수도권이든,낙후된 지방이든 인재와 기업들이 모여드는 곳은 필연적으로 번창하고 도시의 운명을 바꿔나간다.

◆세 가지 카드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지방의 어렵고도 딱한 사정들과 국가자원 배분의 최적화를 동시에 헤아려야 하는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고민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해야 하는 지도자로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태클'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세종시의 경우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 번째는 정부청사 이전효과를 압도할 수 있는 경제적 대안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행정부 이전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장관은 "예를 들어 삼성전자 본사 이전과 같은 매머드급 솔루션을 제시하면서 행정부를 서울에 그대로 남겨놓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대통령으로선 행정부 이전에 따른 국가행정의 비효율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이 대통령은 민주당과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의 반발보다는 국민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여권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지방선거 패배의 부담을 안고서라도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쳐 돌파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카드는 과학교육도시가 됐든,아니면 첨단 바이오벨트가 됐든 도시의 비전을 설정한 뒤 그에 걸맞은 부처만 선별적으로 이전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정치적 절충 여지는 다소 늘어날 수 있겠지만 "당초 계획대로"(자유선진당 모 의원)를 고집하고 있는 충청권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과 대학의 대규모 이전을 유도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 반대 여론이 활개칠 수 있는 여지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카드는 행정부를 이전하되 자족기능 보완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부담이 없지만 당분간 명품도시 건설이라는 비전은 접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과천시의 경우처럼 종합청사 옆에 식당들만 즐비하고 자족기능은 미흡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경우다. 이 대통령으로선 역설적으로 정치적 입지가 가장 나빠질 수도 있다.

◆지방도 맹목성 버려야

혁신도시 역시 그저 공기업 임직원들의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도시가 아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말 그대로 혁신적인 모양새를 갖출 수 있도록 재설계돼야 한다. 신도철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만약 혁신도시가 생산력을 갖추지 못한 주거중심도시로 전락할 경우 기존 도심이나 시가지의 쇠퇴는 불문가지"라고 우려했다. 대전의 둔산,수원의 영통,부천의 중동,여수의 신시가지가 개발될 때 어김없이 드러난 양상은 기존 도심의 공동화였다는 것.또 전남 도청이 옮겨간 남악신도시의 주택 수요는 거의 목포에서 왔으며 광주 상무지구 개발 역시 충장로 일대 구시가지의 함몰로 이어졌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지방도 맹목적인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공기업 이전의 과실을 당장 나눠먹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도시 전체의 파이를 키울 생각부터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5+2'광역경제권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현 정부 역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지역발전 전략을 혁신도시 건설과 연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모든 사안들을 통합 조정해야 할 사람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취재팀은 이 대통령이 세종시와 혁신도시 문제를 놓고 여러 갈래의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세종시를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던 약속의 진정성에도 공감한다. 관건은 시간이다. 이대로 시일을 끌다간 나중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도시의 골격은 하루가 다르게 자리를 잡아가고,지방선거를 비롯한 선거 일정도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에도 정치논리에 밀려버리면 선택 가능한 대안의 풀(pool)은 자취를 감출 게 분명하다. 대통령은 이제라도 용단을 내려야 한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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