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바깥 세상, 살면 살수록 궁금한 게 늘어납니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개인적 글쓰기를,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얘기와 함께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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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학서 신세계 부회장과의 대화 [이야기 쉼터]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과의 爐邊情談

 

                        

 

 

"젊은 남편들, 애처가 못되면 공처

 

라도 되세요.  가정이 화목해야

 

직장에서도 성공하죠"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은 화려한 말솜씨나,술자리를 휘어잡을만한 주량이나,하다못해 좌중의 주목을 이끌어낼 유머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본인 스스로 “나는 특징이 없고,심심한 사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정말 그렇기만 할까.술잔을 기울이면서 한마디 두마디씩 풀어낸 그의 이야기 보따리는 한마디로 ‘묵직’했다.달변의 화술에 의해서가 아니라,말속에 담긴 인생의 연륜과 성찰이 시종일관 둘러앉은 ‘주반(酒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지난 12일 저녁 서울 중림동의 한 고깃집에서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갓 입사한 수습기자들과 소줏잔을 주고받으며 4시간여에 걸쳐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의 여운을 남겼다.

 

-‘소폭’(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한 잔 하시고 부드럽게 시작하시죠?

“아이고.저 술 많이 못해요.”

-오늘 기분 좋게 취하셔야 속에 있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올텐데.

“술 센 기자분들에게 이렇게 둘러쌓여 앉아 있으니 안마셔도 마신 듯 얼콰해질 것 같습니다.걱정마세요.”

-주량은 얼마나 되십니까?

“소주 반 병 이상은 못 마셔요.기분 좋으면 5잔까지도 버티지만,보통 땐 1~2잔 정도.오늘 컨디션도 좋은데 기록 한번 세워볼까?”(웃음)


#부회장 승진,월급쟁이 성공기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신 것 축하드립니다.7년만의 승진이었죠?

“큰 의미는 두지 않아요.전에도 대표이사였고,지금도 대표이사니까.‘구 사장’하던 사람들이 ‘구 부회장’ 하려니 발음만 어렵고 말이죠.”

-월급쟁이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셨는데,언제 CEO가 되겠다는 비전을 갖게 됐습니까?

“솔직히 그런 야망을 가져본 적은 없었어요.그냥 월급쟁이가 되고 싶어서 된거니 만족스러워 열심히 일해왔을 뿐이지.평사원일 땐 그냥 사원으로,과장이 돼선 과장으로서 이렇게 각각 그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젊었을 때의 장래희망은 뭐였습니까?

“(주저없이)월급쟁이가 제 꿈이었어요.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셨는데,수입이 불규칙해서 집안이 늘 불안했거든.그래서 은행처럼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상업고등학교(1965년 경기상고 졸업)에 들어갔던 것이고.그 뒤 대학 진학까지 했지만 꿈은 바뀌지 않았어요.은행 대신 삼성으로 방향을 바꿨지만,안정된 직장의 월급쟁이가 되고 싶다는 꿈이 이렇게 CEO로까지 이어졌으니 목표를 초과달성한 셈이지.”

-요즘 대학마다 학생들이 고시 준비에 매달려 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대기업도 마다하고 9급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이들도 많은데.

“참 걱정이에요.그래서 저는 대학에 강연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돈 많이 벌고 싶지 않느냐.그렇다면 공직에 갈 생각 말고 기업으로 와라.CEO 월급이 장관보다 훨씬 낫다’고 말해줍니다.경제적인 성공을 원하는 사람이 공직으로 가거나,여러분처럼 언론인의 길을 걷는 건 잘못된 것 아닙니까.돈 보다는 명예,국민과 사회에 대한 봉사 등 다른 성취를 달게 여길 자세가 돼 있는 사람만 공직에 도전하라고 강조하죠.”

-공감 가는 말씀입니다.

“그런 각오 없이 기업 이외의 길을 걸은 사람들은 기업 가서 잘된 친구들 보면 속이 꼬이는 거죠.자기 보다 공부 못했던 친구가 돈 많이 받고 성공하니까.좀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의 반(反)기업 정서에는 이런 측면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일각의 지나친 기업때리기를 보면서 ‘질투는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는 말도 생각나고.”


#도쿄지사 근무,오너가(家)와의 인연

-직장인으로 지내오면서 좌절한 때는 없었나요?

“없다면 거짓말이겠지.하지만 그런 좌절이 대부분 저에겐 전화위복이 된 경우가 많았어요.삼성에 있을 때 임원 승진 연차가 됐는데 한 해 물을 먹었어.굉장히 서운하더라고요.알아봤더니 이병철 당시 회장께서 임원 승진자 명단을 보고받고는,거기에 올라있던 제 이름을 발견하고는 ‘구학서는 너무 어려’ 하며 빼버렸다는 거야.대상자 중에서 내가 가장 친숙하셨는데,일종의 승진 군기잡기였다고 비서실장이 설명해주시더군.겸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결과적으로 입사동기들중에 제가 가장 오래 CEO로 남아있게 됐습니다.”

-이병철 회장과의 인연이 꽤 깊으셨던 모양입니다.어떻게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게 됐습니까.

“1982년부터 4년 반 가량 삼성물산 일본 법인에서 근무했는데,그때 선대 회장께서 일본에 자주 들르셔서 자연스레 모실 기회가 많이 있었던 거죠.”

-에피소드도 많으시겠군요.

“많죠.선대 회장은 기분이 좋으면 저한테 용돈을 쥐어주곤 하셨습니다.어떨 땐 2만엔,또 한번은 5만엔,이런 식으로.기분 좋을 때란 주로 일본인들과 골프쳐서 돈 땄을 때였죠(좌중 웃음).한번은 회장께서 일본의 한 재벌 총수와 골프를 쳐서 돈을 땄는데,그 분이 지갑을 깜빡 잊고 나와서 그 자리에서 바로 돈을 못받았나봐요.나중에 제가 받아다 드렸는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는 거에요.정말 대단한 승부사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이명희 회장과의 인연도 일본 근무와 관련이 있습니까?

“선대 회장은 일본에 연간 네 번씩 다녀 가셨는데,매번 따님들이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이명희 회장하고 같이 오셨어요.당시 저는 부장이었지만 서울에 있는 웬만한 임원들보다 그 분들을 만날 시간이 훨씬 많았던 셈이죠.삼천리로 나갔다가 다시 범삼성계열로 돌아올 때 신세계로 온 것도 그런 인연이 작용을 안했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이번에 같이 승진한 정용진 부회장의 ‘사부’로 알려져 있는데,두 분 관계는 어떻습니까.

“정 부회장이 세세한 것까지 저와 상의해줘서 참 고맙죠.기업들마다 오너 일가 사람들을 기용하는 방식이 좀 다른 것 같아요.범(汎) 삼성가는 이병철 선대 회장 영향으로 기업안에서 오너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에요.저도 그게 맞다고 봅니다.오너 가족들이야말로 기업과 운명을 같이 할 사람들이니까,고도의 결정은 직접 해요.그런 역량을 반드시 쌓을 것을 요구받지요.아직 정 부회장은 경험이 많이 부족해 제가 결정 내리는 걸 보고 배우고,참고한다고 본인이 말합디다.”

-정 부회장이 요즘 기자들도 자주 만나고,매장도 방문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던데.

“아직은 이것저것 배울 게 많은 단계라서 전투 현장을 속속들이 익히는 과정이죠 뭐.특히 식품쪽에 관심이 많아서 매장을 자주 찾아요.식품 매장과 관련된 혁신적인 제안들도 많이 내놨어요.”


#유통업은 매력적인 사업

-이인원 롯데쇼핑 사장과 더불어 유통업계 최장수 CEO로 꼽히는데,유통업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마디로 ‘재밌다’는 거죠.공장 대신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장을 갖고 하는 사업이라 계절 바뀌는 걸 회사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만 해도 그렇고.”

-어려운 점도 없지는 않겠죠?

“왜 없겠습니까.유통업은 결국 ‘부지 싸움’인데,이게 영 골치 아픕니다.제조업 같으면 경쟁사 제품이 잘 팔리더라도 우리가 더 잘 만들어 시장을 빼앗아 오면 되지만,우리는 경쟁 매장이 잘 된다고 입지를 빼앗을 순 없잖아요.그래서 한번 입지를 선점당하면 해당 상권에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격차가 생긴다는 점에서 유통업체 CEO는 늘 불안할 수 밖에 없어요.”

-요샌 점포를 늘리기가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땅값도 치솟고 있고,지역 상인들의 반발도 거세고.

“땅값보다 훨씬 골치 아픈 게 대형 유통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예요.이마트가 재래시장을 다 죽인다는 식의.지역 상인들이 조금만 들썩거리면 지방자치단체는 그 사람들 표를 의식해서 인·허가를 굉장히 까다롭게 내줘요.좋은 상품 싸게 팔면 소비자에게 혜택 돌아가는거 아닌가? 외환위기 이후엔 고용 창출에도 기여했고.”

-신세계백화점이나 이마트 매장엔 얼마나 자주 나가십니까?

“직원들이 저 신경쓰느라 일 못할까봐 매장엔 거의 가지 않습니다.”

-유통업체 CEO가 매장을 모르고 경영이 되세요?

“예전에 신세계가 삼성그룹 소속일 때 얘기를 하나 해드리죠.사장단 회의를 열면 다른 계열사 가지고는 별 말 없던 사람들도 신세계 얘기만 나오면 말들이 많았답니다.다들 부인에게 듣고 와서 한마디씩 거드는거죠.유통이 그만큼 사람들의 일상과 가깝기 때문에 ‘참견’할 거리도 많을 수밖에요.저 역시 매장에 나가면 모르는 사이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게 될겁니다.전쟁을 할 때 장수가 전략은 안짜고 전장을 돌며 개개의 전투하는 방식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참견하기 시작하면 병사들이 잘 싸울 수가 없는 법입니다.그래서 매장에 잘 나가지 않는 겁니다.”

-주말에 쇼핑도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힘들어요.조용히 살 것만 사고 가려 해도 어느새 점장이 나타나 따라붙거든요.맘편히 쇼핑도 못하는 팔자죠.그래서 저한테 필요한 것은 웬만하면 아내가 사다줘요.아직 집사람 얼굴은 직원들이 잘 모르니까.”

 

#가족 이야기·팝송을 사랑하는 이유

-가정 경영은 어떻게 하십니까?

“글쎄,아이들은 제가 꽤나 엄격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애가 셋인데,특히 큰 애(딸)를 키울 때는 더 그랬다고 하더군.그런데 자식들을 하나하나 키워가면서 점점 누그러져요.첫 아이는 매우 엄하게 키웠는데 막내까지 내려가니까 웬만한 잘못은 그냥 재롱한번 보고 넘어가게 되더군.그 때문에 큰 애가 불만이 많았죠.자기만 잡았다고.”

-애처가로 알려져 있는데,사모님과 부부싸움은 해보셨습니까?

“왜 없었겠어요.젊을 때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몇번 싸웠죠.근데 나이가 중년 넘어섰을 때부턴 싸워본 기억이 없습니다.”

-비결 좀 알려주세요.

“우리가 결혼을 왜 하죠? 행복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행복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부부간에 싸울 일이 없어요.벤자민 프랭클린이 ‘다른 이가 나로 인해서 행복하는 것을 보는 것이 나의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내가 행복하려면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주면 된다는 얘기도 됩니다.이러면 어느 한쪽이 일부러 싸우려 해도 싸움이 되질 않죠.”

-공처가시란 얘긴가?(모두 웃음)

“하하.저는 애처가이자 공처가죠.젊은 남편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애처가가 못되면 공처가라도 되라고.이게 꼭 아내를 위한 게 아니에요.가정에 평화가 있어야 나와서도 성공할 수 있는 거니까요.”

-노래는 잘하세요?

“그냥 스트레스 푸는 정도죠 뭐.”

-애창곡은?

“라 노비아(Lanovia·토니 댈라라의 노래)랑 더 영 원스(The Young Ones·클리프 리처드의 노래) 정도?”

-주로 팝송이군요.유통업체 CEO면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장착해두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요새 젊은 사람들 노래는 배우기가 너무 어려워요.워낙 부침이 심해서 좀 외웠다치면 금세 유행곡이 바뀌어버리고.그렇다고 젊은이들과 노래로 어울릴 기회가 있을 때 뽕짝을 부르자니 쪽팔리고,그래서 차라리 올드팝을 멋드러지게 불러서 야코를 죽이는 전략을 써요.”


#직장인론

-회사에 도움되는 직원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가려내는 부회장님만의 기준이 있나요?

“일단 줄서는 친구들은 제가 좋게 보질 않아요.잘 나가는 자리에 있을 땐 찾아와 아부하다가 잠깐 회사를 떠나 있을 때는 연락 한번도 없는 이들이 있었어요.줄서기 잘하는 사람치고 회사에 도움되는 경우는 없어요.출세지향적으로 얄팍하게 행동하는 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절대 곁에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평소 사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뭐죠?

“내가 가장 용납 못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예요.특히 돈에 관한 것이죠.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비윤리적인 사원은 인사 때 반드시 조치하는 게 원칙입니다.종업원이 득을 보는 것과 회사 손실이 엇비슷하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텐데,대부분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게 자신에겐 큰 이득도 안되는데 회사엔 막대한 손실을 끼치거든.그래서 용납이 안된다는 거죠.”

-직장생활에서 상사와의 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직원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윗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땐 ‘누가 더 먼저 나가는지 보자.이 회사엔 내가 더 오래 있을 사람이다’는 식의 오기가 좀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지요.”

-기억나는 상사는 있으세요?

“그룹 재무팀장이었던 오광렬 전 보광그룹 사장이 제일 기억나네요.원래 삼성 스타일이 아닌 분이었거든.자기 할 일만 딱 처리하면 6시에 칼퇴근하던 분이었으니까.나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건강론

-환갑을 넘기셨는데 실감이 나세요?

“아뇨.전혀.나이를 잊고 살아요.보약 한 첩 안먹었지만 몸도 건강하고요.”

-비결이 뭡니까?

“내 키가 170cm인데 몸무게를 69kg이 넘지 않도록 먹는 것을 조절해요.운동도 틈틈히 하고.”

-무슨 운동을 주로 하시는지.

“아침마다 뒷산에 오르고,틈틈이 헬스클럽에서 유산소 운동도 하고 그래요.”

-지금 지갑에 돈은 얼마나 있죠?

“네? 한번 보여드릴까요?”(구 부회장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보여줬다.10만원짜리 수표 석장,현금 10만원 가량이 들어 있었다.)

-그걸로 오늘 술값 쏠 수 있어요?

“카드로 긁으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한 달 용돈은 얼마나 쓰십니까?

“한 200만원 되나? 경조비가 많이 나가요.”

#여전히 소박한 미래설계

-오너가(家)의 신임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정용진 부회장도 “구 부회장께 배울 게 아직 많다.하셔야 할 일이 많다”고 하던데,언제까지 현직에 계실 것 같습니까?

“제가 집사람에게 자주 그래요.‘작년에 그만뒀어야 하는데’라고요.이번 임기까지 마치면 대표이사만 3년씩 세 번을 하는 셈인데,위에서 이렇게 오래 버티고 앉아 있으면 인사적체가 생기거든요.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요.”

-너무 욕심이 없는 거 아닙니까.인터뷰라 일부러 그러시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정말 퇴직이 너무 늦어진다 싶어요.이제 지금 하는 일 말고 다른 걸 좀 해보고 싶어요.평생 일만 하고 돈만 벌다 갈 수는 없잖아요.”

-회사를 그만두신 뒤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뭡니까.

“한때는 전공(경제학)이 재미있어서 공부를 더해보고도 싶었는데,그건 좀 늦은 것 같아.여행 다니고,글 쓰며 나를 되돌아보고 정리해나가고 싶어요.”

 

 

구학서 부회장이 들려주는 세상사는 지혜

 

<직장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한 노하우는…>

“‘부부(父父) 자자(子子) 군군(君君) 신신(臣臣)’이라는 글귀를 늘 새기며 삽니다.세상을 살면 살수록 정말 맞는 말이다 싶어요.사원은 사원답게,과장은 과장답게,임원은 임원답게,CEO는 CEO답게만 다들 해준다면 잘못될 회사가 어딨겠어요.가끔 보면 사원이 자기 능력 있다고 부장 역할을 하려고 나서는가 하면 어떤 경우엔 임원이 됐는데도 부장일 때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죠.이런 회사는 잘될리가 없지 않겠어요?”


<CEO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경에서 연재하고,책으로도 펴낸 CEO열전을 한번 읽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거기 보면 ‘꼭 CEO가 돼야지’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살았던 이는 아무도 없더군.근데 요즘 후배들은 입사 면접 때부터 CEO가 되는게 꿈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아요.꿈을 크게 갖는 것은 좋지만,조급하게 생각하는 건 곤란합니다.어느 회사나 막내로 들어가면 잡일을 도맡아 하게 되잖아요.이게 싫어서 지름길을 생각하며 회사를 때려치우는 친구들이 적지 않습니다.MBA를 받아오면 달라질거야 하며 유학도 가고,고시로 빠지기도 하고.근데 CEO열전을 한번 보세요.사원일 때 사원답게 뭐든 배우겠다는 자세로 주어진 일에 충실한 사람이 결국 CEO까지 되지 않았어요?”


<돈이란…>

“비서실에 있으면서 돈 원없이 가지신 분들을 모셔 보니까 알겠더라구.내가 관리할 수 없는 범위의 돈은 그게 자기 돈이 아니란 걸 말이야.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돈이라는 것은 먹고 입고,이런데 쓸 수 있는 것이어야 하잖아.나머지 돈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한테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나는 자식한테 조그만 아파트라도 물려 줄 수 있는 복을 갖긴 했지만,자식에게 근로에 대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일 수도 있지.그런 점에서 돈이 많다는 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죠.”

 

 

구학서 부회장의 '선임하사 경영론'       

 

구학서 부회장은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매장을 돌며 직원들 하는 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하면 신경쓰여서 일을 할 수가 없다”며 “CEO는 장기적인 전략 수립과 같은 ‘큰 그림’을 그리고 매장 운영방식 등 부분적인 ‘전술’ 부분은 각 부문 책임자들에게 맡기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구 부회장은 이런 생각을 군에서 장교로 근무하면서 굳히게 됐다고 소개했다.학군단 8기로 육군 소위가 됐던 그는 “평소 숫기가 없고 조용한 성격인데 소대장을 맡고 보니 어떻게 부하들을 통솔해야 할지 막막했다”며 “그래서 저는 소대에서 꼭 지켜야 할 큰 원칙만 정해 놓고 경험 많은 선임하사에게 자율권을 줘 세세한 사병 관리를 맡겼다”고 말했다.

 “다른 소대장들처럼 병사들의 ‘조인트를 까거나’,기합 준 기억이 별로 없어요.대신 훈련을 마치고 부대원 전원에게 통닭을 시켜준다든지,인생 고민을 들어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개개의 병사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주로 맡았죠.기강을 잡는 일은 병 출신인 선임하사가 훨씬 효과적으로 잘 할 수 있다고 봤거든요.숫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그 때문에 부대 운영이 잘 돼 배운 점이 많아요.”

 삼성그룹,삼천리 등을 거쳐 뒤늦게 신세계에 합류해 유통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구 부회장이 성공적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었던 것도 각 부문별 대표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우는 ‘선임하사 경영론’이 먹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구 부회장에겐 지금도 2명의 ‘선임하사’가 있다.신세계백화점 영업전략실과 점장,영업본부장을 거치며 잔뼈가 굵은 석강 백화점부문 대표와 이마트에서 역시 점장,지원본부장 등을 두루 역임한 이경상 이마트부문 대표가 그들이다.

 지장으로 평가 받는 석 대표는 최근 본점 재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신세계의 모태인 백화점부문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용장으로 분류되는 이 대표는 국내 최초로 대형마트 100호점 시대를 연 주역이다.두 사람의 대표들은 요즘도 수시로 각각 책임지고 있는 백화점과 대형 마트 매장을 매일 둘러볼 정도로 철저한 현장경영을 중시한다.대신 구 부회장은 매장을 일절 찾지 않는다.

 박주성 신세계 홍보담당 상무는 “구 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호통을 치거나 잘못했다고 무안을 주는 일도 거의 없다”며 “대신 차분하고 조용하게 논리적으로 아랫사람을 설득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 글들은 2006년 12월15일 한국경제신문 10,11면 2개면에 걸쳐 게재된 글의 원문입니다. 한경 생활경제부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남궁 덕 차장, 김동민 수석 기자, 박동휘 기자, 차기현 기자, 장성호 기자, 박신영 기자가 저와 함께 12일 서울 중림동 한경 본사 인근 <구이 한판>이라는 고깃집에서 진행된 술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박동휘, 차기현, 박신영 기자가 정리한 글을 제가 약간 손질하고, 머릿글을 써 넣었습니다.


posted at 2006/12/15 11:22:01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명품 신기루 [시사 칼럼]

명품 신기루

 

 

 명품사기극을 벌이는 일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웠다. 국산과 중국산 부품을 얼버무린 싸구려 손목시계가 최고 1억원 가까운 명품시계로 둔갑된 과정은 허무하기 조차했다. 시계 판에 그럴듯한 문양을 새겨 넣고는 ‘영국 왕실사람들이 애용하는 명품’이라는 입소문을 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청담동의 한 바에서 러시아 무희 등을 동원해 연 ‘신제품 설명 라이브 쇼’에 400여명의 부유층 인사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값은 비싼데 디자인이 엉성한 것 같다”는 일부의 수군거림은 행사에 참석한 인기 연예인 등 참석자들의 면면에 금세 묻혀버렸다. 인기 개그맨 아무개가 찼고, 여배우 아무개가 애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기극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한정 제작품’이라는 ‘빈센트’ 손목시계를 몇 달 기다려서라도 사고야 말겠다는 예약구매자들이 줄을 섰다.

 2006년 여름, 한국의 ‘피프스 애브뉴(Fifth Avenue․뉴욕 맨해튼의 명품거리)’라는 서울 청담동에서 벌어진 사기극은 안 그래도 후덥지근한 올 여름을 더욱 짜증나게 만들었다. 사기당한 사람들의 면면을 거론하며 ‘고소하다’ ‘쌤통이다’는 일부의 반응도 없지 않지만, 그런 식의 가십으로만 흘려버리기엔 짚어봐야 할 게 너무 많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를 휩쓸기 시작한 ‘명품 신드롬’은 많은 사람들에게 ‘허장성세(虛張聲勢)’의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진지 오래다. 그럴만한 경제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스럽되 품질과 기능, 내구성도 뛰어난 최상급 제품’이라는 명품에 대한 풀이는 적어도 다수 한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옆집 아무개가, 친구 누구누구가 들고(혹은 차고) 다니니까 빚을 내서라도 장만해 폼을 잡아야 하는 그 무엇’이 명품의 한국적 정의(定義)가 됐다.

 명품의 대명사로 통하는 루이뷔통이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는 판매대리점이 몇 안 되고, 그나마도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을 지경에 빠졌다는데 한국에서는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다. 심지어 ‘A급 짝퉁’을 사기 위해 여고생들이 계를 들고, 초등학생들은 10만원이 넘는 ‘루이뷔통 헤어밴드’로 머리를 치장하고 과시하기 바쁘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사회의, 시대의 속이 공허할수록 그럴듯한 겉치장의 꾸미기 문화가 판을 친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일깨워주는 바다. 문화와 휴머니즘의 암흑기였던 중세 유럽시절 왕족과 귀족들이 온갖 화려한 치장으로 사치부리기에 세월을 보냈던 게 대표적인 예다.

 쓰면 쓸수록 빛을 발하고, 쓰는 사람과 만든 이의 마음이 하나가 돼 진가를 발휘하는 예술품으로서의 명품문화가 한국에서는 시궁창에 처박혀진 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담동과 압구정동 일대의 전당포들이 본업보다는 ‘중고명품거래소’로 재미를 볼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명품 브랜드도 유행 주기가 대단히 짧고, 그 유행에 조금이라도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갖고 있는 ‘헌 명품’을 전당포에 팔아치우고 ‘새 명품’을 사들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대목에 이르면 할 말을 찾기 힘들어진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자신의 필요와 경제적 여유에 맞춰 고가․고급제품을 소비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에 돈이 돌게 하고, 기업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품질․디자인 향상에 주력하게 하는 자극제로 작용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런 합리적인 명품문화의 궤도를 한참 벗어나있다는 사실이다. 맹목적인 ‘쩨(製)’ 콤플렉스까지 더해진 허영적 소비문화의 만연은 진정한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있는 제품 개발 욕구까지 멍들게 한다. ‘빈센트’ 사기극은 빗나간 한국인들의 소비문화에 경종을 울려줬다. haky@hankyung.com / 이 칼럼은 한국경제신문 2006년 8월14일자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at 2006/08/13 19:51:03 댓글(0) l 트랙백(35) l 스크랩
조지 워싱턴 카바 박사 이야기 [독서 노트]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

 

20세기 초 전(全)미국을

 

감동시키다

 

 

1860년경에 태어날 때는 노예의 자식으로 자신의 생년월일조차 알지 못한 채 태어났다가, 1940년 죽을 때에는 미국 흑인과 백인을 망라하여 전 미국인의 존경을 받았던 최초의 흑인이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입니다. 미국 최고의 농학자였고, 계몽가였고, 최고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을 싫어하는 백인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는 인종을 뛰어넘어 모든 미국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때 미국 남부는 면화 재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면화는 땅 속에 있는 질소를 잡아먹습니다. 땅이 황폐해집니다. 그러면 이 면화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땅을 개간해야 합니다. 그렇게 몇 년 재배하면 그 땅은 또 못쓰게 됩니다. 결국 미국 남부의 땅 모두가 질소를 잃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절반의 경제가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카버 박사가, 질소가 없어진 땅에 땅콩을 심으면 땅콩 재배도 잘 될 뿐 아니라 없어진 질소 또한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권유에 따라, 면화 재배를 하던 남부의 모든 농가들이 땅콩을 재배했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땅콩 농장도 다 그 때 시작된 것입니다.

 

 땅콩의 역설, 새롭게 찾아온 위기

 문제가 또다시 생겼습니다. 땅콩을 심었더니 정말 카버 박사의 말대로 땅콩도 풍년이 들었고 땅도 되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땅콩을 처분할 길이 없습니다. 땅콩 때문에 또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카버 박사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자기 말을 듣고 수없이 많은 남부의 사람들이 땅콩을 심었는데, 그들이 땅콩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괴로움이었겠습니까? 그 당시 자신의 심정을 자신의 전기 속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음이 괴로워서 10월 어느 날 새벽 해뜨기 전에 산 속으로 들어가서 거닐다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오,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무엇을 하시려고 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너의 작은 소견을 가지고 너무 큰 것을 알려하지 말고 네게 알맞는 것을 물어 보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무엇에 쓰시려고 세상에 두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직도 네가 감당치 못할 것을 질문하고 있구나. 그런 쓸데없는 것은 묻지 말고 네가 마음 속으로 진정 원하고 있는 것이나 말해 보려무나.' 나는 너무나 엄숙해졌습니다. 한참만에 나는 마지막으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주께서는 무엇을 하시려고 땅콩을 심게 하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옳지, 됐다. 너는 땅콩을 한 줌 들고 실험실로 들어가서 연구를 계속해라.'"

 

 땅콩 가공제품의 잇단 탄생...로열티는 "하나님의 것"

 산에서 돌아온 카버 박사는 땅콩을 한 줌 들고 자신의 실험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연구한 결과 땅콩 버터, 땅콩 구두약, 땅콩 크림, 땅콩 식용유 등 무려 105가지의 식용품과 200가지의 실용품을 만들었습니다. 카버 박사가 발견한 그 모든 기술로 남부 경제가 되살아났습니다. 흑인이고 백인이고 모든 남부 사람들이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카버 박사는 단 1원의 로열티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남부 미국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비전이었음을 그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카버 박사가 한 줌의 땅콩을 들고 실험실로 들어갈 때 그 땅콩의 가치가 몇 달러나 되었겠습니까? 하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손 안에 든 것의 귀함을 알았을 때 그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남의 비전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손 안에 지금 들어 있는 것, 여러분의 주머니 안에 지금 들어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소중한 도구임을 알 때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메시지 북, '비전의 사람' 중에서>

posted at 2006/07/28 18:53:04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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