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내 현재는 과거 내 생각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방금 지나간 시간에 어떤 마음을 먹었느냐 하는 것이 내 현재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는 얘긴데요. 여기에 어울릴 지 모르겠지만 '과거 사건의 기록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다 돼 가는군요. 2005~2006년에 걸쳐 그해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황우석 박사 사이언스 논문사기 파문 얘긴데요.
황 박사 사건의 파문은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친 잊지 못한 사건이지요. 이 사건은 MBC 'PD수첩'의 첫 폭로로 표면화된 뒤 진위 논쟁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입한 까닭에서 입니다. 더욱이 논문의 거짓이 명백하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사이에 황박사를 지지하는 그룹인 '황빠'와, 그를 비판하는 그룹인 '황까'로 나뉘어져 논란이 계속됐고 일각에서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저는 2005년 4월초 신문사의 과학기술 분야 책임을 맡아 2007년말까지 근무했습니다. 나중에 황 박사의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 2005년 논문이 발표되기 한달여 전쯤 이었지요. 이런 탓에 황 박사와 일면식도 없으면서 희비가 교차한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갖게 됐습니다. 그래선 지 그 사건은 제 인생에서 정말 많은 것을 깨닫게 했고 반성할 기회를 제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 박사의 얘기는 사건을 전후해 여러 사람들이 썼지요. 책도 수십권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고요. 제 얘기는 그의 얘기가 아닙니다. 황 박사의 주변에 머물면서 제게 닥쳤던 일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 기록은 보고 듣고 느끼고 확인한 팩트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스토리 1.중2 딸에게 상처가 된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나와 황 박사와 이야기 거리 중 가장 황당한 일은 딸과 관련된 것으로 2005년 10월에 일어났다. 황 박사는 2004년과 2005년 잇따라 미국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언론 입장에서 특종과 낙종을 가르는 기사거리가 됐다. 당시 우리신문는 10월 4일부터 20일까지 11차례에 걸쳐 'STRONG KOREA-이공계 위기 해법은 있다'라는 기획시리즈를 진행했다.
이 시리즈는 당시 큰 문제로 부각된 이공계 기피 현상을 극복하는 대안을 마련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11회의 제목이 '황우석 교수의 편지'였다.
520) this.width=520">520) this.width=520">
대한민국 최대의 뉴스메이커이자 영웅으로 추앙받던 황 박사로 부터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게재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과학에 대한 꿈을 키우고 이공계 대학으로 많이 진학해 대한민국을 빛내달라는 당부가 편지의 요지였다.
이와 함께 청소년들을 황 교수 연구실로 초청해 만나는 시간을 갖도록 이벤트를 하고 이 사진을 찍어 1면톱 자리에 큼지막하게 실었다. "내 연구의 2막은 청소년 여러분의 몫입니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황 교수의 연구실을 찾은 청소년 중에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인 나의 딸도 포함돼 있었다. 이 기획을 하며 데스크의 권한(?)으로 딸이 재학중인 서울 목동소재 B여중의 과학반 학생 등 20여명을 초청했다.
이 학교들에 전화를 걸어 학생들과 황 교수의 만남의 시간을 갖는데 학생들을 보내 줄 수 있느냐고 의사를 타진해 추진했다.
학생들에게 황 교수와의 만남 행사는 그 자체가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사진이 신문의 1면톱을 장식했으니 참석한 학생들에게는 두고두고 남을 추억거리가 될 수 있었다.
초청된 선생님과 학생들은 학교에서 유명인으로 떠올랐다. 딸도 마찬가지.
B여중의 교감선생님은 내게 전화를 해 1면톱으로 나온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고 이를 확대해 학교 입구에 게시까지 했다.
그 사진은 B여중의 영원한 기념물로 남을 듯했다.
하지만 몇 달도 가지 않아 황우석 박사의 거짓이 드러났고 우리 신문 기획시리즈의 마지막편은 '비웃음 거리'로 전락했다.
딸이 다니던 B여중의 입구에 걸린 이 사진도 어느 순간 사라지는 신세가 됐다.
B여중의 교감은 황 박사의 논문이 조작된 것이 발표되는 날, 교문앞을 지나던 한 여학생에게 그 사진을 떼라고 지시했다.그 학생이 바로 나의 딸이었다.
스토리 2.감방담장을 걷는 듯한 과학기사의 판단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 논문 조작사건의 주인공인 황우석 박사가 태국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재개했다고 한 월간지가 얼마전 보도했다.
황 박사가 '줄기세포'의 연구를 재개하든 '가지세포'의 연구를 하든 이제 내 관심사항에서 벗어났지만 그의 논문조작 사건이 한창일 때 나는 이 사건의 당사자로 참여했고 엄청난 부담에 시달린 기억이 있다.
바로 조작으로 판명된 2005년 5월 논문의 발표 시기 2주일 전쯤에 과학기술담당 책임자로 명받아 이를 다루었고 MBC의 조작 폭로이후 몇달간에 걸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진행된 사건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까닭이다.
520) this.width=520">520) this.width=520">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은 한국 언론의 과학을 다루는 태도에 대한 비판을 증폭시켰고 이 후 과학기사의 보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단초를 제공했다.
이같은 비판은 언론이 황 박사의 연구 내용을 무조건적으로 띄우고 칭찬과 미화 일색의 기사로서 황 박사의 영웅만들기에 앞장선 것에서 비롯됐다. 당시 과학계 일각에서 황박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었지만 이는 완전히 무시됐고 보도자체가 불가능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황 박사의 연구에 대한 보도과정에서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과학기사가 왜 그처럼 어처구니 없게도 가장 비과학적으로 진행됐을까.
이는 아마도 과학 기사의 가치 판단이 감방의 담장위를 걷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감방의 담장 위를 걷다가 발을 잘 못 디뎌 안쪽으로 떨어지면 감방에 가는 꼴이요,바깥쪽으로 떨어지면 사회로 향하게되는 아슬아슬한 면을 과학기사가 갖고 있다는 의미다.
기자는 우선 발표된 과학적 내용에 대해 기사로서 가치를 낮게 판단할 경우 감방에 떨어진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이 때는 아마도 과학기자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받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실제로 어떤 과학자의 업적에 대해 다른 신문은 높은 평가를 했는데 이를 무시하거나 작게 다루었을 경우 기자는 사실상 얼굴을 들수 없을 만큼 된다. 이른바 낙종 기자가 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담장위에서 사회로 떨어질 경우는 언론이 과학적인 내용을 과대 평가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에는 독자들에게 잘못된 꿈을 심어주고 여론을 호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황 교수의 사이언스 발표 논문을 다루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이 저지른 실수가 대표적이다. 언론의 실패는 검증은 차치하고라도 황 박사의 입에서 나온 말을 받아 적고 이를 과대하게 해석한 책임이 있다.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황 교수팀의 업적이 실린 날인 지난 2005년 5월 20일 상황을 되돌이켜 보면 대충 짐작이 갈 수 있다.
이날 거의 대부분의 신문은 1면톱으로 이를 보도했고 관련 해설기사가 서너면에 걸쳐 나왔다.
심지어 한 신문은 당뇨병같은 난치병 치료 길이 활짝 열린 듯한 희망을 담은 타이틀로 1면을 장식했다.
우리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1면에 2단 기사를 싣고 관련 해설을 1개면(5개 박스)에 걸쳐 보도했다.
이러한 지면 배정에도 불구하고 20일자에서 다른 신문과 비교했을 때 양과 크기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다.
물론 이 결과로 나는 이날 엄청난 창피를 당해야만 했다.
나는 그날 황 박사의 연구에 대한 기사가치 판단에서 감방쪽으로 발을 헛디딘 셈이다.
20일자 제작에 나선 19일 밤 우리 신문의 상황을 잠시 더듬어 보자.
잘 알다시피 황 교수는 이미 2004년에 같은 잡지에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복제배아 줄기세포 첫 추출이라는 내용을 발표,세계적 명성의 과학자로 부각돼 있었다.
게다가 황 박사는 2005년 논문게재가 확정단계에 이르자 연합뉴스에 "조만간 세계가 깜짝 놀랄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운을 슬쩍 띄운 상태였다.
이날 사이언스로부터 받은 언론 발표 내용의 골자를 제목만 나열하면 이렇다.
환자 맞춤형 체세포 핵이식 복제배아줄기세포 11개 세계 최초 확립이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을 이해하지만 그게 무슨 소리고, 무슨 의미인지 당시엔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2004년 논문과의 차이는 척수질환 등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 핵을 추출해 핵을 빼낸 난자에 넣고 이를 줄기세포주로 확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례를 무려 11개나 말들어 치료용으로 한발 다가섰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복제배아줄기세포로 치료를 할 경우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그 동안 문제가 된 면역거부반응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진전된 내용으로 꼽혔다.
2005년 논문은 2004년 논문보다 많이 진전되긴 했지만 형식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는 게 우리 신문 취재기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더욱이 국내 줄기세포 연구자들의 반응도 황 박사 주장과 많이 달랐다.
전문가들은 복제배아줄기세포의 경우 치료용으로 쓰이기 위해선 암으로 발달될 수 있는 부작용을 극복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최소한 5-10년의 후속연구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난자 확보 과정에서 윤리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요소도 지적사항의 하나였다.
이러한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총 5개의 박스기사로 1개면의 해설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1면에서 어느 정도 다룰 것인가 어떠한 제목으로 갈 것인가가 고민거리였다.
제목에 사실을 충실히 반영하면 너무 어려웠다.
환자 맞춤형 체세포 핵이식 복제배아줄기세포 11개 세계 최초 확립이라면 당시 이해할 사람들이 몇명이나 될까 말이다.
그렇다고 상용화,즉 치료를 강조할 경우 그건 10년후를 가정한 것이 돼 연구성과를 지나치게 뻥튀기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었다.
최종적으로 우리 신문에는 이 기사가 1면에 2단 크기로 보도됐다.
하지만 다음날 나는 무능하고 판단력 떨어지는 과학 데스크로 '낙인' 찍혔다.
과학기사를 다루며 감방으로 떨어진 악몽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악몽은 내게 그 논문이 조작으로 판명된 이후 "휴"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역설을 제공했다.
스토리 3. 2006 1. 12일의 기록-뒤늦게 아깝다는 평가를 받은 1번 줄기세포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미스터리를 정리해 본다.
황 교수가 국내 동물 복제 전문가에서 세계적 스타 과학자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1번 줄기세포라고 부르는 논문을 2004년 2월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하면서다.
1번 줄기세포 논문의 대강은 이렇다.
한 여성의 난자에서 '젓가락 기술'(피펫을 난자에 찔러 10-30%의 압력으로 핵을 짜내기 하는 기술로 박을순 미국 피츠버그대 파견 연구원이 고안했다고 주장)을 이용해 핵을 제거하고 대신 이 여성의 체세포에서 추출한 핵을 난자에 주입해 만든 체세포 핵이식 복제배아 줄기세포주를 확립했다는 것.
물론 이렇게 수립된 줄기세포는 세계 최초로 이룬 성과로 평가됐다.
이 논문은 발표 과정에서 중앙일보 의학담당기자가 사이언스 엠바고(발표시점)를 깼다는 것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황 교수 연구 재검증을 담당한 서울대 조사위원회 정명희 위원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그러나 지난 1월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논문이 조작됐다"고 발표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황 교수팀이 만들었다고 하는 줄기세포는 체세포 핵이식 복제배아 줄기세포가 아니고 처녀생식에 의해 만들어진 줄기세포로 추정된다"고 결론지었다.
DNA 지문검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라는 게 정 위원장의 설명이다.
조사위는 검증 초기 조사에서 현재 보관중인 줄기세포 DNA지문과 논문에 수록된 난자와 체세포 제공자인 A씨의 DNA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사위원들은 그렇다면 현재 존재하는 줄기세포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출처를 확인해 보자는 과학적 호기심을 풀어볼 요량으로 추적 조사를 했다.
황 교수팀이 핵이식을 했다는 시기와 비슷한 때 난자와 체세포 제공자인 B씨를 찾아내 보관된 줄기세포와 DNA지문비교를 해 본 결과 48개의 마크(인자)중 40개가 동일하고 나머지 8개는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사위는 여기서 고민이 시작됐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 때문이다.
80%가량(48개의 인자중 40개)는 동일한데 어떻게 20%가 다른가하는 점이다.
일단은 체세포 핵이식 복제배아줄기세포는 아니라는 결론이다.
이 복제 배아줄기세포라면 100% DNA지문이 일치해야 한다.
외부자문 등을 통해 처녀생식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난자의 핵을 추출할 때 핵이 다 빠지지 않고 극체라는 것이 외부에서 들어와 결합돼 전기충격을 가하게 되면 난자는 정자가 들어온 것으로 착각해 분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줄기세포로 만들어 졌다는 게 조사위의 설명이다.
현재 존재하는 줄기세포는 따라서 처녀생식 배아줄기세포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줄기세포는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과 같은 이치라는 이색적인 분석을 하기도 하지만 처녀생식이 이뤄져 자궁에 착상되더라도 사람으로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박세필 마리아 생명공학연구소장은 우리 신문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처녀생식 줄기세포도 세계 최초"라고 설명했다.
그는 황 교수가 이를 바탕으로 논문으로 썼어도 세계 3대 저널인 사이언스나 네이처, 셀지에 실릴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일단은 사이언스 논문에 게재된 줄기세포의 DNA 지문은 A씨 체세포의 DNA다.
이 DNA와 현재 존재하는 줄기세포의 DNA(B씨의 것)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논문은 조작인 셈이다.
서울대 조사위는 논문의 DNA자료는 A씨 체세포를 두벌로 나눠 검사를 의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논문의 DNA 자료가 너무 똑같은 것으로 나와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DNA지문의 피크가 너무 똑같아 약간 달라보이도록 손을 댄 흔적이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스토리 4.포르노 수준으로 전락했던 줄기세포 논쟁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2006년 1월 12일 공식 취소됨)과 관련된 줄기세포 진위 논쟁이 포르노 수준으로 까지 전락한 일이 있었다.
황 교수팀이 2005년 12월 26일에 이른바 2004년 논문의 줄기세포 배양을 담당한 미국 피츠버그대 박종혁 연구원과 전화 통화한 녹취록을 2006년 1월 13일 일부 언론에 공개한 게 그랬다.
당시 TV와 신문에 공개된 통화 내용은 이렇다. (이 통화에서 전부 실명이 거론됐으나 여기선 이니셜로 고쳤다.)
황 교수: P(여자 연구원)가 Y(황교수 논문사기 PD수첩 최초 제보자)가 인공수정도 했다는 말을 했느냐?
박종혁 연구원: P로부터 Y가 자기 스펌(정자)를 써서 한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Y 연구원이 수정란 배반포 배아를 복제 배반포 배아라고 해서 준적이 있다고 P에게 들었다.
이 통화 내용을 다시 정리하자면 Y라는 연구원이 '자위행위'를 해 자신의 정자를 이용해 난자와 결합시킨 수정란 배반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Y라는 사람이 연구를 하며 '웃기는' 짓을 했다는 걸 담았다. 즉 'Y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이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녹취록은 공개한 황 교수팀의 의도와는 반대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황 교수팀이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진위 논쟁을 희석시키고 Y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를 갖고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다.
Y 연구원은 나중에 결혼을 한 L연구원과 함께 황 교수팀의 연구가 가짜라는 것을 M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황 교수를 만신창이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 Y를 황 교수가 가만 내버려 두고 싶었을까.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던 줄기세포 논쟁이 급기야 포르노 수준으로 치달았다.
스토리 5. 2005년 5월 13일의 기록:2005논문 발표직전 황박사를 비판한 과학자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석좌교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과학자다.
그는 지난해 미국의 권위있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배아 줄기세포'연구 논문을 발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암 등 각종 난치병과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이 연구에 앞서 지난 2003년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를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다.
황 교수는 오늘 5월 13일 이와 관련해 탄생한 소 4마리중 한마리를 일본 쓰쿠바의 연구실로 실어보내 일본의 관련 연구를 돕도록 했다.
황 교수는 또 조만간 다시한번 깜짝 놀랄 연구결과를 유명잡지에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해 그 내용이 무엇인지 언론계가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국내에선 이제 황 교수의 말 한마디와 연구결과, 그리고 활동은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시대가 됐다.
대한민국에서는 드물게 '과학자 스타'가 됐다는 얘기다.
그는 이같은 세계적 연구결과에 걸맞게 보상도 적지 않게 받고 있다.
정부 등에서 그에게 지원하는 연구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으로 불어나 있다.
이제는 돈이 없어 연구를 못한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그는 국내 과학기술계의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떠올랐다.
이를 반영한 탓인지 과학계에선 심지어 "황우석을 통하지 않으면 어떠한 연구비도 받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 같은 황 교수의 강력한 부상에 따라 최근의 과학계내에는 '반 황우석' 분위기도 적잖다.
일각에선 그의 연구결과에 대해 폄훼하는 목소리조차 존재하고 있다.
이는 상당부문 과학자 사회의 고질적인 병으로 꼽히고 있는 질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과학계는 보고 있다.
황우석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시기성 말이라는 설명이다.
황 교수 자신도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최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내 과학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기, 독불장군 정신, 투서 등 3가지가 사라져야할 요소"라고 쓴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렇긴 하지만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실용화에 대해선 과학기술계 일각에서 회의적 시각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약회사 L사의 Y사장(화학전공 과학자 출신)은 지난 2005년 5월 12일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한국공학한림원 조찬집담회에서 '오프 더 레코더(비보도)'를 전제로 황 교수에 연구결과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Y 사장은 "황우석 교수와 과거 2년간 공동 작업을 한 적이 있다"며 "황 교수의 배아줄기 세포연구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며 배아줄기세포는 암으로 분화할 수 있어 실제 적용이 힘들다"고 했다.
그는 특히 "황교수 연구는 앞으로 상용화에 2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언급한 뒤 "황교수가 배아줄기 세포복제에 먼저 성공한 것은 선진국 정부에서 연구를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Y사장은 이어 "황우석 교수에 1년에 100억씩 15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나라는 없다"며 "바이오연구는 10개 중에 1개의 성공을 골라내는 것인 만큼 다양한 사업에 지원해 성공가능성 있는 것을 골라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Y사장의 이같은 언급에 대해 일각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Y사장이 수의학이 떠오르는데 비해 심각하게 붕괴되고 있는 화공분야의 소외감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있긴 하지만 속내는 알 길이 없다.다만 Y 사장의 말도 앞으로 황교수의 다음 연구 단계를 지켜보면 차차 밝혀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게 순서다. 황 교수가 조만간 내놓을 다음 '작품'이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Y 사장의 지적은 그 뒤에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됐다. 이런 걸 왜 당시 기사로 쓰지 않았냐고 비판을 할 사람들이 있을 지 모르겠다. 물론 양 사장도 오프 더 레코더를 전제로 말했고 당시 황 박사는 비판으로부터 성역이나 마찬가지 였다.이런 내용을 접하면서 사실 황 박사 연구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다)
스토리 6.일반인은 황빠,과학자는 황까가 된 이유
황우석 박사의 '사이언스 논문 조작 사건'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인 2006년 1월경 '원천기술'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었다.원천기술은 영어로는 대체로 Original Technology로 쓰고 독창적, 독보적, 처음의 의미를 가졌다.
이 논란은 당시 황 박사팀 연구 논문에 대한 재검증을 담당했던 서울대 조사위원회 정명희 위원장이 2006년 1월 11일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황 박사팀이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해 "원천기술로 인정할 수 없다"며 "기반기술 정도"라고 유권 해석하면서 비롯됐다.
황 박사는 다음날인 1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논문조작 사건에 대해 국민 들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서울대 조사위의 원천기술로 없다는 것에 대해선 반박했다.그는 그러면서 "우리 연구의 원천기술은 '줄기세포주 확립 과정에서 체세포 핵이식을 하고 배반포 단계까지 개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대체로 원천기술로 인정하지 않는 서울대 조사위의 결론을 지지하는 양상이었다.이와 달리 일반 국민들의 상당수는 '원천기술이 있다'는 황 박사의 주장을 지지하는 듯한 분위기가 많았다.
그렇다면 당시 황 박사의 연구에 대해 원천기술이 있는 지 여부를 놓고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의 시각이 이같이 크게 엇갈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러가지가 이유가 꼽히기 했으나 '과학 외적인 요소의 개입'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됐다.
과학자들은 어떤 사물을 판단할 때 현상을 객관화하는데 가장 주력한다고 한다.
그들은 따라서 "So What?"(그래서 어쨌다고?)이라고 하는 의문을 던지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배반포 단계까지 형성한 것에 머문 황 박사의 연구가 과연 실용화,즉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로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데 의문을 표시한 것이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기술이고 이미 논문 조작에서 증명됐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당시 일반인들은 황우석 박사에 대한 '심정적인 기대치'가 높아 '원천기술이 있다'는 것에 지지를 보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었다. 황 박사가 만든 줄기세포가 우리나라 국가 산업에 엄청난 기여를 할 터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아깝지 않을까 하는 동정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과학자와 일반인들의 판단이 이처럼 차이가 나도록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얘기가 있다.
520) this.width=520">520) this.width=520">
과학자들은 같은 연구분야에서 일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어떤 주장을 할 경우 "저의 이러한 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렸습니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인들일 경우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논문이 실렸다면 "와 대단하다"고 평가하겠지만 상대방 과학자는 그렇지 않다.상대방은 "그런 논문은 나도 쓸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사이언스나 네이처 셀 등 과학저널은 논문 심사과정에서 연구의 흐름상 개연성을 주로 판단하기 때문에 데이터의 오류나 과장 등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속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황 교수의 논문조작처럼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학자는 대신 상대방 과학자를 설득하기 위해 "제 연구의 실험노트를 보여드지요"라고 말한다.
이같은 상황을 황 박사의 원천기술 논란에 대입시켜 보면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이 수용하는 것에서 왜 차이가 나는 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황 박사가 쓴 '원천기술'이라는 이 말이 우리 국민들에게 이같이 깊숙하게 스며들 수 있는가가 당시에 의문으로 남았다.
이는 상당 부문 미국 퀄컴이라는 회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른바 '퀄컴 컴플렉스'라는 것.
한국인들은 CDMA(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 디지털 이동통신서비스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퀄컴사에 대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 바로 이 원천기술을 이용해 한해 수천억원씩 지금까지 몇년간 수조원대의 돈을 로열티로 챙겨 가고 있는 회사로만 인식하고 있다. 이는지금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이 매년 정보통신부 국정감사장에서 퀄컴의 원천기술 로열티 문제를 거론하고 언론은 이를 받아 퀄컴이 엄청나게 빨아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과 함께 항상 "한국도 원천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가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상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퀄컴에 대해 이처럼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우리나라가 창출한 엄청난 부가가치에 대해서는 한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퀄컴 기술을 기반으로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이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도 이제 원천기술이라는 말의 성찬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설득력을 지닌다.
그런 상황에서 황 박사가 당시 '원천기술'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 한국인들의 이런 뿌리깊은 '컬퀌 컴플렉스'를 자극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