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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로 IMF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 우리는 전례 없던 황당한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돈을 다루며 신뢰의 상징으로 불리던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지요. 이는 현실 세계에서 '동방불패란 없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해 줬습니다.
세계 금융의 메카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인해 거대 금융사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지요.
여유 돈을 가진 이들이 쓰러진 금융사들을 이삭 줍 듯 '헐값'에 사들이는 M&A(인수합병)가 한창입니다.IMF를 틈타 한국에서 외환은행 등 부실기업을 싸게 사들여 떼돈을 번 외로운 별 론스타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융사 M&A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지요.
한국에서 번 돈으로 미국에서 포식하는 느낌인데요.
미국 금융사의 부실화는 IMF 때 크게 당한 뒤, 절치부심 해온 우리의 금융사들에도 '회식'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이 미국의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의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은행이 세계적 브랜드파워를 가진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할 경우 한국 금융이 단숨에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진출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왜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 인수에 나섰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이 될 거고요.이 M&A 추진은 이런 측면에서 일단 그럴 듯하고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산은이 M&A 추진에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요소도 엿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미국 4위의 덩치를 가진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라는 이름에 매달려 단순하게 '한국이 미국의 거대은행을 산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간 낭패를 당할 우려가 있다는 건데요. 때문에 철저하게 이익에 기반을 두고 냉철하게 따지며 접근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실제 이런 우려가 국내외 금융가에서 지적되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이들은 가격의 적정성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4일자 기사를 간추려 보겠습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최근 "산은이 리먼 브러더스의 지분 25%를 60억달러에 인수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CNN머니는 "리먼 브러더스의 시가총액은 116억달러에 불과해 제시된 조건대로 딜이 성사되면 산업은행은 시장가 대비 두 배 가격에 구입하게 된다"며 "경영진의 위험한 투자 성향으로 리먼 브러더스에 조만간 닥칠 위기를 감안하면 조건이 지나치게 좋다"고 평가했다.
국내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리먼 브러더스의 장부가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50%의 프리미엄은 지나치다"며 "추가 손실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장부가치에서 할인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리먼 브러더스의 속사정이 위 보도처럼 실제로 그렇다면 산업은행이 '거론된 가격'을 쳐주며 계약서에 사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보도의 이면은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에 대해 초정밀 실사를 거쳐 후려칠 것이 있으면 마구 깎는 (설사 계약을 못하더라도) 냉정한 가격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IMF때 론스타 등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 기업을 말도 안되는 값으로 사들일 때 보여주었던 '노하우'를 우리도 써 먹자는 겁니다.돌려줄 것은 돌려줘야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산업은행은 이와함께 M&A추진 과정에서 과거 현대전자(맥스터) 삼성전자(AST) LG전자(제니스) 등 3대 재벌계열사가 미국에서 처절하게 실패한 M&A 사례를 거울 삼았으면 합니다.
기업 인수합병에 대한 얘기를 한 김에 10년여 전 '한국형 M&A의 실상'을 한번 들여다 보면서 교훈을 얻을 필요성도 있어 보이네요.
해태제과 해태음료 해태전자 해태건설 등 수십개 계열사를 거느리다 IMF이후 공중 분해된 해태그룹의 얘깁니다. 최근 감방을 간 박건배 회장이 이끌었지요.
이 중 해태전자의 M&A 얘기입니다. IMF를 맞기 2년전 쯤 이 회사(해태그룹이겠지요)도 국내 기업들의 똑같은 행태이던 '몸집불려 외형키우기'에 나서며 인켈 브랜드로 잘 알려진 오디오회사를 인수한 적이 있습니다.
해태전자의 인켈 인수는 당시 꽤나 큰 규모로 이뤄졌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요.
하지만 이 M&A는 나중에 해태그룹에 치명상을 입힐 만큼 큰 '허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입니다.
당시 서로 깊은 친분을 유지해 오던 박건배 회장과 인켈 오너 사이에 전격적으로 거래 합의가 이뤄지다 보니 기업인수합병 과정에서 필수코스인 인켈에 대한 해태전자의 '실사'를 생략했다는 겁니다. 장부위에 나타난 수치로만 계약이 이뤄졌다는 얘기지요.
해태전자가 접수 후 들여다 본 인켈의 실상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 였다는 겁니다.
온갖 곳에서 돌발적인 '부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부실 규모는 감당이 불감당이라. 해태전자는 인켈 인수 뒤 부채비율이 1000%를 훨씬 넘었습니다. 그리고 해태그룹은 망하는 길로 갔고요.
산업은행의 미국 리먼 브러더스 인수 추진을 보면서 왜 해태전자의 사례가 머리 속을 스친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