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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의 심정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불안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더불어 실물경제에 한파가 몰아치면서 세계의,나라의,나의 미래를 가늠해 볼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안감은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대로, 낮은 사람은 낮은 사람대로 다 느낄 것으로 짐작됩니다. 다만 강도의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할 거고요.
저는 경제신문에서 기자로 강산이 두 번 변하는 기간을 근무했습니다.지금은 아닙니다. 비경제 분야인 문화를 비롯해 과학기술 정보통신 산업 유통 관련 부서에서 일했고요.
'경제신문의 꽃'으로 불리는 투자 관련 부서인 증권 금융 부동산 부서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국가적이든, 개인적이든 돈의 흐름을 잘 알지 못합니다.
특히 개인의 재산증식 수단으로 꼽히는 '투자'에 대해선 문외한에 다름 아닙니다. 솔직히 투자는 기업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직업을 갖던 해 서울올림픽이 열렸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아마 이 때부터 국내에 개인의 '투자'라는 개념이 일반화한 게 아니었나 합니다.
주변에서 증권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키우던 '소를 팔아' 증권회사에 맡기는 촌부도 있었습니다. 당시 대기업에 입사한 벗들이 가장 선호한 계열사는 당연히 증권회사였고요.
종합주가지수의 상승은 현기증을 일으켰습니다. 증권투자로 통장이 두둑해진 탓인 지 술 인심이 풍부했고요.

주식 투자로 큰 돈을 벌던 이들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이 대열에 끼지 못했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의 돈은 순수하게 내 자본을 말합니다.당시 많은 이들이 증권투자를 하며 은행으로 부터 돈을 빌리고 증권계좌에서 신용을 일으키기고 했지요.요즘 이렇게 빌리는 돈을 고상한 영어표현으로 레버리지라고 하더군요.차입 즉 빚의 영어는 debt라는 게 존재하는데 굳이 레버리지라고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한 도시의 다세대 주택에 전세 살았던 주제에 무슨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얼마 전 한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이른바 '열사' 칭호를 받은 당시 증권부 선배의 말씀도 작용했고요.
"경제신문 기자는 증권 투자를 하면 안된다. 자칫 직무와 관련한 정보를 이용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
선배의 이 말을 후에 "주식 투자를 왜 안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종자돈이 없어 못한다'고 솔직하게 답하는 대신 핑계거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1988년 폭발한 증시는 1년 뒤인 1989년 종합주가지수 1000선을 뚫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곧 고꾸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깡통계좌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소를 팔아 증권투자했다는 촌부의 자살 소식도 따랐습니다. 증권회사로 갔던 벗의 '퇴직'소식도 들려 왔습니다.
지금은 증권투자가 자기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됨으로써 자주 볼 수 없는 투자자들의 '데모'도 있었고요. 정부에 증권 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라는 거지요.
이 때 '투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꼈습니다. 돈이 인간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주식 투자자들의 심리는 88년의 주가상승기엔 오를 때 한없이 오를 것이란 믿음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반대로 89년 고꾸라지기 시작한 뒤부터는 주가가 한없이 내려갈 것으로 믿는 듯 했고요.
당시 주식 시장 상황은 투자자들에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다는 평범한 진리를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계기였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쉽사리 잊혀졌지만요.
이 때 겪은 간접적인 투자 경험은 저를 증권시장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며 국내 증권시장에 얼마나 많은 변동성이 있었습니까.
대세 상승국면에서 수십억을 벌었다는 주변 얘기를 들을 때 "나도 조금이라도 참여?"라는 유혹도 있었지요. 하지만 89년에 한번 먹은 '겁'은 저의 '동요'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가령 2000년 초반 IT붐이 일면서 한방에 수천만~수억원을 번다는 IT 계열사의 우리사주 배정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불참의 근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머니가 빈 까닭이었고요. 사실 결혼 이후 아내의 최대 목표였던 내집 마련에 초점을 맞추느라 여유가 전혀 없었고요.
겨우 조그만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한 뒤에는 돈을 무조건 은행에 맡겼습니다.이른바 저금이지요. 은행 저축은 때로 실망감을 주기도 합니다.
저금리 시대에는 이자를 받아 세금 떼고 나면 마이너스라는 얘기가 나오니까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 생각한 거지요. 앞으로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저의 이같은 저금 올인은 지금처럼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보면 잘못되지 않은 선택으로 보여집니다. 근심이 덜하니까요. 하지만 증권시장이 다시 활황을 맞을 때가 되면 잘못된 선택으로 돌변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이처럼 투자보다 저축을 먼저 생각하는 건 우리 세대가 어릴 때 부터 머릿속에 박혀온 '저축이 미덕'이라는 교육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아내의 말도 많이 작용했습니다."결혼하며 궁합볼 요량으로 용한 점쟁이에게 XXX씨의 사주팔자를 알아보니 열심히 일하고 그 댓가 외에는 벌지 못할 팔자라고 하더라. 그러니 쓸데없는 욕심부리지 말아라."
가끔 아내 몰래 로또복권을 사는데 안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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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투자 대상이 되어서 집 값이 오를거냐 내릴거냐 고민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