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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외에 관심을 쏟는 취미가 있나요?"
살아오면서 저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이럴 때 마다 안면이라도 있는 경우라면 "글쎄요. 술 마시는 것도 취미에 속한다면 그 게..."라고 농담조로 얼무 버립니다. 안면도 없는 경우라면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벌게 지고 말고요. 대답할 게 없는 탓입니다.
때문에 저는 자신의 일 외에 취미 활동을 하며 거기에 푹 빠진 사람을 만날 때 '존경의 염'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들이 이런 활동에 상상이상의 집중력을 쏟아부어 그 분야에서 전문가를 능가하는 해박한 지식을 갖추는 걸 가끔 목격할 수 있어서지요.
근데 바로 이런 사람이 제 주변에 있더군요. 이 양반과는 20년 가까이 동료로 지냈지만 안과 바깥이라는 공간적 차이로 인해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1년여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 그의 내면을 알게 된 것이고요.
그는 직장을 가진 후 10년 사이클로 특정 분야의 취미에 '올인'하다 시피하며 전문가 수준에 이른 후 '졸업'해 왔다고 합니다.지난 20년간 난치기와 낚시에 각각 10년씩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몇 개월 전부터 공들이고 있는 취미는 어떤 분들에게 거부감이 들겠지만 골프 입니다. 이런 탓에 요즘 저와 마주앉을 때면 "연습장에서 어떻게 연습을 했더니 잘 맞더라, 이번 주말에 어느 퍼블릭에 가 시도해 보겠다"는 등등의 얘기를 합니다.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저도 예전에 골프를 해봤던 터라 맞장구를 쳐 주면서도 '그 짓 안하는 게 좋은데'라는 충고를 간혹 합니다.골프 알면 알수록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골프 취미를 갖기 전 10년 동안 그는 낚시에 흠뻑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가끔 출조를 하지만 요즘의 골프에 대한 투자비중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에 머문 상태입니다.
그의 낚시 심취는 1만여명을 헤아리는 인터넷 카페 낚시 동호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히 짐작됩니다. 거의 낙시계 '신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낚시에 빠지기 전 직장 초년병 시절부터 10년간 그를 몰입케 한 것은 '난(蘭)' 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서울의 어느 동에 있던 그의 32평 아파트에서 400여개의 난을 쳤다고 합니다. 아파트 배란다에 4단 높이의 난대를 만들어 놓고 이들을 정성스럽게 돌봤다고 하고요.
적게는 개당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천원만원에 사들인 이 난들의 구입가격을 합하면 당시 1억원대가 훨씬 넘었던 아파트의 시세보다 더 높았다고 하더군요. 보통 샐러리맨 이라면 수천만원대 난을 과연 구입할 생각이나 해 볼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좋다는 난이 있다면 어디라도 찾아가 보고 샀다는 것입니다. 또 난과 관련한 서적은 거의 모든 것을 구해 읽어보고, 전국의 유명한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받았다고 하고요.
때문에 정말 난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난에 대한 그의 설명 중 황중투(黃中透), 백중투(白中透)라고 불리는 동양란이 귀 기울이게 했는데요. 아내가 난 기르는 것에 관심이 높아 집에 20여개의 난을 키우고 있지만 이런 이름 처음 들었습니다.
황중투는 난의 가운데가 노랗게 된 것을 말하고 백중투의 경우 하얗게 된 것을 지칭한다 게 그의 얘기였고요. 이렇게 생기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무척 귀한 난으로 평가되고 가격도 매우 비싸다고 하더군요.
실제 황중투의 경우 몇 년전 국내 최고가인 2억원대에 매물이 나와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결국 매물로 나왔던 난이 사기로 판명돼 거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하지만요. 난 중간에 테이프를 붙여 광합성 작용을 이용해 색깔을 냈다는 겁니다.
그도 황중투에 대한 일화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난원에서 400만원에 구입했던 황중투를 갖고 집으로 가자마자 난에 대해 별무 관심이던 아내가 "그거 비싸게 주고 사온거지?" 라고 물었다는 겁니다.
그는 "아니, 싸게 샀어. 4만원에"라고 답하고 1년 이상 그야말로 애지중지 키웠다고 합니다.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운 그 난의 값어치는 당시로 1천만원을 넘을 것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 후에 보니까 그 귀한 황중투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응 싸게 구입한 것 치고는 있어 보여서 친구에게 선물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는 거고요.
'황중투의 진실'을 고백할 수도 없었던 그는 결국 아쉽지만 포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친구 집으로 간 그 난이 말라 죽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기절할 뻔 했다고 하네요.
난 키울 줄 모르면 이런 말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 말입니다.
이 양반의 10년주기 취미활동을 보면 취미란 말은 심(취)와 탐(미)로 보입니다.요즈음 이 양반에게 블로그를 통해 그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해 볼 것을 권하지만 안타깝게도 말을 안 듣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