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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KBS1 TV에서 방영된 역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요즘에 뜨고 있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 나오는 김명민이 이순신 장군으로 분했었지요.
'불멸의 이순신'에서 장군이 3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해 칠천량 해전 패전서 남은 13척의 전함으로 330척(실제 전투에 참가한 배는 133척)의 왜 수군과 맞서 대승을 거두는 '명량해전'은 주요 장면이었지요.

<사진출처=KBS1 TV 불멸의 이순신 페이지>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전술로써 명량의 물목에 쇠사슬(鐵鎖 철쇄)을 설치해 다가오는 왜선을 걸어 격침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철쇄설치는 이 드라마 뿐 아니라 현대에 출간된 이순신과 임진왜란 관련 책에서도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고요.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철쇄설치를 이 해전에 실제 적용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대승을 거둔 결정적 전술로써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요.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이순신의 리더십을 연구해온 현역 해군 장교가 '철쇄설치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란 주장을 제기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최근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 전승무패의 신화를 이끈 이순신의 필승전략을 분석한 '이순신 승리의 리더십'의 저자 임원빈 대령(아래 사진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 연구부장)입니다.

임 대령은 최근 열린 한 강연에서 "국내에서 그동안 이뤄진 임진왜란 해전 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설화(Fiction)와 사실(Fact)의 혼재"라고 지적하고 "사실로 검증 안된 대표적인 설화사례로 명량해전의 철쇄(鐵鎖)설치"를 지목했습니다.
임 대령은 철쇄설치가 '설'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로 해전이 벌어진 동시대의 기록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명량해전의 전투상황을 가장 생생히 담고 있는 기록의 대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단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쇄 이용이 명량해전 대승의 요인이었다면 해전이 벌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철쇄 준비를 해야 하지만 조선 수군이 벽파진에 머물렀던 1597년 8월29일부터 9월 15일까지의 난중일기에는 기록이 없다는 겁니다.
이와 함께 이순신의 일생을 가장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이분의 '행록'을 비롯, 유성룡의 '징비록' ,선조사후에 만들어진 '선묘중흥지'에도 이런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고요.
임 대령은 철쇄설치가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고 있는 것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무려 150년이 지난 뒤에 쓰인 이중환의 '택리지'(명량의 좁은 물목에 철쇄를 설치하여 500여 척 또는 수없이 많은 일본 함선을 침몰시켰다) 등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택리지는 여러 지방의 흘러 다니는 구전 설화를 엮은 책으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자료로 삼기엔 적절치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게 임 대령의 얘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은 제3공화국 시절 이순신 영웅만들기에 동원되며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임 대령의 해석이었고요.
그는 특히 철쇄설치설이 정설처럼 굳어진 데는 13척 대 330척의 대결에서 절대 열세한 쪽이 대승을 거둔 요인을 그동안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분석하지 못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했습니다.
그렇지만 명량해전의 승리는 사료가치로 충분한 기록물 등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임 대령은 명량해전의 승리 요인으로 천자 지자 황자 등 총통으로 무장한 조선 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의 막강한 전투력과 이순신의 뛰어난 병법 구사,그리고 리더십을 꼽았습니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발발 37년 전인 명종 10년 건조된 전투함으로 조선수군이 애초부터 등선육박전술(적의 함선에 기어올라가 육박전을 벌임)에 능한 왜 수군의 전술을 무력화할 목적(갑판에 판자를 갖고 네모난 집모양의 상장을 설치해 왜 수군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함)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주력선의 3배정도나 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전투를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승선인원은 150명 이라고 하고요.(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하루전에 건조와 최종 시험을 마쳤다는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형태의 거북선은 승선인원이 120명이라고 함)
함선 수에서 열위에 있던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탐망선을 이용해 적의 동태를 치밀하게 감시하며 계속 도망을 다니면서 싸울 장소로 명량의 좁은 물목을 택한 이순신의 전략도 승리요인으로 임 대령은 지적했습니다.
이순신은 우세한 왜 수군함대를 좁은 물목에 가둬 놓고 조선 수군으로 하여금 해협입구에다 포진시켰다고 합니다.이 곳을 빠져 나오는 선두 함선을 집중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하고요.
이는 외나무다리에서 홀로 수십명을 대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겁니다.
이순신의 도망가는 전략에 말려든 왜 수군은 당초 어란포에 집결한 330척의 함선을 동원하지 못하고 명량해전에선 133척만이 조선 수군을 공격하는데 그쳤다는 것입니다.
이 133척 마저도 조류가 세고 좁은 물목에서는 31척만이 해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당초 1대 30의 대결을 1대 3으로 줄여 붙어볼 만한 상황을 이순신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순신은 해전이 벌어지자 마자 적선의 지휘함(일본장수 마사시)에 총통을 집중적으로 퍼부어 격파시키고 마사시를 죽음으로 몰고간 뒤 그의 목을 베어들어 조선수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방식으로 결국 승리를 가져왔다는 얘깁니다.
임 대령은 "이순신은 사실적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며 민족의 영웅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며 "과거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요소들을 통해 이뤄진 어설픈 영웅화 작업이 되레 그 위대성을 폄훼한 것은 아닌 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쇠사슬이아니면 어떻게 이긴거지 더 대단하네
울돌목에는 지금도 철쇄를 고정했던 고리가 남아있지
물론 그 자리에 교량을 설치해서 찾기가 거의 힘들지
일제 강점기에 일본놈들이 한국인들 수백명을 그 자리에 던져넣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지
한국이 일본과 똑같이 남반구 고래 사냥을 하고 있다고 왜곡을 하고 있지
한국 야후를 보면 오늘도 선조의 아들 하나가 백성을 마구 살해했다고 하며
마치 조선시대 전체에 그런 일이 있는 것처럼 적고 있지
다 친일파 매국노를 청산하지 못한 업보
해군 사관학교가 있는 진해에는 벚나무만 무성하고
대표적인 전승지마다 친일파들이 앞다퉈 벚나무를 심어
벚꽃만 가득하지
명량의 올돌목에 직접가보면 명량해전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살이 어찌나 쌘지... 왠만한 작은 어선도(모터달린) 올돌목에 빠지면 허우적거립니다. 임진왜란때의 바람과 노에 의존하던 배들이라면 볼것도 없지요.... 좁은해협에 적을 끌어들이고 올돌목의 물살에 왜선들이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난파된게 더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선수군과 전투를 벌였던 왜선은 맨 앞에 선두에섰던 30여척이라죠.
한편으로는 역사스페셜등 역사다큐물에서 잠수물 동원에서 직접 확인한거 봤는데
그건 뭐인가요?
권력자들이 쓴 역사서만 역사라고 하고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이 민중의 시각에서 기록한 역사서는
민담이니 야설이니 하는 아주 웃기는 작태를 보이고 있구만요...
또한 택리지 또한 시대의 한 이야기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구전 설화모음이지만 사실을 기반에 두고 보탤수는 있겠지만 근거가 없다라고 하는것은 좀 무리가 있는것 같네요..
물론 이순신의 영웅화은 어느누구도 잘 아는 부분이지만 역사을 연구하시는분이 정확한 근거나 그다음 또한 증명할수 있는 사료도 준비하지 않은채 대충 본인의 가설을 가지고 그나마 구전설화 모음이지만 역사적 사료가 충분히 있는책에서 그랬다는데 조금은
신중히 글을 올려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짧은 소견이지만 역사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중국이나 일본 없는것도 지네들것도 아닌 역사을 가지고 지네것이라고 우기고 다아는 추잡한 인사도 국민적 영웅을 만드는데 그당시에도 영웅이었구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우리 스스로 깎아 내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봅니다.. 단지 명랑해전의 실체에 대해 아는바 없지만 대승을 한건 사실이구 그렇다면 그게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그 전쟁을 치뤘는지 가설이 아닌 충분한 사료을 토대로 글을 올려야 그게 국가와 우리 민족의 역사성을 정당화 하구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학자들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봅니다
비록 12노트 정도의 고속(ㅎㅎ)으로 달리지만 그곳에서는 쩔쩔 맵니다. 아무리 물개가 느려터진 배라 할지라도 현대적인 배인데도 그런걸 보면 노젓는 배로 철쇄를 설치했다는건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거리가 수십미터가 아닌 수백미터인데 철쇄의 무게를 이끌수 있는 배가 그당시에 있었을까요? 지금 하라고 해도 만만치 않을꺼에요.
지금도 쇠사슬로 어쩌고 저쩌고? 말이 된다고 생각함?
전쟁이 몇년이나 흘렀는데 배 130척 이상을 묶을만한 굵은 쇠사슬을 단 15일만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
그냥 간단한거야.
그냥 대장선 1: 왜군 133으로 싸워서 이긴거다.
그정도로 이순신은 대단한거고 일본한테는 무서운 존재였지.
전 번에 보니까 울돌목에 조력발전소 설치하는데도 몇번 실패하고서야 간신히 성공하더라구요. 그것도 엄청난 크레인을 동원해서 간신히... 그 동안 '설'에 별생각 없이 당하고 살진 않았나 되돌아 보게 하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올돌목에 빠져 허우적대는 왜선을 요리했죠.
그랴 위대한 이순신장군을 깍아 내리면 기분이 좋나?
200여년 밖에 안된 미국은 영웅들이 수 없이 나온다. 조그마한 업적만 남겨도 영웅화하여 미국인들의 결집력을 드높이고 별로믄 상만들어 지나라 위대함을 홍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왕들 중 미국 링칸, 케네디, 워싱턴대통령에게 버금가는 왕들 수도 없이 많다....
맥아더장군? 우리나라 장보고, 이순신장군에 버금가랴???? 독립전쟁? 유관순누나의 숭고한 희생에 버금가랴...전세계에도 꾸준히 나라다운 나라로 이어져 내려온 국가는 12개 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5,000년 역사의 대한민국 그 하나만으로도 선조들이 위대한 업적인게다.
대한민국 선조들을 그 잘난 펜으로 모욕하지마라... 고증이 안된들 어떠하랴...마음속에 우리의 영웅이며 우리의 꿈을 이어가는 소중한 자산인것을....
기록물에만 의지해 역사 해석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여러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그런면에서 KBS의 역사 스페셜 분석 방법에 더 신빙성이 가더군요.
전투함에 있어서 왜의 전투함은 조선 전투함에 비해 성능,전략 면에서 시대에 많이 떨어져 있었죠. 거기다 유능한 장군까지 있으니 승패가 갈린겁니다.
아무리 좋은 전투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많은 쪽수엔 감당 못하는게 현실인데 그 극복을 이순신장군이 잘 활용해서 승리로 이룬거죠. 이순신 장군이 좌천됐을땐 적보다 앞선 전투함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장군이 활용을 잘 못하게 되면 전멸하게된다는걸 보여줬죠. 함대의 총사령관이 전쟁의 승패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이 주는지 보여줍니다.
조선과 왜의 해전에서 조선이 승리할수 있었던건 조선의 전함이 소수이지만 왜보다 앞선 조선기술로 만든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과 그 전함을 전략,전술적으로 잘 활용한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왜의 해군들이 해전에도 많은 경험이 있는 노련함에도 불구하고 지고 만거죠.
현대에서도 이런 교훈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울돌목 폭이 294m.. 가는 밧줄 여러겹을 일정 길이 만큼 준비,100미터 이상되는 것으로 두가닥준비, 철쇄 일정 길이 준비.70~80미터.. 이 철쇄는 두가닥 밧줄 사이에 매달아서.. 왜적배의 진로를 막는 울돌목 바다의 중앙부에 위치하게 함... 철쇄의 길이는 70~80미터가량이라고 보면됨... 이 철쇄 양옆에 밧줄을 매어서 설치. 왜놈들이 끊지 못하게 필히 왜선을 막는 부위엔 철쇄를 이용해야 했음.
설치법..
밧줄을 강을 가로 지르는 방법은 먼저 총통미사일에.. 가는 밧줄을 매어서 발사해서.. 가는 밧줄을 먼저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고.. 그 밧줄에.. 본선을 이은다음 반대편에서 끍면 됨.
*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신 분들의 고뇌까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lrclub.자게회원....
명량대첩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철쇄론이 왜 허구이구 그러면 어떻게 이기게 됐을 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물론 연구를 바탕으로 한 가설도 들어가 있지만 이 책에서 묘사한 전투 장면이 더 현실적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안해도 되게 미국역사를 배워야합니까 이런 나라가 세상어디에 있습니다. 이순신장군 이제 아만 우리 후손들은 누구인지 모를지도 모릅니다.
참 답답합니다. 국사는 필수로 해야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책에서라도 이순신 장군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번에 다큐멘터리에서 보니깐 아직 남아있던데???
그리고 썰물때 바닥에 나무로 인공암초를 만들어서 적들의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자국들도 있고 이순신이 쇠사슬에 관해 언급한 자료도 있는것으로 아는데.. 다큐멘터리 다시 찾아봐야겠군....
군에도 좌파정신에 물들은 장교들이 많다고 하더니
그패해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먼..
대단한 연구도 아니고요,
한라산 전체에있는 나무를 전부 베어내야 할겁니다 다베어내도 모잘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사슬 만들때 대장장이들이 망치로 내리쳐서 만들죠?? 근데 그렇게 큰건 뭘로 한답니까?? 통채로 녹여서 찍어냅니까?? 조선시대때도 포항제철이 있었답니까? 그냥 져도 전술로 한다는게 사실같음...그거만들 기술력이면 잠수함 만들고 판옥선을 몇만척은 만들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울돌목을 말하면서 물살이 쌔서 나무배로는 쇠사슬 조차도 옮기지 못했을거란 사람들 당신들 바닷가 살았봤나? 아니 어느 해군출신이란분 정말 답답하십니다.
조수간만 이란말은 들어보셨을테고 물이 정지하는시간이 약 1시간정도 되는거 모르시나요? 군대에서 안가르켜 주나.. 한마디로 그 시간에는 물살이 어마어마 한 울돌목도 잔잔하게 변합니다. 그때는 수영해서도 지나다닐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두에 있던 불가 몇척만이 전투에 참여했다고 씨부린 연구가야.. 너 거기 가봤지 그녀석들이 쫓아 올때 부대단위로 나눠서 오지 않은 이상 그 물살에 빠져들면 모조리 끌려들어가게 되어있다. 당신은 쇠 사슬만 연구해라.. 사실 쇠사슬 나는 관심없다만은 교묘하게 마지막 말로 이순신 폄하를 아닌것처럼 하는 너의 위선이 더욱더 가증스럽다.
게다가 천톤의 무게를 바다속에 너었다가 배지나갈때 쌰쌱~ 하고 땡땡하게 당긴다??
이건 바닷속에 포세이돈이란 사람이 진짜 산다고 믿는거랑 똑같은겁니다..
달에 토까가 산다는거 믿는거랑 똑같은겁니다
나같으면 그거 만드느니 대포를 100만개 만들어서 동시에 쐈을겁니다
저분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렇게 지켜낸 나라가,,친일파들에게 농락당하는걸 보시면서,,,지하에서 통곡하고 계실것 갔습니다,,,,
충무공 께서는 쇄사슬 설치가아닌 해전에서의 지략만으로 왜군을 격파했다
그래서 더더욱 대단하다 나는 이렇게 읽혀지는데요
그런데 어떤님들은 친일파 또 영남당 한나라당 뭐 이런얘기도하고
님들 댓글달기전에 주어진 본문을 꼼꼼히 읽어보고 글쓴이의 의도부터 파악하심이
어떨지요 무식 탄로내지 말구요
잠수부가 직접 울돌목 바다밑에 들어가 쇠사슬의 흔적을 확인하고
그리고 양쪽에 쇠사슬을 연결해서 감아돌리는 장치도 보여줬고
그럼 이건 다 꾸민거란 말인가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울둘목의 쇠사슬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측면이 있기는 있기는 하죠. 그런경우가 피라미드도 그렇구, 그런 예는 많죠. 실존하지만 믿기 어려운거..
일제시대 일본의 수탈과 역사조작을 본다면 현재 남았는 우리 자료만을 가지고 연구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죠.
예전 인터넷에서 본거라 정확한지 모르겟지만 군 작전지도에서도 독도를 빼버리지 않앗나요?
교회연관시키기는 싫지만 기독교 장로 출신 대통령에 순복음교회의 이순신 사탄론으로 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기는 가네요..
일본자료는 어떤가 하는 거 보면 확실하지 않나요?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을 가지고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 게 사슬이면 어떻고 고무줄이면 어떻나요? 임 령이란 사람 지금 정작 중요한건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의 업적을 건드리는게 아니라 우리나라땅을 자기땅이라 우기고있는 일본놈들을 독도근처에도 못오게 하는게 아닌가요? 해군 대령이라는 사람이 우리바다를 지킬생각을 해야지 목숨을 바쳐 우리나라를 지킨 선조들 얼굴에 상처를 낼려고 하니 한심해요정말.
임대령의 발표에 진실이니 아니니 하면서 싸울필요가 전혀없다고 봅니다.
거 택리지가 설화가 있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설화책이라고 매도하는것은 좀 더 웃기지 않을까?ㅎ
문헌에 없다고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수 있는 역사가가 있을까?ㅎ
예전에 '역사스페셜'에서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는데;;
왜 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설화'라고 하는 거지?
이것도 설이지 않는가?
이순신이 철쇄를 안쓴게 폄하하는 겁니까?
그리고 제가 알기로도 판옥선이 일본선보다 뛰어난 배인걸로 아는데
거기다가 판옥선은 360도 회전이 가능한 배라서 해안선 복잡한 한국 남해안에
최적화되기도 했다죠. 일본 안택선은 허세용 대장선 큰배이지 주력선은 세키부네 같은
잡선이었다고 알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게
본문에도 언급된 종류별 조선의 발달된 화포무기를 실을 수 있냐 없냐 차이도 컸다죠
판옥선은 튼튼하고 큰데다가 한국해안 최적화, 대포 반동도 견디는 견고함, 거기다가 360도 회전도 빠르게 하니 대포 연사력도 높일 수 있었는데
왜선은 배가 커도 대포하나 실어 다니기도 힘들고 배위에서 조총이나 쏘고 해적들처럼 들이 박아서 백병전을 유도하는 스타일 이었기때문에 하드웨어로 보면 많이 전력차이가 났을 것입니다.
이 해군대령이 주장하는 대로라고 해도 13척이라는 전략상 열세를 역으로 이용한 심리전과 지형을 이용한 전술등 모든것이 너무나 멋지고 극적인 전투인데 이게 왜
비현실적인 쇠사슬 설을 부정했다고 이순신 폄하가 되나요?
거기다가 좌파니 무슨 난데없는 영남파 어쩌고는 왜나옴? 이사람 혹시 한나라당?
뭐 한나라당이고 자시고 일단 이 설자체는 충분히 들어줄만 한건데
정말 역사라는걸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는 분이 많네요. 공무원 한국사 문제집이던 고딩 국사책이던 앞에 역사에 대한 문구가 나옵니다.
역사란 과거의 사례를 돌아봄으로서 현재의 삶을 더욱더 풍성하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줏대도 없는 애국심 충족용 자위용이나 그어떤 식으로든 왜곡이나 과장되어선 안되죠. 일본 욕하면서 일본과 똑같은 짓을 하고 싶어 하는 분이 많네요.
그리고 유치한 지역감정 물타기는 그만하시죠.
그리고 철쇄같은 경우 울돌목폭과 함게 조류의 흐름 철쇄의 무게를 생각하면
적이 쳐들어올때 사람의 힘을 이용해 철쇄를 끌어올리는건
대략 계산해도 수천명대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울돌목 유속이 약해진 현대에 12노트가량
거기에 울돌목의 철쇄가 예전 방송처럼 4톤이라고 하고
왜선이 순류를 타고 올시 대략 5노트는 속도가 붙을겁니다
거기에 세키부네가 100여톤이상 아다케가 200톤이상입니다
여기에 탑승인원+각종장비등등 다합하면
결과적으로 저 무게에 12노트이상의 유속이 더해져 철쇄에 얼마만큼의
무게가 나갈까요?간단히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죠..
4톤? 택두읍어요.. 수백톤이 필요합니다..
더더욱이 명량해전때 이순신장군은 그나마 판옥선에 태울 인원도 부족했는데
어립잡아 계산해도 울돌목에 철쇄가 만약있었다 철쇄끌어올리고할 인원이 없음
실제로 명량해전때 판옥선은 13척이 다가 아님.. 하지만 인원이 부족해서
13척만 전투에 참가했죠 거기다 이순신장군은 치명적일정도로 쇠부족으로
총통이라던가 무기제작에 고심했습니다 울돌목을 가로지를만한
철쇄가있었다면 이것도 머리아플필요가읍죠
거기에 명량해전은 쳐들어오는 적을 막다가 끝난 전투가 아니에요
후반 반격을 통해 총대장 도도 다카도라가 부상당하고 군감 모리 다카마사는
물에 빠졌었죠.. 즉 철쇄로 울돌목을 봉쇄했다면 반격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일본은 총대장이 최후방에 위치합니다.. 그런걸 감안하면 철쇄로 봉쇄했다는건
말이 안돼죠..
거기다 철쇄가 잇으면 명량해전 초반에 이순신장군의 대장선을
제외한 12척은 뭐가 무서워서 한참 뒤에서 이순신장군 싸우는거
구경만했답니까? 말이 안되죠
철쇄설의 가장 큰구멍인 다름아닌 이순신장군의 기록과
전혀 매치가 안된다는겁니다 실제 난중일기에는
철쇄이야기가 전혀 없고 명량해전의 설명도
위에 저 구경만한 12척 문제라던가.. 전투과정에서도 그냥
초반에 혼자싸우다가 나중에야 뒤에 함들이 슬그머니 가세해서
이겼고 하늘이 도와서 이겼다라고 적어놨죠..
그 어디에도 철쇄를 이용한 승리라거나 전투과정이
철쇄를 이용한 전투와 거리가 멉니다..
보시다시피 명량해전의 철쇄설은 거의 사실이 아닙니다..
이순신 못지 않은 원균도 철저한 이순신 숭배자들의 잘못된 논리로 그 위대함이 치졸하게 변질 되어버린 사실도 짚어 볼 일입니다.
분명히 선조는 원균을 용장이라 했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한 인물을 우상화하기 위해 다른 한 인물을 폄훼했다면 역사는 그 사실을 명징하게 추려내야 위대한 역사를 후손에게 물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이 자위대 장교들의 역사 왜곡을 주제로한 논문으로 몸살을 앓는데 비해
우리 나라는 역사의 진실에 용감하게 접근해 그 가치의 위대함을 어필하는 것이 정말 자랑 스럽게 느껴지는 기사입니다.
들 자체가 넌센스다. 기껏 해안에 발견되었다는 고리의 흔적이라는 것은 섬과 육지를 오가는 나룻배용이라는 것은 잠깐만 생각해보면 아는 것이고, 이렇게 확실치도 않은 것을 아무 검증도 없이 믿고 싶은대로 믿어버리는, 그래서 결국은 자기 역사를 존중못받는 소설정도로 격하시켜버리고도 우리만 좋으면 그만이다 생각해버리는 무개념이 문제다.
일본해군도 물살이 센곳에서 수군 연습했다고 했고요.
그런 얘들이 자기나라 물살이 아니고 한국의 물살이라고 적응 못해서 우왕좌왕하다가
몰살 당했다고는 믿기가 힘듭니다. 아무리 배의 성능에서 차이가 난다고해도 13 대 133이라면 13이 이기기는 힘들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 울돌목의 빠른 급류와 철쇄인데 위에서 얘기한바와같이 일본도 울돌목과 비슷한 바다에서 연습한 애들이니 남은것은 철쇄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라니... 이순신장군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신라는 민족배신자, 조선은 나라뺏긴 볍신국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밖에 보지않습니다. 역사란 뭐다? 현재를 보는 거울입니다. 오죽하면 한때 인터넷을 휘젖던 환빠니스트들의 '조선은 화교 이성계가 세운 국가'라는 헛소리가 먹혔겠습니까.
조선이 부끄럽답니다. 일제에 뺏겨서 부끄럽고 신라는 당나라에 대고구려제국을 팔아서 부끄럽고 ㅋㅋ 우습죠.
이 철쇄를 관리하는 담당이 김억추었고, 울돌목 철쇄설은 이 김억추 후손들을 통해서 나온겁니다.
그래서 세간에서 김억추를 이누아샤 철쇄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역감정을 가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부로 표출했다면 절대로 성웅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왜선과 판옥선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왜선은 1명이 1개의 노를 젓습니다. 반면, 판옥/거북선은 5명이 1개의 노를 젓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전통 한선의 노는 꺾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대신, 추진력은 겁나 세죠. 이런 판옥/거북선도 지나가기 힘든 곳이 울돌목인데, 거기를 왜선이 지나가면 ㅄ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울돌목에서라면, 조선 수군이 굳이 철쇄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요. 파워의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이죠. 조선 수군은 판옥선에 적어도 20문 이상의 화포를 싣고 다닙니다. 또, 화포의 포탄체계도 매우 독특해서, 화포에서는 장군전이라는 대형 화살을 쓰기도 합니다. 무게는 더럽게 무겁고, 화살이다 보니 맨 끝에 촉이 있어서, 파괴력은 더럽게 강합니다. 이것 몇 발만 왜선에 넣어주면 왜선 바로 꼴까닥 하고 침몰합니다. 또, 조란환이나 연자탄을(대략 산탄) 수백발씩 넣고(100-300) 방포해서 제대로 크리뜨면 왜선의 왜병들은 바로 좃된다 이 말입니다. 헌데, 왜군의 화포는 대조총(최대 구경 8cm, 사거리 800m)이라는 것밖에 없는데, 이것도 그나마 안택선(대장선)에 2-3대밖에 없습니다. 산탄 20발이나 큰 철환 1발을 쏘는데, 이것이 천/지/현/황/자총통이나 불랑기포에 비할 만합니까? 아닙니다. 게다가, 조선 수군의 판옥선/거북선은 왜선보다 높이가 1-2m 이상 높습니다. 왜군이 장기인 백병전을 펼치기 힘들죠.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조선 수군의 이점을 잘 이용해서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것입니다. 명량해전같이 지형적으로 유리한 곳에서라면, 조선수군의 장점이 훨씬 잘 나타날 것인데, 미쳤다고 철쇄를 씁니까? 거기 드는 철이 얼마인지는 아시는지요? 그 긴 거리를 철로 이으려면, 조선 수군 재정 바닥납니다. 제발 현실적인 소리를 하세요.
요즘 애들 만화보면 아예 주제가가 일본말로 나온다.
머 이제 친구같은 나라로 될것이고
부산에서 일본까지 터널생기면 부산인지 일본인지 모르게 될것이고
5년후에는 잠시쉬고있던 대함대를 뒤에서 불질럿는데 바람이 불어서 다 타버렷다고 나올수도 있겟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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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뷁멸의 이순신, 너무 믿지 마십시오. 잘못된 고증이 난무합니다. 그리고, 대본을 쓴 사람(윤xx, 캐왕세종 대본도 씀)의 역사 창작실력은 정말 하늘을 찌를 정도입니다. 제발 그 이상한 드라마 믿지 마십시오.
그런데 밑에 댓글들을 보니 그게 아니였나 보네...
설마 강강수월래도 그때 일본군을 속이기 위한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요..?
철쇄로 130척의 왜선을 묶는다는것 자체가 현실성이 없데. 그다지 작은배였더 치더라도 배의 규모상 사슬로 막을수 없다고 하더라. 더군다나 그런 작업할때 드는 노동력도 많이 필요하고 쇠사슬 만들때 들어갈 쇠도 문제지. 그정도 쇠라면 사슬로 쓰는것보다 화포, 총, 칼 만드는게 더 나아.
철쇄설 첨 언급되는게 누구 행장이라고 하던데...이게 일기장 같은거라고 하더라구. 난중일기도 일기지만 그나마 기록의 가치가 있는 수준이지만.....그 행장은 과장이 심해서 철쇄가 아니라 바람의상처(이누야사)를 쓰는 수준이라구 하더라구. 당시 별반 공이 없던 녀석을 마치 한몫한것처럼 과장하려고 꾸몄다고 보는게 현실적이라고 하더라구.
명량해전은 철쇄니 머니 하는 물건이 아니라 이순신 개인의 퍼포먼스고 판옥선과 각종 화포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조선수군의 힘이야.
위에....조선수군도 작은배 쓰고 일본과 대등...안택선은 더 큰게 있구 하는 헛소리 하는 작자 있는데. 당시 판옥선은 바다위의 성체였어. 일본배들이 더 컸음 진작에 당했을 거라구.-.-;;;;;;;;;
그 일반 안택선보다 몇배 크다는 안택선은 왜란 끝나고 몇백년 지나 나오는것들이구...판옥선도 왜란 이후 커졌다 하더라.
조선수군도 작은 협선을 쓰기는 하지만 주력으로 쓰는건 아니고 왜란때 조선수군의 전선은 죄다 판옥선이나 거북선을 말하는거지.
압도적인 승리는.......판옥선의 우위에서 나오는거야. 이순신이 아무리 신장이더라도 판옥선 없었거나 일본애들이 더 큰 배를 썻음 못이겼지.
칠천량해전에서 박살난 조선수군은 판옥선이 아니었던가여
판옥선에 거북선 까지 한방에 갔는데..... 물론 100% 수전에서 박살난건 아니지만
조선 수군의 전력 95%는 이순신장군이 아닐까 합니다
조선 활 사거리>>>>왜군 조총(사거리 대략 50보)
조선 승자총통 등 소형 총통 위력>>>>>왜군 조총
조선 승자총통 등 소형 총통 사거리>>>>>왜군 조총
조선 활 연사력>>>>>>>>왜군 조총
허나,
조선 활 위력<<<<<왜군 조총
조선 승자총통 등 소형 총통 정확도(소승자총통 제외)<<<<<왜군 조총
조선 승자총통 등 소형 총통 연사력<왜군 조총
훈련의 어려움: 조선 활/승자총통>>>>>>>>>>왜군 조총
입니다. 조총이 그렇게 좋은 무기가 아니에요. 나중에 조총이 조선의 전통 소형 총통을 거의 대체하게 된 이유는 바로 밑의 장점 때문이지요.
그 시대에 그런 철쇄를 만들 수도 없었고 만들었다 해도 그 무게가 수 십톤이 되었을 텐데 그걸 설치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울돌목 폭이 아무리 좁다 해도 수 100m는 넘을 텐데 배가 걸려서 넘어져도 끊어지지 않을 쇠줄이라면 자중을 합하여 많은 무게를 견디어 내야 할 굵기를 지녀야 하기 때문에 쇠의 량도 무게도 엄청 나게 되며 그것을 설치하는 것도 장비가 없던 시절에 결코 쉬운일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저도 의심을 하고 있었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당시 어디서 그렇게 많은 철근을 모와서 만들었을까요 대장간에서 농기계나 무기 정도를 겨우 만드는 수준에서 물쌀도 있지만 바다 폭이 600m는 족히 넘는거 같은데그 많은 쇠사슬을 크레인도 없이 배에 실어서 연결 할 기술은 지금 현대에도 3박4일은 족히 걸릴 일 인것 같던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어서 위안이 되는군요 그리고 유달산 노적봉도 사실 전설 같은 이야기를 너무 픽션화한 경향이 잇는거 같습니다 아마 박정희씨가 대텅령되면서 동일시 하기 위한 하나의 우상화가 아닐까 합니다 이순신장군님이 물론 훌룽하고 대기만성의 대표적이고 세게적인 제독인 것은 500% 인정합니다
조선시대때 제독이란 직위가 있었나요? 우리나라의 자랑스럽고 위대한 역사의
한페이지를 사실성이 결여된 기사로 혼탁하게 하는것 정말 망에 들지 않는군요.
군상정권 때에 영웅화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거짓을 가지고 일부러 부풀리지는 못합니다.
쇠사슬은 진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얼마든지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야기 이고요.
그리고 난중일기에 없다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좀 어패가 안맞습니다.
난중일기자체가 역사서가 아닌 개인 기록물이라 얼마든지 이순신 개인 신상의 사정에 따라 안쓰일 내용이 존재합니다.
특히 명량해전 같은 경우의 조선의 마지막 해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의 전략 같은 경우는 당시 조선군의 상황에 맞추어 부득이하게 일기에서 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쇠사슬(본인은 쇠사슬보다는 동아줄 굵은 것을 중간중간에 쇠고리로 이었다고 보는게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지만...)전략은 그 전략이 있었다는 가정하에 당시 전투의 꽃과 같은 전략이었습니다. 물론 실패의 경우에는 도가 되어버리는 모 아니면 도이지만.
그러한 기밀 사항을 당시의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같은 치밀한 전략가가 기록으로 남겨 첩자의 가능성에 노출 될 위험따위는 만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사서가 아닌이상 남길 의무도 없고요.
그리고 지방민의 증어도 역시 수백년뒤의 일 가장 신뢰성 있는것은 그 당시의 기록아닌가?? 또 필요한 철쇄만 봐도 양이 문제다. 이순신이 가장 어려워 헀던거 중에
하나가 물량이데..그많은 철을 어디서 났을지..
아니 생각해보면 철쇄없이 전술적으로 이긴게 더 대단한게 아닌가??
여기서 왜 친일파가 나오는지..
설화라고그래도 믿어 믿으면 복이온다르는말도 모르시나..
따지고분석하는놈들 잘되는거 본적이 없다
역사상 최초의 해군함포전투는 고려말 최무선-이성계시절 우리나라가 입니다.
그때부터 임진란시절까지 갈고닦은게 조선해군함포전입니다.
당시 전세계 최고의 함포전/함포전술/함대전술이 맞습니다.
국내의 사실을 무시하고, 해외의 사실을 기준으로 따지는건 말이 안됩니다.
그 대단한 함포전도, 조선후기로 가면서 더이상의 개량,훈련이 되지 않아
발전되지 못했고,
서양은 그 이후 대항해시대와 대해전시대에도 조선만큼은 되지 못했지만,
그 이후 과학기술발달로 함선과 함포가 개량되면서 세계를 제패하게 됬고,
신미양요,병인양요때는 조선이 후달리게 된거죠.
사실은 사실대로 봅시다.
폭은 나와 있고 그 날자 추정해서 해류 속도 대입하고 일본군 배의 무게를 감안하면 쇠사슬의 두께는 어느 정도 되어야 장력을 견디고 양 해안의 지지점에 가해지는 힘도 계산해보면 일단 가능성 문제는 해결되죠? 사실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러나 그 어떤 공식사료에도 이 철쇄와 관련된 내용은 없습니다.
고로 철쇄존재설은 훗날 민중들이 이 충무공의 신출귀몰한 전술전략에 그 지역민이
어느 정도 공을 세운 것으로 과장하기 위해서 탄생되어 구전되어온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정확히는 디씨 과학갤에 의뢰한 결과 철쇄의 무게는 400톤은 되야한다고 나왓죠..
흑백영화에서 거대한 쇠사슬을 소로 끌어당기는 흑백영화 영상을 보여주며, 그동안 진위여부가 분분했던 쇠사슬이 실제 존재했었다면서, 그 쇠사슬을 걸었던 큰 쇠고리(구멍이 50센치 이상 되어 보일 정도로 매우 컸으며, 바닷가에 꽂혀 있었음.)의 흑백사진이 발견되었다면서 보여줬었거든요. 언젠가 뭐 지으면서 뽑아냈다고 합니다.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그 와중에 과연 철쇄 400톤어치를 준비해서 섬을 연결하는 대 공사를 진행 할 수 있었겠습니까.
상식적으로도 철쇄론은 이미 논란거리도 안됩니다.
한심하군요...설득력도 없고 님도 역시 추론을 제기할 뿐이고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다른 문건을 근거로 제시한 겄도 아니고 누구나 다아는 문건을 글 그대로만 추론한 것은...영.....
그 사실은 동시대의 그장소에 있던 사람만이알수 있는것....
연구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시기를..
그럼 주몽이 활을 잘 쏘는 것을 과장해서 100리밖의 새도 맞추고 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하기에 그가 활을 잘쏘는 것이 거짓이라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인가?
이성계가 활을 연습할때 몇백보 밖에서 집안 문지방에 구멍이 뚫린 곳으로 화살을 날려 방안의 촛불을 끈것도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인간의 능력이기에 이성계가 활을 잘 쏜것은 거짓 설화가 되는 것인가?
설화는 말그대로 말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말로 전해짐에 있어 덧붙여지고, 과장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신이 얼마나 연구하고 권위잔지는 모르지만 조용히 연구활동하시길.....
네티즌에는 당신보다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많으니 신중하시길 당부합니다..
"숫적인 열세를 극복한 과정을 이해하기 힘드니 알기 쉬운 설명을 만든것이라고.."
그 설화을 읽을때 우리는 철쇄를 읽으면 안된다. 민중들의 이순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 당시 전투의 임진왜란 사에서의 중요성... 이런거다. 철쇄를 믿는 것은 이성계가 활을 쏴서 물동이를 뚫고 퉁두란이 진흙을 던져 막았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것과 같다.
링크나 걸어주시고 댓글러쉬해주세요. 사학자 연구가 이름이나 좀 공유하죠
유적지를 갔던 기억이 있는데...그때 쇠줄을 흔적과 쇠줄의 유물을 본 기억이 있음...
허구는 아닌 듯...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지...이상한 주장하는 사람이 많군....
우리나라에는 너무 일본간첩이 많은것 같으니...
그리고 명량해전이 아니라도 언젠가 티비 다큐에서 경남인가 남해에서 물빠지고들어오는곳,바다밑바닥에 나무목책같은걸 많이 설치해 들어오는 왜선을 항해못하게한,
그러한 목책의 일부가 아직도 해안에 남아있는걸 본적있습니다.
꼭철쇄가아니라도 바다밑에도 전시에 유용하게 써먹을수있는 뭔가를 했던 사실은 있습니다.
역사스페셜(유인촌씨가 진행했던),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데 나온 내용을 철썩같이 믿고계신 분들이 많아서 글 남깁니다.
제가 아는 분이 박물관에서 일하다가 바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던 pd와 접촉한 적이 있어 아는데 그런 tv프로그램들 뭔가 그림이 되게하기 위해 사실의 과장과 왜곡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런 것 너무 믿지 마시길.
설마 아직도 tv에 나오는 것은 다 사실이라고 믿고 계실만큼 순진하신건가?
옛날 유물들을 보면...우리가 도저히 신을 수 없는 신과 옷들(엄청커서) 그 당시 사람들은 입었다....
그시절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한심.. 그렇다더라..아니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으로도가득한 뇌내망상만..
무슨 역사가 펌질놀이야 아니면 상상만으로 써나가는 판타지소설이야.. 어이없음..
아니 요새 판타지소설은 고증이라도 철저히 할려는 사람들도 많드라
역사는 서로다른 기록과 추측을 비교하고 연구해가며 기록하는거지
그렇다더라 그렇지않을까하는 펌질과 망상으로 기록되는게아님
그러면 역사왜곡한다고 욕하는 일본애들이랑 우리가 다를게 뭐임..
하여간 웃김..
꼬우면 http://warfog.net/main.html 에서 난 주로 자주가니
여기다 글남겨서 철쇄설의 근거를 대보세요
나를 비롯해 나름 임진왜란 공부좀 한사람들 득실거리고
나야 중수쯤밖에안대지만 신재호님이나 김경진님같이 임란 전문가들도 있으니
대신 허접한 주장들고왔다가 개망신당하는건 책임못짐
모르면 입닥치라는 식의 오만함 좀 버릴 수 없니?
쇠사슬이든 쇠줄이든 사용했든 하지 않았든
그저 정확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야 별별 가정이야 할 수 있는데
네 주장하고 다르면 그저 쥐잡듯이 몰아붙이누만?
말도 안되는 네 주장 한 가지...(혹시 고딩이냐?)
물에서 200톤이 뭍에서 200톤하고 똑같다고 보나?
내가 육지에서는 40kg 들기도 힘들어하지만
바다 물에서 1,200kg 배는 밧줄 하나로 마음대로 움직인다.
지름 2cm 쇠줄이라도 200톤이 아니라 500톤 배도 붙잡을 수 있단다.
거기다가 200톤 배무게와 200마력 엔진출력을 혼동한 것은 아니겠지?
12노트의 물살이야기로 대꾸하려면 아예 그만두거라.
15노트로 봐도 시속30키로(정확히 27.78km/h) 이하다.
설마 왜군들이 물살을 타고 전속으로 이순신 대장선을 향해
진격해 왔었다고 구라치지는 않겠지?
상대의 글에 무례하게 엥기는 네 4가지가 짜증나서
똑 너같은 방식으로 글을 써 봤다마는 영 기분 찝찝한데
이런 기분을 너는 어찌 견뎌내나?
만약 정말 철쇄설의 그럴듯한 근거가잇으면 http://warfog.net/main.html와서
임진왜란 게시판와서 적어주길.. 근거잇는 주장은 언제든 환영임.
그럴용기읍으면 게시판서 검색이라도 해서 보든가
그렇게 신봉하는 역사스페셜에서 자문담당하던 별무사님이
철쇄설에대해서 적어논거도있으니까 ㅋㅋㅋ
그리고 어느 미친 장군이 자군의 전쟁전략을 일기에 낱낱이 기록할까ㅋㅋ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장군이 서서 오줌눴다는 기록이 없으니
이순신장군이 남자인 것도 사실이 아니라 설일 뿐이로군요.
그리고 어떤 분은 "울돌목"을 "올"돌목이라 쓰신 분도 있는데 한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그리 쓰신 걸 보면 오타는 아닌듯... 울돌목은 물살이 어찌나 센지 용울음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울 명자 "명량"이고 우리말로 "울돌목"입니다. 이렇다 저렇다 말씀들을 하시기 전에 먼저 울돌목에 한번 가보세요, 그리고 당시의 조선배와 일본배의 차이점(조선배는 밑바닥이 평평한 판옥선이어서 회전하기가 쉽지만 일본배는 밑이 뾰족해서 회전 내지 방향전환이 쉽지 않음)을 함께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면 역사적 사실자료를 굳이 뒤져보지 않더라도 그 많은 함선이 왜 적은 수의 조선수군에게 참패를 당했는지 답이 나올 겁니다...
조선수군의 승리의 비결은 판옥선이 일본배보다 좋았고, 함포가 왜군보다 위력적이어서 였다느 거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말을 할때, 이순신을 제외한 다른 조선의 수군 장수들은 왜군보다 수배나 많은 배를 가지고도 적은 왜군에게 엄청난 격차로 패전을 했다는 것을 같이 말하는 법이 없다.
조선 수군의 장비가 그리 우수했다면, 왜 다른 수군장수들은 왜군보다 2~5배 이상 많은 함선을 가지고도 적의 배를 몇척 격침시키지도 못하고 몰살을 당했단 말인가?
이순신의 함대는 티타늄 도금이라도 입혔단 말인가?
몰살당하고 남은 배들이 이순신이 이용할땐, 인듀런스, 홀리라이트, 스트렝스 등의 마법이 중첩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깍아내리는게 해군장교가 할짓입니까??
좀더 대한국민들에게 힘이 되거나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하셧으면 합니다
그러니 제발...지금 배타고도 건너기 위험한 바다라고 옛날에 어떻게 쇠사슬 설치했겠는가 못했을꺼다...이런 논리 좀 펴지 맙시다.
사람손으로 베 수백필씩 어떻게 짭니까? 짚으로 멍석짜고 뭐짜고...
요즘 사람들이 못하겠죠.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겠죠.하지만 옛날엔 사람이 다하던 일이었죠.왜 단순한 이치인데 자기 기준에서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까요?
옛날 사람하고 요즘 장정하고 싸움 붙이면 요즘 장정 아마도 맞아 죽을꺼라던 어떤 분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요즘사람들 덩치는 클지 몰라도 힘조차 옛날사람 못이기죠.
선조들의 지혜와 힘...한계없는 사고로 쇠사슬...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있고 한참 후에 쓰여진 책, 야사 모아놓은 책이라고 믿을 수 없다시는데이순신이 정조때가 되서야 제대로 거론될 수 있었던 역사적 사실은 간과하신겁니다. 택리지를 야사라고 낮잡아 평가하는 사람은 아마도 대령님 밖에 없을 듯 싶군요..ㅎ
이순신을 거론 못하던 시절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와 후에 기록된 것은 믿을 수 없다면
어떤 사료여야만 믿을 수 있나요?
대령님은...삼국유사도 야사모음집이니까 안믿으시겠네요. 단군신화 내용도 설화니까 단군조선도 픽션이겠고...(대령님의 발상이 바로 단군신화를 부정하는 일제식민사학자들과 같군요.)
일본 기록에 나와있는 쇠사슬로 명량해전에서 대패했다는 내용은 적군측 기록이라서 믿을 수 없나요? 명랑해전전 쇠사슬을 옮겼다는 이순신의 기록은 명량해전 이전이라서 인정하지 않나보죠?
어린이였을때 뭘모르던 제가 동화를 읽으면서 어떻게 십여척의 배로 몇백척의 왜선을 쳐부술수 있지?뻥아니야?라고 생각했던적이 있었습니다. 과장이 분명 섞여있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그건 뻥도,과장도 아닌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만약에 나중에 미래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있을 수 없는, 입으로 전해지다보니 뻥이 더해져 과장된 일이라 치부한다면(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건 바로 대령님과 같은 편협한 시야를 가진 연구자들 때문이라고 말할수 있을겁니다.
역사연구에서 작은 파편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리저리 끼워보는데, 대령님같은 분은 편협한 시각으로 소중한 덩어리도 필요없다 버리시는군요.
쇠사슬 가설의 근거들을 무조건 야사로 치부해버리는 대령님의 그런 태도가 정말 위험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