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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명량해전 철쇄설치는 역사적 사실 아니다" [피플 인사이드]

2004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KBS1 TV에서 방영된 역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요즘에 뜨고 있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 나오는 김명민이 이순신 장군으로 분했었지요.

'불멸의 이순신'에서 장군이 3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해 칠천량 해전 패전서 남은 13척의 전함으로 330척(실제 전투에 참가한 배는 133척)의 왜 수군과 맞서 대승을 거두는 '명량해전'은 주요 장면이었지요.

<사진출처=KBS1 TV 불멸의 이순신 페이지>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전술로써 명량의 물목에 쇠사슬(鐵鎖 철쇄)을 설치해 다가오는 왜선을 걸어 격침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철쇄설치는 이 드라마 뿐 아니라 현대에 출간된 이순신과 임진왜란 관련 책에서도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고요.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철쇄설치를 이 해전에 실제 적용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대승을 거둔 결정적 전술로써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요.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이순신의 리더십을 연구해온 현역 해군 장교가 '철쇄설치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란 주장을 제기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최근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 전승무패의 신화를 이끈 이순신의 필승전략을 분석한 '이순신 승리의 리더십'의 저자 임원빈 대령(아래 사진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 연구부장)입니다.

임 대령은 최근 열린 한 강연에서 "국내에서 그동안 이뤄진 임진왜란 해전 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설화(Fiction)와 사실(Fact)의 혼재"라고 지적하고 "사실로 검증 안된 대표적인 설화사례로 명량해전의 철쇄(鐵鎖)설치"를 지목했습니다.

임 대령은 철쇄설치가 '설'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로 해전이 벌어진 동시대의 기록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명량해전의 전투상황을 가장 생생히 담고 있는 기록의 대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단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쇄 이용이 명량해전 대승의 요인이었다면 해전이 벌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철쇄 준비를 해야 하지만 조선 수군이 벽파진에 머물렀던 1597년 8월29일부터 9월 15일까지의 난중일기에는 기록이 없다는 겁니다.

이와 함께 이순신의 일생을 가장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이분의 '행록'을 비롯, 유성룡의 '징비록' ,선조사후에 만들어진 '선묘중흥지'에도 이런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고요.

임 대령은 철쇄설치가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고 있는 것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무려 150년이 지난 뒤에 쓰인 이중환의 '택리지'(명량의 좁은 물목에 철쇄를 설치하여 500여 척 또는 수없이 많은 일본 함선을 침몰시켰다) 등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택리지는 여러 지방의 흘러 다니는 구전 설화를 엮은 책으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자료로 삼기엔 적절치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게 임 대령의 얘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은 제3공화국 시절 이순신 영웅만들기에 동원되며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임 대령의 해석이었고요.

그는 특히 철쇄설치설이 정설처럼 굳어진 데는 13척 대 330척의 대결에서 절대 열세한 쪽이 대승을 거둔 요인을 그동안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분석하지 못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했습니다.

그렇지만 명량해전의 승리는 사료가치로 충분한 기록물 등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임 대령은 명량해전의 승리 요인으로 천자 지자 황자 등 총통으로 무장한 조선 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의 막강한 전투력과 이순신의 뛰어난 병법 구사,그리고 리더십을 꼽았습니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발발 37년 전인 명종 10년 건조된 전투함으로 조선수군이 애초부터 등선육박전술(적의 함선에 기어올라가 육박전을 벌임)에 능한 왜 수군의 전술을 무력화할 목적(갑판에 판자를 갖고 네모난 집모양의 상장을 설치해 왜 수군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함)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주력선의 3배정도나 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전투를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승선인원은 150명 이라고 하고요.(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하루전에 건조와 최종 시험을 마쳤다는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형태의 거북선은 승선인원이 120명이라고 함)

함선 수에서 열위에 있던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탐망선을 이용해 적의 동태를 치밀하게 감시하며 계속 도망을 다니면서 싸울 장소로 명량의 좁은 물목을 택한 이순신의 전략도 승리요인으로 임 대령은 지적했습니다.

이순신은 우세한 왜 수군함대를 좁은 물목에 가둬 놓고 조선 수군으로 하여금 해협입구에다 포진시켰다고 합니다.이 곳을 빠져 나오는 선두 함선을 집중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하고요.

이는 외나무다리에서 홀로 수십명을 대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겁니다.  

이순신의 도망가는 전략에 말려든 왜 수군은 당초 어란포에 집결한 330척의 함선을 동원하지 못하고 명량해전에선 133척만이 조선 수군을 공격하는데 그쳤다는 것입니다.

이 133척 마저도 조류가 세고 좁은 물목에서는 31척만이 해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당초 1대 30의 대결을 1대 3으로 줄여 붙어볼 만한 상황을 이순신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순신은 해전이 벌어지자 마자 적선의 지휘함(일본장수 마사시)에 총통을 집중적으로 퍼부어 격파시키고 마사시를 죽음으로 몰고간 뒤 그의 목을 베어들어 조선수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방식으로 결국 승리를 가져왔다는 얘깁니다.

임 대령은 "이순신은 사실적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며 민족의 영웅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며 "과거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요소들을 통해 이뤄진 어설픈 영웅화 작업이 되레 그 위대성을 폄훼한 것은 아닌 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순신, 명량해전, 철쇄, 임원빈 대령, 김명민, 베토벤 바이러스, 불멸의 이순신
posted at 2008/11/13 14:17:00 댓글(258)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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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 2008/11/13 16:54 | DEL | REPLY

좋은 역사적 사료에 대한 글입니다. 사실과 설화는 분명히 알고 넘어가는것이 후손들이 몪이라고 할 것입니다.
시원한 바람 | 2008/11/14 13:11 | DEL

한심함 사람이군 할일 없으면 잠이나 자시지 이순신을 연구했다는 사람이 철쇄사용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없다고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안돼죠 거북선은 이순신이 만들기 전에 기록이 없으니 거북선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셔야 겠네요. 철쇄 사용에 대한 이야기는 임진란 직전 전라좌수영 소포에서 철쇄에 대한 관심기록이 있는데 돌산 까지의 거리는 600m 인데 비해 명량해협은 300여 m밖에 되지 안으니 철쇄가설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난중일기나 장계에서 관련기록이 없다는 것이 안타갑습니다.
rod777 | 2008/11/14 13:42 | DEL

정말 한심한 사람은 귀하입니다. 동행이란 분의 이야기에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그 정도 이야기했다고 한심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겠습니까. 저 분은 긍정적인 마인드고 님은 비뚜러진 마인드입니다. 그리고 사실문제 정확히 알려면 난중일기나 읽어보세요. 아직도 그날 일본배가 삼백척 이상 깨졌다고 믿고 있어요? 정확히 읽어보세요. 깨진 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순신은 일정 성과만 거두고 즉시 빠졌어요. 히트 앤드 런. 그리고 일본 선단은 혼란에 빠졌고 그 분풀이를 인근 섬에 상륙해서 주민들에게 합니다.
Kim | 2008/11/14 14:03 | DEL

만약 물살이 없다 해도 철쇄를 그곳에 설치를 하고서, 그것을 감아 올리고, 또 배가 지나가는 힘을 철쇄로 버틴다는 것은 현대에도 쉽지 않아요. 조선공사에 가보면, 배를 올리는 밑판(도쿠)을 물에 내렸다 올렸다 하는데, 사람 손으로 하지 못하여, 엔진으로 쇠줄을 감아 올리는데, 그 무게는 엄청 나지요. 그렇게 많은 쇠사슬을 옮길려면 배가 몇대가 필요하며, 또 쇠사슬을 만드는 기술이나 쇠를 어디서 구하며, 쇠를 녹일려면 많은 연료가 필요한데, 나무를 때어 그 작업을 했을까요? 좀 현실성이 없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일것 같군요. 왜냐하면 현 시대는 쇠사슬이 많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겠지요. 차라리 튼튼한 밧줄에 돌맹이를 달아 내렸다가 감아 올렸다면 더 현실성 있는 방법이 겠지요. 이순신이라면, 이용하기 쉬운 튼튼한 밧줄과 돌맹이를 선택했겠지요.
글쓴이가 웃긴다. 욱겨 | 2008/11/14 14:25 | DEL

★★★★★★★★★★★★★★★★★★★ 글을 읽으면서 가장 한시만게 300척중 30척만 전투에 참가했단다.. 30척중에 수장의 배가 있어 이곳에 화기를 뿜어서.. 수장이 죽으니.. 후퇴 했단다.. 이순신장군 연구했다는 사람의 말이 그렇다.. 수장이 볍신인가보다.. 30척 단기로.. 그런데.. 일본측이 더 볍신다.. 270척의 배가 남았는데.. 후퇴를 했다.. -- 내분이나..등등의 이유를 대겠지만.---- 이순신은 아니란다.. 이순신은 울돌목이란 요지에서 13:30으로 싸워 이겼단다.. 안 글쓴사람이 정말 이순신 연구가인지 묻고 싶다. . 일본군은 저 싸움에 패해서 피해가 너무 커서???? 후퇴를 했단다.. 욱겨 죽겠네..
공부하세요 | 2008/11/14 14:31 | DEL

웃지말고 공부하세요. 웃겨죽겠다는 분도 난중일기 안 읽었네요. 읽으면 답 나옵니다. 해군대령 말이 맞습니다. 책에 그렇게 나옵니다. 이순신이 직접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순신 | 2008/11/14 14:35 | DEL

#############이게 정답이다.. ########## 울돌목 폭이 현재 294m.. 임진왜란당시는 더 좁았을 것이다. 당연히 유속도 훨씬 빠르고...미친 왜구들은.. 승리에 도취되어.. 물살이고 뭐고.. 안가리고 들이 밀었을 것이 분명하다. 왜구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이였다면.. 그렇게 연속으로 깨지진 않았을 것이다. 애시당초 이순신의 능력을 간파하고.. 장기전에 돌입했을 것이다. 아니면 육상 게릴라전에 올인했어야 한다. 그러나 왜구들은 원균을 대파한 후에.. 울돌목을 그저 물길따라 흘러들어가기만 하면되는..폭좁은 바다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왜구스파이들 역시.. 스파이질할때 물길을 미쳐 살피지 못하고..지형만을 살피고 갔을게 뻔하다. 왜냐? 스파이질 하다가 걸리면 디지고...결정적으로 밥시간이라 배가고팠을테니까... 암튼.. 철쇄전략은 이렇게 진행되었다.방금 이순신장군께서 나에게 체널링으로 접신해 알려 주셨다.당시 철쇄전략은 이러했다. 당시 울돌목의 폭은 250미터.. 적당한 굵기 밧줄 일정 길이 100미터 가량되는것으로 두가닥준비, 철쇄 일정 길이 준비.50미터.. 이 철쇄는 두가닥 밧줄 사이에 매달아서.. 왜적배의 진로를 막는 울돌목 바다의 중앙부에 위치하게 한다...이 철쇄 양옆에 밧줄을 매어서 설치. 왜놈들이 끊지 못하게 필히 왜선을 막는 부위엔 철쇄를 이용해야 했다. 철쇄의 형태는... 굵은 쇠사슬 형태가 아니라... 가는 철사를 일정 굵기의 다발로 묶은 형태였다.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쇠를 녹여...철근보다 가는 쇠줄을 50미터씩..30가닥 정도 만들어 꼬았다. 옛날 사람들은 힘이 장사였다는것을 알아두길 바란다. 서양놈들이 조선인을 표현하길 밥을 많이 먹고 ..힘이 아주쌔다는 표현을 했다는 것을 참고하라.. 설치법: 총통미사일에.. 가는 밧줄을 매어서 발사해서..바다 건너편으로 건넨다음.. 그 밧줄에..100미터 동아줄을 이은 다음 동아줄 끝에 철쇄를 잇고.. 철쇄끝에 나머지..반대편 동아줄을 이어서.. 울돌목 250미터 폭을 모두 커버하게 되었다.울돌목 주변에 좌초한 왜구선을 단방에 잡기위해서 화공무기를 주력배치한다.해변으로 헤엄쳐 나오는 왜구는 주민들이 헤치운다. *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했다.*
이순신 | 2008/11/14 14:50 | DEL

.... . . . . . 자꾸 철쇄를 쇠사슬로 언급하는 한심한 애들있는데... 쇠사슬 아니거든.. 무게가 500톤? 장난 하니?? 철쇄는 1톤 정도밖에 안 나갔다. 그건 철근보다 가는 철선을 꼬아서 50미터정도의 길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거운 물체는 바다속에 들어가면 부력으로 더 가벼워진다. 배를 걸리게 하는 목적인 만큼 팽팽하게 당길 필요도 없다. 배가 걸릴정도로만 당기면 된다. .. . . . . . . . .
일본 수장은 볍신이었군.. | 2008/11/14 15:44 | DEL

글쓴이 말대로 라면 270척의 배가 남았는데 철수를 했네..ㅋㅋㅋㅋㅋㅋ 말이되는소릴 해라
알고 | 2008/11/14 10:15 | DEL | REPLY

드라마재밌게봤는데, 쩝,,,
쇠사슬이아니면 어떻게 이긴거지 더 대단하네
정기룡 | 2008/11/14 10:16 | DEL | REPLY

역시 친일파 매국노가 집권하니 친일파가 날뛰기 시작했군.
울돌목에는 지금도 철쇄를 고정했던 고리가 남아있지
물론 그 자리에 교량을 설치해서 찾기가 거의 힘들지
일제 강점기에 일본놈들이 한국인들 수백명을 그 자리에 던져넣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지
뭔소리냐? | 2008/11/14 11:34 | DEL

좌파정권 좌파교육 의 전형적인 산물이다..
. | 2008/11/14 11:38 | DEL

어이구... 이 한심한 인간아. 단세포냐? 친일파 타령도 구시대적인 기득권인 걸 왜 거울은 안 가지고 다니노?
경천대 | 2008/11/14 12:06 | DEL

그동안 철썩같이 믿어 왔던 사실에 대해 이견이 생길때 그것을 받아들여 재 고찰해볼 마음의 이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각자의 성향이요, 또 지성, 이성, 감성등 모든것을 아우르는 차이에서 온다. 황우석박사를 음모론으로만 바라봐도 안되지만 또한 맹신한 사람들도 오류다. 각 연구의 여러 단계에 걸쳐서 진실과 오류과 복합되다가 지금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과정별로 증폭된 상항을 세분해서 관찰하는게 옳다. 150년간 역사적 기록이 없다가 갑자기 등장한 쇄사슬 전법에 대한 의문을 가질수 있음은 학자라면 누구나 당연하다. 연쇄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면 또 그것을 당신눈으로 직접 본적이 있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잠수하여서 증거를 가져와서 있니,없니 논해야 할것이다. 정말 있다면 그동안 단 한장의 체증 사진도 찍어 두지 않았다는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정기룡.. 정기룡 장군에 대한 연구 고찰에나 더욱 증진해 주시요.
친일 파 타령하면.. | 2008/11/14 15:45 | DEL

언제부터 병신이었냐?
정기룡 | 2008/11/14 10:21 | DEL | REPLY

버뮤다 삼각지에 대한 미스테리를 다룬 미국 드라마를 보니
한국이 일본과 똑같이 남반구 고래 사냥을 하고 있다고 왜곡을 하고 있지
한국 야후를 보면 오늘도 선조의 아들 하나가 백성을 마구 살해했다고 하며
마치 조선시대 전체에 그런 일이 있는 것처럼 적고 있지
다 친일파 매국노를 청산하지 못한 업보
해군 사관학교가 있는 진해에는 벚나무만 무성하고
대표적인 전승지마다 친일파들이 앞다퉈 벚나무를 심어
벚꽃만 가득하지
? | 2008/11/14 11:40 | DEL

근데 너 몇살짜리니? 훈계 할 만한 안목만 있냐? 경청의 준비는 늘 부족하기에 계속 구시대적 유물인 사상전략이 코너에 몰리는거야!
정기롱 | 2008/11/14 12:23 | DEL

벛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의 남해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벛나무는 원래 토종 우리나라 식물이고 몇년전인가 제주도에서 아주 오래된 군락지가 발견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것 같은데 꼭 벚나무가 일본거라는 생각을 버리는게 좋을것 같네요
다라미 | 2008/11/14 13:11 | DEL

진해의 왕벚나무는 제주가 원산입니다. 그리고 일제와 6.25 한국전쟁을 치루고 땔감이 없어 모두베어버려서 그렇지 원래는 우리 산에 벗나무가 무척 많았습니다.
근데,, | 2008/11/14 14:27 | DEL

일본의 벚나무는 제주산이라는 거
이상한데? | 2008/11/14 10:23 | DEL | REPLY

그럼 바다 밑에서 발견된 말뚝들은 뭔지???? 쇠사슬 설치할때 쓰였던 거라고 나왔었는데??
김선학 | 2008/11/14 10:23 | DEL | REPLY

임대령님은 대단한 분 같습니다. 저 또한 철쇄론을 믿는 한 사람입니다만 임대령님의 이론은 저의 고지식한 철쇄론을 한 번 더 기초부터 되짚어 보게 합니다. 앞으로 이순신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가 주도가 되어 계속 연구 되어져야 합니다. 참으로 귀중하고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판옥선 | 2008/11/14 10:27 | DEL | REPLY

쇠사슬설은.. 말그대로 설입니다... 역사학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비현실적인 허구로 받아들여졌죠. 일단 기록에 없는것 보다도... 명량을 가로지르는 길이의 쇠를 한달도 안되는 단시간에 만들 수 없었을뿐더러 당시 철제련술로도 불가능하죠.

명량의 올돌목에 직접가보면 명량해전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살이 어찌나 쌘지... 왠만한 작은 어선도(모터달린) 올돌목에 빠지면 허우적거립니다. 임진왜란때의 바람과 노에 의존하던 배들이라면 볼것도 없지요.... 좁은해협에 적을 끌어들이고 올돌목의 물살에 왜선들이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난파된게 더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선수군과 전투를 벌였던 왜선은 맨 앞에 선두에섰던 30여척이라죠.
가리산신령 | 2008/11/14 11:06 | DEL

선두에 섰던 30여척은 전투를 하고 뒤에 온 왜선은 울돌목에서 허우적(난파) 됐다는 말은 뭔가 오류가 있습니다.
쥐구름.. | 2008/11/14 12:24 | DEL

가리산신령님// 저도 이순신에 관심이 많아 평전같은걸 쭉읽어봤는데.. 울돌목은 시차에 따라 해수의 방향이 다르다 하더군요.. 이순신은 해수가 적에서 아군쪽으로 흐를때 쉽게 유인했다가 해수가 바뀌었을때 턴하기 쉬운 판옥선의 특성을 이용해 방향을 틀어 그때 전투가 시작됐고 앞에서 왜선들이 부서지기 시작하자 뒤에있던 수백의 왜선들은 이순신이라는 이름의 공포때문에 다시 도망갈려다가 서로 배들이 뒤엉켜 부딪치고 함서 와르르 무너졌다 들었습니다. 더군다가 왜선은 판옥선과는 다르게 배의 밑부분이 뾰족하기에 턴하기가 쉽게 않았고 거기다가 해수의 방향까지 갑자기 변할때 였으니 이리 저리 당황했겠죠.. 그러므로.. 허우적됐다는게 맞죠
긴또깡 | 2008/11/14 10:32 | DEL | REPLY

음~!! 과거의 일을 현재에 분석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위의 내용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또한 손자병법에 나온대로 자신의 군세가 약하면 지형과 지물과 계책을 이용하라는 말도 생각난다. 화공법 수공법이런 것들은 자신의 군세가 약할 때 쓰는 전략이다. 1대 10이상이라면 힘만으론 안된다. 화력만으론 안된다고 생각이 든다. 전략과 지략이 필요한다. 이순신은 그것을 이뤘다.
마지막 멘트 공감 | 2008/11/14 10:35 | DEL | REPLY

"이순신은 사실적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며 민족의 영웅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한편으로는 역사스페셜등 역사다큐물에서 잠수물 동원에서 직접 확인한거 봤는데
그건 뭐인가요?
민주69호 | 2008/11/14 12:59 | DEL

역사스페셜은 디스커버리채널등의 역사프로그램등과 비교해 보면 이과계통의 과학자의 참여도가 적어서인지 너무 비과학적인 것 같습니ㅏㄷ.
아줌마 | 2008/11/14 10:36 | DEL | REPLY

이렇게 역사가 만들어지는건가보네요. 앞으로 이런 기사가 얼마나 더 나올런지요..
외감 | 2008/11/14 10:38 | DEL | REPLY

일제시대 실증주의 사학자들의 행태를 보이네요..
권력자들이 쓴 역사서만 역사라고 하고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이 민중의 시각에서 기록한 역사서는
민담이니 야설이니 하는 아주 웃기는 작태를 보이고 있구만요...

가리산신령 | 2008/11/14 11:13 | DEL

실증사학이란 명목으로 우리 역사를 조작한 일본의 역사적 사실을 우린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것은 죄다 가져다가 불태우거나 지네만 볼 수 있게 감춰두고 역사적 증거가 없으니 사실이 아니다라고 우기니...... 독학이나 중국의 사료를 뒤져 아무리 설명해도 무시하는 일제강점기 친일 사학자후손(후학)들이니....
rod777 | 2008/11/14 14:14 | DEL

실증은 모든 과학에서 요구되는 것입니다. 실증을 추구한다고 해서 친일파라는건 말도 안됩니다. 친일을 위해 실증을 추구할수도 있고 반일을 위해 실증을 추구할수도 있습니다. 이기는 측은 실증을 더 잘하는 쪽입니다. 사실이 최고의 무기입니다. 큰 목소리나 혈서 따위가 아닙니다.
달의뒷면 | 2008/11/14 10:40 | DEL | REPLY

저도 철쇄작전이 사실인줄만 알앗는데.. 오히려 그것이 없이 대승을 거두었다면 오히려 더 위대한 승리네요. 철쇄작전이 사실이냐, 아니냐보다도 이 분처럼 우리 역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훌륭한 조상님들의 역사를 잘 알수있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구 봅니다. 지
외감 | 2008/11/14 11:41 | DEL

철쇄작전의 진위여부를 떠나 저분의 논리는 역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팩트와 설화의 혼재라고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권력적 역사서의 존재를 쓰레기 취급하는 역사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와의 대화의 문제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할 것입니다. 과거의 선조들이 남긴 유적이나 글중에서 그일면만을 취해 승자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후손들과 미래세대들의 인식의 문제일 것입니다.
저도이상한데요 | 2008/11/14 10:40 | DEL | REPLY

전에 역사스페셜에서 보니까 진도대교 만들기 전까지 철쇄 묶을때 썼던 시설이 있었다고 현지 주민들이 증언하던데 그건 뭐죠?
참샘 | 2008/11/14 10:40 | DEL | REPLY

비공개 댓글입니다
참샘 | 2008/11/14 10:51 | DEL

실수로 댓글이 비공개가 되어 버렷습니다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위대한 업적이 조금이라도 휘손되면 않되리라 생각 합니다 우리 역사에 더러는 외곡 또는 과장된 부분들이 있어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는게 역사적 가치가 있을텐데 과장으로 위대하게 보이려 한다면 더욱 누를 끼치는 일이겟지요 이순신 장군님의 전술 이라면 능히 임대령님의 의견에 의심하지 않아도 될것으로 생각 됩니다 그러면서도 더 자세히 살필 필요성도 배재 할수 없겠지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요
신수길 | 2008/11/14 10:43 | DEL | REPLY

역사적인 설 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들 머리속엔 사실이라고 각인되어 있고
또한 택리지 또한 시대의 한 이야기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구전 설화모음이지만 사실을 기반에 두고 보탤수는 있겠지만 근거가 없다라고 하는것은 좀 무리가 있는것 같네요..
물론 이순신의 영웅화은 어느누구도 잘 아는 부분이지만 역사을 연구하시는분이 정확한 근거나 그다음 또한 증명할수 있는 사료도 준비하지 않은채 대충 본인의 가설을 가지고 그나마 구전설화 모음이지만 역사적 사료가 충분히 있는책에서 그랬다는데 조금은
신중히 글을 올려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짧은 소견이지만 역사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중국이나 일본 없는것도 지네들것도 아닌 역사을 가지고 지네것이라고 우기고 다아는 추잡한 인사도 국민적 영웅을 만드는데 그당시에도 영웅이었구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우리 스스로 깎아 내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봅니다.. 단지 명랑해전의 실체에 대해 아는바 없지만 대승을 한건 사실이구 그렇다면 그게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그 전쟁을 치뤘는지 가설이 아닌 충분한 사료을 토대로 글을 올려야 그게 국가와 우리 민족의 역사성을 정당화 하구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학자들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봅니다
해군출신 | 2008/11/14 10:43 | DEL | REPLY

목포에서 물개라 칭하는 군함(?) 타고 거문도 가려면 진도대교 밑을 지나게됩니다.
비록 12노트 정도의 고속(ㅎㅎ)으로 달리지만 그곳에서는 쩔쩔 맵니다. 아무리 물개가 느려터진 배라 할지라도 현대적인 배인데도 그런걸 보면 노젓는 배로 철쇄를 설치했다는건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거리가 수십미터가 아닌 수백미터인데 철쇄의 무게를 이끌수 있는 배가 그당시에 있었을까요? 지금 하라고 해도 만만치 않을꺼에요.
수정 | 2008/11/14 12:20 | DEL

바다의 물살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랍니다. 아무리 거센 지역이라도 말이죠.
해군출신 | 2008/11/14 13:01 | DEL

그렇군요. 수정님 오류지적 감사합니다.
그건 | 2008/11/14 14:02 | DEL

물살이 없다 해도 철쇄를 그곳에 설치를 하고서, 그것을 감아 올리고, 또 배가 지나가는 힘을 철쇄로 버틴다는 것은 현대에도 쉽지 않아요. 조선공사에 가보면, 배를 올리는 밑판(도쿠)을 물에 내렸다 올렸다 하는데, 사람 손으로 하지 못하여, 엔진으로 쇠줄을 감아 올리는데, 그 무게는 엄청 나지요. 그렇게 많은 쇠사슬을 옮길려면 배가 몇대가 필요하며, 또 쇠사슬을 만드는 기술이나 쇠를 어디서 구하며, 쇠를 녹일려면 많은 연료가 필요한데, 나무를 때어 그 작업을 했을까요? 좀 현실성이 없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일것 같군요. 왜냐하면 현 시대는 쇠사슬이 많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겠지요. 차라리 튼튼한 밧줄에 돌맹이를 달아 내렸다가 감아 올렸다면 더 현실성 있는 방법이 겠지요. 이순신이라면, 이용하기 쉬운 튼튼한 밧줄과 돌맹이를 선택했겠지요.
역사왜곡 | 2008/11/14 10:45 | DEL | REPLY

비공개 댓글입니다
판옥선 | 2008/11/14 10:46 | DEL | REPLY

저도 역사스폐셜보면서 철쇄 묶을때 사용했던 시설이 있었다는 현지주민의 증언을 봤습니다. 수백년간 전해져오는 이야기일텐데, 사실여부는 모르겠으나 어떤 형태로든 진도와 연결하는 줄과 비슷한 시설이 있긴 있었겠지요. 그리고 말이 쇄사슬이지, 진도와 연결하기위해서 막대한 양의 쇠를 사용하여 연결하였다라는 부분은 당시의 기술과 제정으로 볼때 좀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쇠보단 밧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얉은 실철선이었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나무다 | 2008/11/14 10:47 | DEL | REPLY

이거 다 아는거 아니었나?

지금도 쇠사슬로 어쩌고 저쩌고? 말이 된다고 생각함?

전쟁이 몇년이나 흘렀는데 배 130척 이상을 묶을만한 굵은 쇠사슬을 단 15일만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


그냥 간단한거야.

그냥 대장선 1: 왜군 133으로 싸워서 이긴거다.



그정도로 이순신은 대단한거고 일본한테는 무서운 존재였지.
문병도 | 2008/11/14 10:48 | DEL | REPLY

오랜 궁금증에 대한 시원한 해석이네요. 쇠사슬을 물살이 센 바다를 가로질러 설치한다는게 쉽지 않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왜놈들의 배를 다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쇠사슬 굵기도 장난이 아닐텔... 그걸 폭이 1킬로는 족히 됨직한 바다에 설치하고 팽팽하게 땡긴다는게 과연 인력으로 가능할까요?
전 번에 보니까 울돌목에 조력발전소 설치하는데도 몇번 실패하고서야 간신히 성공하더라구요. 그것도 엄청난 크레인을 동원해서 간신히... 그 동안 '설'에 별생각 없이 당하고 살진 않았나 되돌아 보게 하네요.
바다의 왕자 | 2008/11/14 10:48 | DEL | REPLY

바다를 아는 사람이다. 배를 아는 사람이다. 음~!! 바다에서는 적은 힘으로도 배를 고정시킬 수 가 있다. 철쇠라도 무거운거 말고 안무겁게 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더욱 연구를 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연구해서 나쁜거 없다. 이순신을 분석해서 최강의 해군으로 거듭나면 좋을 것이다.
나무다 | 2008/11/14 10:49 | DEL | REPLY

밧줄일거라는 사람도 있는데 옛날 밧줄이면 동앗줄.. 짚푸라기 엮어서 했다는건데 그걸로 배 133척을 막을 수 있었다는거??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판옥선 | 2008/11/14 10:49 | DEL | REPLY

그리고 올돌목은 지금의 현대 어선도 배도 잘못빠지면 쩔쩔매는 물살이 매우 심한곳입니다. 굳이 쇄사슬이 아니라 밧줄이라든가 아예 사슬이없어도 될정도의 지형지물입니다.
올돌목에 빠져 허우적대는 왜선을 요리했죠.
개독 | 2008/11/14 10:52 | DEL | REPLY

개덕이지
판옥선 | 2008/11/14 10:54 | DEL | REPLY

나무다// 동앗줄을 꼬아서 사람 허리만큼만들면 왠만한 쇄사슬만한 힘을가지는거 모릅니까? 그 얉고 약한 머리카락도 뭉치면 무거운 자동차도 들 수 있건만.... 전통 차전놀이나 줄다리기할때 동앗줄로 묶은 줄의 힘을 안겪어봤나?
애국 | 2008/11/14 10:54 | DEL | REPLY

친일파의 글같아 기분이 좋지않군! 미화하거나 축소하기 바쁜 느낌이 드럽군!
6 | 2008/11/14 12:50 | DEL

그게 애국이야? 나찌즘과 뭐가 다르냐?
......... | 2008/11/14 10:56 | DEL | REPLY

역사적 견해는 견해일뿐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짓는건 이르다
hh | 2008/11/14 10:59 | DEL | REPLY

일본 주력선은 안택선-안택선이 주력선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안택선의 크기는 우리 판옥선과 동급입니다. 더 큰 안택선도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위 글에서는 일본배가 우리 판옥선의 1/3 크리라 우리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 배도 주력선인 판옥선 외에도 중 소규모의 전투함이 많아 우리도 그렇게 공격을 받았으니 대등한 입장이라고 봐야죠
미진노 | 2008/11/14 11:01 | DEL | REPLY

ㅉㅉㅉ 쓴 미친노미나 올린노미나 똑 같은노옴들.....
그랴 위대한 이순신장군을 깍아 내리면 기분이 좋나?
200여년 밖에 안된 미국은 영웅들이 수 없이 나온다. 조그마한 업적만 남겨도 영웅화하여 미국인들의 결집력을 드높이고 별로믄 상만들어 지나라 위대함을 홍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왕들 중 미국 링칸, 케네디, 워싱턴대통령에게 버금가는 왕들 수도 없이 많다....
맥아더장군? 우리나라 장보고, 이순신장군에 버금가랴???? 독립전쟁? 유관순누나의 숭고한 희생에 버금가랴...전세계에도 꾸준히 나라다운 나라로 이어져 내려온 국가는 12개 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5,000년 역사의 대한민국 그 하나만으로도 선조들이 위대한 업적인게다.
대한민국 선조들을 그 잘난 펜으로 모욕하지마라... 고증이 안된들 어떠하랴...마음속에 우리의 영웅이며 우리의 꿈을 이어가는 소중한 자산인것을....
달빛한묶음 | 2008/11/14 11:40 | DEL

병진아. 이게 깎아 내리는 걸로 보이냐? 오히려 철쇄 없이 승리했다면 그게 더 대단한거여. 난독도 이런 난독이 없다..ㅉㅉㅉ
아마추어 | 2008/11/14 11:01 | DEL | REPLY

우리의 역사는 정사와 야가가 있다고 보는데 조선시대때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은 몇몇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양반계층만이 한자를 알고 있었다고 볼 때 전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세세히 기록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겠지요. 조선시대의 기록들은 중앙 집권식 기록들 뿐이니까요. 나머지들은 극히 일부의 기록물만 존재하기 그 기록물만 보고 우리의 역사의 전부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주 잘못된 해석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나마 기록물들이 수없이 많은 전쟁으로 소실되어 버린 탓에 과거의 우리 역사를 정사 뿐 아니라 야사나 전설화 된것, 여러 정황이나 흔적들, 지명등도 중요 자료라 여겨집니다.
기록물에만 의지해 역사 해석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여러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그런면에서 KBS의 역사 스페셜 분석 방법에 더 신빙성이 가더군요.
ㅎ_ㅎ) | 2008/11/14 11:02 | DEL | REPLY

임진왜란때 조선 기술 차이가 승패를 나누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전투함에 있어서 왜의 전투함은 조선 전투함에 비해 성능,전략 면에서 시대에 많이 떨어져 있었죠. 거기다 유능한 장군까지 있으니 승패가 갈린겁니다.
아무리 좋은 전투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많은 쪽수엔 감당 못하는게 현실인데 그 극복을 이순신장군이 잘 활용해서 승리로 이룬거죠. 이순신 장군이 좌천됐을땐 적보다 앞선 전투함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장군이 활용을 잘 못하게 되면 전멸하게된다는걸 보여줬죠. 함대의 총사령관이 전쟁의 승패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이 주는지 보여줍니다.
조선과 왜의 해전에서 조선이 승리할수 있었던건 조선의 전함이 소수이지만 왜보다 앞선 조선기술로 만든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과 그 전함을 전략,전술적으로 잘 활용한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왜의 해군들이 해전에도 많은 경험이 있는 노련함에도 불구하고 지고 만거죠.
현대에서도 이런 교훈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 2008/11/14 11:02 | DEL | REPLY

난중일기의 내용중에 전쟁이 나기전에 줄을 엵는것 시찰하러 나간다는 기록이 몇차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전라좌수영에서는 2곳에 줄을 거는 임무를 맏은 것처럼 느겨지는 문구들이 있습니다.
빛고을 | 2008/11/14 11:03 | DEL | REPLY

사실 현대의 과학으로 풀지 못한 사실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거북선의 재현도 물론 아직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구 있구요,, 하지만 얼마든지 준비은 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도 합니다.. 배을 만들때도 어느날 갑자기 만들었을리도 없구요.. 이미 이순신이란 민족의 영웅은 전쟁이 일어날것이라고 알고 있었구 그전에 이미 준비했을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군요..그것도 치밀한 작전의 하나구 그분의 성정이라든지 역사적 사실의 성격에서도 들어나니까요...
설봉 | 2008/11/14 11:03 | DEL | REPLY

저의 생전에 부친(1916년생)께서 진도에 계시면서 명량해전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는데 그때 당시 철쇄를 사용하여 왜군을 몰리쳤으며 그곳에 철쇄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바로잡기 | 2008/11/14 11:05 | DEL | REPLY

울돌목을 비롯하여 남해안 바닷가 여러곳에 설치되어 있는 많은 쇠말뚝은 왜구들이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해안에 철쇄를 설치한 것으로 명량해전과 무관합니다. 역사전문가 아니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사료가 많이 나와 있는데 왜 언급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무량대수 | 2008/11/14 11:11 | DEL

철쇄로 감은 흔적은 그럼 뭘로 변명할래? 당신도 영남당 지지자 세요?
바로잡기 | 2008/11/14 11:42 | DEL

무량아저씨 참 말귀를 못 알아잡수네요. 내가 뭐라고 썼습니까? 철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왜구의 육지상륙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거지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철쇄는 바다를 가로지른 것이 아니고 남해안 여러곳에 왜구상륙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것입니다.
무량대수 | 2008/11/14 11:09 | DEL | REPLY

역시 친일 한나라당 다운 주장이네요. 아직도 울돌목에는 철쇄고정용 말뚝이 발견되어있습니다. 얼굴을 보아하니 영남당의 이미지가 강하네요.
바로잡기 | 2008/11/14 11:43 | DEL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갑니까? 철쇄가 울돌목에만 있습니까? 철쇄고정용 말뚝이라면서요? 철쇄는 고정시키는 것이지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것도 아닙니다. 이순신장군과는 아무 관계 없어요.
박치우 | 2008/11/14 11:47 | DEL

의견에 대한 의견도 못내는 겁니까? 당신 꼭 mb랑 닮은거 같습니다 그려. 허허.
ㅂㅈ | 2008/11/14 12:52 | DEL

정권 잃을만하다. 훈계하는 것만 신났지, 훈계당하는건 죽어도 싫지? 마이너로 전락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ㅉㅉ
관제병 | 2008/11/14 11:12 | DEL | REPLY

자기의 견해를 바치 사실인것인냥 서술하고 있군 속지마쇼~ 어짜피 저것도 하나사람의 견해일 뿐 이라는 것을..ㅉ
바로잡기 | 2008/11/14 11:44 | DEL

철쇄의 비밀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고 여러 종류의 책에 다 나와 있습니다.
^^ | 2008/11/14 11:12 | DEL | REPLY

단순히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서 거짓이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주장의 확실한 근거를 말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무조건 일반적인 사실이다라고 생각하는 말을 뒤집어 놓아서 뉴스를 타기 보다는 철쇄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승리했는지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겠네요.
ㅋㅋㅋ | 2008/11/14 11:18 | DEL | REPLY

역사적인 사실을 바로 잡아야죠. 입증도 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떠들어데다간 나중에 이순신 장군을 비하하고 낮출 빌미를 제공할뿐 아니라, 웃음거리가 되는것은 뻔합니다. 철쇄를 쓰지 않고 승리를 했다면 더욱 더 위대한 업적이네요. 옳발은 역사로 자랑스럽게 이순신 장군님을 존경하는것이 이순신 장군님께, 그리고 후세들에게 옳은 일 일것입니다.
AEGIS | 2008/11/14 11:26 | DEL | REPLY

후 저땐 배의 성능차이가 저랬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군함 133척이 일본 군함 12척에 달려들어도 모를 상황임 후샏(좀 과장하자면). 물론 이지스함 이제 취역하면 그정돈 아니겠지.
이순신 | 2008/11/14 11:30 | DEL | REPLY

이게 정답..

울돌목 폭이 294m.. 가는 밧줄 여러겹을 일정 길이 만큼 준비,100미터 이상되는 것으로 두가닥준비, 철쇄 일정 길이 준비.70~80미터.. 이 철쇄는 두가닥 밧줄 사이에 매달아서.. 왜적배의 진로를 막는 울돌목 바다의 중앙부에 위치하게 함... 철쇄의 길이는 70~80미터가량이라고 보면됨... 이 철쇄 양옆에 밧줄을 매어서 설치. 왜놈들이 끊지 못하게 필히 왜선을 막는 부위엔 철쇄를 이용해야 했음.

설치법..
밧줄을 강을 가로 지르는 방법은 먼저 총통미사일에.. 가는 밧줄을 매어서 발사해서.. 가는 밧줄을 먼저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고.. 그 밧줄에.. 본선을 이은다음 반대편에서 끍면 됨.


*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했다.*
이순신 | 2008/11/14 11:36 | DEL

울돌목을 가로지른 철쇄가 모두 철쇄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답은 쉽게 나오는 것이다. 온리 철쇄면 무거워서 양옆에서 당기지도 못한다. 철쇄는 바다 중앙부에만 일정 길이 위치하게 했던 것이라고 보면 된다.
돌돌아빠 | 2008/11/14 11:30 | DEL | REPLY

조상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판단을 통해 그분들의 노고를 더 정확히 알수있을것 같네요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신 분들의 고뇌까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lrclub.자게회원....
우리다 | 2008/11/14 11:30 | DEL | REPLY

이순신 역사연구회가 집필한 책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보면
명량대첩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철쇄론이 왜 허구이구 그러면 어떻게 이기게 됐을 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물론 연구를 바탕으로 한 가설도 들어가 있지만 이 책에서 묘사한 전투 장면이 더 현실적입니다.
스마일강 | 2008/11/14 11:30 | DEL | REPLY

여러분 국사가 저희때는 필수로 시험보았습니다. 지금 수능세대는 선택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안해도 되게 미국역사를 배워야합니까 이런 나라가 세상어디에 있습니다. 이순신장군 이제 아만 우리 후손들은 누구인지 모를지도 모릅니다.
참 답답합니다. 국사는 필수로 해야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책에서라도 이순신 장군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lfjzmfn | 2008/11/14 11:32 | DEL | REPLY

그럼 그 쇠사슬 설치에 쓰였던 장치들은 뭐지??
저번에 다큐멘터리에서 보니깐 아직 남아있던데???
그리고 썰물때 바닥에 나무로 인공암초를 만들어서 적들의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자국들도 있고 이순신이 쇠사슬에 관해 언급한 자료도 있는것으로 아는데.. 다큐멘터리 다시 찾아봐야겠군....
좌파.. | 2008/11/14 11:33 | DEL | REPLY

좌파 정권 10년..좌파교육 10년
군에도 좌파정신에 물들은 장교들이 많다고 하더니
그패해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먼..
안사꾸라 | 2008/11/14 11:37 | DEL | REPLY

한국놈들의 모든게 나이롱뽕이란 거 또하나 증명됐네
바로잡기 | 2008/11/14 11:39 | DEL | REPLY

거 참 말귀를 못알아먹네. 철쇄는 왜구들이 상륙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명량해전과 무관하게 설치한 거라니까. 그렇게 이해가 안되남. 철쇄가 있었던 것은 사실. 이순신이 철쇄를 설치하지 않은 것도 사실. 이순신이 철쇄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사실. 철쇄는 해안에만 있고 바다를 가로지르지 않은 것도 사실. 철쇄 외에도 다양한 목책이 있었던 것이 사실. 이건 다 알려진 내용임.
uijlee | 2008/11/14 11:40 | DEL | REPLY

임대령이 연구해서 발표했는데요, 이연구가 마지막 연구겠습니까, 울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계속 될걸요 그러니 맞든 틀리든 신경쓸게 없지요 틀리다면 그때 고치면 되지요
대단한 연구도 아니고요,
흑개미 | 2008/11/14 11:43 | DEL | REPLY

비공개 댓글입니다
오리발쭌 | 2008/11/14 11:46 | DEL | REPLY

아니 그럼 철쇄를 이용도 안하고 그냥 13척 가지고 이겼다는 건데... 이건 더 대단한일 아닌가? 도데체 어떻게 이긴거야? 정말 신이 내린 장수라고 할밖에...
엔지니어 | 2008/11/14 11:50 | DEL | REPLY

쇠사슬 설치?? 지금까지 엔지니어,연구개발일만 해온 져도 그건 철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몰르니까 하는말입니다..1킬로미터이상의 거리를 가로지르려면 그 철의 무게가 10미터당 10톤은 되어야 쇠사슬 자체무게 와 조력의 힘..충돌하는 배의 힘을 견딜수 있읍니다.. 100미터가 10개여야 1킬로미터입니다 양질의 철이 천톤이 있어야 합니다.. 1천톤이란 철은..그당시에 조선 전체에있는 숫가락 젓가락 바늘까지 싸그리 모아도 댈까말까하는 양이고..그런 구조물..사슬을 용광로로 녹일때 쓰는 숯을 만들려면 아마
한라산 전체에있는 나무를 전부 베어내야 할겁니다 다베어내도 모잘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사슬 만들때 대장장이들이 망치로 내리쳐서 만들죠?? 근데 그렇게 큰건 뭘로 한답니까?? 통채로 녹여서 찍어냅니까?? 조선시대때도 포항제철이 있었답니까? 그냥 져도 전술로 한다는게 사실같음...그거만들 기술력이면 잠수함 만들고 판옥선을 몇만척은 만들수 있었을텐데..
님 거기가 1킬로나 되나요? | 2008/11/14 11:58 | DEL

울돌목은 가보셨나요? 저도 쇠사슬이 조금은 불가능할거 같다는 생각도 드라마 보면서도 들었지만.. 그래도 1킬로라고 거짓말은 하지 마셔야죠... 어디 사시는지 모르겠고 한번쯤 가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실거리 한번 보세요
로프전문가 | 2008/11/14 13:16 | DEL

저는 로프전문가입니다. 무슨 10미터당 10톤이 필요합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현대기술로는 10미터당 0.2톤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과거 기술로는 0.5톤정도는 필요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울돌목이 1km나 된다는 소리가 맞습니까?
청산 | 2008/11/14 11:51 | DEL | REPLY

내가 어릴때 들은 이야기는 철쇄가 아니고 쇠줄이라고 들었다. 쇠줄로 배를 부순게 아니라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에 걸리게 하여 키가 부러지면 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수가 없어서 서로 부딪히고 깨어지고 아군의 공격이 용이해 이겼다고 들었다. 나느느 명량출신...
hhh | 2008/11/14 11:54 | DEL | REPLY

증거가 없다는 지적 말고, 본인의 증거를 내세우는 논의들은 아직 없던가요? 이 글만 보고는 당최 철쇄론이 허위라고만 보기도 힘드네요. 설화에 또 다른 설화로 대응하는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이순신 폄하 연구가? | 2008/11/14 11:56 | DEL | REPLY

어설프게 연구를 했구나. 대령 장난치니? 당신은 개신교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울돌목을 말하면서 물살이 쌔서 나무배로는 쇠사슬 조차도 옮기지 못했을거란 사람들 당신들 바닷가 살았봤나? 아니 어느 해군출신이란분 정말 답답하십니다.
조수간만 이란말은 들어보셨을테고 물이 정지하는시간이 약 1시간정도 되는거 모르시나요? 군대에서 안가르켜 주나.. 한마디로 그 시간에는 물살이 어마어마 한 울돌목도 잔잔하게 변합니다. 그때는 수영해서도 지나다닐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두에 있던 불가 몇척만이 전투에 참여했다고 씨부린 연구가야.. 너 거기 가봤지 그녀석들이 쫓아 올때 부대단위로 나눠서 오지 않은 이상 그 물살에 빠져들면 모조리 끌려들어가게 되어있다. 당신은 쇠 사슬만 연구해라.. 사실 쇠사슬 나는 관심없다만은 교묘하게 마지막 말로 이순신 폄하를 아닌것처럼 하는 너의 위선이 더욱더 가증스럽다.
ㅎㅎㅎ | 2008/11/14 13:06 | DEL

내 생각엔 물살이 1시간이 아니라 하루가 정지해줘도 어려울꺼 같은데요? 그리고 글쓴이는 설치 가능 불가능을 떠나서 철책 안쓰고도 이겼다면 더욱 위대하게 생각된다는데 님은 왜 이리 화를 내시는지.......
엔지니어 | 2008/11/14 11:58 | DEL | REPLY

천톤... 말이 천톤이지 이세상에 어떤 불도져.. 전투용 땡크도 천톤은 못옮깁니다
게다가 천톤의 무게를 바다속에 너었다가 배지나갈때 쌰쌱~ 하고 땡땡하게 당긴다??
이건 바닷속에 포세이돈이란 사람이 진짜 산다고 믿는거랑 똑같은겁니다..
달에 토까가 산다는거 믿는거랑 똑같은겁니다
나같으면 그거 만드느니 대포를 100만개 만들어서 동시에 쐈을겁니다
저분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환희 | 2008/11/14 12:03 | DEL | REPLY

세계 해전사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없이 자력으로 승리한 해군제독은 이순신 장군님이 유일무일 합니다.
그렇게 지켜낸 나라가,,친일파들에게 농락당하는걸 보시면서,,,지하에서 통곡하고 계실것 갔습니다,,,,
spasiba85 | 2008/11/14 12:06 | DEL | REPLY

명랑대첩때 철쇄없었다는건 누구나 다아는데 그런 이야기하는이유가뭐냐 관심받고싶니??? 드라마에서 철쇄로 이야기를 전개한것은 명량해전은 그때로가서 직접보고오지않는이상은 어떻게이겼는지 누구도 알수없는 미스테리이기때문인데...
소닉 | 2008/11/14 12:09 |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