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합친다해도 꼴랑 한 줌이나 될까요.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의미있는 편린의 부피를 따지면 말입니다. 미미하고 보잘 것없어 보이는 인생의 작은 것들을 기억속에서 끄집어내 끄적거려 보았습니다.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거꾸로 뒤집어 살피기도 했습니다.신문 블로그에 존재하지만 기자블로그는 아닙니다. 제이와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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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명량해전 철쇄설치는 역사적 사실 아니다" [피플 인사이드]

2004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KBS1 TV에서 방영된 역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요즘에 뜨고 있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 나오는 김명민이 이순신 장군으로 분했었지요.

'불멸의 이순신'에서 장군이 3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해 칠천량 해전 패전서 남은 13척의 전함으로 330척(실제 전투에 참가한 배는 133척)의 왜 수군과 맞서 대승을 거두는 '명량해전'은 주요 장면이었지요.

<사진출처=KBS1 TV 불멸의 이순신 페이지>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전술로써 명량의 물목에 쇠사슬(鐵鎖 철쇄)을 설치해 다가오는 왜선을 걸어 격침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철쇄설치는 이 드라마 뿐 아니라 현대에 출간된 이순신과 임진왜란 관련 책에서도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고요.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철쇄설치를 이 해전에 실제 적용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대승을 거둔 결정적 전술로써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요.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이순신의 리더십을 연구해온 현역 해군 장교가 '철쇄설치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란 주장을 제기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최근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 전승무패의 신화를 이끈 이순신의 필승전략을 분석한 '이순신 승리의 리더십'의 저자 임원빈 대령(아래 사진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 연구부장)입니다.

임 대령은 최근 열린 한 강연에서 "국내에서 그동안 이뤄진 임진왜란 해전 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설화(Fiction)와 사실(Fact)의 혼재"라고 지적하고 "사실로 검증 안된 대표적인 설화사례로 명량해전의 철쇄(鐵鎖)설치"를 지목했습니다.

임 대령은 철쇄설치가 '설'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로 해전이 벌어진 동시대의 기록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명량해전의 전투상황을 가장 생생히 담고 있는 기록의 대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단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쇄 이용이 명량해전 대승의 요인이었다면 해전이 벌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철쇄 준비를 해야 하지만 조선 수군이 벽파진에 머물렀던 1597년 8월29일부터 9월 15일까지의 난중일기에는 기록이 없다는 겁니다.

이와 함께 이순신의 일생을 가장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이분의 '행록'을 비롯, 유성룡의 '징비록' ,선조사후에 만들어진 '선묘중흥지'에도 이런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고요.

임 대령은 철쇄설치가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고 있는 것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무려 150년이 지난 뒤에 쓰인 이중환의 '택리지'(명량의 좁은 물목에 철쇄를 설치하여 500여 척 또는 수없이 많은 일본 함선을 침몰시켰다) 등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택리지는 여러 지방의 흘러 다니는 구전 설화를 엮은 책으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자료로 삼기엔 적절치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게 임 대령의 얘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은 제3공화국 시절 이순신 영웅만들기에 동원되며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임 대령의 해석이었고요.

그는 특히 철쇄설치설이 정설처럼 굳어진 데는 13척 대 330척의 대결에서 절대 열세한 쪽이 대승을 거둔 요인을 그동안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분석하지 못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했습니다.

그렇지만 명량해전의 승리는 사료가치로 충분한 기록물 등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임 대령은 명량해전의 승리 요인으로 천자 지자 황자 등 총통으로 무장한 조선 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의 막강한 전투력과 이순신의 뛰어난 병법 구사,그리고 리더십을 꼽았습니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발발 37년 전인 명종 10년 건조된 전투함으로 조선수군이 애초부터 등선육박전술(적의 함선에 기어올라가 육박전을 벌임)에 능한 왜 수군의 전술을 무력화할 목적(갑판에 판자를 갖고 네모난 집모양의 상장을 설치해 왜 수군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함)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주력선의 3배정도나 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전투를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승선인원은 150명 이라고 하고요.(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하루전에 건조와 최종 시험을 마쳤다는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형태의 거북선은 승선인원이 120명이라고 함)

함선 수에서 열위에 있던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탐망선을 이용해 적의 동태를 치밀하게 감시하며 계속 도망을 다니면서 싸울 장소로 명량의 좁은 물목을 택한 이순신의 전략도 승리요인으로 임 대령은 지적했습니다.

이순신은 우세한 왜 수군함대를 좁은 물목에 가둬 놓고 조선 수군으로 하여금 해협입구에다 포진시켰다고 합니다.이 곳을 빠져 나오는 선두 함선을 집중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하고요.

이는 외나무다리에서 홀로 수십명을 대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겁니다.  

이순신의 도망가는 전략에 말려든 왜 수군은 당초 어란포에 집결한 330척의 함선을 동원하지 못하고 명량해전에선 133척만이 조선 수군을 공격하는데 그쳤다는 것입니다.

이 133척 마저도 조류가 세고 좁은 물목에서는 31척만이 해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당초 1대 30의 대결을 1대 3으로 줄여 붙어볼 만한 상황을 이순신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순신은 해전이 벌어지자 마자 적선의 지휘함(일본장수 마사시)에 총통을 집중적으로 퍼부어 격파시키고 마사시를 죽음으로 몰고간 뒤 그의 목을 베어들어 조선수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방식으로 결국 승리를 가져왔다는 얘깁니다.

임 대령은 "이순신은 사실적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며 민족의 영웅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며 "과거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요소들을 통해 이뤄진 어설픈 영웅화 작업이 되레 그 위대성을 폄훼한 것은 아닌 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순신, 명량해전, 철쇄, 임원빈 대령, 김명민, 베토벤 바이러스, 불멸의 이순신
posted at 2008/11/13 14:17:00 댓글(258)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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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 2008/11/13 16:54 | DEL | REPLY

좋은 역사적 사료에 대한 글입니다. 사실과 설화는 분명히 알고 넘어가는것이 후손들이 몪이라고 할 것입니다.
시원한 바람 | 2008/11/14 13:11 | DEL

한심함 사람이군 할일 없으면 잠이나 자시지 이순신을 연구했다는 사람이 철쇄사용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없다고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안돼죠 거북선은 이순신이 만들기 전에 기록이 없으니 거북선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셔야 겠네요. 철쇄 사용에 대한 이야기는 임진란 직전 전라좌수영 소포에서 철쇄에 대한 관심기록이 있는데 돌산 까지의 거리는 600m 인데 비해 명량해협은 300여 m밖에 되지 안으니 철쇄가설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난중일기나 장계에서 관련기록이 없다는 것이 안타갑습니다.
rod777 | 2008/11/14 13:42 | DEL

정말 한심한 사람은 귀하입니다. 동행이란 분의 이야기에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그 정도 이야기했다고 한심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겠습니까. 저 분은 긍정적인 마인드고 님은 비뚜러진 마인드입니다. 그리고 사실문제 정확히 알려면 난중일기나 읽어보세요. 아직도 그날 일본배가 삼백척 이상 깨졌다고 믿고 있어요? 정확히 읽어보세요. 깨진 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순신은 일정 성과만 거두고 즉시 빠졌어요. 히트 앤드 런. 그리고 일본 선단은 혼란에 빠졌고 그 분풀이를 인근 섬에 상륙해서 주민들에게 합니다.
Kim | 2008/11/14 14:03 | DEL

만약 물살이 없다 해도 철쇄를 그곳에 설치를 하고서, 그것을 감아 올리고, 또 배가 지나가는 힘을 철쇄로 버틴다는 것은 현대에도 쉽지 않아요. 조선공사에 가보면, 배를 올리는 밑판(도쿠)을 물에 내렸다 올렸다 하는데, 사람 손으로 하지 못하여, 엔진으로 쇠줄을 감아 올리는데, 그 무게는 엄청 나지요. 그렇게 많은 쇠사슬을 옮길려면 배가 몇대가 필요하며, 또 쇠사슬을 만드는 기술이나 쇠를 어디서 구하며, 쇠를 녹일려면 많은 연료가 필요한데, 나무를 때어 그 작업을 했을까요? 좀 현실성이 없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일것 같군요. 왜냐하면 현 시대는 쇠사슬이 많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겠지요. 차라리 튼튼한 밧줄에 돌맹이를 달아 내렸다가 감아 올렸다면 더 현실성 있는 방법이 겠지요. 이순신이라면, 이용하기 쉬운 튼튼한 밧줄과 돌맹이를 선택했겠지요.
글쓴이가 웃긴다. 욱겨 | 2008/11/14 14:25 | DEL

★★★★★★★★★★★★★★★★★★★ 글을 읽으면서 가장 한시만게 300척중 30척만 전투에 참가했단다.. 30척중에 수장의 배가 있어 이곳에 화기를 뿜어서.. 수장이 죽으니.. 후퇴 했단다.. 이순신장군 연구했다는 사람의 말이 그렇다.. 수장이 볍신인가보다.. 30척 단기로.. 그런데.. 일본측이 더 볍신다.. 270척의 배가 남았는데.. 후퇴를 했다.. -- 내분이나..등등의 이유를 대겠지만.---- 이순신은 아니란다.. 이순신은 울돌목이란 요지에서 13:30으로 싸워 이겼단다.. 안 글쓴사람이 정말 이순신 연구가인지 묻고 싶다. . 일본군은 저 싸움에 패해서 피해가 너무 커서???? 후퇴를 했단다.. 욱겨 죽겠네..
공부하세요 | 2008/11/14 14:31 | DEL

웃지말고 공부하세요. 웃겨죽겠다는 분도 난중일기 안 읽었네요. 읽으면 답 나옵니다. 해군대령 말이 맞습니다. 책에 그렇게 나옵니다. 이순신이 직접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순신 | 2008/11/14 14:35 | DEL

#############이게 정답이다.. ########## 울돌목 폭이 현재 294m.. 임진왜란당시는 더 좁았을 것이다. 당연히 유속도 훨씬 빠르고...미친 왜구들은.. 승리에 도취되어.. 물살이고 뭐고.. 안가리고 들이 밀었을 것이 분명하다. 왜구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이였다면.. 그렇게 연속으로 깨지진 않았을 것이다. 애시당초 이순신의 능력을 간파하고.. 장기전에 돌입했을 것이다. 아니면 육상 게릴라전에 올인했어야 한다. 그러나 왜구들은 원균을 대파한 후에.. 울돌목을 그저 물길따라 흘러들어가기만 하면되는..폭좁은 바다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왜구스파이들 역시.. 스파이질할때 물길을 미쳐 살피지 못하고..지형만을 살피고 갔을게 뻔하다. 왜냐? 스파이질 하다가 걸리면 디지고...결정적으로 밥시간이라 배가고팠을테니까... 암튼.. 철쇄전략은 이렇게 진행되었다.방금 이순신장군께서 나에게 체널링으로 접신해 알려 주셨다.당시 철쇄전략은 이러했다. 당시 울돌목의 폭은 250미터.. 적당한 굵기 밧줄 일정 길이 100미터 가량되는것으로 두가닥준비, 철쇄 일정 길이 준비.50미터.. 이 철쇄는 두가닥 밧줄 사이에 매달아서.. 왜적배의 진로를 막는 울돌목 바다의 중앙부에 위치하게 한다...이 철쇄 양옆에 밧줄을 매어서 설치. 왜놈들이 끊지 못하게 필히 왜선을 막는 부위엔 철쇄를 이용해야 했다. 철쇄의 형태는... 굵은 쇠사슬 형태가 아니라... 가는 철사를 일정 굵기의 다발로 묶은 형태였다.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쇠를 녹여...철근보다 가는 쇠줄을 50미터씩..30가닥 정도 만들어 꼬았다. 옛날 사람들은 힘이 장사였다는것을 알아두길 바란다. 서양놈들이 조선인을 표현하길 밥을 많이 먹고 ..힘이 아주쌔다는 표현을 했다는 것을 참고하라.. 설치법: 총통미사일에.. 가는 밧줄을 매어서 발사해서..바다 건너편으로 건넨다음.. 그 밧줄에..100미터 동아줄을 이은 다음 동아줄 끝에 철쇄를 잇고.. 철쇄끝에 나머지..반대편 동아줄을 이어서.. 울돌목 250미터 폭을 모두 커버하게 되었다.울돌목 주변에 좌초한 왜구선을 단방에 잡기위해서 화공무기를 주력배치한다.해변으로 헤엄쳐 나오는 왜구는 주민들이 헤치운다. *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했다.*
이순신 | 2008/11/14 14:50 | DEL

.... . . . . . 자꾸 철쇄를 쇠사슬로 언급하는 한심한 애들있는데... 쇠사슬 아니거든.. 무게가 500톤? 장난 하니?? 철쇄는 1톤 정도밖에 안 나갔다. 그건 철근보다 가는 철선을 꼬아서 50미터정도의 길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거운 물체는 바다속에 들어가면 부력으로 더 가벼워진다. 배를 걸리게 하는 목적인 만큼 팽팽하게 당길 필요도 없다. 배가 걸릴정도로만 당기면 된다. .. . . . . . . . .
일본 수장은 볍신이었군.. | 2008/11/14 15:44 | DEL

글쓴이 말대로 라면 270척의 배가 남았는데 철수를 했네..ㅋㅋㅋㅋㅋㅋ 말이되는소릴 해라
알고 | 2008/11/14 10:15 | DEL | REPLY

드라마재밌게봤는데, 쩝,,,
쇠사슬이아니면 어떻게 이긴거지 더 대단하네
정기룡 | 2008/11/14 10:16 | DEL | REPLY

역시 친일파 매국노가 집권하니 친일파가 날뛰기 시작했군.
울돌목에는 지금도 철쇄를 고정했던 고리가 남아있지
물론 그 자리에 교량을 설치해서 찾기가 거의 힘들지
일제 강점기에 일본놈들이 한국인들 수백명을 그 자리에 던져넣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지
뭔소리냐? | 2008/11/14 11:34 | DEL

좌파정권 좌파교육 의 전형적인 산물이다..
. | 2008/11/14 11:38 | DEL

어이구... 이 한심한 인간아. 단세포냐? 친일파 타령도 구시대적인 기득권인 걸 왜 거울은 안 가지고 다니노?
경천대 | 2008/11/14 12:06 | DEL

그동안 철썩같이 믿어 왔던 사실에 대해 이견이 생길때 그것을 받아들여 재 고찰해볼 마음의 이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각자의 성향이요, 또 지성, 이성, 감성등 모든것을 아우르는 차이에서 온다. 황우석박사를 음모론으로만 바라봐도 안되지만 또한 맹신한 사람들도 오류다. 각 연구의 여러 단계에 걸쳐서 진실과 오류과 복합되다가 지금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과정별로 증폭된 상항을 세분해서 관찰하는게 옳다. 150년간 역사적 기록이 없다가 갑자기 등장한 쇄사슬 전법에 대한 의문을 가질수 있음은 학자라면 누구나 당연하다. 연쇄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면 또 그것을 당신눈으로 직접 본적이 있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잠수하여서 증거를 가져와서 있니,없니 논해야 할것이다. 정말 있다면 그동안 단 한장의 체증 사진도 찍어 두지 않았다는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정기룡.. 정기룡 장군에 대한 연구 고찰에나 더욱 증진해 주시요.
친일 파 타령하면.. | 2008/11/14 15:45 | DEL

언제부터 병신이었냐?
정기룡 | 2008/11/14 10:21 | DEL | REPLY

버뮤다 삼각지에 대한 미스테리를 다룬 미국 드라마를 보니
한국이 일본과 똑같이 남반구 고래 사냥을 하고 있다고 왜곡을 하고 있지
한국 야후를 보면 오늘도 선조의 아들 하나가 백성을 마구 살해했다고 하며
마치 조선시대 전체에 그런 일이 있는 것처럼 적고 있지
다 친일파 매국노를 청산하지 못한 업보
해군 사관학교가 있는 진해에는 벚나무만 무성하고
대표적인 전승지마다 친일파들이 앞다퉈 벚나무를 심어
벚꽃만 가득하지
? | 2008/11/14 11:40 | DEL

근데 너 몇살짜리니? 훈계 할 만한 안목만 있냐? 경청의 준비는 늘 부족하기에 계속 구시대적 유물인 사상전략이 코너에 몰리는거야!
정기롱 | 2008/11/14 12:23 | DEL

벛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의 남해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벛나무는 원래 토종 우리나라 식물이고 몇년전인가 제주도에서 아주 오래된 군락지가 발견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는것 같은데 꼭 벚나무가 일본거라는 생각을 버리는게 좋을것 같네요
다라미 | 2008/11/14 13:11 | DEL

진해의 왕벚나무는 제주가 원산입니다. 그리고 일제와 6.25 한국전쟁을 치루고 땔감이 없어 모두베어버려서 그렇지 원래는 우리 산에 벗나무가 무척 많았습니다.
근데,, | 2008/11/14 14:27 | DEL

일본의 벚나무는 제주산이라는 거
이상한데? | 2008/11/14 10:23 | DEL | REPLY

그럼 바다 밑에서 발견된 말뚝들은 뭔지???? 쇠사슬 설치할때 쓰였던 거라고 나왔었는데??
김선학 | 2008/11/14 10:23 | DEL | REPLY

임대령님은 대단한 분 같습니다. 저 또한 철쇄론을 믿는 한 사람입니다만 임대령님의 이론은 저의 고지식한 철쇄론을 한 번 더 기초부터 되짚어 보게 합니다. 앞으로 이순신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가 주도가 되어 계속 연구 되어져야 합니다. 참으로 귀중하고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판옥선 | 2008/11/14 10:27 | DEL | REPLY

쇠사슬설은.. 말그대로 설입니다... 역사학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비현실적인 허구로 받아들여졌죠. 일단 기록에 없는것 보다도... 명량을 가로지르는 길이의 쇠를 한달도 안되는 단시간에 만들 수 없었을뿐더러 당시 철제련술로도 불가능하죠.

명량의 올돌목에 직접가보면 명량해전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살이 어찌나 쌘지... 왠만한 작은 어선도(모터달린) 올돌목에 빠지면 허우적거립니다. 임진왜란때의 바람과 노에 의존하던 배들이라면 볼것도 없지요.... 좁은해협에 적을 끌어들이고 올돌목의 물살에 왜선들이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난파된게 더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선수군과 전투를 벌였던 왜선은 맨 앞에 선두에섰던 30여척이라죠.
가리산신령 | 2008/11/14 11:06 | DEL

선두에 섰던 30여척은 전투를 하고 뒤에 온 왜선은 울돌목에서 허우적(난파) 됐다는 말은 뭔가 오류가 있습니다.
쥐구름.. | 2008/11/14 12:24 | DEL

가리산신령님// 저도 이순신에 관심이 많아 평전같은걸 쭉읽어봤는데.. 울돌목은 시차에 따라 해수의 방향이 다르다 하더군요.. 이순신은 해수가 적에서 아군쪽으로 흐를때 쉽게 유인했다가 해수가 바뀌었을때 턴하기 쉬운 판옥선의 특성을 이용해 방향을 틀어 그때 전투가 시작됐고 앞에서 왜선들이 부서지기 시작하자 뒤에있던 수백의 왜선들은 이순신이라는 이름의 공포때문에 다시 도망갈려다가 서로 배들이 뒤엉켜 부딪치고 함서 와르르 무너졌다 들었습니다. 더군다가 왜선은 판옥선과는 다르게 배의 밑부분이 뾰족하기에 턴하기가 쉽게 않았고 거기다가 해수의 방향까지 갑자기 변할때 였으니 이리 저리 당황했겠죠.. 그러므로.. 허우적됐다는게 맞죠
긴또깡 | 2008/11/14 10:32 | DEL | REPLY

음~!! 과거의 일을 현재에 분석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위의 내용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또한 손자병법에 나온대로 자신의 군세가 약하면 지형과 지물과 계책을 이용하라는 말도 생각난다. 화공법 수공법이런 것들은 자신의 군세가 약할 때 쓰는 전략이다. 1대 10이상이라면 힘만으론 안된다. 화력만으론 안된다고 생각이 든다. 전략과 지략이 필요한다. 이순신은 그것을 이뤘다.
마지막 멘트 공감 | 2008/11/14 10:35 | DEL | REPLY

"이순신은 사실적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며 민족의 영웅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한편으로는 역사스페셜등 역사다큐물에서 잠수물 동원에서 직접 확인한거 봤는데
그건 뭐인가요?
민주69호 | 2008/11/14 12:59 | DEL

역사스페셜은 디스커버리채널등의 역사프로그램등과 비교해 보면 이과계통의 과학자의 참여도가 적어서인지 너무 비과학적인 것 같습니ㅏㄷ.
아줌마 | 2008/11/14 10:36 | DEL | REPLY

이렇게 역사가 만들어지는건가보네요. 앞으로 이런 기사가 얼마나 더 나올런지요..
외감 | 2008/11/14 10:38 | DEL | REPLY

일제시대 실증주의 사학자들의 행태를 보이네요..
권력자들이 쓴 역사서만 역사라고 하고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이 민중의 시각에서 기록한 역사서는
민담이니 야설이니 하는 아주 웃기는 작태를 보이고 있구만요...

가리산신령 | 2008/11/14 11:13 | DEL

실증사학이란 명목으로 우리 역사를 조작한 일본의 역사적 사실을 우린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것은 죄다 가져다가 불태우거나 지네만 볼 수 있게 감춰두고 역사적 증거가 없으니 사실이 아니다라고 우기니...... 독학이나 중국의 사료를 뒤져 아무리 설명해도 무시하는 일제강점기 친일 사학자후손(후학)들이니....
rod777 | 2008/11/14 14:14 | DEL

실증은 모든 과학에서 요구되는 것입니다. 실증을 추구한다고 해서 친일파라는건 말도 안됩니다. 친일을 위해 실증을 추구할수도 있고 반일을 위해 실증을 추구할수도 있습니다. 이기는 측은 실증을 더 잘하는 쪽입니다. 사실이 최고의 무기입니다. 큰 목소리나 혈서 따위가 아닙니다.
달의뒷면 | 2008/11/14 10:40 | DEL | REPLY

저도 철쇄작전이 사실인줄만 알앗는데.. 오히려 그것이 없이 대승을 거두었다면 오히려 더 위대한 승리네요. 철쇄작전이 사실이냐, 아니냐보다도 이 분처럼 우리 역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훌륭한 조상님들의 역사를 잘 알수있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구 봅니다. 지
외감 | 2008/11/14 11:41 | DEL

철쇄작전의 진위여부를 떠나 저분의 논리는 역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팩트와 설화의 혼재라고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권력적 역사서의 존재를 쓰레기 취급하는 역사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와의 대화의 문제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할 것입니다. 과거의 선조들이 남긴 유적이나 글중에서 그일면만을 취해 승자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후손들과 미래세대들의 인식의 문제일 것입니다.
저도이상한데요 | 2008/11/14 10:40 | DEL | REPLY

전에 역사스페셜에서 보니까 진도대교 만들기 전까지 철쇄 묶을때 썼던 시설이 있었다고 현지 주민들이 증언하던데 그건 뭐죠?
참샘 | 2008/11/14 10:40 | DEL | REPLY

비공개 댓글입니다
참샘 | 2008/11/14 10:51 | DEL

실수로 댓글이 비공개가 되어 버렷습니다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위대한 업적이 조금이라도 휘손되면 않되리라 생각 합니다 우리 역사에 더러는 외곡 또는 과장된 부분들이 있어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는게 역사적 가치가 있을텐데 과장으로 위대하게 보이려 한다면 더욱 누를 끼치는 일이겟지요 이순신 장군님의 전술 이라면 능히 임대령님의 의견에 의심하지 않아도 될것으로 생각 됩니다 그러면서도 더 자세히 살필 필요성도 배재 할수 없겠지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요
신수길 | 2008/11/14 10:43 | DEL | REPLY

역사적인 설 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들 머리속엔 사실이라고 각인되어 있고
또한 택리지 또한 시대의 한 이야기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구전 설화모음이지만 사실을 기반에 두고 보탤수는 있겠지만 근거가 없다라고 하는것은 좀 무리가 있는것 같네요..
물론 이순신의 영웅화은 어느누구도 잘 아는 부분이지만 역사을 연구하시는분이 정확한 근거나 그다음 또한 증명할수 있는 사료도 준비하지 않은채 대충 본인의 가설을 가지고 그나마 구전설화 모음이지만 역사적 사료가 충분히 있는책에서 그랬다는데 조금은
신중히 글을 올려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짧은 소견이지만 역사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중국이나 일본 없는것도 지네들것도 아닌 역사을 가지고 지네것이라고 우기고 다아는 추잡한 인사도 국민적 영웅을 만드는데 그당시에도 영웅이었구 지금도 변함이 없는데 우리 스스로 깎아 내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봅니다.. 단지 명랑해전의 실체에 대해 아는바 없지만 대승을 한건 사실이구 그렇다면 그게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그 전쟁을 치뤘는지 가설이 아닌 충분한 사료을 토대로 글을 올려야 그게 국가와 우리 민족의 역사성을 정당화 하구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학자들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봅니다
해군출신 | 2008/11/14 10:43 | DEL | REPLY

목포에서 물개라 칭하는 군함(?) 타고 거문도 가려면 진도대교 밑을 지나게됩니다.
비록 12노트 정도의 고속(ㅎㅎ)으로 달리지만 그곳에서는 쩔쩔 맵니다. 아무리 물개가 느려터진 배라 할지라도 현대적인 배인데도 그런걸 보면 노젓는 배로 철쇄를 설치했다는건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거리가 수십미터가 아닌 수백미터인데 철쇄의 무게를 이끌수 있는 배가 그당시에 있었을까요? 지금 하라고 해도 만만치 않을꺼에요.
수정 | 2008/11/14 12:20 | DEL

바다의 물살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랍니다. 아무리 거센 지역이라도 말이죠.
해군출신 | 2008/11/14 13:01 | DEL

그렇군요. 수정님 오류지적 감사합니다.
그건 | 2008/11/14 14:02 | DEL

물살이 없다 해도 철쇄를 그곳에 설치를 하고서, 그것을 감아 올리고, 또 배가 지나가는 힘을 철쇄로 버틴다는 것은 현대에도 쉽지 않아요. 조선공사에 가보면, 배를 올리는 밑판(도쿠)을 물에 내렸다 올렸다 하는데, 사람 손으로 하지 못하여, 엔진으로 쇠줄을 감아 올리는데, 그 무게는 엄청 나지요. 그렇게 많은 쇠사슬을 옮길려면 배가 몇대가 필요하며, 또 쇠사슬을 만드는 기술이나 쇠를 어디서 구하며, 쇠를 녹일려면 많은 연료가 필요한데, 나무를 때어 그 작업을 했을까요? 좀 현실성이 없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일것 같군요. 왜냐하면 현 시대는 쇠사슬이 많지만,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겠지요. 차라리 튼튼한 밧줄에 돌맹이를 달아 내렸다가 감아 올렸다면 더 현실성 있는 방법이 겠지요. 이순신이라면, 이용하기 쉬운 튼튼한 밧줄과 돌맹이를 선택했겠지요.
역사왜곡 | 2008/11/14 10:45 | DEL | REPLY

비공개 댓글입니다
판옥선 | 2008/11/14 10:46 | DEL | REPLY

저도 역사스폐셜보면서 철쇄 묶을때 사용했던 시설이 있었다는 현지주민의 증언을 봤습니다. 수백년간 전해져오는 이야기일텐데, 사실여부는 모르겠으나 어떤 형태로든 진도와 연결하는 줄과 비슷한 시설이 있긴 있었겠지요. 그리고 말이 쇄사슬이지, 진도와 연결하기위해서 막대한 양의 쇠를 사용하여 연결하였다라는 부분은 당시의 기술과 제정으로 볼때 좀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쇠보단 밧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얉은 실철선이었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나무다 | 2008/11/14 10:47 | DEL | REPLY

이거 다 아는거 아니었나?

지금도 쇠사슬로 어쩌고 저쩌고? 말이 된다고 생각함?

전쟁이 몇년이나 흘렀는데 배 130척 이상을 묶을만한 굵은 쇠사슬을 단 15일만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


그냥 간단한거야.

그냥 대장선 1: 왜군 133으로 싸워서 이긴거다.



그정도로 이순신은 대단한거고 일본한테는 무서운 존재였지.
문병도 | 2008/11/14 10:48 | DEL | REPLY

오랜 궁금증에 대한 시원한 해석이네요. 쇠사슬을 물살이 센 바다를 가로질러 설치한다는게 쉽지 않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왜놈들의 배를 다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쇠사슬 굵기도 장난이 아닐텔... 그걸 폭이 1킬로는 족히 됨직한 바다에 설치하고 팽팽하게 땡긴다는게 과연 인력으로 가능할까요?
전 번에 보니까 울돌목에 조력발전소 설치하는데도 몇번 실패하고서야 간신히 성공하더라구요. 그것도 엄청난 크레인을 동원해서 간신히... 그 동안 '설'에 별생각 없이 당하고 살진 않았나 되돌아 보게 하네요.
바다의 왕자 | 2008/11/14 10:48 | DEL | REPLY

바다를 아는 사람이다. 배를 아는 사람이다. 음~!! 바다에서는 적은 힘으로도 배를 고정시킬 수 가 있다. 철쇠라도 무거운거 말고 안무겁게 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더욱 연구를 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연구해서 나쁜거 없다. 이순신을 분석해서 최강의 해군으로 거듭나면 좋을 것이다.
나무다 | 2008/11/14 10:49 | DEL | REPLY

밧줄일거라는 사람도 있는데 옛날 밧줄이면 동앗줄.. 짚푸라기 엮어서 했다는건데 그걸로 배 133척을 막을 수 있었다는거??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판옥선 | 2008/11/14 10:49 | DEL | REPLY

그리고 올돌목은 지금의 현대 어선도 배도 잘못빠지면 쩔쩔매는 물살이 매우 심한곳입니다. 굳이 쇄사슬이 아니라 밧줄이라든가 아예 사슬이없어도 될정도의 지형지물입니다.
올돌목에 빠져 허우적대는 왜선을 요리했죠.
개독 | 2008/11/14 10:52 | DEL | REPLY

개덕이지
판옥선 | 2008/11/14 10:54 | DEL | REPLY

나무다// 동앗줄을 꼬아서 사람 허리만큼만들면 왠만한 쇄사슬만한 힘을가지는거 모릅니까? 그 얉고 약한 머리카락도 뭉치면 무거운 자동차도 들 수 있건만.... 전통 차전놀이나 줄다리기할때 동앗줄로 묶은 줄의 힘을 안겪어봤나?
애국 | 2008/11/14 10:54 | DEL | REPLY

친일파의 글같아 기분이 좋지않군! 미화하거나 축소하기 바쁜 느낌이 드럽군!
6 | 2008/11/14 12:50 | DEL

그게 애국이야? 나찌즘과 뭐가 다르냐?
......... | 2008/11/14 10:56 | DEL | REPLY

역사적 견해는 견해일뿐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짓는건 이르다
hh | 2008/11/14 10:59 | DEL | REPLY

일본 주력선은 안택선-안택선이 주력선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안택선의 크기는 우리 판옥선과 동급입니다. 더 큰 안택선도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위 글에서는 일본배가 우리 판옥선의 1/3 크리라 우리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 배도 주력선인 판옥선 외에도 중 소규모의 전투함이 많아 우리도 그렇게 공격을 받았으니 대등한 입장이라고 봐야죠
미진노 | 2008/11/14 11:01 | DEL | REPLY

ㅉㅉㅉ 쓴 미친노미나 올린노미나 똑 같은노옴들.....
그랴 위대한 이순신장군을 깍아 내리면 기분이 좋나?
200여년 밖에 안된 미국은 영웅들이 수 없이 나온다. 조그마한 업적만 남겨도 영웅화하여 미국인들의 결집력을 드높이고 별로믄 상만들어 지나라 위대함을 홍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왕들 중 미국 링칸, 케네디, 워싱턴대통령에게 버금가는 왕들 수도 없이 많다....
맥아더장군? 우리나라 장보고, 이순신장군에 버금가랴???? 독립전쟁? 유관순누나의 숭고한 희생에 버금가랴...전세계에도 꾸준히 나라다운 나라로 이어져 내려온 국가는 12개 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5,000년 역사의 대한민국 그 하나만으로도 선조들이 위대한 업적인게다.
대한민국 선조들을 그 잘난 펜으로 모욕하지마라... 고증이 안된들 어떠하랴...마음속에 우리의 영웅이며 우리의 꿈을 이어가는 소중한 자산인것을....
달빛한묶음 | 2008/11/14 11:40 | DEL

병진아. 이게 깎아 내리는 걸로 보이냐? 오히려 철쇄 없이 승리했다면 그게 더 대단한거여. 난독도 이런 난독이 없다..ㅉㅉㅉ
아마추어 | 2008/11/14 11:01 | DEL | REPLY

우리의 역사는 정사와 야가가 있다고 보는데 조선시대때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은 몇몇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양반계층만이 한자를 알고 있었다고 볼 때 전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세세히 기록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겠지요. 조선시대의 기록들은 중앙 집권식 기록들 뿐이니까요. 나머지들은 극히 일부의 기록물만 존재하기 그 기록물만 보고 우리의 역사의 전부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주 잘못된 해석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나마 기록물들이 수없이 많은 전쟁으로 소실되어 버린 탓에 과거의 우리 역사를 정사 뿐 아니라 야사나 전설화 된것, 여러 정황이나 흔적들, 지명등도 중요 자료라 여겨집니다.
기록물에만 의지해 역사 해석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여러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그런면에서 KBS의 역사 스페셜 분석 방법에 더 신빙성이 가더군요.
ㅎ_ㅎ) | 2008/11/14 11:02 | DEL | REPLY

임진왜란때 조선 기술 차이가 승패를 나누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전투함에 있어서 왜의 전투함은 조선 전투함에 비해 성능,전략 면에서 시대에 많이 떨어져 있었죠. 거기다 유능한 장군까지 있으니 승패가 갈린겁니다.
아무리 좋은 전투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많은 쪽수엔 감당 못하는게 현실인데 그 극복을 이순신장군이 잘 활용해서 승리로 이룬거죠. 이순신 장군이 좌천됐을땐 적보다 앞선 전투함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장군이 활용을 잘 못하게 되면 전멸하게된다는걸 보여줬죠. 함대의 총사령관이 전쟁의 승패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이 주는지 보여줍니다.
조선과 왜의 해전에서 조선이 승리할수 있었던건 조선의 전함이 소수이지만 왜보다 앞선 조선기술로 만든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과 그 전함을 전략,전술적으로 잘 활용한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왜의 해군들이 해전에도 많은 경험이 있는 노련함에도 불구하고 지고 만거죠.
현대에서도 이런 교훈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 2008/11/14 11:02 | DEL | REPLY

난중일기의 내용중에 전쟁이 나기전에 줄을 엵는것 시찰하러 나간다는 기록이 몇차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전라좌수영에서는 2곳에 줄을 거는 임무를 맏은 것처럼 느겨지는 문구들이 있습니다.
빛고을 | 2008/11/14 11:03 | DEL | REPLY

사실 현대의 과학으로 풀지 못한 사실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거북선의 재현도 물론 아직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구 있구요,, 하지만 얼마든지 준비은 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도 합니다.. 배을 만들때도 어느날 갑자기 만들었을리도 없구요.. 이미 이순신이란 민족의 영웅은 전쟁이 일어날것이라고 알고 있었구 그전에 이미 준비했을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군요..그것도 치밀한 작전의 하나구 그분의 성정이라든지 역사적 사실의 성격에서도 들어나니까요...
설봉 | 2008/11/14 11:03 | DEL | REPLY

저의 생전에 부친(1916년생)께서 진도에 계시면서 명량해전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는데 그때 당시 철쇄를 사용하여 왜군을 몰리쳤으며 그곳에 철쇄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바로잡기 | 2008/11/14 11:05 | DEL | REPLY

울돌목을 비롯하여 남해안 바닷가 여러곳에 설치되어 있는 많은 쇠말뚝은 왜구들이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해안에 철쇄를 설치한 것으로 명량해전과 무관합니다. 역사전문가 아니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사료가 많이 나와 있는데 왜 언급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무량대수 | 2008/11/14 11:11 | DEL

철쇄로 감은 흔적은 그럼 뭘로 변명할래? 당신도 영남당 지지자 세요?
바로잡기 | 2008/11/14 11:42 | DEL

무량아저씨 참 말귀를 못 알아잡수네요. 내가 뭐라고 썼습니까? 철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왜구의 육지상륙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거지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철쇄는 바다를 가로지른 것이 아니고 남해안 여러곳에 왜구상륙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것입니다.
무량대수 | 2008/11/14 11:09 | DEL | REPLY

역시 친일 한나라당 다운 주장이네요. 아직도 울돌목에는 철쇄고정용 말뚝이 발견되어있습니다. 얼굴을 보아하니 영남당의 이미지가 강하네요.
바로잡기 | 2008/11/14 11:43 | DEL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갑니까? 철쇄가 울돌목에만 있습니까? 철쇄고정용 말뚝이라면서요? 철쇄는 고정시키는 것이지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것도 아닙니다. 이순신장군과는 아무 관계 없어요.
박치우 | 2008/11/14 11:47 | DEL

의견에 대한 의견도 못내는 겁니까? 당신 꼭 mb랑 닮은거 같습니다 그려. 허허.
ㅂㅈ | 2008/11/14 12:52 | DEL

정권 잃을만하다. 훈계하는 것만 신났지, 훈계당하는건 죽어도 싫지? 마이너로 전락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ㅉㅉ
관제병 | 2008/11/14 11:12 | DEL | REPLY

자기의 견해를 바치 사실인것인냥 서술하고 있군 속지마쇼~ 어짜피 저것도 하나사람의 견해일 뿐 이라는 것을..ㅉ
바로잡기 | 2008/11/14 11:44 | DEL

철쇄의 비밀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고 여러 종류의 책에 다 나와 있습니다.
^^ | 2008/11/14 11:12 | DEL | REPLY

단순히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서 거짓이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주장의 확실한 근거를 말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무조건 일반적인 사실이다라고 생각하는 말을 뒤집어 놓아서 뉴스를 타기 보다는 철쇄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승리했는지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겠네요.
ㅋㅋㅋ | 2008/11/14 11:18 | DEL | REPLY

역사적인 사실을 바로 잡아야죠. 입증도 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떠들어데다간 나중에 이순신 장군을 비하하고 낮출 빌미를 제공할뿐 아니라, 웃음거리가 되는것은 뻔합니다. 철쇄를 쓰지 않고 승리를 했다면 더욱 더 위대한 업적이네요. 옳발은 역사로 자랑스럽게 이순신 장군님을 존경하는것이 이순신 장군님께, 그리고 후세들에게 옳은 일 일것입니다.
AEGIS | 2008/11/14 11:26 | DEL | REPLY

후 저땐 배의 성능차이가 저랬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군함 133척이 일본 군함 12척에 달려들어도 모를 상황임 후샏(좀 과장하자면). 물론 이지스함 이제 취역하면 그정돈 아니겠지.
이순신 | 2008/11/14 11:30 | DEL | REPLY

이게 정답..

울돌목 폭이 294m.. 가는 밧줄 여러겹을 일정 길이 만큼 준비,100미터 이상되는 것으로 두가닥준비, 철쇄 일정 길이 준비.70~80미터.. 이 철쇄는 두가닥 밧줄 사이에 매달아서.. 왜적배의 진로를 막는 울돌목 바다의 중앙부에 위치하게 함... 철쇄의 길이는 70~80미터가량이라고 보면됨... 이 철쇄 양옆에 밧줄을 매어서 설치. 왜놈들이 끊지 못하게 필히 왜선을 막는 부위엔 철쇄를 이용해야 했음.

설치법..
밧줄을 강을 가로 지르는 방법은 먼저 총통미사일에.. 가는 밧줄을 매어서 발사해서.. 가는 밧줄을 먼저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고.. 그 밧줄에.. 본선을 이은다음 반대편에서 끍면 됨.


*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했다.*
이순신 | 2008/11/14 11:36 | DEL

울돌목을 가로지른 철쇄가 모두 철쇄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답은 쉽게 나오는 것이다. 온리 철쇄면 무거워서 양옆에서 당기지도 못한다. 철쇄는 바다 중앙부에만 일정 길이 위치하게 했던 것이라고 보면 된다.
돌돌아빠 | 2008/11/14 11:30 | DEL | REPLY

조상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판단을 통해 그분들의 노고를 더 정확히 알수있을것 같네요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신 분들의 고뇌까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lrclub.자게회원....
우리다 | 2008/11/14 11:30 | DEL | REPLY

이순신 역사연구회가 집필한 책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보면
명량대첩에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철쇄론이 왜 허구이구 그러면 어떻게 이기게 됐을 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물론 연구를 바탕으로 한 가설도 들어가 있지만 이 책에서 묘사한 전투 장면이 더 현실적입니다.
스마일강 | 2008/11/14 11:30 | DEL | REPLY

여러분 국사가 저희때는 필수로 시험보았습니다. 지금 수능세대는 선택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안해도 되게 미국역사를 배워야합니까 이런 나라가 세상어디에 있습니다. 이순신장군 이제 아만 우리 후손들은 누구인지 모를지도 모릅니다.
참 답답합니다. 국사는 필수로 해야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책에서라도 이순신 장군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lfjzmfn | 2008/11/14 11:32 | DEL | REPLY

그럼 그 쇠사슬 설치에 쓰였던 장치들은 뭐지??
저번에 다큐멘터리에서 보니깐 아직 남아있던데???
그리고 썰물때 바닥에 나무로 인공암초를 만들어서 적들의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자국들도 있고 이순신이 쇠사슬에 관해 언급한 자료도 있는것으로 아는데.. 다큐멘터리 다시 찾아봐야겠군....
좌파.. | 2008/11/14 11:33 | DEL | REPLY

좌파 정권 10년..좌파교육 10년
군에도 좌파정신에 물들은 장교들이 많다고 하더니
그패해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먼..
안사꾸라 | 2008/11/14 11:37 | DEL | REPLY

한국놈들의 모든게 나이롱뽕이란 거 또하나 증명됐네
바로잡기 | 2008/11/14 11:39 | DEL | REPLY

거 참 말귀를 못알아먹네. 철쇄는 왜구들이 상륙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명량해전과 무관하게 설치한 거라니까. 그렇게 이해가 안되남. 철쇄가 있었던 것은 사실. 이순신이 철쇄를 설치하지 않은 것도 사실. 이순신이 철쇄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사실. 철쇄는 해안에만 있고 바다를 가로지르지 않은 것도 사실. 철쇄 외에도 다양한 목책이 있었던 것이 사실. 이건 다 알려진 내용임.
uijlee | 2008/11/14 11:40 | DEL | REPLY

임대령이 연구해서 발표했는데요, 이연구가 마지막 연구겠습니까, 울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계속 될걸요 그러니 맞든 틀리든 신경쓸게 없지요 틀리다면 그때 고치면 되지요
대단한 연구도 아니고요,
흑개미 | 2008/11/14 11:43 | DEL | REPLY

비공개 댓글입니다
오리발쭌 | 2008/11/14 11:46 | DEL | REPLY

아니 그럼 철쇄를 이용도 안하고 그냥 13척 가지고 이겼다는 건데... 이건 더 대단한일 아닌가? 도데체 어떻게 이긴거야? 정말 신이 내린 장수라고 할밖에...
엔지니어 | 2008/11/14 11:50 | DEL | REPLY

쇠사슬 설치?? 지금까지 엔지니어,연구개발일만 해온 져도 그건 철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몰르니까 하는말입니다..1킬로미터이상의 거리를 가로지르려면 그 철의 무게가 10미터당 10톤은 되어야 쇠사슬 자체무게 와 조력의 힘..충돌하는 배의 힘을 견딜수 있읍니다.. 100미터가 10개여야 1킬로미터입니다 양질의 철이 천톤이 있어야 합니다.. 1천톤이란 철은..그당시에 조선 전체에있는 숫가락 젓가락 바늘까지 싸그리 모아도 댈까말까하는 양이고..그런 구조물..사슬을 용광로로 녹일때 쓰는 숯을 만들려면 아마
한라산 전체에있는 나무를 전부 베어내야 할겁니다 다베어내도 모잘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사슬 만들때 대장장이들이 망치로 내리쳐서 만들죠?? 근데 그렇게 큰건 뭘로 한답니까?? 통채로 녹여서 찍어냅니까?? 조선시대때도 포항제철이 있었답니까? 그냥 져도 전술로 한다는게 사실같음...그거만들 기술력이면 잠수함 만들고 판옥선을 몇만척은 만들수 있었을텐데..
님 거기가 1킬로나 되나요? | 2008/11/14 11:58 | DEL

울돌목은 가보셨나요? 저도 쇠사슬이 조금은 불가능할거 같다는 생각도 드라마 보면서도 들었지만.. 그래도 1킬로라고 거짓말은 하지 마셔야죠... 어디 사시는지 모르겠고 한번쯤 가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실거리 한번 보세요
로프전문가 | 2008/11/14 13:16 | DEL

저는 로프전문가입니다. 무슨 10미터당 10톤이 필요합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현대기술로는 10미터당 0.2톤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과거 기술로는 0.5톤정도는 필요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울돌목이 1km나 된다는 소리가 맞습니까?
청산 | 2008/11/14 11:51 | DEL | REPLY

내가 어릴때 들은 이야기는 철쇄가 아니고 쇠줄이라고 들었다. 쇠줄로 배를 부순게 아니라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에 걸리게 하여 키가 부러지면 배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수가 없어서 서로 부딪히고 깨어지고 아군의 공격이 용이해 이겼다고 들었다. 나느느 명량출신...
hhh | 2008/11/14 11:54 | DEL | REPLY

증거가 없다는 지적 말고, 본인의 증거를 내세우는 논의들은 아직 없던가요? 이 글만 보고는 당최 철쇄론이 허위라고만 보기도 힘드네요. 설화에 또 다른 설화로 대응하는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이순신 폄하 연구가? | 2008/11/14 11:56 | DEL | REPLY

어설프게 연구를 했구나. 대령 장난치니? 당신은 개신교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울돌목을 말하면서 물살이 쌔서 나무배로는 쇠사슬 조차도 옮기지 못했을거란 사람들 당신들 바닷가 살았봤나? 아니 어느 해군출신이란분 정말 답답하십니다.
조수간만 이란말은 들어보셨을테고 물이 정지하는시간이 약 1시간정도 되는거 모르시나요? 군대에서 안가르켜 주나.. 한마디로 그 시간에는 물살이 어마어마 한 울돌목도 잔잔하게 변합니다. 그때는 수영해서도 지나다닐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두에 있던 불가 몇척만이 전투에 참여했다고 씨부린 연구가야.. 너 거기 가봤지 그녀석들이 쫓아 올때 부대단위로 나눠서 오지 않은 이상 그 물살에 빠져들면 모조리 끌려들어가게 되어있다. 당신은 쇠 사슬만 연구해라.. 사실 쇠사슬 나는 관심없다만은 교묘하게 마지막 말로 이순신 폄하를 아닌것처럼 하는 너의 위선이 더욱더 가증스럽다.
ㅎㅎㅎ | 2008/11/14 13:06 | DEL

내 생각엔 물살이 1시간이 아니라 하루가 정지해줘도 어려울꺼 같은데요? 그리고 글쓴이는 설치 가능 불가능을 떠나서 철책 안쓰고도 이겼다면 더욱 위대하게 생각된다는데 님은 왜 이리 화를 내시는지.......
엔지니어 | 2008/11/14 11:58 | DEL | REPLY

천톤... 말이 천톤이지 이세상에 어떤 불도져.. 전투용 땡크도 천톤은 못옮깁니다
게다가 천톤의 무게를 바다속에 너었다가 배지나갈때 쌰쌱~ 하고 땡땡하게 당긴다??
이건 바닷속에 포세이돈이란 사람이 진짜 산다고 믿는거랑 똑같은겁니다..
달에 토까가 산다는거 믿는거랑 똑같은겁니다
나같으면 그거 만드느니 대포를 100만개 만들어서 동시에 쐈을겁니다
저분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환희 | 2008/11/14 12:03 | DEL | REPLY

세계 해전사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없이 자력으로 승리한 해군제독은 이순신 장군님이 유일무일 합니다.
그렇게 지켜낸 나라가,,친일파들에게 농락당하는걸 보시면서,,,지하에서 통곡하고 계실것 갔습니다,,,,
spasiba85 | 2008/11/14 12:06 | DEL | REPLY

명랑대첩때 철쇄없었다는건 누구나 다아는데 그런 이야기하는이유가뭐냐 관심받고싶니??? 드라마에서 철쇄로 이야기를 전개한것은 명량해전은 그때로가서 직접보고오지않는이상은 어떻게이겼는지 누구도 알수없는 미스테리이기때문인데...
소닉 | 2008/11/14 12:09 | DEL | REPLY

댓글 수준들이 짱이네요 온통 난독증환자들 댓글이 우수수네요
충무공 께서는 쇄사슬 설치가아닌 해전에서의 지략만으로 왜군을 격파했다
그래서 더더욱 대단하다 나는 이렇게 읽혀지는데요
그런데 어떤님들은 친일파 또 영남당 한나라당 뭐 이런얘기도하고
님들 댓글달기전에 주어진 본문을 꼼꼼히 읽어보고 글쓴이의 의도부터 파악하심이
어떨지요 무식 탄로내지 말구요
정말일까 | 2008/11/14 12:10 | DEL | REPLY

역사스페셜에서 보여준건 뭐지
잠수부가 직접 울돌목 바다밑에 들어가 쇠사슬의 흔적을 확인하고

그리고 양쪽에 쇠사슬을 연결해서 감아돌리는 장치도 보여줬고

그럼 이건 다 꾸민거란 말인가
spasiba85 | 2008/11/14 12:18 | DEL

명량해전전에도 왜군과조선수군은 교전을 종종 벌였습니다 또한 왜군들은 조선수군이 12척이였어도 상대가 이순신장군이였으니 방심을 하지않고 계속에서 조선군의동태를 예의주시했죠 그런 엄청난 쇳덩어리를 만들 쇠도없었고 무엇보다 왜군들이 조선수군의행동하나하나를 예의주시하는상황에서 이순신장군의성격상 필요도없는 전력낭비에 가까운 쇳덩어리제작은 할리가 절대 없었겠죠 그런 쇳덩어리를 만든다고해도 왜선들을 한척도 묶기전에 울돌목의엄청난 압력을 못견디고 끊어졌겠지만 ㅜ.ㅜ
월영혼 | 2008/11/14 12:39 | DEL

울돌목의 엄청난 조류속에 왜선 수십척을 견딜만한 수백톤짜리 쇠사슬을 어떤수로 묶습니까? 착각하지마세요.. 철쇄에 쓰인게 아닐까하는 흔적을보고 추정하는거지 그게 철쇄를 썼다는 증거가 안됩니다.. 일단 과학적으로도 안되고 역사적으로 기록에도 없어요.. 피식 설마 현무공 실기에서처럼 현무공 김억추공께서 수백톤짜리 쇠사슬을 들어올렸다고 하실려는건 아니죠? 난중일기에서 뒤쳐져있던 12척중에서도 보일랑말랑하게 뒤쳐져있던 현무공 김억추옹께서요? ㅎㅎㅎ
글씨... | 2008/11/14 12:10 | DEL | REPLY

뭐 쇠사슬의 사실여부는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울둘목의 쇠사슬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측면이 있기는 있기는 하죠. 그런경우가 피라미드도 그렇구, 그런 예는 많죠. 실존하지만 믿기 어려운거..
일제시대 일본의 수탈과 역사조작을 본다면 현재 남았는 우리 자료만을 가지고 연구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죠.
예전 인터넷에서 본거라 정확한지 모르겟지만 군 작전지도에서도 독도를 빼버리지 않앗나요?
교회연관시키기는 싫지만 기독교 장로 출신 대통령에 순복음교회의 이순신 사탄론으로 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기는 가네요..
일본자료는 어떤가 하는 거 보면 확실하지 않나요?
꽁파 | 2008/11/14 12:11 | DEL | REPLY

훔~ 누가뭐래도 이순신은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왜 하필 진실이니 아니니하면서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을 가지고 그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네요. 그 게 사슬이면 어떻고 고무줄이면 어떻나요? 임 령이란 사람 지금 정작 중요한건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의 업적을 건드리는게 아니라 우리나라땅을 자기땅이라 우기고있는 일본놈들을 독도근처에도 못오게 하는게 아닌가요? 해군 대령이라는 사람이 우리바다를 지킬생각을 해야지 목숨을 바쳐 우리나라를 지킨 선조들 얼굴에 상처를 낼려고 하니 한심해요정말.
임대령의 발표에 진실이니 아니니 하면서 싸울필요가 전혀없다고 봅니다.
11123 | 2008/11/14 12:18 | DEL | REPLY

성경이 진리라도 믿는 사람들도 있는데..

거 택리지가 설화가 있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설화책이라고 매도하는것은 좀 더 웃기지 않을까?ㅎ

문헌에 없다고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수 있는 역사가가 있을까?ㅎ
체사레 보르자 | 2008/11/14 12:20 | DEL | REPLY

다 좋은데 울돌목에 있는 철쇄 고리 유적은 어떻게 설명하실건지;;
예전에 '역사스페셜'에서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는데;;
왜 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설화'라고 하는 거지?
월영혼 | 2008/11/14 12:32 | DEL

착각하지마세요 그런건 기록에 그것은 철쇄고리다 라고 나와있어야 철쇄 고리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거 발견하고는 혹시 이게 철쇄고리가 아닐까 추정하는거지 실제 그게 철쇄 고리라는 증거가 없습니다
wizroot | 2008/11/14 12:21 | DEL | REPLY

다음은 블로그 뉴스에서 삭제하라.
이것도 설이지 않는가?
헐; | 2008/11/14 12:28 | DEL | REPLY

말 이상하게 하는분 많네요.

이순신이 철쇄를 안쓴게 폄하하는 겁니까?
그리고 제가 알기로도 판옥선이 일본선보다 뛰어난 배인걸로 아는데
거기다가 판옥선은 360도 회전이 가능한 배라서 해안선 복잡한 한국 남해안에
최적화되기도 했다죠. 일본 안택선은 허세용 대장선 큰배이지 주력선은 세키부네 같은
잡선이었다고 알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게
본문에도 언급된 종류별 조선의 발달된 화포무기를 실을 수 있냐 없냐 차이도 컸다죠
판옥선은 튼튼하고 큰데다가 한국해안 최적화, 대포 반동도 견디는 견고함, 거기다가 360도 회전도 빠르게 하니 대포 연사력도 높일 수 있었는데

왜선은 배가 커도 대포하나 실어 다니기도 힘들고 배위에서 조총이나 쏘고 해적들처럼 들이 박아서 백병전을 유도하는 스타일 이었기때문에 하드웨어로 보면 많이 전력차이가 났을 것입니다.

이 해군대령이 주장하는 대로라고 해도 13척이라는 전략상 열세를 역으로 이용한 심리전과 지형을 이용한 전술등 모든것이 너무나 멋지고 극적인 전투인데 이게 왜
비현실적인 쇠사슬 설을 부정했다고 이순신 폄하가 되나요?

거기다가 좌파니 무슨 난데없는 영남파 어쩌고는 왜나옴? 이사람 혹시 한나라당?
뭐 한나라당이고 자시고 일단 이 설자체는 충분히 들어줄만 한건데

정말 역사라는걸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는 분이 많네요. 공무원 한국사 문제집이던 고딩 국사책이던 앞에 역사에 대한 문구가 나옵니다.

역사란 과거의 사례를 돌아봄으로서 현재의 삶을 더욱더 풍성하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줏대도 없는 애국심 충족용 자위용이나 그어떤 식으로든 왜곡이나 과장되어선 안되죠. 일본 욕하면서 일본과 똑같은 짓을 하고 싶어 하는 분이 많네요.

그리고 유치한 지역감정 물타기는 그만하시죠.
월영혼 | 2008/11/14 12:28 | DEL | REPLY

이미 명량해전때 철쇄설이 사실이 아니라는건 꽤 오래전부터 말이 나온거죠..
그리고 철쇄같은 경우 울돌목폭과 함게 조류의 흐름 철쇄의 무게를 생각하면
적이 쳐들어올때 사람의 힘을 이용해 철쇄를 끌어올리는건
대략 계산해도 수천명대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울돌목 유속이 약해진 현대에 12노트가량
거기에 울돌목의 철쇄가 예전 방송처럼 4톤이라고 하고
왜선이 순류를 타고 올시 대략 5노트는 속도가 붙을겁니다
거기에 세키부네가 100여톤이상 아다케가 200톤이상입니다
여기에 탑승인원+각종장비등등 다합하면
결과적으로 저 무게에 12노트이상의 유속이 더해져 철쇄에 얼마만큼의
무게가 나갈까요?간단히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죠..
4톤? 택두읍어요.. 수백톤이 필요합니다..
더더욱이 명량해전때 이순신장군은 그나마 판옥선에 태울 인원도 부족했는데
어립잡아 계산해도 울돌목에 철쇄가 만약있었다 철쇄끌어올리고할 인원이 없음
실제로 명량해전때 판옥선은 13척이 다가 아님.. 하지만 인원이 부족해서
13척만 전투에 참가했죠 거기다 이순신장군은 치명적일정도로 쇠부족으로
총통이라던가 무기제작에 고심했습니다 울돌목을 가로지를만한
철쇄가있었다면 이것도 머리아플필요가읍죠
거기에 명량해전은 쳐들어오는 적을 막다가 끝난 전투가 아니에요
후반 반격을 통해 총대장 도도 다카도라가 부상당하고 군감 모리 다카마사는
물에 빠졌었죠.. 즉 철쇄로 울돌목을 봉쇄했다면 반격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일본은 총대장이 최후방에 위치합니다.. 그런걸 감안하면 철쇄로 봉쇄했다는건
말이 안돼죠..
거기다 철쇄가 잇으면 명량해전 초반에 이순신장군의 대장선을
제외한 12척은 뭐가 무서워서 한참 뒤에서 이순신장군 싸우는거
구경만했답니까? 말이 안되죠
철쇄설의 가장 큰구멍인 다름아닌 이순신장군의 기록과
전혀 매치가 안된다는겁니다 실제 난중일기에는
철쇄이야기가 전혀 없고 명량해전의 설명도
위에 저 구경만한 12척 문제라던가.. 전투과정에서도 그냥
초반에 혼자싸우다가 나중에야 뒤에 함들이 슬그머니 가세해서
이겼고 하늘이 도와서 이겼다라고 적어놨죠..
그 어디에도 철쇄를 이용한 승리라거나 전투과정이
철쇄를 이용한 전투와 거리가 멉니다..
보시다시피 명량해전의 철쇄설은 거의 사실이 아닙니다..
준이 | 2008/11/14 12:29 | DEL | REPLY

다 맞는 말입니다. 역사는 진실을 말해주지만 미화작업이 지나치면 성웅을 졸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니 접근 법에 있어서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이순신 못지 않은 원균도 철저한 이순신 숭배자들의 잘못된 논리로 그 위대함이 치졸하게 변질 되어버린 사실도 짚어 볼 일입니다.
분명히 선조는 원균을 용장이라 했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한 인물을 우상화하기 위해 다른 한 인물을 폄훼했다면 역사는 그 사실을 명징하게 추려내야 위대한 역사를 후손에게 물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이 자위대 장교들의 역사 왜곡을 주제로한 논문으로 몸살을 앓는데 비해
우리 나라는 역사의 진실에 용감하게 접근해 그 가치의 위대함을 어필하는 것이 정말 자랑 스럽게 느껴지는 기사입니다.
월영혼 | 2008/11/14 12:48 | DEL

님도 무식한 티좀 내지마세요 공부 안하면 그냥 말하지를 마세요 원균이 무슨 얼어죽을 용장? 용장의 기록을 내밀어 보시죠 북방이건 왜란시기건 상관없음. 모르죠? 당연히 공부를 안했는데 알리가 있나요 선조가 원균을 치켜세운건 이순신.이억기견제+원균을 자기가 밀어준탓에 원균의 잘못을 인정하면 선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아는체 하고 싶으면 공부를 해요 싸움나면 싸우기보다 수급거두기에 열내고 간단하게 조그만 섬봉쇄하랬더니 지레 겁먹고 도망쳐 이순신장군 혈압올리고 각종비리에 가는곳마다 비리로 실록에 기록되고 뇌물받고 병역면제받게해주는 인간이 얼어죽을 용장 -_- 칠천량해전은 입에 꺼내기도 싫고.. 전쟁초반에 조선수군 최대전력인 원균의 경상우수영만 제대로 가동됐어도 임진왜란도 없었음.. 그나마도 경상우수영은 병력모으고 할시간도 충분햇는데 일본수송선떼거지보고 자침시키고 해산시킨 원균이 얼어죽을 용장 -_-
구붕 | 2008/11/14 12:31 | DEL | REPLY

이순신은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난중일기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없으니까....ㅋㅋ
참나 ㅋㅋ | 2008/11/17 20:47 | DEL

참나 웃겨서 말이 안나오네요 당신은 일기에 화장실 가서 대소변 봤다는 것도 쓰쇼?
해지는곳 | 2008/11/14 12:32 | DEL | REPLY

당시 왜군의 수군 주력이 활동하던 일본의 해협은 을돌목보다 조류가 더 거친 바다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왜구 토벌에도 급급했던 조선 수군이 수전에 능했던 왜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단순히 함선의 우수성? 숫적 우위도 점하지 못하고? 1:3은 물론 1:30보다야 쉽겠지만 조선수군1과 일본왜적3이 싸우면....
월영혼 | 2008/11/14 12:34 | DEL

공부 안나는 티를 내지마세요 최소한 이순신의 조선수군은 왜군보다 월등하게 강했습니다 히데요시가 해전금지령은 괜히 내린지 아십니까 -_-; 그리고 왜군수군=왜구입니다 해적대명이라는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에요 공부좀 해요 명량외에도 이순신장군이 얼마나 압도적으로 이겨왔는지 그거 매번 철쇄 사용해서 이겼습니까 ㅉㅉㅉ
허헐; | 2008/11/14 12:43 | DEL

세종때 대마도 정벌후 고려후기의 난잡한 왜구 약탈은 거의 사라졌었습니다. 조선도 판옥선 건설 시기를 보듯 나름 대비를 했고요. 그리고 위에도 있듯이 일본은 작은 고깃배 개조수준의 배로 야만스러운 백병전 위주의 해전을 했는데 조선은 하이테크날로지의 대형선박과 발달된 화포무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쟁같은데 관심이 있다면 해전에서 배의 성능차이가 얼마나 큰 전력차인지 알겁니다. 현대만 봐도 그렇고. 거기다가 원거리무기라곤 그 큰 일본활과 사거리짧은 조총 뿐이었는데 이게 대포의 상대가 될까요? 거기다가 판옥선은 대포난사하기에 최적의 고급함대입니다. 이순신이 잘난것도 있지만 조선이란 나라가 초반에 일본한테 털렸다고 그렇게 개허접 막장 국가가 아닙니다. 지금 강남졸부들 하는대로 돈주고 공익가고 이런 분위기에서 전쟁대비를 못한게 초반고전이 큰거지 조선이란 나라의 문명수준은 그때까지만 해도 미개한 왜구들의 깜짝무기 조총따위에 밀릴만한것이 아니었죠. 실제로 전쟁 중반이 넘어가면 조선군의 기본무기이자 상징인 궁병만으로도 조총병따위 발라버리는 전투 많습니다. 화포무기나 신기전같은 화차, 현대의 수류탄, 산탄같은 원리의 무기도 있었고..휴..
충분히 가능 | 2008/11/14 14:38 | DEL

충분히 가능한 의문입니다. 일본에는 명랑보다 물살이 더 센곳도 있고 일본 수군들 다 거기서 훈련된 병사라는 기록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명랑이 어떻다는것은 전투 이전에 이미 일본군들이 다 일고 있었을 겁니다. 일본군이 급류에서 훈련받았다는 자신감에 중독된게 아닐까요. 빠른 조류를 이용하여 조선군 배에 돌진하려다가 전술적 미스를 한게 아닐지. 그리고 한가지 고려해야 할것은 조선배는 소나무로 만들어 매우 무겁고 강하나 일본배는 삼나무로 만들어 가볍고 기동성은 좋으나 소나무 배에 부딪치면 깨어졌다고 합니다.
미친것 | 2008/11/14 12:32 | DEL | REPLY

병신같은것들이 일본에 물들어 사실만 역사로 받아들이니..한심한 것들..
에효 | 2008/11/14 12:50 | DEL

자신이 무슨말 하는지도 모르지요? 역사=사실인데 뭐가 더 필요합니까 일본에 물들어? 지금 일본사학계가 하는짓보면 이분에 대한 모독인데요? 일본은 자신들의 이주민이 만든 역사가 부끄러워 나름 뿌리있는 독자적 나라로 보이고자 신석기 유물까지 자작으로 파뭍고 캐내고 하다가 세계적으로 개망신을 당한나라입니다. 닌텐도 ps 애니나 보는 세계 각국의 바보들이나 일본에 대해 환상가지지 식자들이야 일본이 멍청한 역사관 가지고 있는거 다 알지요.
... | 2008/11/14 12:42 | DEL | REPLY

당시 전시상황에서 그럴만한 쇠를 구하는 것, 그리고 그걸 가공하고 연결하고 하는 것
들 자체가 넌센스다. 기껏 해안에 발견되었다는 고리의 흔적이라는 것은 섬과 육지를 오가는 나룻배용이라는 것은 잠깐만 생각해보면 아는 것이고, 이렇게 확실치도 않은 것을 아무 검증도 없이 믿고 싶은대로 믿어버리는, 그래서 결국은 자기 역사를 존중못받는 소설정도로 격하시켜버리고도 우리만 좋으면 그만이다 생각해버리는 무개념이 문제다.
월영혼 | 2008/11/14 12:50 | DEL

동감 특히 칠천량해전이후 조선수군이 치명적인 수준의 쇠부족에 시달렸고 이순신장군이 통제사로 다시 임명되고 거의 약탈하다시피 쇠를 모았을정도로 쇠부족에 시달렸는데 수백톤급 철쇄라니 -_- 넌센스중에 넌센스죠..
민주69호 | 2008/11/14 12:43 | DEL | REPLY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역사 설화나 소설에서 탄탄한 사실과 과학을 기반으로 두고도 충분히 자랑스럽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 님들과 같이 묵묵히 수고하시는 분들 때문입니다. 상식과 과학,경제로 바라보는 역사관이 중요합니다...
이해불가 | 2008/11/14 12:52 | DEL | REPLY

전에 TV에서 일본에도 울돌목과 비슷한 지역이 있다고 하는걸 본적이 있었습니다.
일본해군도 물살이 센곳에서 수군 연습했다고 했고요.
그런 얘들이 자기나라 물살이 아니고 한국의 물살이라고 적응 못해서 우왕좌왕하다가
몰살 당했다고는 믿기가 힘듭니다. 아무리 배의 성능에서 차이가 난다고해도 13 대 133이라면 13이 이기기는 힘들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 울돌목의 빠른 급류와 철쇄인데 위에서 얘기한바와같이 일본도 울돌목과 비슷한 바다에서 연습한 애들이니 남은것은 철쇄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라니... 이순신장군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월영혼 | 2008/11/14 12:57 | DEL

이분도 참 공부안하면 말을 말라고요.. 일본수군이 연습 좋아하시네.. 당시 항해술이 어떤정도냐고요? 참고로 왜란중에 세토내해에서 일본최고권력자 히데요시가 물에 빠져 죽을뻔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당시 울돌목은 순류였습니다 일본쪽에서요 당시 250톤에 가까운판옥선도 역으로 노를 저어서 겨우 제자리 걸음인데 100여톤의 세키부네 그만도 몬한 고바야 판옥선 크기인 아다케 가지고 순류를 타면 제대로 함을 통제가능한지 아십니까? 착각마세요 울돌목은 지금보다 옛날에 더 조류가 강했습니다 진도대교 건설하면서 암초파괴해져서 유속이 느려진거라구요
민주69호 | 2008/11/14 12:52 | DEL | REPLY

간과해서는 안될점은 근대까지의 해군전투는 자연,날씨의 영향을 지대하게 많이 받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말이죠. 영국과 스페인함대, 나폴레옹함대와 넬슨함대, 러시아와일본의 도고함대, 모두 바람의 영향, 해류의 영향, 혹은 1년간의 긴 항해로 인한 뛰어 넘을수 없는 자연의 힘이 승자와 패자의 길을 나누게 했습니다. 이런 자연조건을 무시하고, 무조건 우리민족의 리더쉽, 우수한 무기, 일본민족의 미개성을 논리로 펼친다면 국제사회에선 절대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이 될 것입니다.
뭐야 이건... | 2008/11/14 12:52 | DEL | REPLY

저 논리 자체가 오히려 철쇄 이야기 보다 더 논거가 떨어지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수군이 을돌목으로 끌어들이고, 왜군들이 미친듯이 따라왔겠지... 그리고 유인한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위 기사의 논리대로라면 을돌목을 빠져나온 선발대 30여척을 빼고 다 허우적 대니 선두에 선 30여척만 상대하면 되었다라.. 이게 과연 논리에 맞는 소리인가? 그럼 왜군은 선두에 선 30여척만 을돌목을 빠져나올 능력이 있고, 나머지 수군들은 그정도 능력을 못갖추어 30여척이 다 파괴될 동안 멍하니 지네끼리 부딪히고 있다가 우리 해군이 그런 그 녀석들을 뒷정리했다? 이게 과연 이해가 가능한 소리인가? 그리고 철쇄 작전이 전혀 허구일 가능성 보다 약간 과장된 설화일 가능성을 먼저 생각해봐야지~ 철쇄가 아니라 동앗줄이면 어떨까? 그리고 배의 진로를 지속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을돌목의 해류에 휩쓸릴 정도의 저지만 해주고 끊어질 정도였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전술이다. 차라리 이 편이 더 논리적이지 않나?
월영혼 | 2008/11/14 13:08 | DEL

동앗줄로는 택두읍어요 -_- 위에 말했다싶이 판옥선 250여톤 세키부네 100톤이상이에요 그걸 울돌목 유속+조류에의한 가속+왜선.인원.장비 합하면 동앗줄로는 걸렸다싶은 순간에 바로 팅~ 하고 끊겨요.. 울돌목은 130여척이 한꺼번에 들어갈정도로 넓지않습니다.. 거기다 무슨 전투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한꺼번에 전군돌격입니까? 진형을 갖춰서 차례대로 싸우지.. 난중일기등 사료를 통해본 명량해전 전개는 1. 왜군 시마즈 요시히로등 육상부대출신 후방대기 도도 다카도라의 수군 전진 2. 이순신장군 홀로 울돌목에서 순류에 맞서 간신히 떠내려가지않고 버티고 있음 3. 왜군 선봉 잔격. 하지만 엄청난 조류로 금새 진형 와해.마구잡이로 조선진영으로 떠내려감 4. 진형이 망가져서 엉망진창으로 다가오는 왜군을 이순신장군의 상선 혼자서 얼마간 전투돌입. 다른 조선수군 배들은 적의 규모를 보고 뒤로 쳐져서 전투 참여하지않음. 참고로 김억추는 우수영 앞까지 물러남 -_-; 5. 조류탓에 조함이 제대로 거의안되서 상선 1척에 마구잡이로 난타당함 구루지마 전사. 그외 다수의 왜선 격침 혹은 반파. 그걸보고 안위를 비롯해 한척씩 다가옴.. 이때 그유명한 이순신장군의 안위를 향한 호통이 나옴.. 6. 점차 판옥선이 늘어나며 여전히 조류에 허우적대는 왜군 차례대로격파 7. 시간이 흘러 조류가 역으로 흐르면서 기세와 조류를 탄 조선수군의 역공. 8. 총대장 도도 다카도라 부상. 군감 모리 다카마사 물에 빠짐 9. 왜군 퇴각. 시마즈등은 애초에 수전준비가 제대로 안된탓에 그냥 함께 퇴각.
.... | 2008/11/14 13:20 | DEL

동앗줄이 어떤 동앗줄이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동앗줄 굵기를 최대 굵기로 하고 그렇게 됨으로써 짧아지는 길이는 중간중간에 쇠고랑으로 연결하고, 그렇게 이어나가면 300M정도는 만들수 있고, 그리고 잠깐 아주 잠깐의 저지면 됩니다. 을돌목이 키를 잡고 있기도 어려울 정도의 해류를 갖추고 있으니 더더욱 도움이 되겠지요. 몇초만 키의 동작을 방해한다면 순식간에 진형이 와해되는 것은 좁은 을돌목에서는 치명적이죠. 만약 아무 방해물도 없는데 단지 해류 하나로 전 진영이 다 와해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말도안되는 억측아닐까요? 아무리 왜군 해군이 승리에 쩔어서 방심했다고 하더라도 그중에서 발군은 있고, 그 발군이 조선 수군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이순신 같은 치밀한 명장이 그 가능성을 열어두지는 않았을 듯 싶네요. 이순신의 전략이 더 빛을 바라는 것은 그는 자연 지물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자연지물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인위적인 영향을 약간 첨부함으로써 그 전략을 극대화 시킨다에 있다고 봅니다.
월영혼 | 2008/11/14 13:44 | DEL

그 굵기가 한 10m는 넘어야할걸요? -_- 저번에 디씨 과학갤서 계산해보길 울돌목에 수십척의 왜선을 저지할만한 철쇄도 400톤은 돼야한다고 나오더군요.. 그걸 동앗줄로 대신할려면 대체 굵기가 얼마나 되야한다고 보십니까?그리고 말도 안되는 억측이 아닙니다 좀 글좀 제대로 보세요 250톤급의 판옥선이 간신히 제자리걸음한게 울돌목입니다. 그 반정도되는 세키부네. 그보다도 훨씬 작은 고바야가 버틸수있다고 보십니까? 좀 사실과 상상을 구별좀 하세요 님의 주장은 상상만있고 사실이 없습니다. 동앗줄? 철쇄설만도 못한 주장입니다 그거는 그런 기록이 허풍섞인 설화에조차 없으니까요.. 그런 주장만가지고 결론을 내리는게 우습네요.
... | 2008/11/14 14:03 | DEL

그 왜선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잠깐만 키의 움직임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그 엄청 큰 판옥선도 해류에 역류하면서 간신히 키를 유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규모가 더 작은 왜선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리고 판옥선이 간신히 버티는 것도 해류에 역류하면서 멈추어야 했기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지 떠내려가는 해류에 맡기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항해는 아니지요. 그리고 해류를 헤치고 나가기에는 큰 판옥선보다는 작은 배가 더 낫다고 알고있습니다만;;; 그래서 왜군들도 어느정도 자신을 가지고 간 것이고요. 그들이 그 쪽 해류에 완전 무지했다고는 보기 어렵죠. 자만했다고 보기가 더 신빙성이 있고요. 그리고 동앗줄도 물먹으면 엄청 그 강도가 강해집니다만..... 예전에 정약용의 기중기(거중기라고 하나?;; 기억이 가물;;)에 쓰이는 몇톤짜리 돌을 지탱하는 것도 동앗줄입니다만;;;
... | 2008/11/14 14:07 | DEL

그리고 한마디 더 붙이자면 저는 이것이 정설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고, 과장의 범주에 놓고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느냐 라고 한가지 가설을 내세운 것입니다. 쇠사슬이 솔직히 과학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런 터무니 없는 설화가 아무 근거없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냥 어떤 사람이 갑자기 아~ 쇠사슬로 막았을 꺼야하고 퍼뜨린 것밖에 안되고 몇백년동안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신빙성 없는 설화라고 보는데요? 거의 모든 설화가 어느정도 사실에 기반을 하되 과장되었다라는 것은 역사에서의 정설이죠.
| 2008/11/14 14:28 | DEL

쇠사슬은 배를 뒤집는데 쓴게 아니라.. 힘빠진 배가 더 위쪽으로 전진 못하도록 저지하는데 쓴거죠..
| 2008/11/14 14:42 | DEL

일본군이 급류를 몰라서 당한게 아니라 너무 잘알아서 이용하려다가 제꾀에 넘어간것일겁니다. 급류를 타고 쏜살같이 조선함에 돌진하려다 선발대가 꼬여버리고 이어서 다 서로 저희들끼리 부딪힌 겁니다.
허헣 | 2008/11/14 12:57 | DEL | REPLY

정말 여기 댓글에도 나타나듯 우리나라 사람들 역사관 너무 엉망입니다. 일본 욕하기도 머쓱해요.

신라는 민족배신자, 조선은 나라뺏긴 볍신국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밖에 보지않습니다. 역사란 뭐다? 현재를 보는 거울입니다. 오죽하면 한때 인터넷을 휘젖던 환빠니스트들의 '조선은 화교 이성계가 세운 국가'라는 헛소리가 먹혔겠습니까.

조선이 부끄럽답니다. 일제에 뺏겨서 부끄럽고 신라는 당나라에 대고구려제국을 팔아서 부끄럽고 ㅋㅋ 우습죠.



맞습니다. | 2008/11/14 13:06 | DEL

조선이라는 나라... 물론 세워지는 과정에서는 조금 떳떳치 못하였지만... 그런거 걸고 넘어지면 떳떳한 나라 없지요~ 그리고 그 후의 업적을 생각해야지요. 가장 큰 것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문자, 한글! 이거 조선시대에 정립, 확립한겁니다.(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 명확하게 발명했다고는 이야기 못하겠군요.) 일부 개념없는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조선이 한게 아니라 그 당시 학자들이 똑똑해서 그런 거라고... 웃기지도 않는 논리... 그럼 그 학자들을 등용해서 그렇게 써먹은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이지 누구입니까? 자동차에 빗대어 아무리 슈퍼카라도 운전자가 개차반이면 그 성능의 100분의 1도 못 발휘합니다. 어느 한쪽만 잘했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치적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부 볍신같이 나라 말아먹은 사람들 때문에 조선 전체가 욕을 먹는다는 것은... 정말 조선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아깝습니다. 어느나라의 역사이건 명암은 있습니다.
시원한 바람 | 2008/11/14 13:04 | DEL | REPLY

한심함 사람이군 할일 없으면 잠이나 자시지 이순신을 연구했다는 사람이 철쇄사용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없다고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안돼죠 거북선은 이순신이 만들기 전에 기록이 없으니 거북선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셔야 겠네요. 철쇄 사용에 대한 이야기는 임진란 직전 전라좌수영 소포에서 철쇄에 대한 관심기록이 있는데 돌산 까지의 거리는 600m 인데 비해 명량해협은 300여 m밖에 되지 안으니 철쇄가설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난중일기나 장계에서 관련기록이 없다는 것이 안타갑습니다.
월영혼 | 2008/11/14 13:13 | DEL

그럼 역사적 사실도 없으면 사실이라고 할까요? 잘됐네요 전부 그럼 사실로하죠 김억추공께서 수백톤짜리 쇠사슬을 힘으로 끌어올려 명량해전을 승리로했다는데 이건 기록까지있는데 초인 김억추공설을 한번 연구해보죠? 좌수영앞에 철쇄기록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울돌목에있다는건 대체 어떤 연계죠? 좌수영앞 철쇄있음=그러므로 울돌목에도있다? 좀 철쇄말고 주변을 더 살펴보세요 명량해전 당시의 쇠부족 인원부족 난중일기의 전투과정에서 철쇄사용햇을시와 판이한 전투전개.기록누락 울돌목의 어마어마한 유속. 그리고 철쇄는 전투시 수십척의 배를 저지하는 역할로 처진게 아니에요 부엌칼은 집에서 과알깎고 음식만드는데 쓰는거지 거대한 참치해체하는데 쓰는게 아니에요. 님이 하는 주장이 그런겁니다 집에서 음식만드는 부엌칼로 거대한 참치해체를 완벽하게해냈다고 주장하는거죠
월영혼님아.. | 2008/11/14 14:29 | DEL

기록도 있네.~
후크 | 2008/11/14 13:07 | DEL | REPLY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철쇄는 없었고, 우수영에서 배가 드나드는것을 관리하는 철쇄는 있었습니다.
이 철쇄를 관리하는 담당이 김억추었고, 울돌목 철쇄설은 이 김억추 후손들을 통해서 나온겁니다.
그래서 세간에서 김억추를 이누아샤 철쇄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감사... | 2008/11/14 13:08 | DEL | REPLY

결국 왜곡된 건가요? 이런 일은 없아야 하겠죠. 역사왜곡에 대한 스트레스는 왜국이나 떼놈들만으로 족한데요. 이순신장군이 혹여 지역감정에 의한 편견이 있었는지도 정확히 조사해 주세요. 만약 정말이라면 서릿발같은 정확한 평가작업이 새로 들어가야 되겠지요.
지역감정을 가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부로 표출했다면 절대로 성웅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mbbrainstorm | 2008/11/14 13:09 | DEL | REPLY

당연한 것 아닙니까? 명량대첩의 울돌목이 어떤 곳인데요? 물살이 더럽게 빠른 곳입니다. 거기서 왜선 수백척이 자유롭게 조선 수군을 공격할 수 있다고요? 정말 웃기는 소리입니다. 만약 거기 330척이 다 들어간다면.. 지들끼리 부딪혀서 자멸하게 됩니다.

왜선과 판옥선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왜선은 1명이 1개의 노를 젓습니다. 반면, 판옥/거북선은 5명이 1개의 노를 젓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전통 한선의 노는 꺾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대신, 추진력은 겁나 세죠. 이런 판옥/거북선도 지나가기 힘든 곳이 울돌목인데, 거기를 왜선이 지나가면 ㅄ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울돌목에서라면, 조선 수군이 굳이 철쇄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요. 파워의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이죠. 조선 수군은 판옥선에 적어도 20문 이상의 화포를 싣고 다닙니다. 또, 화포의 포탄체계도 매우 독특해서, 화포에서는 장군전이라는 대형 화살을 쓰기도 합니다. 무게는 더럽게 무겁고, 화살이다 보니 맨 끝에 촉이 있어서, 파괴력은 더럽게 강합니다. 이것 몇 발만 왜선에 넣어주면 왜선 바로 꼴까닥 하고 침몰합니다. 또, 조란환이나 연자탄을(대략 산탄) 수백발씩 넣고(100-300) 방포해서 제대로 크리뜨면 왜선의 왜병들은 바로 좃된다 이 말입니다. 헌데, 왜군의 화포는 대조총(최대 구경 8cm, 사거리 800m)이라는 것밖에 없는데, 이것도 그나마 안택선(대장선)에 2-3대밖에 없습니다. 산탄 20발이나 큰 철환 1발을 쏘는데, 이것이 천/지/현/황/자총통이나 불랑기포에 비할 만합니까? 아닙니다. 게다가, 조선 수군의 판옥선/거북선은 왜선보다 높이가 1-2m 이상 높습니다. 왜군이 장기인 백병전을 펼치기 힘들죠.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조선 수군의 이점을 잘 이용해서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것입니다. 명량해전같이 지형적으로 유리한 곳에서라면, 조선수군의 장점이 훨씬 잘 나타날 것인데, 미쳤다고 철쇄를 씁니까? 거기 드는 철이 얼마인지는 아시는지요? 그 긴 거리를 철로 이으려면, 조선 수군 재정 바닥납니다. 제발 현실적인 소리를 하세요.
헌데 | 2008/11/14 13:10 | DEL | REPLY

일본으로서는 330척 가지고 13척에 졋다는것은 두고두고 치욕일것이다.

요즘 애들 만화보면 아예 주제가가 일본말로 나온다.
머 이제 친구같은 나라로 될것이고
부산에서 일본까지 터널생기면 부산인지 일본인지 모르게 될것이고

5년후에는 잠시쉬고있던 대함대를 뒤에서 불질럿는데 바람이 불어서 다 타버렷다고 나올수도 있겟군....
mbbrainstorm | 2008/11/14 13:14 | DEL | REPLY

그리고, 전 당신들 논리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철쇄설을 부정하는 것이 이순신 장군의 위상을 깎아 내리는 일입니까? 왜요? 오히려 철쇄 없이 승리했다는 것이 더 유능한 것 아닙니까? 어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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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뷁멸의 이순신, 너무 믿지 마십시오. 잘못된 고증이 난무합니다. 그리고, 대본을 쓴 사람(윤xx, 캐왕세종 대본도 씀)의 역사 창작실력은 정말 하늘을 찌를 정도입니다. 제발 그 이상한 드라마 믿지 마십시오.
생도 | 2008/11/14 13:15 | DEL | REPLY

정말 철쇄가 아니였더라도,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변치 않네요..
... | 2008/11/14 13:17 | DEL | REPLY

의외로 명량해전의 내용을 잘아는 사람들은 보기 드물다.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나왓는지 안봐서 모르겟지만..)그러면서 다들 위대하다고 칭찬한다. 좀 웃기지... 그렇게 아는 것처럼 이순신장군이 명량에서 진치고 왜군함대를 기다린 것이 아냐. 전투는 왜군함대가 전라도 해역으로 들어왓을때 부터 시작되었지. 양측의 함대가 기동하면서 접촉하고 수차례 전투를 벌이면서 그 물목으로 끌어들인거다. 그곳에서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진 것이지. 내가 보기에는 그 물목에서의 전투보다도 그 이전 수백의 적함을 대상으로 수차례 접촉하고 전투하면서도 아군 함대의 피해없이 의도대로 유인할 수 있었던 것이 더 큰 부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런제길 | 2008/11/14 13:19 | DEL | REPLY

엥 철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제 거의 정설로 굳어지지 않았나요?
그런데 밑에 댓글들을 보니 그게 아니였나 보네...
설마 강강수월래도 그때 일본군을 속이기 위한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요..?
^^^ | 2008/11/14 13:19 | DEL | REPLY

철쇄설 허구라는건 이미 진작 결론이 난 사안이야. 저 대령이란 사람이 저런식으로 이야기할 건덕지 자체도 없다는게 맞을걸.

철쇄로 130척의 왜선을 묶는다는것 자체가 현실성이 없데. 그다지 작은배였더 치더라도 배의 규모상 사슬로 막을수 없다고 하더라. 더군다나 그런 작업할때 드는 노동력도 많이 필요하고 쇠사슬 만들때 들어갈 쇠도 문제지. 그정도 쇠라면 사슬로 쓰는것보다 화포, 총, 칼 만드는게 더 나아.

철쇄설 첨 언급되는게 누구 행장이라고 하던데...이게 일기장 같은거라고 하더라구. 난중일기도 일기지만 그나마 기록의 가치가 있는 수준이지만.....그 행장은 과장이 심해서 철쇄가 아니라 바람의상처(이누야사)를 쓰는 수준이라구 하더라구. 당시 별반 공이 없던 녀석을 마치 한몫한것처럼 과장하려고 꾸몄다고 보는게 현실적이라고 하더라구.

명량해전은 철쇄니 머니 하는 물건이 아니라 이순신 개인의 퍼포먼스고 판옥선과 각종 화포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조선수군의 힘이야.


위에....조선수군도 작은배 쓰고 일본과 대등...안택선은 더 큰게 있구 하는 헛소리 하는 작자 있는데. 당시 판옥선은 바다위의 성체였어. 일본배들이 더 컸음 진작에 당했을 거라구.-.-;;;;;;;;;
그 일반 안택선보다 몇배 크다는 안택선은 왜란 끝나고 몇백년 지나 나오는것들이구...판옥선도 왜란 이후 커졌다 하더라.
조선수군도 작은 협선을 쓰기는 하지만 주력으로 쓰는건 아니고 왜란때 조선수군의 전선은 죄다 판옥선이나 거북선을 말하는거지.
압도적인 승리는.......판옥선의 우위에서 나오는거야. 이순신이 아무리 신장이더라도 판옥선 없었거나 일본애들이 더 큰 배를 썻음 못이겼지.
유석환 | 2008/11/14 13:20 | DEL | REPLY

판옥선과 화포의 힘으로 일본 수군을 무찔렀다는 대목이 있는데
칠천량해전에서 박살난 조선수군은 판옥선이 아니었던가여
판옥선에 거북선 까지 한방에 갔는데..... 물론 100% 수전에서 박살난건 아니지만
조선 수군의 전력 95%는 이순신장군이 아닐까 합니다
mbbrainstorm | 2008/11/14 13:24 | DEL

그때는... 원균이 ㅄ짓해서 하루만에 조선군 진지에서 왜군 진지(부산)으로 전속력으로 항해하면서 조선 수군 체력 다 없애놓고, 전략도 쓰지 않고, 왜선 나오면 겁이나 쳐먹고 하니 발린 것입니다. 실제로,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은 왜선에게 포위되어서 그 좋은 화포들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백병전에 발렸습니다.
이런제길 | 2008/11/14 13:25 | DEL

칠천량해전에선 원균이 싸우지도 않고 그냥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대포한발 쏘지 않고 그냥 무조건 후퇴명령을 내리는데 뭔 전투입니까? 더 웃긴건.. 당시 무조건 전후퇴 명령덕에 전투에선 졌지만 병력은 그대로 유지되었었지요... 판옥선은 몇척남기고 죄다 침몰했지만... 한마디로 개돼지 못한 원균때문에 진겁니다. 칠천량해전은...
월영혼 | 2008/11/14 13:31 | DEL

전투가 있었어야죠.. 있는건 원균의 퇴각명령무시하고 싸운 이억기랑 최호? 하지만 그건 전투라기보다 2명의 발악이죠.. 나머지는 원균의 삽질에의해서 이덕형 표현대로라면 물이 마르듯이 다 도망쳐 전사가 없다고 했을정도죠 -_-; 해전이 아니에요 해전이 -_-
질롯 | 2008/11/14 13:21 | DEL | REPLY

30척 말고 나머지의 배들은 당연히 그 30척이 앞을 막고 있기 때문이었죠-_- 애초에 그것을 노린 것이었구요.. 역사학과 출신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학교다닐때 교수님 경험담이 역사스페셜에서 조언 구하려 찾아왔었는데 얘네 하는 짓이 거의 구라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건 아니다 그런식이면 말 못한다 하셨는데 기어이 그 구라로 프로를 만들더라고 했습니다. 무엇에 관계되는 내용이었는지 까먹었고 매번 그런식으로 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번엔 역사스페셜이 엄한사람들 헷갈리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운듯 하군요. 집적 과거로 봐서 보기 전에야 확신할 수 없지만 기사의 논문의 내용을 보아도, 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아도 쇠사슬은 어패가 있군요. 상식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페르시아 전쟁의 기록에서는 왈, 페르시아군이 500만이었다고 합니다(구체적인 출전은 까먹.. 저 역사학과출신 맞습니다^^;;) 물론 뻥이란건 누구나 알 수 있죠. 쇠사슬이 말이 안된다는 것 역시 조금만 생각을 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쇠사슬이 아니라 동아줄이었다고 해도 그것을 설치하는 문제가 엄청나구요. 논문 내용이 그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가 이 논문이 이순신장군의 업적을 깎아내리려는 친일파들의 시도라고 하시는 분들-_- 많은 댓글이 지적하는 대로 쇠사슬 없이 승리했다면 더 대단한거 아닙니까??? 그리고 댓글 중에, 벚꽃은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님아. | 2008/11/14 14:34 | DEL

님이 착각 하는겁니다. 가까운 항구에 가보세요.. 그 큰 배가 어떤 사슬에 묶여 있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오는 배 한대 한대를 상대하기엔 충분 합니다. 군함도 아니고. 과거배는 대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수군의 배보다 작았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배는 힘들어도 몇대 정도는 가능합니다. 굳이 쇠사슬까지도 필요 없지만.. 당시 사슬에 대한 기록이 과 사용이 많으니.. 부정할 순 없습니다 . 물에 빠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데.. ..
mbbrainstorm | 2008/11/14 13:22 | DEL | REPLY

또 덧붙입니다.

조선 활 사거리>>>>왜군 조총(사거리 대략 50보)
조선 승자총통 등 소형 총통 위력>>>>>왜군 조총
조선 승자총통 등 소형 총통 사거리>>>>>왜군 조총
조선 활 연사력>>>>>>>>왜군 조총

허나,

조선 활 위력<<<<<왜군 조총
조선 승자총통 등 소형 총통 정확도(소승자총통 제외)<<<<<왜군 조총
조선 승자총통 등 소형 총통 연사력<왜군 조총
훈련의 어려움: 조선 활/승자총통>>>>>>>>>>왜군 조총

입니다. 조총이 그렇게 좋은 무기가 아니에요. 나중에 조총이 조선의 전통 소형 총통을 거의 대체하게 된 이유는 바로 밑의 장점 때문이지요.
민주69호 | 2008/11/14 13:38 | DEL

사거리나, 명중률, 사상률 모든 면에서 활이 조총보다 우수합니다. 그러나, 숙달된 활의 사수를 양성하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이 걸렸고, 조총은 3개월의 훈련으로 가능했습니다. 즉, 조총은 농사군을 징집해서 3개월만에 군인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조선의 활의 원료가 되는 물소뿔은 전량수입품에 의존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물소뿔을 전략물자로 분류해서 일년에 일정량만 조선에 수출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조총은 당시 18만정에서 30만정 정도로 보유했다고 한다는데(너무 차이가 크므로 신빙성없음. 아무튼 많았다.가격이 쌌다)..그리고 조총의 운영방식이 좀 획기적이었습니다. 3열로 운영되어서 1열발사, 2열대기,3열 장전 이렇게 연사하도록 훈련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조총대라고 하는데.아직도 일본 시골마을에 가면 이 조총대가 있는곳이 있다고 합니다..이런 운영방식이 없었다면 조총은 별로 효율적이 무기가 절대 아니었죠..그리고, 화약도 일본에서 전량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다라미 | 2008/11/14 13:22 | DEL | REPLY

저도 동감입니다.
그 시대에 그런 철쇄를 만들 수도 없었고 만들었다 해도 그 무게가 수 십톤이 되었을 텐데 그걸 설치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울돌목 폭이 아무리 좁다 해도 수 100m는 넘을 텐데 배가 걸려서 넘어져도 끊어지지 않을 쇠줄이라면 자중을 합하여 많은 무게를 견디어 내야 할 굵기를 지녀야 하기 때문에 쇠의 량도 무게도 엄청 나게 되며 그것을 설치하는 것도 장비가 없던 시절에 결코 쉬운일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저도 의심을 하고 있었던 부분입니다.
다름짐 | 2008/11/14 13:25 | DEL | REPLY

쇠사슬이 중요한거였어? 쩝
황토함 | 2008/11/14 13:28 | DEL | REPLY

반론에 뭔가 새로운 증거와 사실이 나타났나 했는데, 저 임대령이 하는 말은 임대령 혼자 알고 있는게 아니고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이제와서 새로운것을 이야긴한다 볼순없고. 기록에 없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라는 말인데, 기록에 없다면 사실이 아닐까요? 사실을 다 기록으로 남길수 있을 까요? 너무 뻔한 논리아닙니까. 분명한것은 KBS 역사다큐에서 보듯이 명량의 해저바닥에 당시 철쇄를 설치했던 구조물의 흔적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또한 택리지도 문헌인데 철쇄설치 기록이 등장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전혀 허구라고 볼수 없는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실증적인 면을 덜 중요하게 취급하는 사회분위기여서 기계공학적인일에 기록도 드물지만 그런일이 구전되어 올뿐 몇백년간 묻혀있는 일은 비일배재했죠. 하필이면 왜 철쇄일까 묻는 다면 임대령도 할말이 없을 겁니다. 아닌땐 굴뚝에 연기날릴없고, 없는 사실이 난데 없이 나타날순없는 거죠. 유교관념에 거짓말을 죄로 여기는 조선시대에 없는 사실이 우연하게 나타날순없고, 그것도 문자로 남기는 일이 흔하게 있는 일도 아니고 전혀 허무맹랑한일이 기록으로 남았다고 볼순 없다고 봐야합니다.허구하면 작자가 허구라고 밝힐겁니다. 택리지의 기록이 설화라는데, 설화라는 것은 문자가 보편화되지 않는 시대에선 사회의 기억을 대신에 중요한역활을 하기에 오히려 설화라는 것은 마음대로 꾸며낼수가 없는겁니다. 그래서 대게 오래도록 전해내려오는 설화는 사실에 근거한 경우가 많습니다. 설화가 단지 문자가 보편화된 시대의 오늘날의 소설처럼 꾸면낸 이야기고 거짓말이라면 오히려 몇백년을 두고 끈질긴 생명력을 갖기 어렵죠.
월영혼 | 2008/11/14 13:36 | DEL

그러니까 철쇄설이있을만한 근거와 철쇄설을 부정하는 논리를 논파부터 해보시죠? 설화? 그거대로라면 울돌목에서 왜군을 상대하라고 가르켜준 산신령은 몇명이고 위대한 군사마냥 이순신장군에게 그걸 조언해준 선비는 대체 몇명이고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대신 군을 지휘한거는 대체 몇명입니까? 아니면 현무공실기도 문헌인데 거기대로 김억추공이 철쇄를 힘으로 들어올린겁니까? 그럼 이것도 꾸며낸이야기가 아니네요? 착각하지마세요.. 다른시대면 몰라 임진왜란은 기록이 아주 흔하디 흔한 때입니다 신라때랑 다릅니다 그러니 이순신장군에대한 각종기록을 교차검증을 통해 신뢰성을 확인할수있습니다 그런대도 당시 기록에는 명량해전에서 철쇄를 썼다는게 단한곳도 없습니다 수많은 기록중에서도요.. 아시겠습니까? 조선시대라고 허풍섞인 설화가 없는지 아십니까? 특히 임진왜란과 관련된 그런 허풍섞인 설화같은거 수도 없이 많습니다
황토함 | 2008/11/14 13:48 | DEL

월영혼//민간에 문자 기록물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에, 거기에 기능인이나 장인을 천시했던 시절에 철쇄기록이 없다해도 어쩔수 없는 겁니다. 민간에 구전되는 설화라는 것은 문자하나 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본질을 봐야합니다.
월영혼 | 2008/11/14 13:54 | DEL

아까부터 뭔 착각입니까 임잔왜란에는 기록이 넘쳐납니다? 님 공부안했죠? 임진왜란은 오히려 기록들을 비교해서 어떤게 맞는지 알아보는게 힘들정도입니다. 좀 뇌내망상도 작작하세요. 왜 이렇게 철쇄가 없었다는 근거가 확고한데 훨씬 후에 작성된 현무공실기나 택리지같은 신뢰성같은 자료만 들이미는지 오히려 당시 철쇄를 만들만한 상황이 안된다는 자료가 훨씬 많은데 -_- 님말대로 님이나 본질을 봐요 그럼 얼마나 철쇄설이 허황된 소리인지 알테니.. 아니 그전에 공부부터 하세요
황토함 | 2008/11/14 14:03 | DEL

내 말을 콧꾸멍으로 듣습니까?^^ 그 기록이란 것들이 관념을 중요시하는 유교 문화의 양반들이 쓴 거라니까요. 중인이나 천민들의 공학기술이 뭔지 철쇄가 뭔지 철쇄에는 관심도 없는 사대부말이죠. 이순신이 불가능한 일을 했었도 정작 그 일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부하로서 당연한것으로 여겼던 선조입니다. 이순신은 거의 천민과 같이 죄인취급을 받았고 조정에선 정조에 이르러 명예가 복간되기 까지 몇백년간 회자되지도 않았죠. 오직 민간에서만 이순신을 알았주었을 뿐이죠.이런 상황인데 조정의 대신들에게 거북선이 뭐고 철쇄가 뭔줄 알고 기록하려 들겠습니까.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황토함 | 2008/11/14 14:07 | DEL

설화하는 것은 대게 사실에 은유나 상징으로 덧 쒸어졌을 뿐 그 본질 대상 자체는 사실일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철쇄의 경우는 매우 구체적임으로 그러한 은유나 상징도 아니죠.
월영혼 | 2008/11/14 14:10 | DEL

오호라 그러면 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이 쓴 전투과정이 철쇄가있엇을때와는 전혀 다르고 심지어 당시 명량해전은 민초들이 지켜보던 전투라서 당시에 심지어 왜선숫자도 백성들이 세어서 안건데 어떻게 철쇄만 몰랏을까요? 본것도 기록 잘하는데 직접 만들고 옮겼을 철쇄를요? 착각도 작작하시죠. 백성들은 손가락 빨고 구경만하고 양반만 전부 다한지 아십니까? 착각마세요. 난중일기만 봐도 계생이니 뭐니 머슴들 이름 쫙나오면서 뭘 했는지 다나오고 철쇄만큼의 중대사가 안나올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뭔 헛소리입니까? 조정에서는 임란당시에도 무기체제에 대해서 수시로 토론했습니다 어떻게 이겼으면 그거가지고도 수시로 이야기가 나왔고요 실록이라도 제대로 보고 말하시죠?
월영혼 | 2008/11/14 14:11 | DEL

거기다 님말대로라면 모든 설화가 그럼 사실입니까? 그게 성립할려면 근거가 잇어야죠? 결국 근거가없이는 님의 주장은 그냥 뇌내망상일뿐입니다 반대로 전 철쇄가 없았다는걸 증명할 근거가 다수있죠? 제가 여기 리플 여러개 달았죠? 상상말고 실제적인 근거를 가지고 그럼 반박해보시죠? ㅉㅉㅉ 역사가 판타지 소설인지 아나? 상상이 현실이 되게..
황토함 | 2008/11/14 14:13 | DEL

그 기록이란 것이 거북선의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얼마나 기록에 남겼놧습니까? 남겨놓은게 있습니까? 거북선은 이름이나 겨우 남았지만 철쇄는 기록으로 남을 만큼 그리 대단한게 아닙니다.
황토함 | 2008/11/14 14:19 | DEL

당시 민간엔 문맹인이 많았죠. 여기서 일일히 설명할순없지만 오랫도안 생명력을 가지고 구전 되어온 설화는 사회의 기억을 대신하는 역활을 하기도 합니다.표현은 노래나 은유로 변형되기도 하지만 그 본질 그 대상 자체는 실제 있었떤 사실을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죠. 다른것도 많은데 왜 하필 철쇄를 상상했을까 님이라면 답변할수 있습니까?
월영혼 | 2008/11/14 14:24 | DEL

님 진짜 공부안하네요? 님이랑 이야기하는게 우스울정도? ㅋㅋㅋㅋ 거북선? ㅋㅋㅋㅋ 미안하지만 연구될정도로 많이 남아있습니다 ㅋㅋㅋ 거기다 거북선이 판옥선에서 발전한 형태인거는 아실라나? ㅋㅋㅋㅋ 아 이제보니 진짜 무식한 분이네..상대해온게 챙피하네 말흐리는거봐.. 그러면 님주장할 근거를 대라구요? 왜 철쇄 냐구요? 간단하죠. 울돌목에는 읍엇지만 원래 수영앞에는 출입관리를 위한 철쇄가 실제있었거든요? 물론 전시가 되면서 철부족으로 그딴 낭비를 할수 없었죠 -_- 하지만 그걸 기록에서보고 말로 전해들으면서 수영앞에 철쇄가있엇다는게 마치 적군을 막기위해 존재했엇다는거 마냥 탈바꿈한거겠죠 님처럼 내가 아무근거도 공부도 안하는줄아십니까? ㅉㅉㅉ
황토함 | 2008/11/14 14:33 | DEL

비야냥 대고 인신공격 좀 하지 마십시요.^^ 제가 님 한테 그럽딥까? 님이 하는 말은 제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님이야말로 더 배우고 더 살아봐야 이야할것 같네요..거북선이 어떤 구조인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아직도 혼란중이죠. 바다속에 거북선을 인양해 보지 않는 이상...
옛 해군대포 질문 | 2008/11/14 13:31 | DEL | REPLY

지금도 대포로 맞추기 힘든데, 중세시대의 해군대포가 상대편 전함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요? 1. 당시 조선의 화약 생산량은? (화약의 원료는 모두 국산화가 가능했는지?화약의 생산지는?등등) 2.조선수군의 함포 훈련은?(지금도 육군포병은 조포훈련만 한다는 것, 실탄사격은 거의 1년에 1회나 하나) 3.현재 화약이 아닌 당시의 화약(현재 어느나라도 중세의 화약을 만들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만..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아직도 만들고 있나?)으로 사거리는? 4. 과연 함포로 백발 쏘면 몇발이나 맞을까요? 포도탄이라는 산탄총류는 거의 돌맹이로 던지는 수준의 사거리에서나 효과가 있었다고 하던데요..
윤신행 | 2008/11/14 13:33 | DEL | REPLY

사실 본인도 그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울둑목도 여러번 가봤고 이순신장군 전기문이나 해군대령이 예전에 썼던 책도 보앗습니다
하지만 그당시 어디서 그렇게 많은 철근을 모와서 만들었을까요 대장간에서 농기계나 무기 정도를 겨우 만드는 수준에서 물쌀도 있지만 바다 폭이 600m는 족히 넘는거 같은데그 많은 쇠사슬을 크레인도 없이 배에 실어서 연결 할 기술은 지금 현대에도 3박4일은 족히 걸릴 일 인것 같던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어서 위안이 되는군요 그리고 유달산 노적봉도 사실 전설 같은 이야기를 너무 픽션화한 경향이 잇는거 같습니다 아마 박정희씨가 대텅령되면서 동일시 하기 위한 하나의 우상화가 아닐까 합니다 이순신장군님이 물론 훌룽하고 대기만성의 대표적이고 세게적인 제독인 것은 500% 인정합니다
황토함 | 2008/11/14 13:39 | DEL

옛날 사람들을 너무 무시하는군요^^ 당시에도 무쇠 철근으로 만든 쇄사슬을 생산해낼수 있었습니다.
nylee | 2008/11/14 13:40 | DEL | REPLY

일단 이순신 제독이란 직위부터 고치시고 기사 다시 올리시죠?
조선시대때 제독이란 직위가 있었나요? 우리나라의 자랑스럽고 위대한 역사의
한페이지를 사실성이 결여된 기사로 혼탁하게 하는것 정말 망에 들지 않는군요.
제이와 에스 | 2008/11/14 14:03 | DEL

지적 감사합니다.수정했습니다.
지나가다 | 2008/11/14 14:49 | DEL

제독 호칭에 너무 과민하실건 없습니다. 해군 장성을 제독이라 칭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 논문 발표시에도 general 보다는 admiral 이라고 해주면 좀더 해군 장군이라는 의미의 정확한 전달이 될테니깐요....
| 2008/11/14 13:40 | DEL | REPLY

설화라는게 그냥 만들어지는게 아닙니다.
군상정권 때에 영웅화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거짓을 가지고 일부러 부풀리지는 못합니다.
쇠사슬은 진실입니다.
간과하는게 있는데... | 2008/11/14 13:43 | DEL | REPLY

구전역사는 어느정도 과장이 있는 법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얼마든지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야기 이고요.
그리고 난중일기에 없다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좀 어패가 안맞습니다.
난중일기자체가 역사서가 아닌 개인 기록물이라 얼마든지 이순신 개인 신상의 사정에 따라 안쓰일 내용이 존재합니다.
특히 명량해전 같은 경우의 조선의 마지막 해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의 전략 같은 경우는 당시 조선군의 상황에 맞추어 부득이하게 일기에서 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쇠사슬(본인은 쇠사슬보다는 동아줄 굵은 것을 중간중간에 쇠고리로 이었다고 보는게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지만...)전략은 그 전략이 있었다는 가정하에 당시 전투의 꽃과 같은 전략이었습니다. 물론 실패의 경우에는 도가 되어버리는 모 아니면 도이지만.
그러한 기밀 사항을 당시의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같은 치밀한 전략가가 기록으로 남겨 첩자의 가능성에 노출 될 위험따위는 만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사서가 아닌이상 남길 의무도 없고요.
월영혼 | 2008/11/14 13:50 | DEL

님. 착각마세요 명량해전은 전투끝나고 일기에 쓴겁니다.. 승리하고 뭘빼요? 이미 적도 다아는데? 님 주장대로라면 명량해전뿐아니라 다른거도 다빼야죠 왜 유독 명량해전만 뺍니까? 거기다 님 주장대로라면 명량해전전에 모든 일기에서 전투관련부분은 지워야죠? 왜 그건 놔두고 명량해전꺼만 남겨둡니까? 동앗줄보니 위에 동앗줄설 꺼낸분같은데 님은 철쇄설보다 더 말도안됩니다 님의 주장은 완벽하게 뇌내망상이잖습니까? 기록한줄없는? 역사가 소설책인지 아십니까 -_- 참 여기 주장중에서도 가장 허황되고 모순덩어리에 망상임 -_- 동앗줄? 대체 그건 언제 상상한겁니까 ;; 거기다 그런 전략을 썼으면 명량해전에서 울돌목에서 싸우라고 한게 자기라고 주장한 선비들처럼 그런 희대의 전략을 가르쳐준게 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럿있었겠죠.. 참고로 명량해전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던 전투입니다.. 동앗줄? 어느기록에 단 1개도 언급이 없습니다
이순신 | 2008/11/14 13:54 | DEL

. . . 나는 극비의 전략을 기록을 안 했을뿐이고... 전투에서 이겼을 뿐이고.. . 극비의 전략을 기록하기전에 전사했을 뿐이고... . . .
... | 2008/11/14 14:28 | DEL

윗글에도 말을 했듯이 저는 정설이라고 주장은 안했고요~ 단지 쇠사슬 설화가 어디에서 출발 했을까라는 가정하에 제 개인적인 사견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마치 제가 동앗줄로 막았다! 라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시는 군요?? 제가 위에서 처음 쓴 글도 차라리 동앗줄로 막았다고 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지 않느냐라고 말 한 것이고, 그럴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인터넷에서 그러한 하나의 가설도 못세웁니까? 그리고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기록에 없다고 그렇게 단언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를 기록한 역사서를 빠짐없이 읽으신 분이신가요? 아니 그전에 그 기록을 쓴 역사서와 일반 서책등등의 모든 종류를 다 알고 계시고 어떠한 것이 진실이고 어떠한 것이 허구인지 다 판가름 하신 분이시겠군요? 그정도로 단언하시는 것을 보니. 모호한 역사를 밝히는 과정은 잘 알고 계십니까? 역사도 과학입니다. 그리고 과학 논리의 밝힘 과정과 역사의 밝힘 과정은 동일합니다. 모호한 역사를 밝히는 과정은 일단 설화 혹은 역사서에 존재하는 해당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일단 가설에 근거하여 그 근거를 찾고 해당 역사서를 뒤집니다. 여기에서 하나 물어보지요. 제 가설에 근거하는 역사서 내용을 뒤져보셨습니까? 그래서 거기에 근거하는 글자는 한글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정지으셨습니까? 단지 자신이 못보았다고, 본적 없다고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에 슬쩍 가설 하나 올린 저에게 그렇게 까지 열을 내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제가 동앗줄 가설을 님에게 이것이 정설이라고 강요했습니까? 단지 쇠사슬은 터무니 없고 거기에 준하는 동앗줄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냐라고 말하고 왜 동앗줄로 생각했는지 거기에 대하여 말했을 뿐인데요?
월영혼 | 2008/11/14 14:43 | DEL

그럼 혼자 생각하고 그걸 연구해볼것이지 왜 그걸 진실마냥 설파합니까? 님이 말하는것도 철쇄설이랑 차이가 없습니다 없으면 없는거지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왜 꼭 뭔가 울돌목에 있었던걸로 만들어야합니까? 상상믄으로 적는게 역사입니까?
... | 2008/11/14 15:00 | DEL

죄송합니다만 제가 진실마냥 설파 한적은 없습니다. 단지 님이 왜 동앗줄이냐 라고 했기에 쇠사슬보다는 동앗줄이 더 말이 되지 않느냐라고 했고, 왜 말이 되는냐라고 비아냥거리시길래 동앗줄도 나름 강하고, 현실성 있게 실현 방법도 추정해서 올렸고. 그리고 님께서는 가설이 상상과 같은 개념인줄 아십니까? 가설이 무언지나 알고 떠드시는지요? 그리고 뭔가 꼭 을돌목에 있었던걸로 만들어야만 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순신이 13 대 130 으로 이길 수 있었나? 단지 해류의 움직임만으로만 그게 가능한 것이었을까라는 추정으로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례되는 이야기이지만 당신께서 읽고 공부하신 현대의 역사서 해설과 과학적 증명은 다 가설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나 알고 떠드시는지요? 처음부터 이게 정설이다라고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써내려간 역사적 고증과 과학적 증명이 존재하는지요? 정말이지 근본부터 다시 배우셔야 될 것 같습니다만.
올돌목 | 2008/11/14 13:45 | DEL | REPLY

왜 이렇게 난독증 환들이 많은지 택티지 논란이라..말이 안되는게 아니지.임란 기록은 상당히 많다. 그 당시를 기록한게 최우선이 되야 한다. 그당시 기록이 없고
그리고 지방민의 증어도 역시 수백년뒤의 일 가장 신뢰성 있는것은 그 당시의 기록아닌가?? 또 필요한 철쇄만 봐도 양이 문제다. 이순신이 가장 어려워 헀던거 중에
하나가 물량이데..그많은 철을 어디서 났을지..

아니 생각해보면 철쇄없이 전술적으로 이긴게 더 대단한게 아닌가??
여기서 왜 친일파가 나오는지..
황토함 | 2008/11/14 13:56 | DEL

당시에도 철기생산은 보편적이었고 무쇄 쇄사슬이 존재했습니다. 철근 따위는 얼마든지 사람이 대장간에서 만들수 있는 겁니다. 만들수 없다면 아예 어느 것 하나라도 못 만들죠.칼 호미 곡갱이 도끼를 만들수 있다면 어느정도 크기와 양이란 중요한게 아닙니다.현대 과학문명을 맹신하는 사람들중엔 옛날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큰 오산입니다.옛날 사람들은 현대인하고 비교해서 뇌용적이나 지능에서 하나 차이가 없답니다.
달인 김병만 | 2008/11/14 13:49 | DEL | REPLY

임원빈대령 명랑해전구경해봤어 보지않았으면 말을하지마
설화라고그래도 믿어 믿으면 복이온다르는말도 모르시나..
따지고분석하는놈들 잘되는거 본적이 없다
웃기시군 | 2008/11/14 13:50 | DEL | REPLY

쇠사슬이 거짓이란 말을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설화던 자료가 있어야 할거아닌가? 최소한 주장을 하려면 말이죠. 결국 나오는 결론은 "기록이 안된건 알수가 없다..."인데 자신의 지식으로 "쇠사슬이란 말이 없으니 이렇게 했을수도 있겠구나"를 합리화 시킬수도있는건 생각못하는 군요.
후크 | 2008/11/14 13:53 | DEL | REPLY

해군함포포격전을 유럽기준으로만 보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역사상 최초의 해군함포전투는 고려말 최무선-이성계시절 우리나라가 입니다.
그때부터 임진란시절까지 갈고닦은게 조선해군함포전입니다.
당시 전세계 최고의 함포전/함포전술/함대전술이 맞습니다.
국내의 사실을 무시하고, 해외의 사실을 기준으로 따지는건 말이 안됩니다.

그 대단한 함포전도, 조선후기로 가면서 더이상의 개량,훈련이 되지 않아
발전되지 못했고,
서양은 그 이후 대항해시대와 대해전시대에도 조선만큼은 되지 못했지만,
그 이후 과학기술발달로 함선과 함포가 개량되면서 세계를 제패하게 됬고,
신미양요,병인양요때는 조선이 후달리게 된거죠.

사실은 사실대로 봅시다.
민주69호 | 2008/11/14 14:01 | DEL

디스커버리채널의 역사프로 처럼 그당시 기술로 재현해서 실험해 보면 됩니다.강선없는 당시 총통류의 대포들의 명중률, 화약의 생산량, 포병들의 훈련방식등을 감안해서 쏴서 맞춰보면 됩니다...당시 대포들은 지금 영화에서 보는 것 처럼 목표물에 닿으면 터지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탄환이나 뜨거운 탄환, 불타는 탄환을 날려보내는 것이었다는 점도 잊지말고..
rod777 | 2008/11/14 13:54 | DEL | REPLY

물리나 역학, 재료 뭐 이런거 계산 잘하는분 없나?
폭은 나와 있고 그 날자 추정해서 해류 속도 대입하고 일본군 배의 무게를 감안하면 쇠사슬의 두께는 어느 정도 되어야 장력을 견디고 양 해안의 지지점에 가해지는 힘도 계산해보면 일단 가능성 문제는 해결되죠? 사실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김범준 | 2008/11/14 13:56 | DEL | REPLY

울돌목을 연결할 정도의철쇄라면 그 규모나 양이 방대해서 반드시 사료에 근거가 남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공식사료에도 이 철쇄와 관련된 내용은 없습니다.

고로 철쇄존재설은 훗날 민중들이 이 충무공의 신출귀몰한 전술전략에 그 지역민이
어느 정도 공을 세운 것으로 과장하기 위해서 탄생되어 구전되어온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월영혼 | 2008/11/14 13:56 | DEL | REPLY

임진왜란 저자인 김경진님 홈피에 가보면 있습니다 게시판에
정확히는 디씨 과학갤에 의뢰한 결과 철쇄의 무게는 400톤은 되야한다고 나왓죠..
반대. | 2008/11/14 13:56 | DEL | REPLY

예전에 TV에서는 철쇄가 사실이라고 하던 것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꼴도보기 싫은 유인촌이 진행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
흑백영화에서 거대한 쇠사슬을 소로 끌어당기는 흑백영화 영상을 보여주며, 그동안 진위여부가 분분했던 쇠사슬이 실제 존재했었다면서, 그 쇠사슬을 걸었던 큰 쇠고리(구멍이 50센치 이상 되어 보일 정도로 매우 컸으며, 바닷가에 꽂혀 있었음.)의 흑백사진이 발견되었다면서 보여줬었거든요. 언젠가 뭐 지으면서 뽑아냈다고 합니다.
월영혼 | 2008/11/14 14:04 | DEL

역사스페셜 말씀하시는데 참고로 그 철쇄설 이야기하면서 보여준 기록이 다름아닌 현무공실기임.. -_-.. 예 바로 그 현무공 실기.. 현무공 김억추가 울돌목에 설치된 철쇄를 들어올려서.. 왜선을 막았다는..바로 그 책입니다 -_-..역사스페셜은 그부분은 슬그머니빼고 보여줫죠,..역사스페셜이라고 전부 진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후크 | 2008/11/14 13:58 | DEL | REPLY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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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철쇄설 검색필수 "김억추"
한마디로 이글도 팩트가 아닌 픽션이네 | 2008/11/14 13:59 | DEL | REPLY

상식적으로 물목이 배한척밖에 못빠져나올정도로 좁았나? 연구좀했다는사람이 정작 자신의 가설을 써놓고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네. 참나 웃어야하나;; 요정권들어서 코미디요소가 너무 넘친다. 위안부는 알바였다고라고 떠드는거하고 뭐가 다르냐? 뉴라이트 만세네.
김범준 | 2008/11/14 14:01 | DEL

이 분 글에서 위안부나 뉴라이트 만세를 댓글로 달 정도로 극단적인 우파 연사인식은 보이지 않는데 댓글이 어무 무식한 거 아닙니까.
아래 사진참조 | 2008/11/14 14:08 | DEL

http://cafe.daum.net/yeongdogu-honam/VYfw/1?docid=1Fp7n|VYfw|1|20081111173856&q=ö
김범준님 | 2008/11/14 14:14 | DEL

무식한건 모르면서 낄곳안낄곳 찾아다니는 사람이죠. 님처럼... 뉴라이트일당의 역사 왜곡이 어느정도 심한지 아직도 모르던가 아님 당신이 지지하는 세력기반이라 일단 반기는거 같군요. (딴나라사람들이 주로 뉴라이트좋아하더군요)
김범준 | 2008/11/14 14:00 | DEL | REPLY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조선수군의 전력은 붕괴직전이었고 일본 주력해순의 추격을 피해 전라도 쪽으로 일종의 도망을 쳐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과연 철쇄 400톤어치를 준비해서 섬을 연결하는 대 공사를 진행 할 수 있었겠습니까.


상식적으로도 철쇄론은 이미 논란거리도 안됩니다.
그럼 | 2008/11/14 14:19 | DEL

그럼 명량해전승리는 말이되고요?ㅋㅋㅋ 님이 살아 숨쉬는게 말이안되는군요.
rod777 | 2008/11/14 14:01 | DEL | REPLY

옛날 오성과 한음 얘기에... 오성이 임금님 앞에서 재주를 보여주고 상으로 옷감천을 받았는데 임금이 그 무거운 베를 어떻게 니가 매고 갈래? 하고 물으니 오성왈... 매고는 못가지만 바닥에 줄줄 풀어서 끌고 가면 됩니다... 그랬더니 임금이 껄껄껄 웃으며 고놈 참 똑똑하다 했다는 이야기... 이것도 엉터리죠? 매고 가면 천의 무게만 감당하면 되지만 질질 끌고 가려면 바닥과의 마찰도 고려해야죠? 쇠사슬로 배를 잡는다는건 이런 차원의 잘못된 민간 물리학.
아이의 가설이니까.. | 2008/11/14 14:10 | DEL

그리고 재치 있으니까 높게 평가 했겠지요.ㅋ
htt6273 | 2008/11/14 14:09 | DEL | REPLY

그걸 근거라고 제시한거야?
한심하군요...설득력도 없고 님도 역시 추론을 제기할 뿐이고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다른 문건을 근거로 제시한 겄도 아니고 누구나 다아는 문건을 글 그대로만 추론한 것은...영.....
그 사실은 동시대의 그장소에 있던 사람만이알수 있는것....
연구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시기를..
월영혼 | 2008/11/14 14:13 | DEL

요즘 현실은 대부분 철쇄설을 부정합니다 -_- 불멸의 이순신 방영당시에 철쇄 나오고 당시 사학자나 연구가들이 얼마나 비난했는지는 아십니까?님 말대로 현실이 중요하죠?
월영혼님 | 2008/11/14 14:16 | DEL

부정한다고요? 사학자나 연구가들 이름이나 자료 기사좀 링크시켜주실래요? 님말대로 현실이 그러하다면 전 왜 반대로 알고있을까요?
월영혼 | 2008/11/14 14:20 | DEL

송우혜 김경진 이민웅 해군사관학교 교수등 이름가르켜 드렸으니 님이 알아서 찾아보세요 이런거도 공부안하면서 아는척합니까?
htt6273 | 2008/11/14 14:22 | DEL

아~~~답답하군요..제가 의미하는 현실이 님이 생각하시는 현실의 개념이 아닌데요..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시는군요..
월영혼 | 2008/11/14 14:26 | DEL

그럼 상상만으로도 역사를 씁니까? 역사가 판타지 소설입니까? 역사는 기록과 추측을 통해 검증을해서 기록해야지 뭔 근거도없는 추측만으로 역사를 기록합니까 ㅉㅉㅉ 역사랑 소설을 착각좀 하지마세요
... | 2008/11/14 14:13 | DEL | REPLY

설화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고 거짓이라고 보기보다는 어떻게해서 그러한 사실이 나오게 되었을까라고 역추적을 왜 안하는 것일까?
그럼 주몽이 활을 잘 쏘는 것을 과장해서 100리밖의 새도 맞추고 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하기에 그가 활을 잘쏘는 것이 거짓이라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인가?
이성계가 활을 연습할때 몇백보 밖에서 집안 문지방에 구멍이 뚫린 곳으로 화살을 날려 방안의 촛불을 끈것도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인간의 능력이기에 이성계가 활을 잘 쏜것은 거짓 설화가 되는 것인가?
설화는 말그대로 말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말로 전해짐에 있어 덧붙여지고, 과장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월영혼 | 2008/11/14 14:20 | DEL

그럼 현무공 김억추공께서 울돌목에서 수백톤짜리 철쇄를 들어서 왜선을 막은것을 역추적 해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무려 그부분은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온 현무공실기에 나온 내용이잖아요 설화=전부 진짜다 과장이 좀 잇을뿐..? 뭐지 이 이상한 공식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2008/11/14 14:36 | DEL

둘러서 말을 하면 못알아들으시기에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설화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그 설화의 기본골격 자체가 거짓이라는 명제를 세우는 것이 역사를 다루는 자세가 아니라고 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자꾸 비약하시는데 제가 언제 설화는 전부 진짜라고 했는지요??? 사람 이상하게 몰아가는데는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계신듯 합니다~ 특히 자신의 주장과 상반되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월영혼 | 2008/11/14 14:41 | DEL

뭔 착각을 이래하세요? 저도 설화 일부는 근거있다고봅니다 개인적으로 임란중에 김덕령 관련설화도 몇개 알아봤는데 몇개는 근거도있어요. 그런데 왜 철쇄설은부정하냐고요? 기록과 당시 상황을 보면 말이 안되기때문입니다 님이야말로 설화를 진실로 주장하실려면 그럴만한 근거를 대세요 그게아니면 그냥 님의 억지주장일뿐이죠
... | 2008/11/14 15:32 | DEL

착각이 아니라 님께서 그렇게 말씀 하셨죠... '설화=전부 진짜다 과장이 좀 잇을뿐..? 뭐지 이 이상한 공식은? ㅋ' << 제 글을 이렇게 들으셨길래 말씀 드리는 것이었고요, 아까부터 계속 강조하지만... 주장이 아니라 가설이라고요 가설... 아놔... 중학교 때 가설에 대해서 안배웠어요? 기록과 당시 상황을 봐서 어느정도 근거가 있는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특히 그렇게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장군께서 단지 해류의 움직임만 믿고, 왜군이 모두 해류에 허우적댈 것이라는 맹신을 하고 자기편이 뒤로 다 빠졌는데도 혼자서 왜군을 상대하기위해 혼자 해류에 역류하면서 왜군들이 해류에 다 휘말리기를 기다렸다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그 첫번째이고, 그럼 무엇을 믿고 있는게 있지 않았을까?라고 하는 것이 두번째, 그럼 그 믿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왜군들이 모두 해류에 휘말린다라는 확실한 확증이 설만한... 이것이 세번째, 그럼 주위의 기록과 전파되는 설화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자라는 것이 네번째, 그중에서 눈에 띄인 것이 철쇄설이다 라는 것이 다섯번째, 철쇄설은 말이 안된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이 철쇄설이 아니땐 굴뚝마냥 나올리는 없을 것이고 무언가 당시 전투상황을 보고 착안해 낸 것이다라고 추정한 것이 여섯째, 그럼 철쇄에 상응하는 전략과 전술은 무엇이 있을까 라고 생각한 것이 일곱째, 을돌목의 해류에 모든 선단이 휩쓸리기 확.실.하.게. 그것도 이순신만큼의 주도면밀한 지장이 믿을 만큼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라는 것이 여덟째, 해류가 심한 곳에서 인력과 풍력으로 이동하는 배들은 약간의 장해물만 있어도 키가 틀어지고 그로 인해 해류에 100% 휩쓸리게 된다는 상식이 아홉째, 그럼 굳이 철쇄가 아니고 물먹은 굵은 동앗줄이라도 그 역할은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열째, 동앗줄이 과연 그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라는 것이 열한번째,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에도 동앗줄이 쓰였으며 그 동앗줄에 몇톤짜리 돌이 끌어올려졌다라는 것이 열두번째, 그럼 동앗줄을 더 굵게 만들고 물을 먹이면 충분히 방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이 열세번째, 그래서 여기에 그 가설을 올린게 열네번째 입니다. 제가 가설을 세우는데 생각한 단계입니다.
그렇군... | 2008/11/14 14:14 | DEL | REPLY

단군에대한 기록이 그당시에 없고 설화처럼 전해지니 그도 사실이 아닌건가? 개판이네 이건..
한마디더... | 2008/11/14 14:16 | DEL | REPLY

저기요......
당신이 얼마나 연구하고 권위잔지는 모르지만 조용히 연구활동하시길.....
네티즌에는 당신보다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많으니 신중하시길 당부합니다..
그러니까 | 2008/11/14 14:20 | DEL | REPLY

설화의 탄생 동기도 본문에서 추측해보지 않았는가.
"숫적인 열세를 극복한 과정을 이해하기 힘드니 알기 쉬운 설명을 만든것이라고.."
그 설화을 읽을때 우리는 철쇄를 읽으면 안된다. 민중들의 이순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 당시 전투의 임진왜란 사에서의 중요성... 이런거다. 철쇄를 믿는 것은 이성계가 활을 쏴서 물동이를 뚫고 퉁두란이 진흙을 던져 막았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는것과 같다.
황토함 | 2008/11/14 14:27 | DEL

허구라고 치자, 그 많은 것들 중에서 왜 하필 철쇄를 상상했을까. 그런 복잡한 구조를 뭐하려고?보통 무쇄철쇄는흔히 사용하는 무기도 아니다. 꼭 상상해야할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까. 역으로 임대령의 말처럼 그냥 이겼다고 하면 더 이순신이 더 영웅화되고 신격화 되지 않았을까? 철쇄를 상상한것은 철쇄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월영혼 | 2008/11/14 14:30 | DEL

뭔 착각을 이렇게해. 몇번말해요 철쇄는 원래 있던거고 수영 앞바다의 출입관리를 위해 존재한다니까.. 뭔 무기? 그게 와전되서 전해진게 철쇄설이라고. 수영앞바다에 원래 존재했던거고 그걸 훗날보면 착각할수도 있는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각수영앞바다에 철쇄가 존재했다=울돌목에도존재했다? 이건 무슨논리? 애초에 용도자체가 틀린데!
황토함 | 2008/11/14 14:38 | DEL

원래 있어떤 철쇄가 어떻게 이순신 철쇄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냐. 중간단계가 뭐냐. 그런 추측은 논리적인데 택리지는 설화니까 비논리적이다?
월영혼 | 2008/11/14 14:45 | DEL

아니 철쇄설은 무엇보다 당시정황과 기록과 전혀 일치않아서 문제지. 그거에 대한 근거는 내가 몇번이나 적어뒀지? 과학적으로 울돌목에 불가능한 철쇄의 무게.쇠부족.인원부족.각종기록과 상충하는 철쇄가있을시의 전투과정. 꼬우며누이걸 반박해보시던가? 이건 전혀 반박도 못하는주제에 ㅉㅉㅉ
황토함 | 2008/11/14 14:55 | DEL

월영혼. 여기서 욕하고 인신공격하는 놈은 너 밖에 없다. 근거를 그렇게 조아해? 너 같은 인성나쁜 꼴통 로보트나 근거 따지는거다. 이순신은 자체 조정에서 인정을 안했기에 근거(정확한 기록)가 없을수 밖에 없는거야. 유통성을 가져봐라. 그럼 철쇄가 보일지도 모르것다.
월영혼 | 2008/11/14 15:06 | DEL

이거 진짜 병신이네 형 가야대니 마지막 리플인데? 그러면 반대로 잇었다는근거를 대라고~ 하여간 이건 아주 역사를 판타지로아네 뭐 철쇄가보여? 판타지소설쓰냐? 병 신 거기다 뭐 인정을 안해? 선조가 미워한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순신장군이 장계를 안썼냐? 아니면 이순신에관한거는 글로 남기지말라는 법칙이있었냐? 아니거든? 착각마라 명량해전후의 기록들도 많다 ㅉㅉㅉ
항토함 | 2008/11/14 16:39 | DEL

근거 없이는 한치 앞도 스스로 생각할줄 모르는 동생 아우야. 잘가세요.^^ 왜 이순신 일기가 중요대목마다 뭉탱이로 잘려졌다고 생각하냐. 당시에 이순신은 죄인취급 받았었고 후대에 사람들이 떠받드는 상황을 경계했다는것을 명심해라. 우리가 이순신을 나라위해 싸운 영웅으로 칭송하기 시작한것은 근 200년후 정조시대 이후야. 그 동안에는 이순신은 민초들에 의해서만 전해져 내려온거고. 위정자들이 써놓은 그 잘란 기록좋아하다가 기록에 당하는수가 있다. 교과서만 철썩같이 믿는 애숭이 주제에 어디서 형님행세하냐.스스로가 초딩인지 유딩인 뭔지도 모르는 놈아.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왜 여기서 혼자 발광하고 날리냐. 예를 들어서 임진왜란때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차라는 비행기를 만들고 하늘을 날았다고 하는데 민간기록에는 나오는데, 그게 국가가공인하는 기록에 나오던? 오늘날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민간기록에 근거 비차가 사실이라는 것은 인정되고 있지 않냐. 이순신의 아리랑전술은 당시 국가공인기록에 나와서 사실로 알고 있던? 다 민간에 내려오는 구전'기억'으로 알고 있는거야.
깜밥 | 2008/11/14 14:22 | DEL | REPLY

장난하냐 멍청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울두목 명랑해전에 대해서 방송했다...무식한 장교야...철쇄인지 사람 머리카락인지 그런걸로 묶어 사용했고 기록도 남아 있고 심지어 흔적도 있다고 방송해서 방송했는데...지 주관대로 기록도 없다고 우긴다..이런 무식한...
월영혼님 보세요 | 2008/11/14 14:24 | DEL | REPLY

월영혼님 "사학자나 연구가들이얼마나 비난했는지는 아십니까?"
링크나 걸어주시고 댓글러쉬해주세요. 사학자 연구가 이름이나 좀 공유하죠
월영혼 | 2008/11/14 14:27 | DEL

그 글리플에봐요 적어놧는데? 하여간 이런사람들 젤 귀찮음 자기가 공부할 생각안하고 펌질이나 미디어만 보고 아는체하고 그게 절대진리인마냥 아는인간들 ㅉㅉㅉ
어이없는 시간낭비 | 2008/11/14 14:36 | DEL

검색해봤다. 월영혼.. >> 일본애니에 쩔은 개 오타쿠 송우혜 김경진 >>>> 소설가 (얘들이 니가말한 역사가냐?) 이민웅 >>> 마찬가지로 해군소령 언론에서 가설내세운거빼고 없음 ㅉㅉ 너같은놈때문에 기가막힌다. 도대체 연구한기록은 어디있냐? 대가리는 달고다니냐? 아유 한심한찌질이 오타쿠
월영혼 | 2008/11/14 14:38 | DEL

이야 이거 진짜 병신이네 ㅋㅋㅋ 연구가라고했자너 너 그런말하면서 읽어보기는했냐? 하긴 넌 공부도 안하지 병 신 ㅋㅋㅋ 그러니 남이 가르쳐주는거 검색이나 쳐해대지 ㅋㅋ 깝칠라믄 공부좀 하고 깝쳐라? 꼬우면 너도 나처럼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던가? ㅉㅉㅉ
월영혼 ㅉㅉ | 2008/11/14 14:49 | DEL

요즘 소설가도 연구가로 취급? 정작 본인부터 검색해보길. 뭐 병신이 입열면 병신밖에 더 있나
월영혼 | 2008/11/14 14:53 | DEL

이거 진짜 병 신 이네 아무것도 모르고 ㅋㅋㅋ이거봐 근거는 전혀 못대지? ㅋㅋ 하긴 니가 안읽어봤으니 아냐? 참고로 갈켜주랴? 임진왜란은 각 챕터마다 실제 사실을 사관은 논한다라고 해서 따로 적어두고 거기에대한 자세한내용을 적어뒀다 사학자는 아니지만 연구하고있는건 사실이지 하긴 너는 그런거 읽지도 않으니 알겄냐? 병 신 난 너랑 다르게 임란 관련해서는 눈에 띄는대로 대부분 다읽어보거든?
꼬꾸루꾸 | 2008/11/14 14:28 | DEL | REPLY

내가 어릴적...초등학교때...그러니까 80년대에 명량의 올돌목 이순신 장군
유적지를 갔던 기억이 있는데...그때 쇠줄을 흔적과 쇠줄의 유물을 본 기억이 있음...
허구는 아닌 듯...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지...이상한 주장하는 사람이 많군....
우리나라에는 너무 일본간첩이 많은것 같으니...
실험 | 2008/11/14 14:29 | DEL | REPLY

당시의 기술만을 이용해서 철쇄와 배를 만들어 한번 걸어보라. 예전에 뉴스에서 300인승 배 한척 끄는데 탱크 두대에 수백의 인원이 동원 된 뉴스가 나온 적이 있다.
통찰 | 2008/11/14 14:36 | DEL | REPLY

긴말필요없고요,철쇄는 사실이아닐지 몰라도.
그리고 명량해전이 아니라도 언젠가 티비 다큐에서 경남인가 남해에서 물빠지고들어오는곳,바다밑바닥에 나무목책같은걸 많이 설치해 들어오는 왜선을 항해못하게한,
그러한 목책의 일부가 아직도 해안에 남아있는걸 본적있습니다.
꼭철쇄가아니라도 바다밑에도 전시에 유용하게 써먹을수있는 뭔가를 했던 사실은 있습니다.
지나가다 | 2008/11/14 14:39 | DEL | REPLY

그냥 가려다가...
역사스페셜(유인촌씨가 진행했던),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데 나온 내용을 철썩같이 믿고계신 분들이 많아서 글 남깁니다.
제가 아는 분이 박물관에서 일하다가 바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던 pd와 접촉한 적이 있어 아는데 그런 tv프로그램들 뭔가 그림이 되게하기 위해 사실의 과장과 왜곡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런 것 너무 믿지 마시길.
설마 아직도 tv에 나오는 것은 다 사실이라고 믿고 계실만큼 순진하신건가?
꼬꾸루꾸 | 2008/11/14 14:41 | DEL | REPLY

그리고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옛날 역사를 바라보지 말길..
옛날 유물들을 보면...우리가 도저히 신을 수 없는 신과 옷들(엄청커서) 그 당시 사람들은 입었다....
그시절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df | 2008/11/14 14:42 | DEL | REPLY

fgbdrfvvfdvbf
ffdasdf | 2008/11/14 14:48 | DEL | REPLY

그냥 그런갑다 하면되지 리플마다 꼬투리다는 사람은 머하는사람들은 머냐;
월영혼 | 2008/11/14 14:50 | DEL | REPLY

2시간가까이를 여기있어도 한명도 철쇄가 있었다는 객관적인 근거를 못대네
한심.. 그렇다더라..아니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으로도가득한 뇌내망상만..
무슨 역사가 펌질놀이야 아니면 상상만으로 써나가는 판타지소설이야.. 어이없음..
아니 요새 판타지소설은 고증이라도 철저히 할려는 사람들도 많드라
역사는 서로다른 기록과 추측을 비교하고 연구해가며 기록하는거지
그렇다더라 그렇지않을까하는 펌질과 망상으로 기록되는게아님
그러면 역사왜곡한다고 욕하는 일본애들이랑 우리가 다를게 뭐임..
하여간 웃김..
꼬우면 http://warfog.net/main.html 에서 난 주로 자주가니
여기다 글남겨서 철쇄설의 근거를 대보세요
나를 비롯해 나름 임진왜란 공부좀 한사람들 득실거리고
나야 중수쯤밖에안대지만 신재호님이나 김경진님같이 임란 전문가들도 있으니
대신 허접한 주장들고왔다가 개망신당하는건 책임못짐
김억추 검색 | 2008/11/14 14:51 | DEL

김억추가 누군지도 모르겠지? 역사적 사실? 음... 넌 더 허접한데 ㅋㅋ
월영혼 | 2008/11/14 14:54 | DEL

이 병 신아 김억추 이야기도 내가 위에서 몇번이나 더 적었다.. 이 섹기는 눈도 읍나 ㅋㅋㅋ 하여간 논리적으로는 전혀 반박을 못하네 ㅋㅋㅋ 왜 꼬우면 적어보라구 ㅋㅋ
월영혼 볍진아~ | 2008/11/14 14:52 | DEL | REPLY

역사적인 진실보다도 네 글쓰는 태도가 짜증나 한자 올린다.
모르면 입닥치라는 식의 오만함 좀 버릴 수 없니?
쇠사슬이든 쇠줄이든 사용했든 하지 않았든
그저 정확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야 별별 가정이야 할 수 있는데
네 주장하고 다르면 그저 쥐잡듯이 몰아붙이누만?
말도 안되는 네 주장 한 가지...(혹시 고딩이냐?)
물에서 200톤이 뭍에서 200톤하고 똑같다고 보나?
내가 육지에서는 40kg 들기도 힘들어하지만
바다 물에서 1,200kg 배는 밧줄 하나로 마음대로 움직인다.
지름 2cm 쇠줄이라도 200톤이 아니라 500톤 배도 붙잡을 수 있단다.
거기다가 200톤 배무게와 200마력 엔진출력을 혼동한 것은 아니겠지?
12노트의 물살이야기로 대꾸하려면 아예 그만두거라.
15노트로 봐도 시속30키로(정확히 27.78km/h) 이하다.
설마 왜군들이 물살을 타고 전속으로 이순신 대장선을 향해
진격해 왔었다고 구라치지는 않겠지?
상대의 글에 무례하게 엥기는 네 4가지가 짜증나서
똑 너같은 방식으로 글을 써 봤다마는 영 기분 찝찝한데
이런 기분을 너는 어찌 견뎌내나?
월영혼 | 2008/11/14 14:59 | DEL

ㅇㅇ 미안해 가분나빴어? 그러면 구라를 진실마냥 주장하면서 다른사람을 현혹하려고 하지도말고 아니라고 반박하면 니는 무조건틀렸다는식으로 대답만 안하면대. 위에바 나도 첨에는 점잖게 대해줬어 ㅋㅋ 근데 애들수준이 점잖게 대해줘도 찌질하게 앵기길래 수준맞춰준거야 ㅋㅋㅋ글고 이 병 신아 왜군함대가 몇척이냐? 너 바보지? 설마 1척이 돌격했냐? 임마 최소 수십척이다 그건 왜 계산안해? 거기에 200톤도 그냥 200톤이냐? 15노트 따로보지말고 가속에대한거까지 계산해야지 병 신 아 ㅋㅋㅋ 거기다 이왕쓸거 다른거도 다 반박해봐? 왜 못해? 병 신 세 끼 ㅋㅋㅋ 왜 어제 물리좀 배웠냐? ㅋㅋㅋ 그런거 계산대면 한번 그 철쇄에 들어갈 쇠는 어디서 났는지 한번 그것도 계산해봐 이 병신아 ㅋㅋㅋ
김선명 | 2008/11/14 14:54 | DEL | REPLY

문제는.. 철쇄를 설치 했는가 하지 않았나 의 기술적인 문제 보다 이순신 장군같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 뛰어난 지도자로 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문제가 더 큰 일이지.. 우상으로 존재할 뿐 어떤 정신과 책임감으로 전선에서 임했는지, 내면적인 부분으로 부터 배워나가는게 없는데 철쇄를 설치했느니 안했느니 가 무슨 대수인가.
본드 | 2008/11/14 14:54 | DEL | REPLY

이 물건도 뉴라이트인갑네...
가능함 | 2008/11/14 14:58 | DEL | REPLY

ㅇ꼬꾸루꾸 님 글에동의함/.....사실 전쟁은 장난이 아닌 우리 목숨이 달린 세상 하직하는 절망....+ 구국이란 숭고한 역사 이기 때문에 인간이 짜낼수 있는 연구란 연구는 다 할것입니다.바다만을 믿고 30척으로 두배넘는 적과 싸워보는 맘편한 장군이 있을까요?? 배와 배 사이를 간격 조정용 수기를 흔들고 지나가지 무슨 상인들 배도 아니고...하하
월영혼 | 2008/11/14 15:02 | DEL | REPLY

나는 더이상 시간읍어서 간다
만약 정말 철쇄설의 그럴듯한 근거가잇으면 http://warfog.net/main.html와서
임진왜란 게시판와서 적어주길.. 근거잇는 주장은 언제든 환영임.
그럴용기읍으면 게시판서 검색이라도 해서 보든가
그렇게 신봉하는 역사스페셜에서 자문담당하던 별무사님이
철쇄설에대해서 적어논거도있으니까 ㅋㅋㅋ
ㅋㅋㅋ | 2008/11/14 15:03 | DEL | REPLY

철쇄는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는데 무슨ㅋㅋㅋ
그리고 어느 미친 장군이 자군의 전쟁전략을 일기에 낱낱이 기록할까ㅋㅋ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장군이 서서 오줌눴다는 기록이 없으니
이순신장군이 남자인 것도 사실이 아니라 설일 뿐이로군요.
임원빈 애.. | 2008/11/14 15:07 | DEL | REPLY

고향이 어딘지 궁금하다....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의 자손이거나, 최소한 원균을 조상으로 둔 경상도 출신일 거라는데 한표 건다.
무학이 | 2008/11/14 15:11 | DEL | REPLY

댓글쓰시는 분들 중 상당수는 울돌목에 가보지도 않은 분들같은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어떤 분은 "울돌목"을 "올"돌목이라 쓰신 분도 있는데 한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그리 쓰신 걸 보면 오타는 아닌듯... 울돌목은 물살이 어찌나 센지 용울음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울 명자 "명량"이고 우리말로 "울돌목"입니다. 이렇다 저렇다 말씀들을 하시기 전에 먼저 울돌목에 한번 가보세요, 그리고 당시의 조선배와 일본배의 차이점(조선배는 밑바닥이 평평한 판옥선이어서 회전하기가 쉽지만 일본배는 밑이 뾰족해서 회전 내지 방향전환이 쉽지 않음)을 함께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면 역사적 사실자료를 굳이 뒤져보지 않더라도 그 많은 함선이 왜 적은 수의 조선수군에게 참패를 당했는지 답이 나올 겁니다...
어리석은 변절자들 | 2008/11/14 15:13 | DEL | REPLY

역사적으로 이순신장군을 깍아내릴려고 하는 놈들이 하는 말의 근간은 이렇다.
조선수군의 승리의 비결은 판옥선이 일본배보다 좋았고, 함포가 왜군보다 위력적이어서 였다느 거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말을 할때, 이순신을 제외한 다른 조선의 수군 장수들은 왜군보다 수배나 많은 배를 가지고도 적은 왜군에게 엄청난 격차로 패전을 했다는 것을 같이 말하는 법이 없다.
조선 수군의 장비가 그리 우수했다면, 왜 다른 수군장수들은 왜군보다 2~5배 이상 많은 함선을 가지고도 적의 배를 몇척 격침시키지도 못하고 몰살을 당했단 말인가?
이순신의 함대는 티타늄 도금이라도 입혔단 말인가?
몰살당하고 남은 배들이 이순신이 이용할땐, 인듀런스, 홀리라이트, 스트렝스 등의 마법이 중첩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님의 말이 맞네요.. | 2008/11/14 15:47 | DEL

동감
이수창 | 2008/11/14 15:14 | DEL | REPLY

비공개 댓글입니다
무학이 | 2008/11/14 15:21 | DEL | REPLY

울돌목은 진도라는 섬과 해남군 사이의 폭이 좁고 물살이 센 바다이지요, 지금은 그 아래쪽에 진도대교가 놓여져(진도대교가 설치된 이후부터 울돌목의 물살이 달라져 울음소리가 안나지요.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물살이 굉장히 세고 물흐름속도가 빨라 요즘의 배들도 그곳을 지날 때 속도를 내기가 굉장히 어렵죠, 그곳을 지날 때의 배의 속도는 요즘의 배로도 거의 걸어가는 수준이라고나 할까... 어느 분이 지적하셨듯 그곳은 강이 아니고 해류이기 때문에 시각에 따라 물살의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지요. 안 가보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한 번 가보세요,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진도대교라는 다리가 놓이기 전엔 진도라는 섬에서 육지인 해남으로 오기 위한 가장 가까운 곳이 울돌목었다는 점도 참고하시길...
바보같단말이야! | 2008/11/14 15:29 | DEL | REPLY

그럼...곰이랑 호랭이 나온다고 단군신화도 믿지말라고 하시죠...픽션이랑 팩트를 확~실히~~구분하셔야 하니까요..군사요지마다 철책과 수중목책을 설치하였다는 유적이 발견되어있구만...임진왜란 전에 이순신장군이 쇠사슬과 나무를 실어 날랐다는 기록도 남아 있고...당시에 전쟁준비하면서 군사 요지에 목책과 쇠사슬을 미리 설치해 놨던거 아닐까 생각되는데요(역사스페셜201회 참고)당시에 부산,통영 등등 여러 군사요충지에서 기록에는 없던 수중목책과 돌무더기등이 발견되었는데, 그것도 기록에 없었다하여 사료로 안치시는건지...또 일본측 사료에도 이순신이 쇠사슬을 이용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것도 추측일 뿐이고, 저분도 자신의 의견일 뿐이겠지만, 무조건 사료에 없다고 픽션이라고 치부해 버리는게 맘에 안드는군요. 난 배웠다는 사람들이 꼭 증거가 있어야 사실이라고 주장하는게 부분을 알고 마치 그게 전부인양 하는 무식한 사람들 같아요...단군신화도 픽션이라 그러고, 일제시대때 조선 발전시켰다그러던 많이 배우신 학자분들 생각나네요. 공식기록 아니면 다 픽션이래...ㅠㅠ
무학이 | 2008/11/14 15:35 | DEL | REPLY

어떤 이는 수학적인 문제를 논리로 풀려고 하고, 과학적인 문제를 감성으로 풀려고도 하지요.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접근방법이 타당한 것인지도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할 때는 더욱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면, 우선 너무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고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고려왕조를 무너뜨린 후 수많은 역사사료들을 불살라버렸고, 일제는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후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 수많은 역사사료들을 찾아내어 불살라버리거나(당시 전국에서 찾아낸 사료들을 경복궁 안에서 수일간 불살랐다고 함) 일본으로 가져가 버렸으며 남아 있는 사료들의 상당수에 조작을 하였으니 과연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료들중 믿을만한 사료가 얼마나 되겠는가? 실증사학적 접근은 분명 필요하지만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먼저 고찰하지 않고 무조건 '증명할 사료가 없으니 사실이 아니다'라고 단정짓는 건 신중하지 못한 태도이며 선조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바보같단말이야! | 2008/11/14 16:06 | DEL | REPLY

그리고 Daum 블로거 뉴스 담당자도 글제목으로 사람좀 낚지 말시길... '이순신 명량해전 쇠사슬사용은 없었던 사실' ... 이라니... 무슨 공적으로 정해진 것인양... 스포츠뉴스도 아니고...
ㅉㅉㅉ | 2008/11/14 16:07 | DEL | REPLY

지금 일본에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시기인데 이딴걸 연구해서 이순신장군을
깍아내리는게 해군장교가 할짓입니까??
좀더 대한국민들에게 힘이 되거나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하셧으면 합니다
참...이것도 | 2008/11/14 19:59 | DEL | REPLY

옛날사람들 무시하지 맙시다. 옛날기술 무시하지 맙시다. 어떻게 그때 당시 기술로 지금불가능할 일을 했겠냐고 제발...지금 눈으로 보지 맙시다. 석굴암...그때 만들고 수백년지켜온 문화유산 지금 물세고 보수도 못하죠? 지금 사람들...하늘 별보고 달보고 역법 만들수 있나요? 오히려 최신장비 가지고도 못할일 우리 선조들은 해 냈습니다.
그러니 제발...지금 배타고도 건너기 위험한 바다라고 옛날에 어떻게 쇠사슬 설치했겠는가 못했을꺼다...이런 논리 좀 펴지 맙시다.
사람손으로 베 수백필씩 어떻게 짭니까? 짚으로 멍석짜고 뭐짜고...
요즘 사람들이 못하겠죠.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겠죠.하지만 옛날엔 사람이 다하던 일이었죠.왜 단순한 이치인데 자기 기준에서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까요?

옛날 사람하고 요즘 장정하고 싸움 붙이면 요즘 장정 아마도 맞아 죽을꺼라던 어떤 분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요즘사람들 덩치는 클지 몰라도 힘조차 옛날사람 못이기죠.
선조들의 지혜와 힘...한계없는 사고로 쇠사슬...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있고 한참 후에 쓰여진 책, 야사 모아놓은 책이라고 믿을 수 없다시는데이순신이 정조때가 되서야 제대로 거론될 수 있었던 역사적 사실은 간과하신겁니다. 택리지를 야사라고 낮잡아 평가하는 사람은 아마도 대령님 밖에 없을 듯 싶군요..ㅎ
이순신을 거론 못하던 시절 입으로 구전되어 내려와 후에 기록된 것은 믿을 수 없다면
어떤 사료여야만 믿을 수 있나요?

대령님은...삼국유사도 야사모음집이니까 안믿으시겠네요. 단군신화 내용도 설화니까 단군조선도 픽션이겠고...(대령님의 발상이 바로 단군신화를 부정하는 일제식민사학자들과 같군요.)
일본 기록에 나와있는 쇠사슬로 명량해전에서 대패했다는 내용은 적군측 기록이라서 믿을 수 없나요? 명랑해전전 쇠사슬을 옮겼다는 이순신의 기록은 명량해전 이전이라서 인정하지 않나보죠?

어린이였을때 뭘모르던 제가 동화를 읽으면서 어떻게 십여척의 배로 몇백척의 왜선을 쳐부술수 있지?뻥아니야?라고 생각했던적이 있었습니다. 과장이 분명 섞여있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그건 뻥도,과장도 아닌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만약에 나중에 미래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있을 수 없는, 입으로 전해지다보니 뻥이 더해져 과장된 일이라 치부한다면(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건 바로 대령님과 같은 편협한 시야를 가진 연구자들 때문이라고 말할수 있을겁니다.

역사연구에서 작은 파편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리저리 끼워보는데, 대령님같은 분은 편협한 시각으로 소중한 덩어리도 필요없다 버리시는군요.

쇠사슬 가설의 근거들을 무조건 야사로 치부해버리는 대령님의 그런 태도가 정말 위험해 보입니다.



| 2008/11/17 09:42 | DEL

억지스럽기가 이루 말할수 없군요. 결론을 정해놓고 거의 종교적인 신념으로 믿고 그에 반대되는 모든 논리와 사실들에 대해 뿌리치려 몸부림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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