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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식민통치에 들어간 이후 직장을 잃은 이들이 택시를 타고 속내를 털어놓은 뒤 끝내 울음을 터뜨리곤 했는데... 또 이와 비슷한 광경을 목격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네요."
어제 밤 퇴근길에 이용한 쉰여섯 나이의 개인택시 기사아저씨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국내 경기침체 심화와 관련한 뉴스에 대해 촌평하 듯 제게 던진 말입니다.
"아 그랬나요?"라는 저의 반응에 자신을 얻은 듯 그는 당시 은행에서 해고된 한 40대 가장의 눈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습니다.
저녁 무렵에 한잔을 한 듯 한 그 승객은 택시에 오르자 마자 '직장 없는 자의 퇴근길'이라고 말을 꺼내더란 겁니다.청춘을 다 바쳐 20년 가까이 충성을 다했던 직장에서 쫓겨났지만 집에다간 알리지도 못하고 아침마다 출근을 하고 있다는 거였고요.
아침에 집을 나와선 이곳 저곳 다니며 새 직장을 수소문 해 봤지만 쫓겨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판국에 새 직장을 찾을 리 만무했다는 거고요.
택시에 승차한 날이 실직 한달째라 '기념'으로 소주를 한잔 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끝내 눈물을 쏟았다고 기사 아저씨는 전했습니다.

IMF 관련 얘기야 이 기사의 전언이 아니더라도 흔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더욱이 요즘 그 당시와 시절이 너무 비슷해 지고 있어 샐러리맨들의 불안감은 점증하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기사 아저씨는 이어 "최근 경제 상황이 불황이라 그렇긴 하겠지만 뉴스가 지나치게 안 좋은 것에 포커스를 맞춘다"며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불안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언론이 좋은 기사, 잘되는 기사 좀 발굴해 보도해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고요.
그는 "공포나 불안감의 경우 전염성을 갖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말하던데 이걸 뒤집어 생각해 보면 행복감이나 좋은 감정도 전염성을 가지지 않을까"하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자신은 가능하면 손님들과 행복한 것, 즐거운 것으로 대화를 이어간다고 덧붙였고요.
그러면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운전을 직업으로 삼아와 30년 경력이 다되가는 나 만큼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택시를 이용하며 그 아저씨처럼 '기사'라는 직업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행복감'을 설파하는 것을 보지 못한 터라 저는 묘한 호기심이 들어 "어떤 면이 그렇게 만드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행복이라는 건 비교에서 비롯되는 거 아닙니까? 닥친 현실에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게 바로 나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비결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건 바로 56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젊은 시절부터 해온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일반 직장을 다니던 제 친구들 어떤 식이든 퇴직을 다했습니다. 거론하는 직업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록 새로운 직업을 잡는다 하더라도 경비원 등이 전부지요. 그거에 비하면 저는 얼마나 행복한 셈인가요? 그래서 전 항상 행복하다 행복하다고 느끼고 손님들에게도 말을 옮겨주지요. "
이런 생각을 갖고 살다보니 1987년 서울 창동에 32평 아파트에 당첨되고 입주한 뒤 곧바로 개인택시 자격까지 얻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세명의 자녀가 모두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했고요.
그 아저씨의 행복론을 듣다가 택시를 내릴 무렵 저에게도 '행복 바이러스'가 옮아 온 느낌이었습니다. |
IMF 체제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냥 하는 말로 "잘리면 택시기사나 하지..."라는 말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실제 잘린 사람들이 택시회사로 몰려 회사택시에 노는 차가 없었다는...
그러나 시작하고 세 달을 버티는 사람이 10명 중 한 명 밖에 안됐다는...
택시기사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一切唯心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