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합친다해도 꼴랑 한 줌이나 될까요.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의미있는 편린의 부피를 따지면 말입니다. 미미하고 보잘 것없어 보이는 인생의 작은 것들을 기억속에서 끄집어내 끄적거려 보았습니다.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거꾸로 뒤집어 살피기도 했습니다.신문 블로그에 존재하지만 기자블로그는 아닙니다. 제이와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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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선 서남표 총장의 귀국을 두뇌유출로 봅니다." [피플 인사이드]

2년 전쯤의 일입니다. 연세대 주최로 열린 노벨상 수상자 초청 행사에 참석한 세계적 과학자 몇 분을 모시고 토론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이 당시 해외로, 특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공분야 과학자들이 귀국않고 현지에 눌러앉는 사례가 많아 '두뇌유출' 이 큰 화두였습니다.

이 문제가 토론회에서 거론되자 노벨상 수상자들은 '삼성 LG 등 세계적 브랜드를 가진 한국이 뭐 그런 걸 걱정하느냐'고 했습니다. 한국에 좋은 일자리만 만들면 고급 두뇌들이 왜 안돌아오겠느냐는 거였습니다.

특히 미국 출신의 한 과학자는 "미국에선 MIT(매사추세츠공대) 기계공학과장을 12년이나 지낸 서남표 박사가 2006년 3월 KAIST 총장으로 선임돼 한국으로 되돌아 간 것에 대해 되레 '최고급 두뇌 유출'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서남표 KAIST 총장이 최근 주목받고 있습니다.

KAIST 학생 선발에서 '점수가 아닌 장래성으로 평가 하겠다'는 메가톤급의 교육혁신 선언에서 입니다.

이 선언이 나온 뒤 다른 대학에서도 잇따라 '따라하기'에 나서며 '서남표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지요.

서 총장은 이에 앞서 다양한 교육개혁 방안을 도입했습니다. 테뉴어(정년보장) 교수 심사에서 대거 탈락이 대표적입니다.

등록금이 면제되는 KAIST 학생들에게 공부 못하면 등록금을 내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워낙에 넓은 인맥을 활용해 국내외 기업인들로부터 기부금을 대거 유치하고 있습니다. 기부금 유치 목표가 1조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여전히 '서남표' 라는 이름은 낯익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누구지?"하는 반응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서 총장은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고교시절 하버드대학의 첫 한국학과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미 고교에서의 첫 영어 수필 시험에서 0점을 맞을 정도로 '영어맹'이었던 그는 매주 셰익스피어 선집 등 명작을 일주일에 2권 이상 읽는 학구열을 불태워 1955년 MIT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카네기멜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사우스 캐롤라이나대 교수를 거쳐 1970년 MIT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36년간 재직했습니다.

그는 물방울을 활용해 고분자 금속 재료를 효율적으로 제조하는 공정을 개발, 세계적 석학이란 명성을 얻었습니다.관련해 40여개의 특허를 갖고 있으며 200여편의 논문을 냈습니다.

그는 특히 1990년부 2001년까지 12년간 MIT 기계공학과장을 지냈습니다.

이 때 130년 전통의 기계공학과를 획기적으로 변신시켜 행정가로서의 지도력도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기계공학,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의 융합을 시도하는 대학 개혁을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가 자신이 태어난 땅인 한국으로 되돌아 왔으니 미국입장에서 볼 때 '최고급 두뇌유출'이라는 말이 나올 법해 보입니다.

서 총장이 현재 국내에서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모습을 보면 비교되는 대상이 떠오릅니다. 서 총장의 전임 KAIST 총장인 노벨상 수상자 로버트 러플린입니다.

러플린 총장 부임할 때 정말 큰 기대를 받았지요.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처럼 '과학계의 히딩크 신화'를 창조해 줄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러플린 총장은 부임 이후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고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독선적인 기질'로 인해 KAIST교수들과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개혁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퇴진하는 신세가 됐지요. 이처럼 러플린과 대립각을 세웠던 KAIST 교수들도 서남표 총장에게는 시쳇말로 '꼼짝 못한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고 합니다.

서 총장의 이같은 개혁추진이 실행력을 갖고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이해를 반드시 구해야 할 상대방을 직접 찾아가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힘이 아닌가'하는 게 제 추정입니다.

이 점이 바로 러플린과 서남표의 개혁추진에서 '명암'을 가른 것으로 분석되고요.

서 총장을 딱 한차례 뵌 적이 있는데요. 총장 취임이후 두달 정도 된 후 그가 언론사를 돌아가며 방문하는 계획을 잡았을 때였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의 교육 개혁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론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언론 지지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실속없는 것을 크게 떠벌리는 '언론플레이'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고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 입니다.

당시 그의 말은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창의성과 리더십을 겸비한 인재양성'이 그의 교육 철학으로 이해됐습니다. 이는 차차 현실화되었고 최근의 인재선발 방식 변화로 꽃이 피었다는 느낌입니다.

자료를 뒤져보니 서남표 총장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1990년대 초반이더군요.당시 대우그룹이 고등기술연구원을 설립하려고 했을 때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했고 KAIST석좌교수 등을 지내고 삼성이 주는 호암공학상을 1995년에 탔습니다.

저의 경우 서남표라는 이름이 각인된 시기는 2006년 이었습니다.

당시 김우식 과학기술부 부총리가 해외석학을 초빙하는 프로그램에 초청된 것을 취재 보도케 하는 과정에서 그의 '대단함'을 인식하게 됐으니까요.

또 이 프로그램을 보도하면서 그가 로버트 러플린 후임 총장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는 것을 국내에 알리게 됐고 몇달 후 실제 총장으로 뽑혔습니다.

서남표 총장
posted at 2009/03/13 14:37:00 댓글(1)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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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 2009/03/13 17:23 | DEL | REPLY

오랫만에 올리셨네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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