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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로 지목하는 '사랑과 영혼'(원제 Ghost)의 주인공 샘역의 패트릭 스웨이지(57)가 9월 14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외신 전언입니다.
췌장 질환은 인간에게 가장 큰 통증을 느끼게 한다던데 패트릭 스웨이지의 투병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그런 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병마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겠다"고 했다는 그의 의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고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랑과 영혼의 한장면>
영화배우 패트릭 스웨이지에 대해선 관심도도 낮고 깊이있게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 날 그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문득 '사랑과 영혼'이 국내에 처음 상영됐을 때인 1990년 국내 영화계 '분위기'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경제신문의 문화부에서 막내 기자로,출입처 중요도에서도 최저인 '영화'를 담당하고 있었고요.
이 때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주연을 맡고, 한국 영화 역사를 살펴볼 때 '분수령'이 된 것으로 평가할 만한 '사랑과 영혼'을 접했습니다.
알려졌다시피 '사랑과 영혼'은 169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여 국내 최대 흥행작으로 이름 올렸습니다.
'사랑과 영혼'의 관객동원 신기록은 10년 뒤에 국내 상영된 미국영화 '타이타닉'에 넘겨주기까지 지속됐다고 합니다.
요즈음 '국산 영화 1,000만명 돌파 기록이 수시로 나오는데 169만이 무슨 대수?' 하고 태클을 걸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영화는 시의 1개 극장에서 필름 1벌로 상영됐다는 걸 이해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서울에선 서울극장에서 필름이 돌았지요.
이 같은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영화 '사랑과 영혼'은 사회적인 신드롬 현상까지 몰고 왔습니다.
이 영화를 몇 차례 보는 '보고 또 보고'가 대유행이었습니다. 20대 초반의 한 여성은 "10번이나 봤다"고 털어놓았고요. 또 도자기 빚기가 젊은 층에서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인기를 끈 미국 헐리우드산의 '사랑과 영혼'은 한국 영화의 역사속 한 페이지로 살펴보면 그 이면에 '묘한 아이러니'가 깔려 있습니다.
'사랑과 영혼'은 국내 영화계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렀던 미국 영화배급사 UIP가 '직배'한 작품이란 겁니다.
특히 당시 서울 시내 외곽 극장에서 주로 내걸던 UIP가 시내 중심가인 종로3가에 있는 개봉관 서울극장과 전격 계약해 한국 영화의 '심장부'로 진출한 작품이란 것입니다.
UIP 직배 반대 투쟁을 벌이던 감독 배우 등 한국 영화인들에겐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거지요.
때문에 서울극장 앞은 국내 영화인들의 물리적인 시위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들은 "미국 영화자본이 서울시내 중심가 개봉관까지 진출한 건 한국영화의 종말"이라며 "상영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관람객들에겐 애국심을 발휘해 영화를 보지 말아달라는 얘기도 있었고요.반대 시위대와 영화 관람객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었지요.
이러한 영화인들의 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영혼'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되레 이러한 반대 시위가 흥행을 가속시킨다는 얘기도 나왔고요.
결국 '사랑과 영혼'은 국내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했고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영화 중의 하나로 꼽히는 실정입니다.
당시 관람객,즉 소비자들은 영화인들의 시위를 보며 이런 느낌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좋은 영화 보려고 하는데 저 사람들 왜 그러는데?"
영화인들은 당시 'UIP직배를 막지 못하면 한국 영화가 종말을 고한다'고 했는데 요즈음 한국영화 1000만 관객 돌파가 심심찮게 나오는 거 보면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얘기겠지요.
한국영화의 이같은 경쟁력은 궁극적으로 애국심에 기댄 '시위'를 통해서 아니라 영화 만드는 솜씨를 키운데서 비롯했다는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