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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주는 느낌은 이제 '차가움'으로 기울었다.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었다'느니 '이상 고온'이니하는 말들과 상관없이 계절은 똑바로 향하는 진행성을 바꾸지 않고 있다.
출근 길에 약간은 움츠려들려는 몸을 곶추 세우고 중심을 잡아보려 애쓴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모양새을 보며 내 행동거지도 다잡아 본다.
세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3인행 필유아사'라는 말처럼 전혀 알지 모르는 사람도 때로는 선생님이 되어준다.
아침에 느끼는 컨디션에 내 모든 것을 맡기지 않는다.
이 시간 기분이 좋다고 마냥 그걸 유지하려 애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컨디션을 다운시키려고 마음에 채찍을 가한다.
몸속에서 100이라는 최상의 컨디션 상태라고 알려주더라도 "음 70정도이군"이라고 최면을 건다고나 할까.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아침에 믿었던 '오늘은 좋은 날'이라는 기대가 꺾이면서 생길지 모르는 일종의 배신감을 줄이기 위해서다.
기대를 크게 한 날이었는데 거꾸로 참담한 실패나 좋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 실망감은 2배로 높아질 수 있는 까닭이다.
아침 몸 컨디션이 40 정도에 불과할 만큼 실제 안좋을 때는 다르다.
이 때는 그 수치를 정확하게 믿어 버린다.
이 경우 행동은 조심이 앞서게 되고 가능하면 근신하는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이럴 땐 하루를 정리할 시간에 "오늘은 플러스였다"고 자평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살아가며 단편적인 사건이나 작은 일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슬퍼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기쁜 상태에 있다고 너무 우쭐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표면은 항상 이면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자신에게 생긴 자그마한 기쁨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에겐 엄청난 불행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중국 베이징의 나비의 날개짓이 북미에 폭풍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카오스이론의 배경이 된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