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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08-17'에 해당하는 글 1건

올림픽 한일 야구 9회 편안하게 본 이유 [라이프 인사이드]

2008년 8월 16일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각.

베이징 올림픽 야구 예선전 한국과 일본의 숙명적 대결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운명의 9회.

한국 대표팀이 초 공격에서 갖가지 절묘한 상황을 연출하며 석 점을 뽑아내 현장과 화면을 통해 이를 지켜보는 한국 응원단에게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합니다.

첫 타자 5번 김동주는 좌측 펜스를 맞히는 큰 안타를 쳤지만 안타깝게도 1루에 머무르고 맙니다.

앞선 타석에서 동점 홈런을 때린 이대호 선수는 과감하게 희생번트를 댑니다.

 

<이대호의 홈런,사진출처=한경DB>

2사 1,2루에서 왼손 타자인 김현수 선수가 대타로 기용돼 일본의 왼손 투수 공을 받아쳐 중견수 쪽 안타를 만들고 김동주 선수 전력 질주해 득점에 성공합니다.

오래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한일전에서 기록한 김재박 감독의 개구리 번트를 연상시키는 이종욱 선수의 예상을 깬 절묘한 3루쪽 번트 안타가 이어지며 또 한점이 납니다.

이종욱의 2루 도루에 삭발까지 했다는 일본 아베선수의 송구는 유격수에게 하늘을 쳐다보게 하고 한국팀에게 또 하나의 득점을 헌납합니다.

석점이나 넉넉하게 얻은 한국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9회말.

한국 대표팀 뭔가 불안합니다.

불 끄러 나온 소방수 한기주 선수는 일본 4번타자에게 3루타를 맞고 3루수 김동주 선수는 에러를 범하며 한점 내줍니다.

분위기 심상찮아지고 한국응원단의 가슴을 졸이게 합니다.

이어진 2루타로 노아웃 주자 2,3루 상황이 벌어집니다.

한방이면 동점 내지는 역전을 허용할 수 있는 절체 절명의 위기입니다.

왼손 구원투수 권혁이 왼손타자인 아베를 좌익수쪽 얕은 플라이로 원아웃시키며 한숨 돌리게 합니다만 아슬아슬한 상황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사이드암 투수 정대현 선수가 멋지게 삼진을 잡고 다음 타자는 3루 땅볼을 유도하며 마무리 합니다.

"휴!"하는 한숨과 함께 승리의 기쁨이 배가 됩니다.

이런 그림 한국과 일본전 아니면 좀처럼 나오기 힘들겠지요.

소설도 (결과적으로) 이만큼 재밌게 쓰기 힘들겁니다.

저는 이런 멋지고 감격적인 그림을 안타깝게도 실제 상황보다 수십 초 늦게 봤습니다.

집에 TV가 없는 까닭에 인터넷 포털의 공중파TV 중계를 이용한 때문입니다.

어느 분이 케이블TV와 공중파에도 중계 지연이 2초가량 된다고 하던데 인터넷은 이보다 훨씬 더 늦습니다.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수십초 간극이 벌어지는 듯 합니다.

인터넷 중계에서 김현수 선수가 대타로 등장할 무렵 딴짓 하던 아들의 말입니다.

"아빠, 우리가 점수 냈나봐. 좀 전에 저 아파트에서 와~~~하는 함성이 들렸어요."

실제 한참 뒤에 김현수 선수가 정말 그림같은 천금의 안타를 쳐내더군요.

이종욱 선수의 3루수쪽 번트 안타 등의 상황이 모두 똑같이 반복됐습니다.

일본의 9회말 공격도 우리 화면에서 진행 중인데 아파트 다른 동에서 함성을 통해 "아! 우리가 이긴 모양이구나"하는 걸 짐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결과를 짐작하고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까 '딱 한방이면 동점을 허용하고 자칫 역전이 될 수도 있는' 위기의 그림도 안심이 되도록 하더군요.

이걸 타임래그라고 하나요.

혹시 심장 약한 사람들 같으면 인터넷 중계를 통한 타임래그 시청법도 건강에 괜찮겠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요즘 TV를 없애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하지요.

우리도 3년전 쯤 TV를 집에서 치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TV를 틀어놓고 청력이 약해 볼륨까지 높인 채 생각없이 화면을 보는 제 습관 때문에 애들 공부를 방해하고 가족들간 대화도 단절시킨다는 아내의 제안을 따른 겁니다.

저야 뭐 집에 오래 머무는 것도 아니고 TV에서 취할 정보래야 뉴스 정도이니까 '있거나 없거나'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 동의를 했지요.

당시 우리 집의 TV는 32인치 브라운관형 디지털TV라 거실에서 차지하는 공간도 만만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거 사라지니 거실이 무척이나 넓어지더군요.

초기 TV에 빠져 있던 작은 아들은 조금 불편한 듯 느끼는 것 같더니 금방 '없는 것'에 적응했습니다. 대신 시간제로 할당하는 컴퓨터 게임에 조금 집착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긴 했지만요.

세상사에 무관심한 편인 큰 딸 아이는 '있거나 없거나' 마찬가지 였고요.

뭐 TV 없애면 '가족들간 대화시간이 늘어난다' '독서 시간이 늘어난다' 기타 등등의 장점을 말하던데요.

이런 거 다 차치하고서라도 '아무런 생각없이 화면 속에다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보다 괜찮다는 느낌입니다.

어쩔 수 없이 시간 때우기 위해서라도 다른 취미 활동을 찾아야 하는 것도 장점으로 꼽힐만하다는 생각이고요.

TV 없애고 불편한 점은 없냐고요?

큰 거 있습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빅이벤트 스포츠 중계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경기가 열리는 줄도 모르다가 다음날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통해 결과만 확인할 때 많습니다.

인터넷 통해 보는 스포츠 중계 화면도 크지 않는데다 별로 깨끗하지도 않습니다. 흐릿하게 때로 끊어지는 화면 보고 있을 때면 TV한대 장만할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불편해도 버틸 생각입니다.

없는 게 있는 거 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는 유일한 게 TV가 아닐까 해서지요.

한일야구
posted at 2008/08/17 14:38: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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