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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명량해전 철쇄설치는 역사적 사실 아니다" [피플 인사이드]

2004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KBS1 TV에서 방영된 역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요즘에 뜨고 있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 나오는 김명민이 이순신 장군으로 분했었지요.

'불멸의 이순신'에서 장군이 3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해 칠천량 해전 패전서 남은 13척의 전함으로 330척(실제 전투에 참가한 배는 133척)의 왜 수군과 맞서 대승을 거두는 '명량해전'은 주요 장면이었지요.

<사진출처=KBS1 TV 불멸의 이순신 페이지>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전술로써 명량의 물목에 쇠사슬(鐵鎖 철쇄)을 설치해 다가오는 왜선을 걸어 격침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철쇄설치는 이 드라마 뿐 아니라 현대에 출간된 이순신과 임진왜란 관련 책에서도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고요.

이에 따라 많은 이들이 철쇄설치를 이 해전에 실제 적용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대승을 거둔 결정적 전술로써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요.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이순신의 리더십을 연구해온 현역 해군 장교가 '철쇄설치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란 주장을 제기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최근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 전승무패의 신화를 이끈 이순신의 필승전략을 분석한 '이순신 승리의 리더십'의 저자 임원빈 대령(아래 사진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 연구부장)입니다.

임 대령은 최근 열린 한 강연에서 "국내에서 그동안 이뤄진 임진왜란 해전 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설화(Fiction)와 사실(Fact)의 혼재"라고 지적하고 "사실로 검증 안된 대표적인 설화사례로 명량해전의 철쇄(鐵鎖)설치"를 지목했습니다.

임 대령은 철쇄설치가 '설'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로 해전이 벌어진 동시대의 기록 어디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명량해전의 전투상황을 가장 생생히 담고 있는 기록의 대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단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철쇄 이용이 명량해전 대승의 요인이었다면 해전이 벌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철쇄 준비를 해야 하지만 조선 수군이 벽파진에 머물렀던 1597년 8월29일부터 9월 15일까지의 난중일기에는 기록이 없다는 겁니다.

이와 함께 이순신의 일생을 가장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 이분의 '행록'을 비롯, 유성룡의 '징비록' ,선조사후에 만들어진 '선묘중흥지'에도 이런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고요.

임 대령은 철쇄설치가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고 있는 것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무려 150년이 지난 뒤에 쓰인 이중환의 '택리지'(명량의 좁은 물목에 철쇄를 설치하여 500여 척 또는 수없이 많은 일본 함선을 침몰시켰다) 등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택리지는 여러 지방의 흘러 다니는 구전 설화를 엮은 책으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자료로 삼기엔 적절치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게 임 대령의 얘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은 제3공화국 시절 이순신 영웅만들기에 동원되며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임 대령의 해석이었고요.

그는 특히 철쇄설치설이 정설처럼 굳어진 데는 13척 대 330척의 대결에서 절대 열세한 쪽이 대승을 거둔 요인을 그동안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분석하지 못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했습니다.

그렇지만 명량해전의 승리는 사료가치로 충분한 기록물 등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임 대령은 명량해전의 승리 요인으로 천자 지자 황자 등 총통으로 무장한 조선 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의 막강한 전투력과 이순신의 뛰어난 병법 구사,그리고 리더십을 꼽았습니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발발 37년 전인 명종 10년 건조된 전투함으로 조선수군이 애초부터 등선육박전술(적의 함선에 기어올라가 육박전을 벌임)에 능한 왜 수군의 전술을 무력화할 목적(갑판에 판자를 갖고 네모난 집모양의 상장을 설치해 왜 수군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함)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주력선의 3배정도나 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전투를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승선인원은 150명 이라고 하고요.(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하루전에 건조와 최종 시험을 마쳤다는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형태의 거북선은 승선인원이 120명이라고 함)

함선 수에서 열위에 있던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탐망선을 이용해 적의 동태를 치밀하게 감시하며 계속 도망을 다니면서 싸울 장소로 명량의 좁은 물목을 택한 이순신의 전략도 승리요인으로 임 대령은 지적했습니다.

이순신은 우세한 왜 수군함대를 좁은 물목에 가둬 놓고 조선 수군으로 하여금 해협입구에다 포진시켰다고 합니다.이 곳을 빠져 나오는 선두 함선을 집중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하고요.

이는 외나무다리에서 홀로 수십명을 대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겁니다.  

이순신의 도망가는 전략에 말려든 왜 수군은 당초 어란포에 집결한 330척의 함선을 동원하지 못하고 명량해전에선 133척만이 조선 수군을 공격하는데 그쳤다는 것입니다.

이 133척 마저도 조류가 세고 좁은 물목에서는 31척만이 해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당초 1대 30의 대결을 1대 3으로 줄여 붙어볼 만한 상황을 이순신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순신은 해전이 벌어지자 마자 적선의 지휘함(일본장수 마사시)에 총통을 집중적으로 퍼부어 격파시키고 마사시를 죽음으로 몰고간 뒤 그의 목을 베어들어 조선수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방식으로 결국 승리를 가져왔다는 얘깁니다.

임 대령은 "이순신은 사실적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며 민족의 영웅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며 "과거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요소들을 통해 이뤄진 어설픈 영웅화 작업이 되레 그 위대성을 폄훼한 것은 아닌 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순신, 명량해전, 철쇄, 임원빈 대령, 김명민, 베토벤 바이러스, 불멸의 이순신
posted at 2008/11/13 14:17:00 댓글(258)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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