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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경, 국내 첫 외국인 대학총장으로 앞선2004년에 취임한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의 연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로버트 러플린 <사진=한국경제신문>
러플린 총장의 재선임을 결정할 이사회(2006년 3월 28일)를 앞두고 KAIST 교수진의 80%가 연임 재계약을 반대한다고 서명해 큰 파문이 일었다.
러플린 총장은 부임 당시 2002년 월드컵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보이며 한국축구를 세계 4강으로 이끈 히딩크 감독에 비유되면서 과학기술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위기에 빠진 한국 과학기술을 부흥시켜줄 '선장'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서 였다.
이런 기대치는 그가 세계 최고 이공계 대학인 MIT 교수 출신이고 노벨 물리학상을 탄 세계적 명성의 과학자라는 절대적 카리스마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러플린은 1기 재임기간 끝에 휘하에 있던 다수의 교수들로부터 "오만과 독선으로 똘똘뭉친 리드십 없는 총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그쳤다.
교수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러플린이 행정 경험이 전혀 없어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해 지지를 받지 못했고, 국립대학인 KAIST를 사립대학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에 나가 "한국은 일본을 따라가는데 한참 멀었다"고 발언하는 등 KAIST와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그의 연임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교수들은 특히 APEC(아태경제협의체)에 선보인 아인슈타인 얼굴을 한 휴먼로봇을 만든 KAIST 오준호 교수에 대해 러플린이 "일본 것 배낀 것 아닌가"하는 식으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비난했다.
교수들의 이런 주장을 보면 당시 러플린은 형편없는 지도자로 연임이 절대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이런 측면에서 과학계 히딩크 신화는 기대난이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러나 러플린에 대한 평가는 직접적인 관련 당사자들인 대학교수들과 그를 임명한 정부 등 대학 외부의 인사들 사이에 엇갈림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교수들의 연임반대 논리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라고 비판을 했기 때문이다.한 관계자는 "러플린의 연임반대에서 과학자들의 편협성 마저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러플린은 KAIST 교수들에 대한 평가를 위해 자신과 교수들이 1대1로 인터뷰를 하는 식의 방법을 새로이 제시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이 평가방식이 교수들의 집단 반발을 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외부 인사들은 KAIST 교수들이 러플린의 이 평가방식에 대해 '독선적'이라고 비판한다면 그것이라말로 교수들의 집단 이기주의와 보수주의의 표본이라고 반박했다.
그저 기존의 관행처럼 돼온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평가를 받겠다는 교수들의 의식에 되레 문제가 있다는 게 외부인사들의 지적이었다.
또 러플린이 재임기간 중 이공계 대학에 경영학을 필수로 만들어 기업들의 수요에 맞춘 교육방식을 도입하는 등 일련의 개혁은 국내 대학 현실에 상당히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러플린의 명성에 따라 KAIST가 글로벌화 되는 등 공적도 결코 한마디로 폄하될 수 없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러플린은 결국 연임에 실패하고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당시 러플린 연임 반대 논란을 보면서 '개혁'이 얼마나 험난한 과정인가를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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