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간만에 취재했던 얘기를 한줄 쓰고 갑니다.
 엊그제 삼성생명 회장인 이수빈 회장 모친 상가에 다녀왔습니다.이수빈 회장은 1939년생으로 78년 제일모직 사장이 됐으니 삼성그룹에서 CEO만 30년 넘게 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삼성그룹으로 출입처를 바꾸니 증권을 담당할때보다 가야할 데가 많아졌는데 그중 하나가 상가입니다.**
 어찌됐건 KTX를 타고 상가에 내려갈때는 가서 조문 오는 삼성 계열사 사장들 인터뷰해서 뭔가 기사를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경북대 병원에 도착해 헌화를 한 후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자들끼리 몇마디 하고 있으니 상주인 이수빈 회장이 자리로 오더군요.이 회장은 “어떤 목적으로 오셨는지는 모르지만 제 상가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삿말을 했습니다.
 정곡을 찌른거지요.기자들이 온 것은 조문이 목적이 아니라 기삿거리를 찾아온것을 알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얘기였습니다.온화한 표정에는 진심이 담긴 듯 했습니다.누군가는 그건 진심이라기 보다 내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마음이 느껴지는 걸 어찌하겠습니까.
 한두시간쯤 흘렀을까.삼성그룹 사장들이 몇명 왔다간 후 기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의 분위기가 한산해지자 이 회장이 다시 테이블을 찾았습니다.그리고는 말했습니다.“제가 그래도 술을 한잔 드리는 게 예의인거 같습니다.술을 많이 할수 없어 다는 못드리고 몇분께만 드리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현재 삼성에서 최고의 직위를 갖고 있는 사람같지 않은 편안함이 배어있는 말투였습니다.(참고로 이건희 회장 사퇴후 삼성그룹내에서는 회장직함을 가진 사람은 이 회장밖에 없습니다)
 고참 기자 두명과 술한잔씩 주고받은 후 “그래도 이렇게만 드리고 가는게 왠지...”라면서 나머지 10여명의 기자들 전부와 한잔씩 주고받은 후 자리에 동석했던 홍보실 직원들에게도 잔을 권한후 자리를 떴습니다.
 기자들은 그 온화함과 배려에 마음이 좀 푸근해짐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다음날 아침.다시 10여명의 기자들은 상가로 몰려갔습니다.목적은 전날과 같이 한건이었겠지요.
 좀 앉아있다보니 이학수 고문(사실상 삼성의 최고실세로 불리는 사람이지요)이 내려왔습니다.기자들은 거물의 등장에 긴장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이 고문이 자리를 잡고 앉으니 기자들은 그 자리로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눈만 굴리고 있는데 이수빈 회장이 다시 나섰습니다.
 “이 실장(이학수씨가 비서실장을 오래했음) 팬들이 이렇게 많으니 먼저 말씀들 나누시지요”라며 기자들과 이학수 고문의 어색한 조우를 편하게 만들어주고 자리를 비켜줬습니다.기자들에 대한 배려를 또한번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이 회장이 그 테이블로 오더니 “이제 상주하고 얘기할 시간을 좀 주시죠”라고 말했습니다.기자들은 그래도 이학수 고문하고 더 얘기하고 싶었겠지요.하지만 그렇게 우길수 기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조용히 자리를 비켜줬습니다.그만큼 이수빈 회장의 배려를 충분히 느꼈던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상가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눈을 감으니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저런 온화한 미소와 품성으로 경쟁이 치열하다던 삼성에서 어떻게 30년간 CEO를 할수 있었을까.이 물음에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그래서 30년간 CEO를 할수 있었을 겁니다”
 내공의 소산인지,정말 마음이 고운건지 여전히 의문입니다.하지만 느낀대로 생각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어찌됐건 이번 상가취재에서는 한건의 기사도 제대로 못썼습니다.하지만 “삼성은 딱딱하다,뭐에 찔려도 피도 안나올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이수빈 회장때문에 한번에 무너진 상가 취재였습니다.그 무너짐이 기분이 나쁘지 않은.물론 그 이면에는 왜 이런 이미지가 다른 ‘삼성(?)’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생겼지만.
 이 얘기를 후배 녀석에게 했더니 “형 삼성 출입하더니 세뇌된 거 아니야”라고 묻더군요.순간 진짜 세뇌되어 가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거야”라고 답해주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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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12 19:52 | 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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