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폭락,미네르바(?) 구속적부심 기각,2008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 사퇴,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분양가 상한제 폐지,일제고사 거부한 중학교 교장 중징계”

오늘의 주요 뉴스들입니다.이 뉴스들을 보며 엉뚱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한국이란 나라의 총자산은 무엇으로 구성돼 있고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오늘 주식회사 한국의 가치는 얼마나 떨어졌을까?”

자산가치부터 얘기하면 주식시장 시가총액,전국의 부동산,채권,현금,상품은 계량화가 가능하니 계산이 나올듯합니다.또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 높고 생존능력 뛰어난 국민들은 우리가 가진 자산중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요.

계량화가 가능한 자산이 감소하는 충격은 금방 느낍니다.

주가가 하락하는 것은 매일 잔고가 줄어드는 걸로 표시되고,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305호가 5억에 팔렸대”라는 동네 아줌마들의 말한마디로 알수 있는것이겠지요.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할인점에서 물건을 몇개 사본 후 “그돈으로 진짜 살거 없더라”라는 말로 금방 표현됩니다.

이에대한 대응은 비교적 간단합니다.낮은 가격에 팔거나 소비를 줄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산은 사라지고 있어도 쉽게 느끼지 못하거나 느껴도 그걸 어떻게 할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물론 원상회복은 더더욱 험한 과정을 거치겠지요.

작년과 올해 한국을 주식회사로 보면 유형자산뿐 아니라 아닌 무형자산을 너무 많이 잃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수 없습니다.주가폭락의 이유가 단순히 기업실적 악화,금융위기 때문만은 아닐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그래서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국민의 대리인인 대통령과 공무원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할때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자유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그런 자유를 가진 국민들의 생각이 다를때 이를 조정하고 타협을 통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가치는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제3세계 국가중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동시에 달성한 국민적 자부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또 얼마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인지도 궁급합니다.

여기에 무형의 자산을 갉아먹고 있는 CEO에 대한 불신은 ‘주식회사 한국’의 가치를 더 떨어지게 만들고 있는게 분명해 보입니다.

이정도도 견디기 힘든데 한국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작년같은 어려운 시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포스코를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구택 회장이 임기 1년을 남겨놓고 사퇴한 것도 한국사회(?)가 스스로 자산파괴 행위를 한 것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기업 민영화의 가장 성공적 모델을 스스로 파괴한 행위이자 시장경제 파괴행위겠지요.

 한나라당이 강남3구를 투기지역에서 해제하고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다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기업(한국)으로치면 재무구조(부동산가격)를 안정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까지 풀어버림으로써 다시 부채(거품)를 마구 일으킬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하며 미래가치를 갉아먹는 요인이라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정책은 삽질이 난무하는 한반도를 만들어 보겠다는 대통령의 야심찬 목표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겠지요.이건 아마도 미래를 위해 IT,바이오에 투자해야 하는 기업의 경영자가 머리가 모자라 대안을 못찾고 수십년전에 해본적이 있는 가발,양말,성냥 제조업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거 아닌가 합니다.이런 기업을 본 투자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투자자들이 떠나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며 일제고사 대신 현장체험학습을 하게 한 교장선생님이 3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건 무엇을 의미할까.그것도 학부모 90%가 동의한 일이라고 하지요.

고교 평준화가 학교선택권을 박탈하고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평준화를 없애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이번에는 전국의 학생을 획일적 평가에 따라 등수대로 줄세우는 시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난리를 부리는 셈이지요.이렇게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잣대와 기준을 마구 바꿔가면서 교육의 가치까지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물론 이 대목은 기업으로치면 미래 인재에 대한 투자를 엉뚱한 방향으로 하고 있다는데까지 가게되고 그런 기업은 더 이상 볼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될수도 있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요.

어찌됐건 작년과 올해 한국사회는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40% 떨어진 것보다 더 큰 자산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유,민주주의,공동체의식,약자에대한배려,다양성,기업의자율성,성장성,가치,도덕성,미래지향성,평화는 물론 시장경제의 가치까지도 어느 것 하나 훼손되지 않은 게 없다면 과한 얘기일까요.

 주식회사 한국의 가치가 어줍지 않은 실용이라는 말 한마디에 무너져가고 있음을 느낀 참담한 하루가 지나갑니다.

 졸려서 횡설수설 했네요.

 아마도 오늘 가장 기분좋은 뉴스는 제대로 된 공룡화석이 발견된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잠깐이나마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그럼 무엇이 생겼었을까,공룡이 헤엄치고 익룡이 날아다니고...”라는 노래를 떠올리면서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오래전의 느낌으로 돌아가게 해줬기 때문이겠지요.   

  

새해에는 희망과 계획을 말하려 했는데 이왕 쓰던거 마저 쓰고 가야겠다.

 연말에는 항상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나온다.작년에도 그랬다.올해도 마찬가지이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한국사회가 그만큼 다이나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사가 원래 일의 연속일런지도 모른다.
 며칠전 누군가 나에게 올해(지금보면 벌써 작년이다)의 뉴스로 꼽을 수 있는게 뭐냐고 물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났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와 그 여파는 현재 진행형이고,광우병파동과 촛불집회가 던져준 수많은 얘깃거리도 기억에 남을 아니 기억해야 할 뉴스다.그리고 이어진 집단지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고민도 그렇고,이 과정에서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위기땜방 능력도 곱씹을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였다.대운하를 둘러싼 장난질도 그렇고.
 노무현 정부시절 주요인사들이 줄줄이 철창가는 모습도 그랬고,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가 귀여울 정도로 자기사람 챙기기에 몰두하는 이명박 정부의 조폭인사(조폭들도 능력을 중시할텐데 이건 뭐..)도 뉴스거리였다.
 C&그룹의 부도로 시작된 기업도산의 공포도,미국식 자본주의의 몰락도 주요 뉴스의 한부분을 차지하기에 손색이 없다.
 희망적인 뉴스라고는 김연아하고 박태환밖에 없었고 그나마 올림픽 야구에서 금메달딴게 위안이었을까.


 그 와중에 내가 발견한 또하나의 뉴스거리(?)는 386세대의 몰락이다.
 386은 97년 이후 세대의 대명사였다.한국사회에서 386만큼 특정세대가 오랫동안 정치사회적인 아젠다가 됐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몸바쳤던 세대가 시대의 중추로 부상했고 정치권에서 그 부상은 절정을 이뤘다.노무현의 대통령 당선과 386이 탄핵국면에서 대거 국회에 진출한 때가 주가로 보면 두번의 역사적 고점쯤 됐을까.
 하지만 지난 4월 총선에서 이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마치 세상은 그들에게 “니들은 끝났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실제로 그랬다.국민들은 386세대에 대한 기대가 컸다.사회를 개혁하고 정치를 바꾸고 경제를 일구기를 바랬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이들에 대한 색깔입히기-빨간 색-에 열중했던 언론과 주류사회의 노력도 높이살만 하다.).하지만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어찌됐건 결론은 간단했다.이제 국민들에게 386세대는 (좀 세게 말하면) 무능하고 분열을 일삼는 과거지향적인 집단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역사와 정의앞에 자기 자신을 과감히 내던졌던 용기있는 그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물론 이것도 혼자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은 초심을 잃었다는 점이다.사회에 대한 문제인식의 출발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이다.
 체제에서 소외되고 집안도 볼품없어 자존감까지 잃은 사람들.이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해 그들은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깨닫게 됐고 이를 혁파하기 위해 나섰다.80년대 상황이리라.
 아니면 선배들과의 대화(일명 의식화)에서 사회가 철저히 한쪽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뛰어들었던간에.
 어찌됐던 그들의 목적은 (단순화하면) 사회를 민주화함으로써 소외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그래서 그들중 일부는 학생운동을 한 후 시민운동을 하거나 노동운동 현장에 남아있었다.또 일부는 국회보좌관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정치일선으로 뛰어들었다.하지만 대부분의 386세대들은 최루탄 연기뿌연 캠퍼스를 기억에 새기고 사회로 진출했다.일반 직장인이 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삼는 386세대는 주로 정치권에 있는 이들이다.왜냐하면 이들은 그 세대의 상징이었고 나아가 국민의 대리인임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다시 얘기는 초심으로 돌아간다.
 단도직입적으로 “도대체 당신들이 국민을 위해 한일이 뭐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특히 2002년말 노무현을 대통령 자리에 앉혀주고 2004년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몰아주며 당신들을 국회로 보내준 국민들에게 무엇을 돌려줬는가 하는 것이다.
 할말도 꽤 있을 것이다.이러저러한 노력을 했다고.
 하지만 인식과 싸우지 말라는 말이 있다.국민들은 그들에게 별로 받은 것이 없다.받은 것이 있다면 과연 지금처럼 차갑게 그들을 맞을까.요즘 나오는 장기불황(민주당 지지율이 10% 근처를 계속 왔다갔다는 하는 것)의 원인도 다 그런데서 오는 게 아닐까.
 반면 한나라당은 어떤가.
 오세훈시장은 법이라도 하나 만들었다.오세훈법을 만들어 괜찮은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낼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물론 오 시장은 세간의 평가보다 훨씬 덜 똑똑한데다 디자인 어쩌고 떠들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자들 간판값까지 내게 만드는 뻘짓을 하면서도 대통령을 꿈꾸고 있을 정도다.
 홍준표의원은 요즘은 맛이 가보이지만 그래도 한때 반값아파트란 말이라도 만들어서 한시절이나마 서민들에게 위안을 주려했다.지금도 그 아이디어의 아류들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하긴 국민을 위해 정치한다는 인간도 그러고 보니 몇명 생각도 안난다.
 물론 386세대가 과거정부 시절 사학법 만든 것 등 굳이 찾자면 없는 것도 아니다.헌데 그정도로 변명거리가 될까.
 그 정도면 국민들에게 돌려줬다고 말할수 있는 수준일까.

 아니다.국민들이 실제로 그들로 인해 내 삶이 뭔가 변했다고 느끼는 것은 별로 없었다.있었다면 그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도 책임의 한부분이다.더 나아가 10년간 만든 것들 1년만에 싹 허물어지는데 저항조차 못할 수준으로 전락한 건 또 누구책임인가.
 두번째 생각나는 것은 분열주의다.열린우리당은 민주당에서 분리돼 나왔다.나중에 어쩔수 없이 합쳐졌지만 그 대가는 너무 컸다.또 그들의 분열주의는 사실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심했다.
 똑같이 노무현을 위해 일했지만 어떤이는 청와대에 서너번씩 들락날락(취업)했고 어떤이는 청와대 문턱도 못넘었다.로열티가 검증되지 않으면 같은 편이라도 나눠놓고 생각했다.한국사회에서 진보의 비율은 뻔하다.헌데 그걸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고 편가르기를 했으니 정권 5년을 지켜낸게 신기할 정도다.
 신해철이가 말한대로 “박정희 시절이 아니라 전두환때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에 이렇다할만한 저항도 못하는 수준이 되고나니 그때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닌듯하다.내가 아는 한 정치 컨설턴트가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민주당쪽에서 보자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근데 가보면 함께 보면 되는데 꼭 따로 보자고 해요”.
 이건 세번째 문제로 이어진다.그들은 두번의 정권을 거치면서 거만해졌다.안희정,이광재가 노무현 대통령 만드는 걸 보니 다들 간이 커진 모양이다.모두 자기들 중심으로 뭔가를 하려 하고 있는 듯 하다.여기도 모임,저기도 모임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단일한 노선도 없고,인물도 못 키우고,세력도 없어진 것 아닌가.심지어 보스도 없다.뭘 하자는 건지.
 마지막으로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일반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부족이다.상당수 386정치인들은 일반 직장인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물론 그들 삶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이는 정치에서는 근본적인 결함이 되고 만다.마치 정몽준 의원께서 버스요금을 70원쯤 하냐고 물어본 것과 차원은 다른데 묘한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그러니 운동권에서 항상 외쳤던 ‘대중들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한...’이라는 원칙을 잃고 정치인과 정파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한 정치를 할수 밖에 없다.
 이런 일반인들의 삶과의 괴리는 갈팡질팡하는 경제정책으로 나타났다.그러니 “경제는 전문가에 맡기고....” 어쩌고 하는 헛소리가 노무현 정부 초기부터 터져나온 것 아닌가.한마디로 시대에 뒤쳐진 것이다.
 경제가 모든 것을 말하는 시대가 됐건만 그제서야 전문가 모으고 앉아있으니 할말 다한 것 아닌가.경제대통령(실제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MB가 대통령이 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제라도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거리로 나왔던 그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대안을 갖춘 전문가 집단으로 변신하라고 하면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정치의 생명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일진데 그길은 경제에 있다.아니 대안에 있다.주변을 돌아보면 국가보안법 폐지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대는 이미 거대한 정치적 구호에 짜증을 내고 있다.물론 하도 여당이 하는짓이 황당하니 싸울수 밖에 없다는 말도 이해한다.국민의 지지가 두텁지 않으니 싸움도 잘 안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다시 사람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때 강금실 장관이 독거노인을 찾아가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그는 실제로 그들의 처지를 보며 무방비 상태로 눈물을 흘렸다.거짓눈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과연 정치권 386세대들은 그럼 마음이 남아있는 것일까.그런 상황에 닥치면 ‘사회 구조적 문제’를 떠들며 ‘온정주의에 치우쳐서는 개혁을 제대로 할수 없다’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까.걱정되는 한해를 보냈다.
 이걸 보는 내 친구들이 나한테 넌 뭐했냐고 물어보면...그것도 참 나를 힘들게 하는 질문이 되겠군.
 

 후배와 통화를 했다.블로그글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

 그래서 쓰다만 일기라도 올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육체적 지적 게으름을 누가 데려가줬으면....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은 두가지였다.
 반공 그리고 탈가난
 박정희는 이를 잘살아보세라는 슬로건으로 만들었다.
 결국 산업화를 틀로서 한국사회는 가난을 넘어섰다.
 박정희 사망후 한국사회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
 배고픔을 해결한 후 사람들이 찾은 것은 자유였다.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와 사람에 대한 저항.
 자유의 범주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그들을 하나로 엮어준 슬로건은 민주주의였다.
 80년대 시대정신은 민주주의였다.
 그 하나의 단어로 모든 것은 해석 가능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반공을 넘어섰다.
 이 열망은 첫 직선제 선거인 87년 대통령 선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권력은 그렇게 쉽게 넘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대선후에도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남아있었다.
 90년대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한 항해는 계속됐다.
 민주주의의 개념은 정치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았다.
 사회,경제의 민주주의 개념을 동반했다.
 80년대 독재체제에 어울리는 재벌의 경제지배 구조에도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97년 DJ 당선으로 형식적 정치적 민주주의는 완성됐다.
 하지만 사회와 경제의 민주주주의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것 개혁이라는 시대정신으로 표현됐다.
 개혁,구시대적 시스템의 파괴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사회는 세분화되면서 민주주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경제 민주주주의는 아이러니하게 외환위기를 통해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재벌중심의 경제체제는 한국의 타고난 운명이었지만 견제와 균형이라는 아이디어가 쏠림을 막았다.
 97년이후 2002년까지의 시기는 개혁과 머니제일주의가 공존하는 시기였다.
 노무현의 당선으로 정치적 개혁은 완성을 보는듯했다.
 대중들은 개혁의 깃발을 내려야 할때라고 판단했다.개혁은 원래 진보의 가치였으니까.
 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이 개혁이라는 도구를 타고 떠난 자리는 돈의 차지였다.
 돈..그리고 IT 글로벌 디지털이 새로운 시대의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2002년 이후 한국사회는 돈을 둘러싼 투쟁의 장으로 변모했다.
 화폐,사회적인 재원의 유통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목적으로 변한 셈이다.
 돈이 시대정신의 자리를 차지했다면 과한 말일까.
 노무현은 돈을 나누자고 했고 한나라당은 싫다고 했다.
 복지,세금,환경,균형발전 모두 돈을 둘러싼 투쟁이었다.
 한편 금융은 사회적 기업의 발전이라는 가치는 내평개쳤다.
 오직 자신의 이윤을 위해 움직일뿐이었다.
 기업들은 원래 목적이 돈이니까 두말할 것도 없다.
 돈이 많이 몰리는 곳에 인재가 꼬이는 법.
 대학은 지방의 작은 의대,약대가 서울대 공대 커트라인을 넘어섰다.
 어린애들의 꿈도 돈을 따라 변했다.
 소방관,경찰,선생님이었던 꿈은 변호사,의사로 바뀌었다.
 선생님도 물론 있지만 어른대이 보는 선생님은 안정적 돈벌이 수단이었다.
 직업의 안정이 보장되고 높은 연봉을 받는 공기업에는 인재들이 넘쳐난다.
 돈이 시대정신이 된 배경에는 한국적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결국 나를 지켜줄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돈이었다.
 외환위기가 우리에게 알려준 가슴아픈 교훈이었다.
 노무현은 그 시대정신에 정면으로 맞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보호와 비전이라고.
 그게 일부의 돈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부를 창출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결과는 뻔했다.
 시대정신에 맞섰던 사람들은 대부분 남아나지 못했다.
 돈의 시대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왠지 돈 많이 벌수 있게 해줄 것 같다는 생각에 국민들은 배팅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만한 건 아님은 불과 몇달 안가서 드러났다.
 돈이 돈을 벌는 것임을.
 그런 시대가 지나고 있다.아니 앞으로도 당분간 돈이 정신을 지배할 것이다.
 하지만 틈이 보이는 듯하다.
 돈 이외의 무언가가 사람들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하는 시기가 오지는 않을까.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되새김....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앞만 보고 달려가다 문득 뒤에 있는 동료를 돌아본 순간 느끼는 미안함처럼.
 그런데 앞은 잘 안보인다.누군가 나에게 지혜를 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