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짠했다. 마지막에 DJ가 한 말 때문이다.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 꼭 한번 기회를 주십시요" 라고 했다. 벌써 대권 4수째였다.

 

내가 처음으로 투표권을 얻은 게 이 때었다. DJ를 찍고 군대를 갔다. 개표방송을 보면서 친구와 맥주를 마셨다. 투표일이 12월 19일이었는데 23일이 입대였다. 환송식까지 겸했다.

 

그로부터 10년전에 이미 DJ를 봤다. 1987년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여수에 유세를 온 DJ는 무개차(無蓋車)를 타고 있었다. 차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엄청난 인파였다.

 

엄마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른들 틈으로 DJ가 손을 흔드는게 살짝 보였다. 덩치에 비해 팔이 짧아 보였다.  

 

사람들은 김대중을 연호했다. 그렇게 큰 소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우뢰와 같았다.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엄청난 열기였다. 세상을 뒤집어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오늘 DJ가 위독하다고 한다. 연명치료가 없다면 더 살기 힘들단다. 다시 마음이 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