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동 천사. 보름쯤 전에 누군가 이런 제목의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더군요. 저도 봤습니다. 제 사촌동생 얘기라서 유심히 봤습니다. 언제부턴가 저도 동생을 천사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 생각도 비슷했던가 봅니다.
그런데 저는 동영상 만든 분들이 모르는 걸 하나 알고 있습니다. 제 동생이 원래 악마였다는 사실입니다. 손톱 만큼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누군가 손가락질하면 팔 걷어부치고 멱살잡이를 해야 분이 풀리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아마 4,5년 전이었을 겁니다.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여동생 전화였습니다. “오빠 나 어떡해~흐흐흐. 못살겠어~어어어~.” 술을 한 잔 했는지 혀가 많이 꼬부라졌더군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아마 한 시간 이상 동생의 하소연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너무도 딱해 마음이 아팠지만 딱히 해줄 말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업보가 한 여자 인생을 40년 이상 짓누른단 말인가. 동생한테 해줄 말을 찾기 위해 동생 입장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 동생이 살아온 길을 더듬어 봤습니다.
동생은 코흘리개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제 사촌동생이 됐지요. 작은어머니는 “계모”란 말을 듣기 싫어 데려온 자식에게 혹독하게 대했습니다. 이 바람에 서강동 동생은 손아래 동생보다 늦게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궂은 일은 죄다 서강동 동생 몫이었습니다.
결혼생활도 순탄치 못했습니다. 동생 사생활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한데, 한 마디로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도 대학 다니는 자식들을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안에는 우환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4,5년 전에는 동생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오빠(저의 사촌형)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심야에 동생 전화를 받곤 하던 때가 이 무렵입니다. 의지할 곳 없는 40대 돈 없는 여자. 동생은 식당일로 끼니를 벌었습니다. 주방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렸을 때도 혼자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그렇게 돈을 모아 허름한 식당을 마련했습니다. 서강대교 북단에 있는 정남진굴구이포차가 바로 그곳입니다.
서강동 천사 동영상을 보고 나니 동생에게 해줬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욕심 버려라. 움켜쥐지 말고 놓아라. 쥐고 있으면 너만 힘들어진다. 달라고 하면 줘라. 안주겠다고 앙탈부리지 말고 베풀어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형제자매라고 생각해라. 이 오빠라고 생각하며 베풀어라. 그러면 다 풀릴 것이다.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닙니다. 저 역시 이런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생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베풀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식당에서 번 돈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동네 노인들을 대접한다고 하더군요. 몇 푼이나 번다고 집도 없는 가난뱅이가….
그래서였던가 봅니다. 동생 표정이 갈수록 밝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생은 원래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선친(동생한테는 큰아버지)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 달 동안 말벗이 돼 주고 마지막 목욕을 시켜준 사람도 이 동생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베풀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광파리>
'천사' 사촌동생께서 늘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남진 굴구이포차. 정감이 가는 이름입니다.
오히려 갖지 않아도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많은 듯 합니다.
그런 분들이 더욱 행복했으면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