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모네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문화코드가 맞는 또래모임이 있는데, 5년전부터 작품감상을 하고있고 그 일환으로 다녀왔다.
학교때는 미술작품을 공부로써 느끼고 대했기때문에 미술작품 감상을 여유있게 못했던것같다.
한국아이들은 그래서 감상적인 부분의 터치가 꽤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고 생각된다.
몇년전에 유럽기행을 갔을때도 느꼈지만
걔네들에게서 느껴지는 여유는 우리 한국사람들의 허리업문화와 비교해 엄청 부러웠던것으로 기억된다.
-- 모네같은 대화가가 나오려면 우리나라도 어린아이때부터 문화를 접하는 방법이 바꿔야한다는 생각이든다.
시도를 하다가도 공부할 시기가되면 하던 재능도 접어야하는 우리의 교육문화가 그 발목을 잡는다.
모네감상을 하려다가 이게 무신...
각설하고
11시에 큐레이터의 설명으로 작품을 보기시작했다.
-- 생각나는 말들을 정리해볼까한다.
** 모네는 1840년에 태어나 1926년에 죽었다.
말년에는 백내장을 앓았고, 의사의 권유로 수술받을것을 미루다 나중에는 수술을 받았다고함.
-- 말년의 작품은 추상적이고 붉은계통의 색으로 채색한 것으로보아 백내장으로 인해 보이는것에 차이가 나서일것이라는말-- 요즘 의학적으로 판명된것임
1) 인상주의 라는 말은 모네의 인상이란말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한대서 기인한것이었다.
2) 물을 좋아해서 작품에 물이 없는것이 별루 없을 정도이고, 언제나 물을 작품의 앞쪽에 배치 한 것이 특징이다.
3) 물을 그냥 표현한것이 아니고, 물에 비친 빛을 표현하고 자했다.
4) 첫부인 까미유가 32살의 나이에 요절하므로써 첫결혼은 아픔이 많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5) 둘째부인은 애가 6명이있었던 사람으로 사별을한후, 같이 살았다.그래서 모네식구와 둘째부인가족과 합해서 대식구였다.-- 경제적으로는 훨씬 좋아진 상태였단다.
-- 이때 40대부터 죽을때까지 40여년을 살았던 지베르니에서 자신의 정원을 가꾸고
그 정원의 연못 모습등을 담은 작품이 아주 많았다.
** 우리 모임은 5년전에 유럽여행중 모네의 생가인 지베르니를 다녀왔었다.
그래서 더 좋았고, 그때의 기억들이 더욱 새록새록이었다.
지베르니에서 모네의 정서를 느끼고 왔지만, 다소 섭섭한 것은 이 사람이 일본의 작품들을
사 모았고, 그 그림으로 방하나를 가득 메꾸고있었다는 점이다.
-- 예술에 그게 무슨 말이겟나마는 한국의 작품들을 대했더라면 혹 한국그림을 더 좋아하지 않
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 모네가 입체를 떠난 2차원의 세계를 동경했었을때 바로 자기가 찾던 그런 작품이었다네 --
일본그림(유끼오에)이
죽을때까지 작품활동을 했고, 2000여점이 넘는 작품이 있다고함.
-- 창작활동은 그래서 좋은것 같다. 고뇌도 많지만....
** 작품수도 많았고,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있었다.
푸근한 느낌으로 모네의 작품에 빠져 참 행복한 하루를 보낸것 같다.
유모차를 끌고 온 새댁(?)들도 있었고, 유치원아이들, 초등아이들등.
변해가는 관람자들의 다양한 모습에서 밝은 우리의 미래를 느꼈다.
이젠 제발 그만 쪼이는 문화에서 여유롭게 느낄 수 있는 문화적 풍토가 정착되었으면 조케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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