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때 ‘운이 따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정치적 위기때마다 악재를 덮고도 남을 많한 대형 사고가 국내외에서 터지는 바람에 고비 고비를 무난히 넘긴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당내 대선 후보 경선은 물론 본선 “과정에서 시종 도덕성 시비에 시달렸다.당내 경선과정에선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측의 BBK의혹 제기로 곤욕을 치렀다.
 경선 판 자체가 도덕성 시비로 옮겨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이 때 터진 게 다름아닌 아프가니스탄 피납사건이다.

 아프가니스탄 선교에 나섰던 기독교인 23명이 아프칸 반군에 의해 납치된 것이다.집단적인 피납은 초유의 사건이었다.
 온통 국민적 관심은 피랍자들의 안전 귀환 여부에 쏠렸다.경선은 묻혀버렸다.이 대통령을 둘러싼 도덕성 시비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간발의 표차로 박 후보를 제치고 대선후보가 되는데 성공했다.
 본선도 그 어느 대선보다 쉬웠다.

 그렇지 않아도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터라 야당의 BBK 총공세는 크게 먹히지 않는 분위기였으나 막판 이 후보의 육성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때 불거진 게 태안 기름 유출사건이다.대선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불거진 태안기름 유출사건은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켰고 이 대통령의 승리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올해 들어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어려움에 직면했다.‘고소영’논란을 불러온 조각과 촛불집회로 이어진 한미 쇠고기 협상으로 지지율은 급락했다.
 취임 3개월만에 과거 대통령의 임기말처럼 힘이 쭉 빠졌다.

 촛불집회는 꺼지지 않을 것 같은 기세였다.이 와중에 북한의 냉각탑 폭파라는 대형이슈가 나왔다.특히 금강산에서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에 의해 피격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분명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건이지만 워낙 대형이슈라 촛불은 일정부분 가려졌다.
 어째튼 지난해 경선과정부터 올 해까지 고비고비마다 대형 사건이 터졌고 그 중 일부는 이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에 행운이 따른다는 얘기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대통령에 당선된 것 자체가 크나큰 행운이라는 점에서 크게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통령은 행운에 기댈 수는 없다.기대서도 안된다.운은 운일 뿐이다.대통령은 실력으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국민의 냉정한 평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역대 정권은 하나의 거울이 될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힘이 막 빠지기 시작했던 95년 말 야당의 반대로 노동법 처리가 어려워지자 여당에 사실상 날치기 처리를 지시했다.

 새벽에 작전에 따라 대선후보들도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탔다.작전은 멋있게 성공했다.
 노동법은 야당이 잠든 가운데 여당에 의해 새벽에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김 전 대통령은 손벽을 쳤다고 한다.말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데 대해 흐뭇했을 것이다.당 장약력이 여전하다는 생각을 했음직하다.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행운의 사나이로 여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레임덕을 앞당길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당이 강하게 반발했고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다.결국 노동법 날치기를 계기로 김 전 대통령은 레임덕의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과 함께 노벨평화상의 영예를 누렸지만 나중에 대북송금 사실이 밝혀져 두고두고 부담이 됐다.

 일부 측근은 옥살이를 해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은 불가능해보였다.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강력한 정치공세정도로 여겼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실밍감이 더해지면서 한순간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뀌었다.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쾌재를 불렀지만 환희가 눈물로 바뀌는데는 불과 며칠 걸리지 않았다.

 탄핵역풍이 거셌다.한달후 치러진 선거에서 탄핵세력의 후보들은 추풍낙엽이었다.50여석 목표였던 열린우리당은 졸지에 152석을 얻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찌그러졌다.

 정치는 동전의 양면이다.잠시의 웃음을 가져다준 호재가 금새 악재로 변하는 게 정치다.정치를 생물이라고 하는 이유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취임 5개월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처한 현주소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그렇다고 앞으로 희망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경제전망은 어둡기만 하다.북한과는 아예 대화채널조차 끊겼다. 대외 외교도 여기저기서 삐그덕 소리를 내고 있다.한마디로 총체적 위기다.
 경제대통령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건 다름아닌 경제다.

물가 주식 투자 소비 등 경제지표 어느것 하나 좋은 게 없다.고유가에 경기는 침체국면을 치닫고 있다.물가는 오름세다.스태크플에이션 얘기까지 나온다.

당초 7%로 잡았던 성장율 전망치가 4%대로 내려온지 이미 오래다.후반기 경제사정은 더 나쁘다.후반기 성장율은 3%초반으로 예상된다.

 유가 등 세계경제 여건에 따라서는 2%대로 밀릴수도 있다.이렇게 되면 올 4% 성장도 어렵게 된다.
 올해 경제는 이미 망쳤다.문제는 내년인데 내년 전망도 어둡긴 마찬가지다.국제 경제전문가들은 최소한 내년 중반까지 세계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내년 경제사정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경제가 어려워지면 국민생활도 힘들어 진다.주머니는 가벼워지는데 물가가 오르면 생활자체가 빡빡해질 수 밖에 없다.

 살기 힘들어지면 불만은 자연스레 정권으로 향하기 마련이다.경제를 생각해 이 대통령을 뽑았던 국민들로선 좌절감이 더 클 수 있다.

지지율을 만회하기는 커녕 민심이 더 멀어질 가능성도 없지않다.
 남북관계는 한마디로 최악이다.대화를 하자고 제의해도 북한은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아예 전통문을 수령조차 하지 않는다.쌀 등 인도적 지원을 위한 대화에도 일절 응하지 않는다.한마디로 우리 정부와는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이는 북한이 당장은 식량난에 허덕이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실제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상당량의 식량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미국쌀도 북한에 갔다.

 북한이 식량난에서 벗어났다면 남북간 경색국면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우리 정부로선 속수무책이다.
 미래지향적 실용외교를 추구했던 한일 외교관계는 출발부터 엉망이 돼 버렸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중학교 교과서에 기술하면서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9월 정상회담 취소얘기까지 나온다.한일관계는 또다시 원점으로 회귀한 셈이다.
 동맹관계 복원을 외치며 이명박 정부가 심혈을 기울였던 미국과의 관계도 꼬여있다.쇠고기 파동으로 신뢰에 금이 많이 간 상태다.

 미 백악관이 부시 대통령의 한국방문 일정을 일방 발표한 게 단적인 예다.

 외교적 결례임을 뻔이 알면서 일방발표한 것은 쇠고기 파동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곱지않은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야당은 “남북관계를 포함,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은 노선, 라인, 전략이 없는 3무(3無)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의 공세를 차치하고라도 지금의 상황은 최악이다.출구가 안보인다.

 이러다 취임초부터 20%지지율로 고전했던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9년 전 '옷로비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외화 밀반출 혐의로 구속된 대기업 회장 부인이 장관 부인을 통해 검찰총장 부인에게 수천만원대의 '옷로비'를 시도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IMF 외환위기의 깊은 그늘이 여전한 터에 불거진 이 사건은 등장인물(고관부인들)과 주제(고가의 밍크 코트)만으로도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민심은 금세 싸늘해졌다. 정권은 위기에 몰렸다. 정치권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의혹 해소를 위한 국정조사에 들어갔다. 한 달여 동안 온 나라는 소설 같은 얘기로 들썩였다. 결국 특검까지 갔다. 1년여 동안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옷로비 사건의 결말은 허무했다. 남편의 구명을 위해 대기업 회장 부인이 검찰총장 부인에게 고가의 옷을 선물하는 이른바 '옷로비'를 시도했으나 결국 돌려줬다는 게 전부다. '실패한 로비'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사회적 비용은 엄청났다.

이처럼 '아니면 말고식' 국정조사가 적지 않았다. 가깝게는 13대 국회(1988년) 이후만도 국조 요구가 70여회나 됐다. 국정조사가 야당의 대여 정치공세 수단으로 활용돼 온 탓이다. 이 중 실제 청문회가 열린 것은 20여회다.

1988년 5공 권력형 비리나 97년 한보사태,98년 IMF 환란 등을 대상으로 한 나름의 의미 있는 국조도 없지 않았지만 상당수는 정치공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기에 국조가 변변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채 의혹만 더 양산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20여 차례 국조 중 보고서 채택까지 이뤄진 경우는 6차례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조사과정에 여야 간 갈등이 빚어져 아예 조사를 마치지 못했거나 조사를 끝내고도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하는 등 파행으로 점철됐다는 얘기다. 국정조사가 끝날 때마다 국조무용론이 제기돼 온 배경이다.

국정조사는 제헌국회 때 만들어져 유신헌법으로 잠시 사라졌다 1980년에 부활돼 오늘에 이른다. 국조는 국정사안에 대한 각종 의혹을 규명할 수 있도록 국회에 부여한 헌법적 권한이다. 헌법 61조 1항은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정부의 독주와 잘못을 바로잡자는 게 근본취지다. 정쟁으로 얼룩졌던 과거 국조는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회가 14일부터 '쇠고기 국정조사'에 착수했다. 3년여 만이다. 여야는 다음 달 4일과 6일 청문회를 각각 개최키로 합의했지만 핵심인 증인채택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해온 민주당은 류우익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증인으로 부르겠다며 청와대를 정조준했고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시절 쇠고기 협상을 벌였던 전직 장관들을 지목하며 노무현 정권을 겨냥하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당리당략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청문회 무용론을 불러온 과거의 부실한 국조리스트에 이름을 올릴까 벌써부터 걱정되는 이유다. 지난 2개월간 온 나라를 혼란 속에 몰아넣었던 사안인 만큼 국민의 잣대로 청문회에 임해야 한다. 이번에도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국정조사 무용론을 넘어 국회를 해산하라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