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정가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사 한명을 꼽는다면 단연 낸시 펠로시다.
 그녀는 하원의장이다.여성 최초다.

 대통령이 유고되면 부통령 다음으로 승계권한을 갖는 막강한 자리다.
 낸시 펠로시는 리만브라더스 파산 등 미국이 사상초유의 금융위기에 빠졌을때 구제금융을 주도했다.

 당시 야당소속인 그는 국가위기앞에서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위기에 빠진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8000억달러 규모의 경부부양책의 의회통과를 주도한 것도 다름아닌 그녀였다.
 물론 지금은 정권교체로 여당이다.말그대로 오바마 대통령이 위기때마다 손을 내미는 사람이 바로 낸시 펠로시다.

 

   다섯아이 다 키우고 47세에 하원 출마

 

 낸시 펠로시의 삶은 한마디로 드라마틱하다.
 26세에 국회의원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달리 낸시 펠로시가 처음 연방하원 의원이 된 건 47세였다.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그녀는 대학졸업후 샌프란시스코의 투자은행가인 폴 펠로시와 결혼,아이를 다섯이나 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돌보아야 할 아이가 다섯명이쯤되면 누구나 마찬가지로 다른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정치는 더더욱 그렇다.낸시 펠로시도 정치를 하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다른 보통 주부처럼 그녀는 아이들을 키우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건 막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였다.거의 20여년간 가정생활에 충실했다는 의미다.
 열열한 민주당원이었던 그녀가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를 적극 지원한 게 인연이 됐다.

 캘리포니아 주 의원을 거쳐 하원의원이 된 건 47세였다.
 그것도 친하게 지내던 연방 하원의원이던 친구가 죽으면서 출마를 권유해서다.
 

   강력한 남성 후원자 없이 일군 성공


 여성으로서 낸시 펠로시가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 없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여성으로서 성공을 거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라는 남편을 두고 있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역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아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강력한 남성 후원자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펠로시의 부친도 볼티모어 시장과 하원의원을 지냈지만 낸시 펠로시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 일이었다.

 펠로시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은행가인 남편과 다섯명의 가족이었다.거기에 주변의 친구들이 힘을 보탰다.
 

   천안문 광장서 인권플래카드 편 당찬 초선

 
 그녀는 막내가 고교에 들어간 뒤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4000여표차로 위싱턴 입성에 성공했다.

 의회에 들어가서도 당찬 행보를 계속했다.취임선서때  “아무 말도 하지 마라”거나 “짧게 하라”는 동료의원들의 충고에도 기죽지 않고 꽤 긴 인사말과 함께 말미에 “에이즈와 맞서 싸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강조했다.
 초선시절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중국 당국의 감시속에 민주화 운동으로 수천명이 사망했던 천안문광장을 방문,“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보이기도했다.이제 11선 의원이 됐다.
 

   기존 틀 깨기 나선 첫 하원 여성 의장


 그녀는 하원의장이 되자마자 의회의 낡은 기존틀 깨기에 나섰다.
 그녀는 “의회에 자극을 주어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내 직위의 힘을 이용할 것”이라며 “의회와 같이 전통의 테두리안에 있는 기관의 현상유지는 파괴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그게 미국의 전통”이라며 “미국의 건국자들은 훌륭한 파괴자였다.킹 목사는 참정권 확대자로 파괴자였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박사가 쓴 ‘혁명가의 딜레마와 혁명가의 해결책’을 인용해 낡은 틀의 파괴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대기업들이 너무 거대해지고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혁신정신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몇십년전 100대기업중 지금도 100대기업에 들어있는 기업이 20여개 불과한 게 이를 역사적으로 증명한다.

 

   펠로시가 여성에게 보내는 희망 메시지

 

 낸시 펠로시는 ‘자신의 숨겨진 힘을 깨달아라(know your power)’라는 저서를 통해 여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첫번째 “가족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20년 주말부부를 하면서 거의 매주 집에 내려가다보니 1500번이나 비행기를 탔다.위싱턴은 일하는 곳이고 샌프란시스코는 생활하는 곳이다.이를 철저히 분리했다.가족이 없었다면 의회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힘의 원천은 바로 가족이다.기족과 함께 할때는 일을 내려놓고 가족에 집중해야 한다”

 그는 딸의 출산과 대통령과의 순방일정이 겹치자 대통령과의 순방을 과감히 포기했다.

 “내 딸이 막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놓칠 수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둘째는 주부의 가치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엄마로서 이모로서 숙모로서 조언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시간과 사랑을 투자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자체가 여성 힘”이라는 것이다.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가정 주부라는 말이 가장 슬펐다’는 그녀는 “가정의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엄마가 되는 것과 집안 일의 경험에 가치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녀는 아이들을 기르는 것은 한명당 한번씩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세번째는 아이의 눈높이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하원의장 취임식 전날 모교인 트리니티 대학에서 열린 환영행사 참석을 위해 자동차 행렬속에 있었다.

 오토바이가 자신을 호위해주는 것을 보고 손자가 하원의장이 된 것에 감격해 하는 줄 알았다.

 손자가 “이게 바로 제가되고 싶은 것”이라고 하자 낸시가 “하원의장이 되고싶다고”하고 물었더니 손자는 “오토바이 타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다.

 

 네번째는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실패는 너무 조용해 아무도 전화도 없고 묻지도 않는다.성공은 매우 시끄럽다.전화는 계속 울리고 언제나 관심의 한 가운데 있게 된다.그 모든 성공의 소음때문에 성공에 이르게 했던 그 마음의 소리인 초심을 들을 수 없게 된다”.

 이를 경계하고 초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루즈벨트 대통령 영부인인 엘레나 루즈벨트의 말 ‘미래는 자신의 꿈이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가족과 포항에 놀러 갔다가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어떤 술에 취한 어떤 중년의 아줌마가 아내의 새 부츠를 신고 가버린 것이다.식사를 마치고 밤 10시쯤 나오다 그때서야 아내의 부츠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몇년전에 상가에 갔다가 구두를 잃어버린 적은 있지만 식당에서 신발을 잃어버린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처음 당하는 일이라 크게 당황했다.
 그래서 아내는 식당에 연락처를 남기고 어쩔 수 없이 집주인의 신발을 얻어신고 숙소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그 일로 모처럼의 휴가가 구겨졌지만 20년만에 만난 군대친구의 세심한 배려가 큰 위안이 됐다.
 
 식당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면 “그걸 어떻게 찾아”하고 포기하기 쉽다.나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다.

 신발을 신고 가버리면 그만이지 그 넓은 도시서 그걸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실제 점심시간이 다 돼가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없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냥 포기하고 잊어버리자고 했더니 아내는 워낙 아끼는 부츠라 꼭 찾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하는수없이 다음날 아침 식당에 연락을 했더니 다행히도 식당에 CCTV가 설치돼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곧바로 식당에 갔다.거기서 CCTV를 통해 그 시간대에 식당에 온 여자들의 신발을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했다.

 식당에 들어오는 장면과 나가는 장면을 비교해보는 작업은 1시간 정도 걸렸다.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아줌마가 용의자(?)로 꼽혔다.들어올때는 평퍼짐은 신발(식당에 벗어놓고 간 허름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나갈때는 전혀 딴판이었다.

 아내 것과 똑같은 부츠를 신고 있었다.그 여자가 확실했다.

 

 문제는 그 아줌마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이다.그 아줌마가 현금으로 계산하고 간 탓에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벽에 부닥친 것이다.결국 포기하고 동탄신도시의 집으로 향했다.그런데 그 아줌마가 오후 세시가 넘어서 부츠를 들고 식당에 나타났다.

 CC TV덕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식당 주인은 부츠를 택배로 보내왔다.이렇게 어렵사리 잃어버린 부츠를 찾았다.

 

이런 황당한 일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남은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이번 일을 통해 얻은 경험은 세가지다.
우선 식당에 갈때는 ‘신발은 각자 챙기라’는 주의문이 붙어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주의문이 있는 식당은 비닐봉투를 준비해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이 경우 신발을 잘 챙겨야 한다.주의문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분실할 경우 배상을 받기 어렵다.

 만일 주의문이 없는 상태서 신발을 분실하면 식당에 일정부분 책임을 물을수 있다.그러니 식당에 갈때는 이를 눈여겨봐야 한다.

 

 만에하나 신발을 분실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식당내에 CCTV가 설치돼있는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요즘은 도난 등에 대비해 안전장치로 CCTV가 설치돼있는 식당이 많다.CCTV의 녹음테이프를 보면 누가 신발을 신고갔는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다음 살펴볼 건 당사자의 식사비 결제방식이다.

 요즘은 대개 카드로 계산하는 만큼 당사자의 연락처를 찾을 수 있다.현금영수증을 챙겨간 경우도 다소 복잡한 과정이지만 연락처를 찾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물론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신발을 신고가면 별 대책이 없다.이게 최악의 시나리오다.이런 경우는 다소 고의적일 가능성이 높아 찾는 게 불가능하다.

 며칠전 일이다.

 우연히 친한 후배의 차를 탈 기회가 있었다. 후배가 평소에 스피드를 즐긴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 터였다.
 실제 후배의 자가용을 탄 적이 있는데 제한속도보다 30㎞이상 속도를 낸 기억이 있었다.고속도로서 140㎞정도까지 속도를 냈다.그래도 후배가 스피드광이란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후배와 내가 서울역을 떠난 시각은 새벽 두시가 조금 넘어서다.

 차들이 많지 않았다.차종은 도요타 렉서스 배기량은 2500cc다. 우리나라 소나타급이다.크지 않은 차였지만 승차감은 괜찮았다.

 후배는 시동을 걸자마자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시내에선 속도를 내기가 여의치 않지만 생각보단 빠르다는 느낌이었다.

 쾌 밟는다 싶더니 금새 남산 터널을 지나더니 어느새 한남대교를 한달음에 건넜다.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어느새 속도 게이지는 180㎞를 가르키고 있었다.

 차들이 휙휙 뒤로 사라져갔다.

 앞에 차들이 여러대 보이거나 단속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만 속도를 130-140㎞로 줄여 추월하거나 지나간 뒤 곧바로 180㎞로 돌아갔다.간간이 190㎞가까이 갔다.
 

 나는 조바심에 후배에게 “너무 속도 내지마.조심해야지”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이 때마다 후배는 “이 정도는 다녀야죠.오늘은 세게 밟는 게 아이에요”라며 가볍게 받아넘겼다.

 말은 안했지만 내심 긴장했는지 내 손은 나도 모르는 사이 손잡이로 올라가 있었다.

 그렇기 달리기를 10여분.차는 벌써 동탄 인터체인지에 다가서고 있었다.

 서울역부터 동탄 인터체인지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여분이었다.

 

 후배차를 타고 가면서 몇달전 총알택시건이 문득 떠올랐다.새벽 두시반쯤 강남역에서 총알택시를 탄 적이 있다.

 시내부터 100㎞가까이 밟기 시작하더니 분당-내곡 고속화도로에 들어서니 속도를 180㎞로 높였다.낡은 소나타가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그 속도로 달리니 마치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강남역에서 용인 동백까지 걸린 시간이 16분.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때의 악몽에 다시는 총알택시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후배차를 타고 비슷한 경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물론 후배를 믿으니 이번에 식은땀까진 나지 않았다.그래도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그런 가운데서도 알듯모를듯 짜릿한 속도의 쾌감이 전해오는 건 뭘까.

 

 무지막지한 스피드는 총알택시나 후배나 다를 게 없다.다만 후배와 총알택시 사이에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총알택시는 먹고 살기위한 생업 차원이라면 후배는 스피드를 즐기는 레이서에 가깝다.

 총알택시와 레이서의 차이는 뭘까.

 인생의 치열함일까.곰곰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