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Julio의 블로그
답답한 배구 코치 [브라질에서 자녀키우는 건]
브라질의 외국인 학교간에서는 운동시합을 자주 한다. 평상시에는 Sao Paulo에 있는 4개 외국인 학교(PACA, Graded, Saint Paul, Chapel)간 경기를 주로 하고 일년에 3-4 차례 다른도시 (캄피나스, 브라질리아, 리오데 자네이로)에 있는 외국인 학교들도 참가해서 대규모 시합을 치룬다.

둘째아이 홍주는 운동을 무척 좋아한다. PACA의 축구, 배구 대표선수로 뛰는데 특히 배구를 더 좋아한다. 다른 학교와 시합때면 내 퇴근시간에 맞춰서 pick-up 해달라고 마구 졸라댄다. 큰 아이 민주는 별로 조르는 것이 없고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또 내가 힘들어 할까봐) 왠만한 일은 자기가 해결하고 정 형편이 않될 때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홍주는 반대로 가능하면 나를 부려(?) 먹으려고 한다. 그래도 큰 놈은 큰 놈대로 의젓해 좋고,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어리광부리는 모습이 좋다.

홍주는 키에 비해서 몸이 가볍고 호리호리해서 배구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테니스 가르칠 때 보면 운동신경도 별로 인 것 같아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한번은 일부러 시합 시간을 맞춰서 (홍주의 실력도 볼 겸) 응원을 하러 경기장에 들렸다. 홍주의 포지션은 세터였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실수도 적고 제법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중학교 배구 팀에서는 거의 주전세터로 인정 받는 것 같았다. 내가 관중석에서 보이자 으쓱해서 인지 더 열심히 뛰어 다녔고...

내가 경기장을 찾은 날은 PACA와 Saint Paul의 시합날 이였다. Saint Paul의 코치는 다부진 몸매와 몸동작이 운동선수 출신 체육선생 같아 보였다. 아이들을 다그치고 적절한 때 선수 교체를 하고 분위기가 PACA의 상승세로 넘어가면 타임을 불러서 흐름을 끊어 놓는 등 얄미울 정도로 승부에 대한 집착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PACA의 중등부 배구코치는 생긴 것도 샌님처럼 생겼지만 정말 승부에는 무관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덤덤하게 이끌어 갔다. 선수들이 실수를 하던 말던, Saint Paul이 기세를 올리던 말던 시합의 흐름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는 시합에 나서서는 않 될 정도로 실수 투성이인 선수들도 별로 개의치 않고 투입을 했다. 이 정도에서는 타임을 하던지 선수교체를 해서 Saint Paul의 상승 기세를 꺽어 주어야 하는데 싶은 상황에서도 그냥 경기가 진행되도록 내버려 둔다. 정말 배구가 뭔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코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답답한 경기 운영을 했다.

결국 시합은 3:0 Saint Paulo의 완승으로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홍주에게 넌즈시 "너희 배구 코치, 체육 선생님이니?"하고 물어봤더니 지리 선생님이란다. 어쩐지... '아무리 지리 선생님이라도 그렇치 무슨 경기 운영을 그런식으로 하냐?'는 소리가 목에 까지 차 올라왔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 코치의 중학교 배구팀 운영방식인 것으로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여러 번 홍주의 경기를 쫒아 다니면서 느끼게 된 그 배구 코치의 시합철학은 '승부에는 크게 신경쓰지 말라.' '기본기가 중요하다.' '선수고용은 골고루 한다.'인 것으로 보였다. 

홍주가 이야기 하는데 그 코치가 시합 중에 항상 강조하는 것이 '점수를 내기 위해 편법공격을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1, 2, 3 후에 공격해라.' 등등 이란다.

다른 무엇 보다도 정말 실수 투성이의 엉성한 선수들에게도 매번 시합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PACA 배구팀은 워낙 실력들이 고만 고만하니까 누가 실수를 해도 서로 웃고 넘어가지야 다른 사람을 탓할 처지도 못 되었다. 그래서 PACA의 중학교 배구팀은 언제나 동네북이다. 다른 팀들의 승률을 올려주는 팀으로 정평이 나 있다.

홍주가 시합하는 모습 중에서 나에게 가장 보기 좋았던 것은 동료가 실수하면 찾아가서 격려해주고 함께 화이팅 하는 모습이였다. 나중에 국가대표 배구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사실 실력향상이야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배구를 통해서 관대해지는 것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아는 것과 민망해 하는 동료를 격려할 줄 아는 것만 배워도 충분하다 싶다.

P.S.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양상이 달라진다. 물론 PACA 고등학교팀 배구코치가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만 기본기가 튼튼하고 팀 웍이 좋아서 전체 시합에 나가서도 항상 우승 아니면 준우승을 차지하고는 한다.

2007년 8월 9일

posted at 2007/08/09 18:38:00 트랙백(0) | 댓글(0) |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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