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그래서 당신들은 불편해할지 모르는. 내가 살아온데로 본 영화 이야기들.
경축 우리사랑 [개봉영화 뜯어보기]

 

 

 

사랑은  '불현듯' 찾아온다.어느 순간 어느 시점을 예고하지 않고 정말로 갑작스레 찾아온다.그래서 사랑은 더 아름답기도 하고 그래서 사랑은 더 힘들기도 하다.

영화 '경축 우리사랑'에서 20대의 딸을 둔 하숙집 '아줌마' 봉선에게도 사랑은 그랬다.감히 예상이나 했을까.딸과 결혼하겠다던 자신의 집에 하숙하는 세탁소 총각과 사랑에 빠질줄.그가 건네 준 홍삼 꿀물이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하게 느껴지고 그가 먹는 밥 한술이 그렇게 사랑스럽게 여겨질 줄.

평범한 우리들은 그런 사랑 앞에 '늙어서 무슨 주책이냐'는 푸념과 함께 포기했을테다.자꾸 그 사람이 좋아지고 자꾸 그 사람이 보고 싶어도 허벅지에 바늘 콕콕 찔러가며 참았을거다.세상의 시선이 두려우니까.지금까지 일궈논 안정된 삶이 망가지는 것을 견딜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봉선이 아줌마는 솔직하게 드러낸다.난 그 사람이 좋다고.남들의 시선이 뭐래도.내 딸과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래도.좋아한다고.난 그냥 니가 좋다고.고백을 한다.

 

 

세상의 시선은 차갑고 남편과 딸은 노발대발 하지만 봉선은 개의치 않는다.자기 방식대로 자기 느낌대로 사랑을 드러낸다.그가 30대 총각이고 그가 빚더미에 앉은 세탁소 주인인 것은 상관없다.사랑하는 그 사람이 내가 해준 음식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나 힘들다 그럴때 자전거 뒷 안장에 태워주면 그만이다.

혹자는 그런 봉선을 두고 아줌마가 아직도 철이 덜 든것 아니냐고 욕할수도 있겠다.남편과 딸에게 막대한 정신적 고통과 피해를 입힌 것을 욕할 수 도 있겠다.하지만 그날 그때껏 평생을 참으며 남편과 딸 뒷바라지 해왔던 봉선이 이제 와서 찾은 사랑을 그 누가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생활로서의 남편이 아닌 사랑으로서의 남자를 만난 것을 그 누가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사랑은 진정 불현듯 찾아오는 거다.내 사정 내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진정 소중하다면 내가 가진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봉선에게 '불현듯' 찾아든 사랑을.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것을 움켜쥔 봉선의 진정성을

 

난 경축하고 싶다.

 

 

경축우리사랑, 영화, 예술영화
posted at 2008/05/06 00:49:00 트랙백(0) | 댓글(1) | 스크랩
아내가 결혼했다 [마음속의 한구절]

책 썸네일

 

지금껏 많은 연애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할 때마다 일종의 법칙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초기의 모든 것을 다 내 줄 수 있는 그 행복한 감정을 소유욕이 압도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너를 내 곁에만 잡아두고 싶은 이 기분은 시종일관 연애의 감정을 뒤흔든다. 거기다가 그 사람에 대한 약간의 의심이라도 들기 시작하면 누구나 다 이전의 콩깍지를 버리고 대신 색안경을 하나씩 꿰차고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이쯤 되면 그 사랑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봐야한다.

 

왜 사람은 독점을 원할까. 내가 사랑하는 너는 오직 나만 사랑해야 한다는 법은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너를 사랑하면서 쟤도, 얘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잘나가는 바람둥이의 입에서 나오는 헛소리 정도로 여겨질지는 몰라도 평범한 사람에게도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 세상에 뿌려진 가슴 아픈 이별의 절반 이상은 둘 중 하나가 또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해서 생긴 일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런 한 사람만을 좋아해야한다는 통념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본성은 한 사람만을 사랑하게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렇게도 당연하게 여기는 일부일처제 이외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결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덕훈은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그래서 심지어는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또 결혼을 하려는 아내와 끊임없이 다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니까 아내를 사랑하니까 끌려간다. 결국 아내의 또 다른 남편과도 동거를 허락하게 된다.

 

만약에 내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아마도 숱한 3류 영화들이 거쳐 갔던 공식대로 화내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 지쳐서 떠났을 것이다. 사랑을 공유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가슴으로는 이해 못 할 테니까. 아무리 쿨 한척 하려해도 그건 정말 나로서는 이해 못할 일이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두 사람을 똑같이 사랑할 수 는 없다. 필시 약간의 우열이 생길 테고 거기서 빚어지는 질투심이란 예상대로 매우 클 것이다. 일단 질투심이 생기면 그건 아무리 고상한 사랑이라도 진흙탕 속 개싸움 마냥 추락하기 십상이다.

 

2006년 오스카 상 수상이 유력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영화는 예상과는 달리 감독상에 그쳤다.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이기 위해 브로크 백 마운틴을 열렬히 지지했던 심사위원들이 정작 투표할 때는 평소 자신의 성향대로 투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추측이었다.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고 나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와 얘기할 때는 일처다부제도 분명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마음으로는 공감은 못하겠다. 살아 온 과정이 그래서일까. 아무리 희박한 확률이더라도 운명의 그 한 사람을 만나 오래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전통적인 연애가, 결혼이 나는 좋다.

 

인상깊은 구절들

p 50

사랑에 빠지면 고통이 시작된다. 사랑의 고통이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다.

 

p 217

삶이 어렵고 힘겹다 해도 살다 보면 살아진다. 살다 보면 힘겨움에도 적응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겪다 보면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알래스카의 혹한도, 열대지방의 무더위도 살다보면 적응해 살아갈 수 있다.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아내가결혼했다
posted at 2008/04/11 13:15:00 트랙백(0) | 댓글(1) | 스크랩
배심원에 대한 배려 [법원풍경]

**사진 출처:네이버 이미지

 

“증거에 집중해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배심원 여러분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한 대학 캠퍼스 건물에서 일어난 폭발사고. 검찰은 괴짜 화학과 학생인 마이클을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했지만 진범은 부동산 재벌의 아들인 카일임을 밝혀내고 기소한다. 하지만 카일의 변호인 측은 장발머리에 더운 여름에도 두터운 검은 점퍼를 입고 다니며 폭발물을 찬양하는 시를 짓는 등 기행을 일삼았던 마이클이 진범이라며 그를 증인으로 요청한다. 배심원들 눈에 마이클이 범인으로 보일 것을 우려한 검찰 측은 그의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하고 깔끔한 양복을 입힌 뒤 모의 증인심문을 몇차례 한 끝에 그를 증인으로 내보낸다. 결국 검찰은 배심원들에게 그가 범인이 아니고 카일이 진범임을 멋지게 ‘증명’해 낸다.

케이블 TV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법정 미드(미국드라마) ‘샤크(Shark)’의 에피소드 중 하나에 담긴 내용이다. ‘샤크’ 같은 법정 미드에서 잘 드러나듯 배심재판의 의의는 일반 국민의 상식적인 눈으로 평결을 내리는 데에 있다. 법관만의 판단이 아닌 일반인의 생각을 판결에 포함시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보다 더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렇게 미드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검사와 변호사가 배심원들을 설득시켜 유무죄를 판단하게 하는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지 3달이 지났다. 그새 5번의 참여재판이 실제로 이뤄졌고 어느덧 참여재판 자체는 새로운 ‘뉴스거리’가 되지도 않을 만큼 조금씩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비록 미국에서와는 달리 배심원단의 평결이 ‘권고적 효력’만을 지닌다지만 사법부의 영역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게 된 만큼 사법역사상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검찰의 연이은 항소가 큰 문제다. 처음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던 대구에 이어 청주, 수원, 인천,부산까지 지금까지 열렸던 5건의 국민참여재판 모두 검찰 측은 항소를 했다. 유죄가 인정 안 되거나 양형이 구형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다는 게 검찰 측의 얘기다. 항소가 제기되면 피고인들은 모두 일반 항소심 절차에 의해 2심 재판을 받게 된다.

비록 권고적 효력만을 지닌다고 해도 국민참여재판의 판결은 일반 국민의 시각이 담긴 판결이다. 배심원들은 아침부터 나와 저녁 늦게까지 익숙지 않은 법률 용어들을 들어가며 최대한 공정하게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감성재판이다 뭐다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재판부뿐만 아니라 바쁜 생업을 포기하고 나온 국민이 하루 종일 숙고해서 내린 결정에 대해 일반재판과 같은 기준으로 지금처럼 쉽게 항소를 하는 것은 참여재판의 존재 자체를 무색하게 하는 일이다. 기껏 어렵게 고민한 판결이 항소심에서 계속 뒤바뀌면 참여재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물론 지금의 제도가 과도기적인 형태이고 검찰에게는 항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평결이 지닌 무게를 의식해 항소 여부 결정은 신중히 할 필요는 있다. 지난 참여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 측은 재판정 안에서 배심원을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했다. 이해 못한 부분이 없나 되묻기도 하고, 어려운 법률 용어를 풀어쓰며 복잡한 자료는 파워포인트 자료로 만들어 설명하는 등 가능한 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법정 안에서 그런 만큼 법정 바깥에서도 배심원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 한국경제 사회부

**이 글은 대한변협신문 4월 7일자에 기고 한 글입니다

배심원, 샤크, 국민참여재판
posted at 2008/04/08 10:42:00 트랙백(0) | 댓글(0) |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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