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그래서 당신들은 불편해할지 모르는. 내가 살아온데로 본 영화 이야기들.
천하장사 마돈나 [개봉영화 뜯어보기]

"어 걔 있잖아. 3반의 **. 키 작은 애있잖아." " 아,  걔!!"
 어렸을 적부터 주위 사람들은 날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설명할 때 주로 키와 관련된 설명으로 특징을 묘사했었다.  "키 조그만 애" 한 마디면 이름만 듣고는 갸우뚱 했던 사람들이 "아 걔"하며 알아들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게 참 싫었다. 남들과 눈에 띠게 구별되는 내 작은 키가 한없이 원망스러웠었다. 그래서 많이 노력했었다. 크기 위해. 그리 많이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남들과 비슷한 정도만 되었으면 더 바랄게 없었다. 한약에 운동에 이것저것 온갖 방법을 시도 해봤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지랄’ 같은 내 키는 별로 자라지 않았다.

 

큰 게 좋아보였다기보다는 단지 내가 남들과 달라 보인다는 것이 싫었다. 내 다른 모든 특징들은 사라지고 단지 평균보다 작은 키라는 단점만이 부각되는 상황이 정말 싫었다. 그래서 남들과 같아지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땅콩’이라는 별명으로 대변되는 희화화부터 해서 은근한 무시의 시선들까지. 일반적인 보통 사람의 평균 키에 미달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내가 감수해야 했던 차별과 아픔은 꽤나 컸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미달 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살기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가 작아도 불편하거니와 너무 뚱뚱해도 불편하다. 장애를 가진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피부색, 머리카락 색깔이 다른 것도 때로는 집단의 압력을 견뎌내야 할 때가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오랜 동질적인 문화의 유산인 듯 그런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타국보다 조금 더 각박한 것만은 사실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남과 다른 그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아끼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한 인간의 고군분투에 대한 따뜻한 스케치이다. 고등학교 1학년 동구의 꿈은 여자가 되는 것. 그의 책상 서랍 속에는 립스틱과 거울, 좋아하는 ‘남자’선생님의 사진 등이 들어있다. 매일 밤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을 보며 선생님과 함께하는 상상을 하는 것이 동구의 취미. 동구는 여자가 돼서 선생님과 함께 하기 위해 500만원을 모으기 위해 노력한다. 막노동을 해서 얼추 돈을 모았지만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사장을 때리는 바람에 합의금으로 날렸고, 다시 돈을 모으기 위해 시작한 것이 씨름.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동구가 하필이면 그 수단으로 택한 것이 남성적인 게임인 씨름. 그러나 동구는 미처 몰랐던 뛰어난 잠재력을 발견하며 놀라운 속도로 씨름의 갖가지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첫 출전 대회. 각고의 난관을 헤쳐나간 동구는 결국 우승의 꿈을 이룬다. 

 

7.jpg

 

 

보통의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자신을 발견했을 때 대게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남과 같아지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내가 키를 키우려고 노력했듯이. 뚱뚱한 사람이 살을 빼려고 노력하듯이. 하지만 천하장사 마돈나가 제시하는 해법은 독특하다. 동구는 결코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마돈나의 Like a Virgin을 씨름부 회식에서 거침없이 소화해내며 자신의 여성성을 자신 있게 드러낸다. 여자로서의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세상의 제약과 맞서기 위해 노력한다. 남들 앞에서는 옷도 갈아입지 않으려는 동구가 웃통 벗고 싸워야하는 씨름을 택할 만큼 그는 절실하게 노력한다. 그것이 힘든 길이라는 것,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감수해야하는 길인지 알면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천하장사 마돈나가 지극히 상투적인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것은 바로 그 동구의 진정성 때문이다. 운동의 문외한이 어떤 일을 계기로 운동에 입문해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하며 우승하는 그런 뻔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영화가 2시간 내내 흡인력을 가지는 것은 동구가 씨름에서 우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진실 되고 절절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여자가 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이다.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만 하기 때문인 것이다. 자신을 속이고 겉모습에 맞춰 남자로 위장해 살았다면 받지 않았을 주위의 혹독한 시선들을 감수하고서라도 동구는 자신의 정체성이 여자라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 진실 된 그의 투쟁은 관객의 심장을 묵직하게 파고든다.

 

자신을 사랑하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일반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특징들이 내 자신에게 있다면 그 십자가를 온전히 지고 가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사랑하라는 말을 한다. 그게 나이고 바꿀 수가 없다면 사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죽을 것 같이 힘들더라도. 주위의 가족들마저 등 돌린다 해도 말이다. 남들 기준에 맞춰 자신을 억압해서는 아니 될 법이라고 강변한다.

 

2시간 동안 실컷 울고 영화관을 나왔다. 햇살은 여전히 따갑고 바람은 시렸다. 내 키는 여전히 작았지만 좀 더 여유로울 수 있었다. 아랫 공기 마시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mbc12.jpg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연예
posted at 2007/07/09 23:19:00 트랙백(0) | 댓글(0) | 스크랩
트랙백 주소 : http://blog.hankyung.com/tb.php?blogid=pmj53&id=35456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08/09 
S M T W T F 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oday : 14 | Total : 11,828
skin by freelo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