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그래서 당신들은 불편해할지 모르는. 내가 살아온데로 본 영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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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 [개봉영화 뜯어보기]

 

'"잘 지냈어?"

몇 년만에 헤어진 연인을 만난 참이었다.떨릴 줄 알았다.너 그 때 왜 그랬어 하며 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옛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 다시 또 괴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그냥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람.아니 좀 더 잘 알았던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일 뿐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오히려 예전에는 콩깍지가 씌어 넘어갔던 그 애의 단점이 눈에 확 들어와 달콤함으로 각색돼 있던 옛기억이 변질 될 판이었다.

 

시간이란 것이 참 신기한 것이다.이별할 때는 그렇게 죽고 못 산다며 매달렸어도 헤어진 연인은 당연한 진리인듯 서로에게 잊혀져 간다.잊혀지고 잊혀져서 그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희미해져가면 그 사람을 만나도 아무렇지 않게 된다.내 인생에 유일했던 그 사람이  내가 만나보지도 못했던 저 지구촌 끝 오지에 사는 원주민과 다를 바 없이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영화 '멋진하루'는 그렇게 서로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가 된 옛 연인이 1년만에 만난 하루를 그린 영화다.빌려간 돈 350만원을 갚으라며 갑작스레 옛 연인인 병운(하정우) 앞에 나타난 희수(전도연).그런데 1년만에 만난 옛 애인은 정말 찌질하다.돈 갚지 않고 잠적해버린 과거야 잊었다 쳐도 차용증을 보여주는 데  자신을 못 믿겠냐며 되레 화를 내는 뻔뻔함이란.게다가 수중에 돈도 없고 집도없어 희수에게 돈을 갚기 위해 아는 여자들에게 연락해 10만원 20만원 돈을 빌리러 다닌다.

 

 

 

헤어진 연인은 과거의 많은 추억들을 공유한다.그와 걷던 거리.함께 이어폰을 나눠끼며 들었던 음악들.자주 갔던 갈치조림 집.만날 당시에는 사소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애틋한 추억으로 변한다.돈 내놓으라며 티격 태격 하던 병운과 희수는 하루 동안의 돈빌리기 여정을 함께 하면서 그 애틋했던 옛 기억들을 하나둘씩 떠올리게 된다.

 

추억의 장소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 때의 느낌을 기억할 수 있다는 의미다.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귀에 걸리듯 행복해 질 수 있는 너라는 유일한 존재에 대한 느낌을 떠올릴 수있다는 얘기다.결국 찌질하게 보이는 병운에 대한 희수의 태도는 그런 애틋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훈훈한 미소로 바뀌게 된다.

 

희수의 미소가 엔딩크레딧과 함께 스크린을 채웠을 때 문득 어쩌면 난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를 통해 그를 지웠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시간을 통해 그를 잊었다고 애써 믿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아무렇지 않다고 자기 주문을 외운 걸 수도 있겠다.

 

다시금 떠올려 보면 그 사람과의 행복했던 추억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단지 기억이 희미해졌던 것일 뿐.그리고 그 기억을 떠올리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일테다.

 

인생은 그렇게 희미해지는 기억을 영원히 쌓아가는 일의 계속일런지 모르겠다.

아비정전의 아비가 '당신과 함께 한 1분을 영원히 기억할거야'라고 말했듯.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속에 있는 거다.

 

 

멋진하루, 전도연, 하정우
posted at 2008/10/13 23:44:00 트랙백(0) | 댓글(0) |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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