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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81332568&sid=01050601&nid=100<ype=1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땄지만 국민들은 그 주인공을 거의 모르고 있다?"
다소 황당하다고 할 수 있는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
우리와는 2006독일월드컵축구 본선무대에서 만난 적이 있어 친숙한 아프리카 토고에서다.
벤자민 부크페티(27)는 12일 올림픽 남자 카약 슬라럼 1인승(K-1)에 출전, 2분53초45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민들은 첫 메달에 모두 열광했지만 메달리스트의 이름을 듣고는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면 그간 TV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법도 한데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다소 황당한 사연은 이렇다.
부크페티는 1981년 프랑스에서 토고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누이는 토고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갓난아이 때 잠깐 토고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 때를 제외하고 그가 토고 땅을 밟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비록 토고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뼛속까지 프랑스인이었던 셈. 대부분의 일생을 프랑스에서 보냈고, 지금도 프랑스의 대도시 툴루즈에서 살고 있다.
4년 전 첫 출전한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그는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결과는 18위. 결선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야만 했다.
절치부심해 4년을 기다려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했지만 프랑스대표팀으로 선발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팀 동료와의 경쟁도 치열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토고였다.
이중 국적자였기에 가능했다.
부크페티는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대표팀 선발전은 매우 치열한 경합장입니다.
게다가 나는 한동안 부상에도 시달렸지요.
또 프랑스대표팀으로 선발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은 프랑스 대신 토고를 선택했습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프랑스팀에서 운동한 그는 이번 대회 같은 종목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파비앙 레페브르(프랑스)의 오랜 라이벌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오랜 기간 한솥밥을 먹은 정(情)이 있었기에 경기 후 시상식에서 그와 마주보며 웃을 수 있었던 것.
그는 생애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후 "다시 (토고로) 돌아갈 이유가 생겼네요"라며 웃었다.
부크페티가 토고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기자 토고 국민들은 다소 황당해 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첫 메달 수확을 환영한다는 반응이다.
토고의 한 고교생은 "부크페티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딴 것은 우리에게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연합뉴스) buff27@yna.co.kr
원문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81332568&sid=01050601&nid=100<ype=1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땄지만 국민들은 그 주인공을 거의 모르고 있다?"
다소 황당하다고 할 수 있는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
우리와는 2006독일월드컵축구 본선무대에서 만난 적이 있어 친숙한 아프리카 토고에서다.
벤자민 부크페티(27)는 12일 올림픽 남자 카약 슬라럼 1인승(K-1)에 출전, 2분53초45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민들은 첫 메달에 모두 열광했지만 메달리스트의 이름을 듣고는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면 그간 TV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법도 한데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다소 황당한 사연은 이렇다.
부크페티는 1981년 프랑스에서 토고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누이는 토고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갓난아이 때 잠깐 토고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 때를 제외하고 그가 토고 땅을 밟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비록 토고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는 뼛속까지 프랑스인이었던 셈. 대부분의 일생을 프랑스에서 보냈고, 지금도 프랑스의 대도시 툴루즈에서 살고 있다.
4년 전 첫 출전한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그는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결과는 18위. 결선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야만 했다.
절치부심해 4년을 기다려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했지만 프랑스대표팀으로 선발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팀 동료와의 경쟁도 치열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토고였다.
이중 국적자였기에 가능했다.
부크페티는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대표팀 선발전은 매우 치열한 경합장입니다.
게다가 나는 한동안 부상에도 시달렸지요.
또 프랑스대표팀으로 선발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은 프랑스 대신 토고를 선택했습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프랑스팀에서 운동한 그는 이번 대회 같은 종목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파비앙 레페브르(프랑스)의 오랜 라이벌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오랜 기간 한솥밥을 먹은 정(情)이 있었기에 경기 후 시상식에서 그와 마주보며 웃을 수 있었던 것.
그는 생애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후 "다시 (토고로) 돌아갈 이유가 생겼네요"라며 웃었다.
부크페티가 토고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기자 토고 국민들은 다소 황당해 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첫 메달 수확을 환영한다는 반응이다.
토고의 한 고교생은 "부크페티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딴 것은 우리에게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연합뉴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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