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무자년이 결국 난장판으로 끝나려나 봅니다. 건강한 합의를 잃은지 오래된 국회는 블랙 코미디로 또 한 해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는 쟁점법안들을 하나하나 풀어볼 염은 나지 않습니다.외신을 뒤지다보니 문득 '사이버 모욕죄'가 떠오릅니다. 방송법과 한미FTA에 묻혀 은근슬쩍 넘어갈 것같은 느낌도 들어서입니다.

국회 여야 협상이 최종결렬되자 김형오 국회의장이 30일 밤 8시40분께 질서 회복 차원에서 질서유지권을 발동했다. 곧바로 국회 경위들이 정문을 지키고 나섰다. <출처 : 한국경제신문 사진DB>
호주에서 한창 논란이 일고 있는 음란 사이트 차단조치,페이스북의 젖먹이는 여성 젖가슴 사진 차단 조치로 인한 논란 등이 외신에서 주요 기사로 다뤄지고 있네요.
Uproar in Australia over plan to block Web sites (AP ; Dec 26,2008)
Facebook ban of breast-feeding photos sparks protests (Reuters ; Dec 30,2008)
온라인 상의 음란물에 대한 규제는 한국에서는 더이상 논란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불법물(음란물 포함)에 대한 포털의 모니터링 의무화를 규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들이 음란물을 스크린해서 삭제 조치를 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사회적으로도 합의가 이뤄진 듯합니다. 폭력물이나 음란물을 방치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호주나 미국에서는 좀 다른 것같습니다. 포르노 사이트를 차단해서 접속할 수 없도록 필터링하려는 호주에서는 이것조차 명백한 검열이라고 반대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답니다. 단지 우리 보다 성(性)문제에서 자유로워서일까요? 아기에게 젖먹이는 엄마의 젖가슴이 지나치게 노출된 사진이 국내 포털 사이트에 버젓하게 올랐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부나 인터넷업체가 온라인에 떠도는 음란물이나 폭력물을 차단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은 양면성을 갖기 마련입니다. 어떤 것이 교육적이냐,아니냐의 논란도 끝이 없겠지요. 포털에서 '섹스' 같은 키워드조차 검색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검찰이나 경찰은 음란물을 방치한 인터넷 사이트를 처벌하는 세상이니. 음란물에 대해서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합의를 봤다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얼마전 방통위 복도에서 만난 한 공무원과 '사이버 모욕죄'를 놓고 짧은 토론(?)을 벌였습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어 이번에 국회서 통과되면 상당수 인터넷 게시물들이 무절제하게 삭제당할 가능성이 있지 않냐는 점이었지요. 그런 우려는 방통위 실무자들에게도 전혀 없지 않지만,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악성댓글 같은 게시물은 당사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포르노 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MBC연기대상에서도 고인이 된 최진실씨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연예인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진위를 따지기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자칫 인터넷 순기능을 마비시키는 부작용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있어왔습니다. 일부에서는 나쁜 글을 쓴 네티즌을 겨냥한 것이므로 포털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지요. 포털은 임시조치를 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렇더라도 포털이 완전히 면죄되는 것도 아닙니다. 길던,짧던 포털에 게시된 사실만으로 범죄가 성립되는 것은 피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포털들은 더욱 더 열심히 게시물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예컨대 통조림에서 쓰레기가 나와도 해당 업체가 임시조치를 요구하면 포털은 이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정치인이나 정부 당국에 대한 비판도 여지없이 칼질 당할지도 모릅니다. 재작년 시멘트에 유해물질을 분리하지 않은채 쓰레기를 사용해 새집증후군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고발해온 블로거의 포스트가 양회협회의 임시조치 요구로 블라인드 처리된 사례도 있었지요.
우울한 것은 입법 취지가 허무맹랑한 것만도 아닌 현실에 있습니다. 쓰레기 같은 악성댓글이나 게시물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은 것도 엄연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선플 캠페인을 벌이며 만난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게시물이 가져올 파장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인터넷의 익명성 탓일 수도,교육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것도 명확치도 않고 해결 실마리를 찾기도 쉽지 않은 것같습니다. 그러니 한번이라도 피해를 입은,입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빈대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도 괘념치 않을 거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엊그제 만난 포털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제 맷집싸움이 시작된 것이다"고. 서로 치고 받는 끝에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제2,3의 미네르바들이 꾸준히 온라인에 둥지를 틀어야,그래야 우리 사회는 건강한 발전을 해나갈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분법적 사고로 현상을 단죄하려는 떼거리 문화 등 온라인 문화도 함께 바뀌어나가야 겠지요. 사회 현상이 어느 한쪽의 패배로 깨끗하게 정돈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역사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카테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