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속을 구하라?
Document URL : http://blog.hankyung.com/raj99/13931649프랑스의 ‘애국소녀’ 잔 다르크의 최후를 처형 시점에서 다룬 기록은 매우 드물다. 당대의 기록 중에서 잔다르크가 루앙에서 화형 당할 당시 기록은 사실 (잔다르크의 반대파였던) 브루고뉴 지역 연대기 작가가 쓴 『파리의 부르주아(bourgeois de Paris)』가 유일하다.(다른 일부 기록들은 잔다르크 덕에 즉위했던 샤를7세가 잉글랜드 세력을 프랑스에서 몰아낸 뒤 부르고뉴 측과 아라스조약을 맺어 내전을 마치고 쓰여진 것으로 잔다르크 미화로 각색된 측면이 강하다)
『파리의 부르주아』에 묘사된 화형장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화형 결정이 내려지자 그녀(잔다르크)는 말뚝에 묶였다. 화형식이 치러지는 무대 위에는 각종 유황이 깔려있었고 그 위에 불이 붙자 잔다르크는 곧 질식했다. 얼마 안돼 잔다르크의 옷은 모두 타 버렸다. 잠시 후 불길이 조금 누그러지자 잔다르크의 시체는 완전히 벌거벗겨진 채 군중들에게 공개되게 됐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가졌던 문제, 즉 그녀가 정말로 여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은밀한 부분도 드러났다. 그녀가 죽었다는게 완전히 확인돼자 사형집행인은 불길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곧 모든 것이 다 타버렸다. 뼈와 살이 모두 재가 돼버렸다”
이처럼 매우 ‘드라이하게’객관적으로 기술된 잔다르크의 죽음은 이후 샤를7세의 집권에 따라 새롭게 쓰여지게 된다. 잔다르크 덕에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던 샤를7세로선 잔다르크가 ‘정식’ 마녀재판을 받고 화형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그냥 뒀다간 권력의 정당성에 흠집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잔다르크가 화형식 말뚝에 메달릴 때 신과 성자를 찾았으며 그녀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은 “예수”였다는 증언이 추가됐다. 다른 증언에선 잔다르크가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서도 광장에 있던 수사에게 근처 교회에 있던 십자가를 높이 들어달라고 부탁했다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사형집행인이 아무리 유황을 더 뿌려도 잔다르크의 심장이 타지 않아 충격을 받았다는 미스테리에 가까운 내용이나, 적군인 영국군들도 ‘위대한 순교자’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는 선전성 문구도 잔다르크의 죽음을 신비롭게 만들었다.
최근 한 일본의 황색잡지가 일본시장에 진출한 한국가수 구하라씨의 치마속을 ‘도촬’해 게재한 황당한 사건이 온라인상의 화제가 됐다. 어떻게 해서든 치마속을 훔쳐보려는 관음증에 대한 관심을 접하면서 문득 죽는 순간까지 잔다르크의 성별을 궁금해했던 600년전 루앙의 시민들이 떠올랐다. 프랑스를 구했던 잔다르크가 끝내 못지킨 것은 치마속이었던 것이다.
<참고한 책>
Gerd Krumeich, Jeanne D‘arc-Die Geschichte der Jungfrau von Orleans, C.H.Beck 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