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가루로 만들면 기억도 사라질까?-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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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별 | Posted on February 27th, 2012 at 00:07 by raj99 | Modify

건물

로마는 고대세계의 라이벌 카르타고를 말 그대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로마의 정치가 大 카토는 크고 작은 연설을 끝맺을 때마다 “카르타고는 반드시 멸망한다(Carthaginem esse delendam)”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로마군은 BC 146년 카르타고시에 진입할 때 철저하게 도시를 파괴했다. ‘도시 살해(urbicide)’라는 별칭이 붙은 이 행위로 카르타고의 장엄한 신전과 원형 부두, 다층 주택단지는 모두 돌무더기로 변했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시가 영원히 파괴된 상태로 남아있도록 하기 위해  ‘불모의 상징’인 소금을 폐허위에 뿌렸다. 그렇게 카르타고의 역사적 흔적은 영원히 지워져 버렸다. 상대방을 철저하게 괴멸시켜 더이상 분쟁의 원인을 없애버리는 ‘카르타고식 평화(Carthaginian peace)’라는 역설적 표현은 그렇게 등장했다.

건축물 최종.JPG

사실 전세계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정복전쟁의 결과, 기존의 건축물이 파괴되고 변경되는 일은 허다한 일상사였다. 예를 들어 스페인 코르도바에 있는 대성당은 원래 기독교를 믿는 서고트족이 파괴한 로마신전이었다. 이후 기독교 교회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가, 8세기초 아랍인의 정복 이후에는 모스크로 바뀌었다. 그마저도 70여년이 지난뒤 같은 자리에 거대한 새 모스크를 세우기 위해 기존 건물은 깡그리 철거됐다. 하지만 1236년 기독교도들이 코르도바를 재정복 한 뒤 모스크는 기독교 성당으로 봉헌됐다. 16세기에 기존 이슬람 미나렛이 있던 자리에 교회 종탑이 마련된 대형 성당이 다시 들어섰지만, 여전히 성당은 ‘메스키타(mezquita,모스크)’라는 옛 이름으로 불렸다. 997년 무어인들이 기존의 기독교 대성당 종을 녹여 만들었더 램프들은, 다시 기독교도들에 의해 또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종을 만드는 데 ‘재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유형의 기념물 파괴 및 변경 행위는 근대에도 이어졌다. 미신을 이성으로, 신권을 평등으로 대체하겠다던 프랑스 혁명은 수많은 교회와 성당을 훼손해 이성의 신전으로 개조했다. 영주들의 대형 성과 수도원은 불탔고, 교회의 종탑들은 “다른 건물보다 높이 솟아 평등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뭉게졌다. 파리의 부자들 집단 거주구역이던 리온벨쿠르 광장의 저택들은 인민의 대표가 은으로 된 제식용 망치로 저택의 파사드를 내려치며 “법의 이름으로 너에게 무너질 것을 선고한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자비한 ‘사형집행’에 들어갔다.

또 정치와 무관한 잡범 7명이 수감돼 있던 바스티유 감옥은 ‘절대왕정의 압제’를 상징하는 건물로 여겨져 파괴됐고, 감옥의 파편은 세속적인 성물에 가까운 기념품으로 팔려나갔다. 이는 200여년뒤 부서진 베를린 장벽의 파편들이 기념품으로 거래됐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현대사에서도 상징적인 건축물에 대한 테러는 변함없이 이어졌다. 나치스는 독일내 유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린치를 가했던 1938년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흐트)’ 당시 독일내 유대교 집회당인 시너고그를 계획적으로 파괴했다. 이는 유대인의 미래는 물론 과거 역시 부정하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한 사회체제를 대변하던 ‘조각상’들 중에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레닌 동상이나, 이라크 후세인 정권 몰락 후 후세인 동상의 운명이 대표적이다. 스페인 내란 당시에는 공화파가 마드리드 교외에서 예수상에 대해 총살형을 집행했다고도 전해진다. 개인적인 기억으로도 최근 10여년간 한국 사회만 둘러봐도 이승만, 박정희 전대통령과 멕아더 장군의 동상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대립이 이어졌다.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의 파키스탄내 최후 은신처가 불도저에 의해 전격 철거됐다는 외신 소식이 전해졌다. 한 테러리스트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건축물 파괴가 동반된 또다른 ‘역사 지우기’의 한 장면이 벌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참고한 책>

로버트 베번, 집단기억의 파괴-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나현영 옮김, 알마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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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6

Author 역사관심
2012.02.27 at 05:32:18
댓글 | |

김기자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100% 알겠습니다. 저도 그러한 (그것이 좋은 역사이건 옳지 않은 역사이건) 역사의 상징물인 건축물의 파괴를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고려조가 끝나고 조선조가 들어섰을때 수많은 사찰과 고려왕궁은 파괴되었죠 (물론 만월대는 홍건적이 파괴했다고 하지만, 설사 있었더라도 그대로 남아있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옳은 행위였겠지만, 그마만큼의 문화유산을 우리는 잃었지요.


요즘 해석학과 기호학을 독학하는 (기초수준) 중입니다만, 이에 관련된 (즉, 상징으로써의 건축물) 논의는 사실 정치뿐 아니라 철학에 속하는 문제같습니다. 어떠한 때에는 그리고 철학이 정치를 유도하는 경우도 발생하지요 (예를 들면, 나치독일의 파리폭격시 건축물보호, 한국전쟁당시 해인사등에 대한 폭격방지등).


되돌아가서 김기자님의 글 제목 "건물을 부수면 기억도 사라질까"를 개인적으로 답해보자면, 문헌과 다른 매체 (구전등)로 어떠한 문명이나 정치제 혹은 사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상당부분 그 기억이 훼손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꾸로 마야처럼 '역사'가 없고 건물만 남는 경우, 그 위력을 알수 있겠죠. 즉 '마야성'이라는 기억이 함의하는 여러 'character'가 살아 남으니까요.


역시 '건물'은 중요합니다. 처칠의 명언처럼 (우리가 그 집을 짓지만, 그 집은 그후 우리를 만든다).

허접한 댓글입니다~.

Author raj99
2012.02.27 at 12:25:33
댓글

역사관심님/ 제가 허접하게 발췌 정리한 글에 대해 너무나 깊이있는 댓글을 달아 주셨네요. 댓글 읽어보고,많은 것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처칠의 명언, 참 가슴에 와닿네요.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Author 역사관심
2012.02.28 at 02:52:53
댓글 | |

무슨 겸손의 말씀을 ^^;

건축물 복원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지라, 항상 생각하던 문제인데 좋은 글 올려주셔서 반가울 따름입니다.

Author raj99
2012.02.29 at 02:16:38
댓글

^^,,,저도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Author ahme
2012.03.02 at 05:00:23
댓글 | |

도쿠가와도 분쟁의 씨앗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로  오사카성을 불태우고 사돈 뻘인 도요토미를 몰살했다고 하더군요.

중앙청 건물을 파괴할 때도 저런 생각이 들긴 했는데요. 없애는것이 능사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Author raj99
2012.03.04 at 10:41:21
댓글

ahme님/ 예 말씀하신 것처럼,,,무어시 정답인지 잘 모르겠는 복잡한 문제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복원'된 경복궁 주요 시설들이 보기는 무척 좋은데,,평가를 어찌해야 할지 등등의 문제도 그런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