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자들을 고의적으로 ‘죽지 않을’정도로만 정복한 티무르-정복
Document URL : http://blog.hankyung.com/raj99/274039정복
중앙아시아 대제국을 건설했던 티무르(Timur, Temür)는 전장에서 다리에 화살을 맞아 힘줄을 다치는 바람에 평생을 절뚝거리며 걸었다. 결국 당대인들로부터 ‘절름발이 티무르’란 뜻의 ‘티무리 랑(Timur-i lang)' 이라고 불렸고 이런 호칭이 서방에 전해져 프랑스어에서는 타말렝, 영어에선 타멀레인(Tamerlane)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따라서 영어에서 티무르제국은 좀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엠파이어 오브 타멀레인‘이다.) 투르크어로 철인(鐵人)이란 뜻의 단어 ’티무르‘는 전장의 상흔이 얽힌 절름발이란 단어 ’랑‘과 결합되면서 그와 상대했던 정적과 피정복민들에겐 두려움의 대명사로 다가갔다.
<티무르(위)와 티무르의 숨결이 어린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 사진출처:네이버 포토앨범>
트랜스옥사니아 지역 케쉬 근처에 영지를 가지고 있던 투르크계 바를라스 씨족 귀족 출신인 티무르는 “말 위에서 전쟁으로 인생을 보낸” 위대한 정복자, 뛰어난 전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몽고족의 모굴한국과의 투쟁을 통해 성장했고 사마르칸드를 거점으로 삼은 뒤 킵차크한국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러시아를 가로질러 오스만투르크를 공격했고 페르시아 지역을 발 아래 두고 이집트 마물루크 왕조와도 대립했다.인도로도 원정을 떠났다.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뒤에는 명나라 원정길에 나서다 병사했다. 이같은 화려한 정복전쟁과 냉혈한 그의 통치술을 놓고 그를 냉혹한 현실 정치인으로 그를 평가하는 역사학자들이 적지 않다.
프랑스의 20세기 초 저명한 역사학자 르네 그루쎄는 그를 향해 “마키아벨리적 통찰력을 가지고 국가를 내세우며 일관된 위선을 행한” 인물로 평가했다. 그는 냉혹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권모가로 이름을 날렸던 푸셰의 영혼을 지닌 나폴레옹에 비견됐다.
그는 권좌에 오르기까진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필요하면 투항을 주저하지 않고, 상황이 요구되면 망명을 떠나는 등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냉정한 판단력과 카리스마를 키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티무르의 업적과 관련해 역사학자들에게 남겨진 숙제가 있었다.세기의 군사적 천재이자 전쟁기계라 할 수 있는 티무르가 의외로 정복한 지역을 재탕,삼탕 공격해야 할 정도로 뒤처리가 허술했던 것.
티무르는 바그다드, 부르사, 사라이, 카라샤르, 델리 등을 약탈했고 오스만제국, 킵차크한국, 모굴리스탄 한국, 인도 술탄국을 격파했지만 이들을 완전히 넘어뜨리지는 못했다. 심지어 별볼일 없던 이라키아랍 지방에 있던 질라이르조 마저도 그가 지나간 직후에 다시 일어섰다는 것.
이에 따라 티무르는 호레즘을 세 번이나 정복해야 했고, 일리에는 6-7번 반복해서 정복에 나서야 했다. 그나마 원정기간 동안 정복한 뒤 이들 지역에 항구적으로 지배를 뿌리내리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찬가지 이유로 동부 페르시아에 두 번, 서부 페르시아에 최소 세 번의 원정을 나서야 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두 번 원정을 했고, 다른 여러 지역으로도 원정을 떠났다.
그는 의도적으로 적을 도살해 산처럼 시체를 쌓으며 자신을 잊지 못하도록 경고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경고를 곧 잊고는 곧바로 은밀히, 혹은 공개적으로 저항을 재개했다. 그러면 티무르는 또다시 처음부터 시지푸스의 업무를 반복하듯 한번 정복한 뒤 떠난 지역을 다시 정복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결국 대부분의 티무르의 원정은 “반드시 다시 치러져야”했다. 치밀한 전략과 완벽한 전술과는 대조되는 이처럼 허망한 결과를 놓고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상당히 허탈해 하며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티무르의 정복전 양상을 살펴보면 이같은 허술한 뒤처리와 반복되는 정복전도 계산된 행동이었음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유목민들 사이에서 제2, 제3의 티무르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위해 정복활동에도 불구하고 피정복민의 유목사회의 부족정치 구조를 온전히 보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군사적 측면에선 부족군대 지휘권을 자신이 직접 장악했고, 주요 정복지는 자식이나 신임하는 장군을 보내 장악하게 했다. 그는 제국내에서 내부 불만이 고조되면 약탈물을 전리품으로 나눠주기 위해 정복전을 수행했다.
그에게 잦은 정복전은 내부 불만을 해소하고, 자신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킵차크 한국은 원정에서 결정적으로 격파했음에도 계속적으로 원정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자신의 지배영역에 포함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 대부분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적대자와 광의의 정적들을 공격해 그들로부터 약탈을 해오지만, 완전히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박살을 내놔서 계속해서 고혈을 빼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적대국가, 적대세력들을 모두 멸망시켜 버리면 내부 불만을 해소할 출구도 없어지고 지속적으로 제국을 유지할 동력과 자원이 고갈된다는 점을 냉철하게 파악한 것이다. 결국 그는 의도적으로 한곳을 박살낸 뒤 다른 곳에 가서 그곳을 혼내는 식으로 쉬지 않고 이곳저곳 방향과 위치만 바꿔가며 전쟁을 수행했던 것이다.
티무르는 지역 패권을 장기집권하는 방법으로 역설적으로 반대자와 적대세력에 대한 탄압과 압박을 ‘죽지 않을 정도’로만 시행하고 숨통을 열어주는 길을 택했다. 완전히 찍어 눌렀을 때, 적을 전멸시켰을 때 그 결과가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 무엇이든 오래 해먹으려면 (좋은 의도든 나쁜 의도든 간에)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야 하는 법이다.
<참고한 책>
르네 그루쎄,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김호동 外 옮김, 사계절 1998
Morris Rossabi, China and Inner Asia-from 1368 to the present day, Pica Press 1975


2009.06.03 at 09:51:10 댓글 | |
2009.06.03 at 10:16:37 댓글
2009.06.03 at 09:56:44 댓글 | |
2009.06.03 at 10:17:59 댓글
2009.06.03 at 15:30:37 댓글 | |
2009.06.03 at 16:36:36 댓글
2009.06.03 at 10:59:33 댓글 | |
확실히 나쁜 의도로도 오래 해먹으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는 법이네요
2009.06.03 at 12:14:58 댓글
2009.06.03 at 11:01:59 댓글 | |
소모적인 상황을 왜 내버려둔 걸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충만했는데
마지막까지 읽고나니 뒷통수 맞은 기분이 드는군요.
참 명쾌하네요
다시 일어설 여지를 남겨둔 채,
일어서려 하면 전리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정치적으로도 그렇지만 군사적으로 훈련의 한 부분도 되겠군요.
피정복민들에겐 참 잔인했겠지만
정말 멀리 볼 줄 알았던 사람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제압할 수 있다는 압도적인 자신감과 능력을 지닌 멋진 지도자.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너무나 좋은 곳을 알게 된거 같아서 기분이 좋군요.
좋은 하루 되시길요~
2009.06.03 at 12:15:43 댓글
2009.06.03 at 11:28:25 댓글 | |
2009.06.03 at 12:16:37 댓글
2009.06.03 at 14:02:06 댓글 | |
다케다 신겐의 모사 "겐스케"의 고언이었습니다.ㅎ
완승을 해서 기고만장한 신겐에게 저렇게 말했는데
젊고 패기 넘치며 승장이었던 신겐은 저 고언을 듣지않고 무리하게
공격을 계속 했다가 대패했었죠.
2009.06.03 at 16:37:09 댓글
2009.06.03 at 12:19:04 댓글 | |
2009.06.03 at 12:20:14 댓글
2009.06.03 at 12:31:27 댓글 | |
2009.06.03 at 16:38:06 댓글
2009.06.03 at 13:37:17 댓글 | |
반대로 몰리는 쪽에서 치는것을 배수의 진이라고 하지요...
옛 성현들의 이러한 지혜를 현 정부도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요.
하긴 알았다면 작금의 이런 사태까지 왔겠습니까마는...
2009.06.03 at 16:38:23 댓글
2009.06.03 at 13:57:20 댓글 | |
글 중에 ...결국 대부분의 티무르의 원정은 “반듯이 다시 치러져야”했다.... 라는
부분이 있는데 '반듯이' 가 아니고 '반드시" 입니다. 반듯하다는 물건의
모양이 반듯하다에 쓰는 말입니다.
2009.06.03 at 16:39:06 댓글
2009.06.03 at 15:36:10 댓글 | |
2009.06.03 at 16:40:32 댓글
2009.06.03 at 16:25:26 댓글 | |
결국 점령지에 대해 단순히 약탈의 대상으로 만 생각했기 때문에
두번 세번 정벌에 나선거고..
복잡하게 점령지에 대한 통치를 통해 지배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고혈을 빠는 정책이 된거지..
동글기자님이 생각하듯 고차원적인 생각에서 일부러 "죽지않을정도만" 남겨둔건 아닌듯한데요..
2009.06.03 at 16:43:45 댓글
2009.06.03 at 17:30:02 댓글 | |
저는 노사모도 아니고, 정치색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 서거관련 경찰의 대응과
어제 방영된 지난 5월 명동에서 촛불시위대 진압장면을 보고
왜 저렇게 해야만 할까 생각했는데...
북한 기사도 그렇고 이런 대응법들이 모두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것으로 느껴지는건 왜인지..
정말 우두머리도 머리 좋아야 하는데 말이죠..
2009.06.03 at 19:04: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