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김동욱 기자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자는 하루하루 역사를 쓰는 직업이라 매력이 더욱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가는 주제별로 역사관련 글들을 올립니다. 평소에 쓰는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어보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위와 풀의 역사라 부를수도 있을 것 같은데,그동안 읽은 역사서의 인상적인 내용들을 정리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설픈 글이지만 관심있는 독자님들과 의견 나누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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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왜구’를 문화산업으로 키우지 않을까?-변방 [테마별 ]
 

변방

 일본인들은 왜 ‘왜구’를 문화산업으로 키우지 않는 것일까.

 왜구와 성격이 비슷했던 유럽의 바이킹이 북유럽 문화산업의 핵심코드로 변신한 데 비해, 경제동물이라고 불리는 일본인들이 ‘왜구’를 캐릭터로 돈벌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어쩌면 의외의 일이다.

<동양사회에서 '왜구'가 종주국 일본에서조차 버림받는 동안,북유럽 축구팀 응원복장에서부터 각종 문화캐릭터와 소설,놀이공원의 바이킹선박까지 '바이킹'은 북구의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  

실제 바이킹의 후손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이 자신들의 조상이 ‘바이킹’이었음을 자랑스러워 한다. 북구 축구 대표팀들을 응원하는 스칸디나비아 지역 응원단이 바이킹 모자와 바이킹 복장을 입은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바이킹을 소제로 한 장난감과 소설, 만화 등도 적지 않다. 놀이공원의 바이킹 보트와 관련한 추억을 가진 사람도 많고,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소설 ‘작은 바이킹’의 주인공 비케를 떠올릴 수도 있다. 또 바이킹들이 약탈해온 전리품을 독점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데서 유래했다는 ‘뷔페’요리를 비롯해 말 그대로 ‘바이킹 요리’까지 바이킹과 관련된 문화상품은 셀 수 없이 많은 게 사실이다.

 반면,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왜구’의 흔적을 지우는 데 골몰한 듯 보인다. 한중일 삼국 학계에선 왜구가 순수 일본인들만으로 구성된 게 아니라 지방의 학정에 도피한 중국과 한국인도 일부 포함돼 있거나, 때로는 중국 또는 한국의 해적이 일본 왜구를 사칭한 경우가 있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는 듯 하지만 거기 까지일 뿐. 일본은 이런 일부의 사례를 침소봉대해 ‘왜구 주력=일본 또는 대마도 출신 사람’이라는 본질을 훼손하는 물타기를 강화하는 ‘역사 왜곡’으로 한국과 중국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은 북구 유럽이 바이킹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과 달리, 왜구를 지우지 못해 안달난 상황인 듯 하다.

 

<동양 각국을 침탈했던 왜구>

 바이킹에 관해서는 유럽에서 (선악과 옳고 그름을 떠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자유롭게 접하는 듯한 인상이지만 동아시아에선 여전히 ‘왜구’를 한쪽에선 단죄하고 다른 한쪽에선 관련성을 최소화 하거나 변호하기에 급급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왜구와 바이킹은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상당한 공통점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바이킹과 왜구 모두 각 문명의 중심부와 먼 곳에 떨어진 주변부 세력으로, 배를 타고 대륙 세력을 침공했다는 점. 각각의 문화 독자성과 민족어 문학의 시초(일본의 경우 정확히는 왜구라기 보다는 일본)를 선보였다는 점 등 공통점이 한둘이 아니다.

 양자는 유럽대륙과 중국·한국을 강력한 무력으로 공포에 떨게 한 존재였다. 그와 함께 문화변방의 존재로서 선진문화 수용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4세기경부터 룬(run)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해 9세기경 자형을 단순화해 쓰기 편하게 한 바이킹은 9세기 중엽부터 기독교와 라틴문자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라틴어를 배워 성서를 읽고 예배를 진행하면서 작네 나라 성자들의 생애를 라틴어로 서술하고 자기네 역사나 구비전승을 라틴어로 옮기기도 했다.

 이어 아이슬란드를 중심으로 12세기말부터 14세기 동안에 ‘사가(saga)’라고 불리는 영웅전설을 기록하는 것을 거국적인 사업으로 진행한다. 이 사가는 유럽 고급 라틴문명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살아남아 있는 바이킹 전통을 전해주고 있어 가치가 있다. 소위 바이킹 ’야만인‘들은 명예심이 강해서 이기면 좋아하고 지면 수치심 때문에 복수하는 전통을 사가속에 보존하고 있는 것. 특히 역사와 전설의 중간물의 형태로 흥미를 위해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는 일본어가 가미된 변형된 한문으로 쓰여진 (왜구를 포함하는) 일본의 ‘物語’, 특히 ‘軍紀物語’와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양쪽 모두 역사를 ‘문학적’으로 변형하면서 권력을 장악하려고 싸우는 전쟁이야기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

 아이슬란드 및 스칸디나비아와 일본 모두 독자적인 역사서를 쓰려면 고대에서 물려받은 독자적인 전승이 있어야 하지만, 역사서를 쓰는 일은 보편종교와 공동문어의 글쓰기를 받아들여 민족어 글쓰기에 응용할 수 있는 중세적 문화코들 갖춰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문명권의 주변부에 있었던 바이킹들은 보편종교(기독교)와 공동문어(라틴어)를 받아들인 뒤 그들만의 이야기인 ‘사가’를 창조했고, 마찬가지로 동양문명의 주변부 일본도 보편종교(불교,유교)와 공동문어(한문)을 받아들인 뒤 자신들만의 역사를 기술하기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이런 변방 문화의 특징은 사료를 개작(왜곡)해서 역사를 서술하는 특징도 같이 나타낸다고 한다. 자료의 원문을 존중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미처 생겨나지 않았는 반면,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성급한 마음에 자기 편한데로 역사를 왜곡해 재구성 한다는 분석이다.

 자료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두고 이용하면서 서술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첨부하는 정통 역사서술을 굳이 토론상대가 없는 가운데서 힘들여 할 필요가 없었기에 나온 문화적 특징이라는 주장이다. 문화를  수입하기만 하고 수출하지 않는 게 변방의 공통된 특질이 된 것이다.

바이킹이나 왜구 모두 변방에서 출발해, 변방문화의 특질을 골고루 지닌 존재였다. 하지만 바이킹은 이제 중심문화에 전혀 꿇리지 않는 고급문화 컨텐츠로 자리잡은 반면 왜구는 여전히 '악랄하고 미개한 도적놈'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사실 포악하고, 악랄한 약탈자로서 양자는 거의 차이가 없을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이킹과 왜구. 출발은 같았으나 과연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사회생활과 취재활동을 하다보면 거의 같은 여건과 조건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 인물, 기업 들이 적지 않다. 그런 차이를 만드는 이유가 때론 명확해 보일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외부인의 단견으로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과연 큰 결과의 차이를 만드는 눈에 띠지 않는 차이란 과연 무엇일까.

<참고한 책>

조동일, 공동 문어문학과 민족어 문학, 지식산업사 1999

조동일,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 지식산업사 1999

최영순, 경제사 오디세이, 부키 2002 

김영수, 건국의 정치-여말선초 혁명과 문명전환, 이학사 2006

Tom Bloch-Nakkerud, Die Wikinger, SFG 2000



바이킹, 왜구, 주변부, 문화상품, 캐릭터, 사가, 왜곡
posted at 2009/07/01 01:44:00 댓글(40)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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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01 11:18 | DEL | REPLY

악~

궁금증을 풀 요량으로 꼼꼼히 읽었더니..

호기심만 더 키워주셨네요..-_-;;


다음편에 알려주세요~
동글기자 | 2009/07/01 12:16 | DEL

악~님/ㅎㅎ,,댓글 잘 읽었습니다.본의 아니게 낚시성 제목이 됐군요.글쎄요 이유를 제 나름대로 고민은 해 봤습니다만,,,명확한 답변을 내놓을 실력은 안되서.한번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만한 주제인듯 해서 몇자 정리해 봤습니다.감사합니다.
백당시기 | 2009/07/01 11:42 | DEL | REPLY

왜 그럴까?
바이킹은 국가적으로 거족적으로 행한 사업이다.
반면, 왜구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비주류가 한 일이다.

바이킹은 비주류의 주류가 한 일이고,
왜구는 비주류의 비주류가 한 일이다.

주류의 주류는 주류에서 환영받고
비주류의 주류는 비주류에서 환영받지만

주류의 비주류나 비주류의 비주류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음지로 숨어들 수 밖에.
동글기자 | 2009/07/01 12:19 | DEL

백당시기님/의견 잘 읽었습니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가적','거족적' 등의 표현이 현재 근대이후의 국가,민족에 가까운 개념을 그대로 과거에 투영,투사했다는 느낌이 드네요.현대의 사고 개념을 그대로 과거에 투사하면 불가피하게 시대착오의 오류가 발생한다고 생각됩니다.바이킹의 실상에 대한 왜곡된 상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개인적인 느낌이 듭니다만...개인적으로는 제가 생각한 가능한 모범답안에는 좀 거리가 있는듯 합니다. 뭐 제가 체점할 입장도 절대 아니고,몇자 제 생각 적어봤습니다.고견 감사합니다.
잘모르지만 | 2009/07/01 12:43 | DEL | REPLY

일본은 학생들이 전쟁을 절대 있어선 안될 일로 가르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전쟁영화를 보여주고, 히로시마원폭이후 사진,영상 또한 전쟁에대한 경각심을 주기위해 보여준다는 일본출신분의 말이 생각납니다. 또한 애국가도 합창을 안하는 학교도 있다더군요(의무인지는 모르겟습니다) 예전 전쟁을 일으킬때 전제주의를 돌이키지 말기위해서 라더군요. 때문에 2002년 월드컵때 우리나라분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애국가를 합창할때 놀랐다고 하시더군요.

흠...정확히는 몰라도 전쟁(또는 약탈)에 대한 기록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하는건 아닐까요. 그리고 중국,우리나라와 불편한 전쟁사를 또다시 재조명하기 싫어서 일수도 있겠군요. "왜구"들이 가장 많이 공격한 나라는 가까운 우리나라,중국일테니까요.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동글기자 | 2009/07/01 13:03 | DEL

잘모르지만님/댓글 잘 읽었습니다.그런 측면이 있었군요.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중요한 점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큰 도움이 됐습니다.감사합니다.
RW | 2009/07/01 14:17 | DEL

무슨 전쟁이 부끄러운거라고 가르쳐여... -_- 2차대전도 오히려 피해자인양 가르치는게 일본교육이거든여.
동글기자 | 2009/07/01 16:26 | DEL

RW님/댓글 잘 읽었습니다.위에 잘 모르지만님이 적어주신 내용은 일본애 여러 움직입중 하나로 전 받아들입니다.(제가 제대로 본 것인지...^^)모든 현상,모든 국가에 한가지 움직임만 있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의견 감사합니다.
이것이 답변이 될지 모르겟습니다만 | 2009/07/01 12:46 | DEL | REPLY

하하 ... 참 재미있는 글입니다.
1년전에 제가 읽은 게 있는데 바이킹과 왜구는 하는 방식은 같지만 나중에 역할과 목적 자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보면 서양역사에서 바이킹은 고대 서유럽지방을 침공해 프랑스 일대와 영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나중에는 색슨족 왕국을 멸망시키고 노르만 왕조를 여는등 많은 일을 해냈죠.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약탈로서가 아닌 새로운 뭔가를 짜내야 하는 구상이 있었겟죠!

아마 제생각 으로는 여기서 크게 왜구랑 갈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아시아 역사를 전공하는 분들깨 왜구의 역할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약탈과 살해 방화를 일삼는 침략자로 인식이 많습니다. 일반인들에게 도 물어보면 다같이 그렇게 알고요!

현대 일본에서 자국의 아름다운 문화에 용맹한 사무라이를 주입하면 그럴듯 하게 멋있게 보이겟지만

왜구는 그 성격상 단순히 약탈과 침략으로서 끝났기에 비주류로 끝난겁니다.

왜구는 특성상 조직화된 군인도 아니었고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고 살벌하게 살아가야 했던 일본 본토 사회에서 자발적인 본능이 었을겁니다. 같은 시대에 부유하게 살았던 한반도나 중국과 비교하면 말이죠..

현대 일본에서도 이러한 왜구라는 이미지를 문화산업으로 키우지 않는 원인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동글기자 | 2009/07/01 13:05 | DEL

댓글 잘 읽었습니다.'비주류'라는 표현이 사람마다 뜻이 다른듯 하지만 님께서 써주신 표현은 좀더 느낌이 팍 와닿는 설명이군요.다만 "왜구가 조직화된 군대가 아니셨다"는 표현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적용범위가 다를 듯 하단 생각이네요.어떨 때 어떤 지역에선 국가 정규군보다 센 경우도 있었으니까요.고견 감사드립니다.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페르마 | 2009/07/01 14:02 | DEL | REPLY

바이킹은 정복을 했으나, 왜구는 강도짓을 했습니다. 바이킹의 일부는 정복지 지배층을 무너뜨리고 아주 눌러 산경우도 있습니다. 왜구의 강도짓이란 소수의 지방 군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거나 민간인들을 죽이고 학살하고 강한 군대가 오면 즉시 달아나는 방법이었죠. 말 그대로 도둑질입니다.
동글기자 | 2009/07/01 16:28 | DEL

페르마님/의견 잘 읽었습니다.댓글 감사합니다.좋은 말씀이십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암살자,자객 '닌자'까지 캐릭터화하는 일본이 '와코'를 강도짓했다는 점을 캐릭터상품화 못시키는 이유로 삼는 것은 일부 요인은 될지 모르지만 완전한 설명이 되기엔 좀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감사합니다.
두꺼비 | 2009/07/01 14:32 | DEL | REPLY

서양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해적을 자칭하며 노는 걸 자연스레 한다. 해적, 바로 도적이 아니더냐..살인과 약탈, 방화등 갖은 만행을 저지른 저들에 대해 애들이나 어른이나 이상하게도 동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것에 충격을 받지 않았는가..?
왜구를 일본이 멀리하고 숨기려 하는 것과 북구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자기네 조상이라 하는 것은 이런 바탕적 차이도 있다. 사실 해적질을 한 조상을 끌어내 우리 조상이고 자랑스러워 하는게 어찌 당당하고 당연한 것이냐...웃기는 일이다..덧붙이자면 외국애들이 하면 이런 일도 하등 이상하게 안 보는 당신들이 바보 아니더냐..ㅋㅋ
동글기자 | 2009/07/01 16:28 | DEL

두꺼비님/의견감사합니다.
-_-;; | 2009/07/01 15:01 | DEL | REPLY

근본적으로 일본의 열등감에서 비롯된거라고 봅니다만....

북유럽 애들이야 당시 딱히 주인이 없던 봉건 시대에 유럽을 쓸고 다니며 하고싶은짓 다하고 다녔던 깡패들이 자랑스럽겠지만...
일본의 왜구는 근본적으로 통일된 한 국가를 상대할 만한 전력은 아니였죠

그러다보니 예를들어 기득권에 빌붙어 기생하던 양아치 정도 였던 닌자나, 매춘부인 게이샤등에 대한 미화에는 열을 올리는 일본으로서도...
이미 외국(한국, 중국)등에 문헌에 기록되어 미화작업에 한계가 있는 왜구에 대해서는 무턱대고 미화하여 사업화 하기 곤란한 부분도 있겠죠.

유럽은 로마를 제외하고는 통일된 정권이 없어 각 지방색이 확실하고 지역별로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하지만,
동아시아의 경우엔 중국이라는 괴물이 수천년 전부터(주인은 몇번 바뀌었지만..) 존재해온 까닭에 외곽이라는 열등감이 존재해 온거죠.
일왕을 자칭 천자라고 하고 일본을 세계로 표현 하며 선을 긋고 살면서 막연히 문화 강국인 중국과 한국을 동경해온 것이 불과 150여년 전 까지의 일본이잖아요.

.
동글기자 | 2009/07/01 16:29 | DEL

써주신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의견 감사합니다.
지나가던 행인 | 2009/11/20 14:38 | DEL

계이샤를 매춘부로 보거나 닌자를 양아치 집단으로밖에 볼 수 없는 무식함에 경의를 표하며 글을 써 본다. 그리고, 일본의 국왕은 천자가 아니라 천황이다. 윗 글과 이야기가 조금 벗어나지만, 일본의 열등감을 운운하는 당신에게 한마디 하려 한다. 일본이 일본만의, 일본적인 특성을 가지게 된건 열등감보다 지리학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 일본이 중국과 한반도를 배낀건 대략 9~10세기 까지라 볼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별 볼일 없는 변방국가였고, 열등감을 느끼기전에 중국과 한반도로 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일본은 국가의 문을 닫고, 독자적으로 문화발전을 이루어왔다. 헤이안 시대 이후의 일본의 건축물, 특히 城이나 사찰의 형태는 우리나라나 중국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또한 평화시기를 거치면서 독자적인 여성문화나 풍류문화가 발전했다. 그 이후 막부가 열리고, 전국시다<봉건시대>를 거치며 武의 문화와 실용의 문화를 중시해왔다. 일본인의 실용적인 사고는 5백여년 전부터 유럽과 통상해오며 기술적으로 중국이나 한반도를 크게 앞지를 수 있었는 초석을 마련했다. (일본은 17세기에 이미 동양최초로 해부학서적을 출판했고, 그 이후 에도시대에 환등기나, 가라쿠리<테엽으로 움직이는 인형>, 화시계<和時計-일본식 테엽시계>, 발전기, 열기구, 공기총, 현미경등을 사용했다. 심지어는 페리제독에 의해 개항되기전에 증기기관도 만들었다.) 자만에 빠져있던 대중류와, 소중류는 근 500여년동안 제자리 걸음을 했지만, 일본은 500여년동안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다. 몇몇 한국인이 일본에 대한 묘한 우월의식을 들어내기 위해 들먹이는 통신사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산물이다. 통신사의 시작은 본래, 왜란이후 전쟁처리에 관한 해결을 위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일본은 유학의 본류인 중국과의 거리차이 때문에 유학적인 면에서 발전이 더디었다. 그 때문에 통신사를 통해, 조선의 유학을 받아들여 忠사상을 통해 자신들의 부하들을 다스리려 한것이다. 통신사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쏟아붇게 한 것은 지방 세력의 자본력을 마비 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당시 조선의 국가의 수준이 일본보다 뛰어났다고 말 할 수 없다.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일본(에도시대 초반)과, 나라가 쓰러지고있는 도중의 조선이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일본이 사실상 한반도의 국력을 뛰어 넘은건 15세기 무렵이라 볼 수 있다. (농경사회에는 인구=경제력이며, 애초에 조선후기까지는 모내기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었다. 또한 전쟁으로 단련된 일본의 군사 동원력과 훈련상태도 조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다.)
동글기자 | 2009/11/20 17:27 | DEL

지나가던 행인님/댓글 잘 읽었습니다.서울대 노태돈 교수는 삼국통일전쟁시기에 이미 일본이 한반도내 국가들보다 크고 강력한 국가로 보고 있더군요.참조 바랍니다.제가 언글할 만한 것인지 모르겠지만,적어놓으신 글들이 톤이 상당히 공격적이내요.'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좀 서로 부드럽게 의견을 교환하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역사 인식 | 2009/07/02 00:14 | DEL | REPLY

기자의 역사 인식에 참 한심함을 느낀다..
어줍쟎은 몇가지 사실을 주워듣고 멋대로 지껄이는 꼴이다.
왜구는 단순히 침략하고 약탈했던 바이킹과는 차원이 다른 악질들이었다.
어린애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파내고 곡식을 채워 제사를 지냈던 악질중에 악질이었다.

바이킹은 용감하게 전투를 벌였고, 당당히 싸웠다.
하지만 왜구들은 들쥐처럼 변방의 힘없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도망치던 속칭 양아치들이었다.
왜놈들이 자신들을 미화하고 오히려 피해자인것처럼 포장하고 있으니, 멍청한 기자는 왜놈들이 얼마나 교활하고 잔인한 족속들인지 알지 못하는듯 하다.
동글기자 | 2009/07/02 00:43 | DEL

수준 낮은 댓글에 더할 나위 없는 한심함을 느낍니다.논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기초적인 역사 상식도 없는 이런 수준이하 댓글에 대해선 앞으로 더이상 상대하지 않겠습니다.제대로 공부좀 하고,인격좀 닦고 인생을 살라고 한마디 조언합니다.
ㅋㅋㅋ | 2009/07/02 00:34 | DEL | REPLY

한국사람한태 물어봐 '조센진' 왜 문화산업으로 키울수없는지.
동글기자 | 2009/07/02 00:38 | DEL

인터넷 쓰레기 댓글문화에 대한 글은 다음을 참조하고(http://blog.hankyung.com/raj99/279131)무릎꿇고 반성좀 하고 살길 바람.당신의 인격수준이 드러나는 것임.
보아하니 | 2009/07/02 00:47 | DEL

일빠 하나 왔다가 열등감 폭발했나보다ㅋㅋㅋㅋ
동글기자 | 2009/07/02 00:53 | DEL

보아하니님/쓰신 글 잘 봤습니다.
행인 | 2009/07/02 00:43 | DEL | REPLY

우연히 기사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정보네요~^^
동글기자 | 2009/07/02 00:48 | DEL

행인님/댓글 감사합니다.좋은 하루(좋은 밤^^)되십시오.
낙척서생 | 2009/07/02 07:56 | DEL | REPLY

글을 읽고 조심스럽게 소견을 남깁니다 이글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협할 수 있음을 표명합니다
바이킹이 문화캐릭터로 떠오를 수 밖에 없는 극명한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바이킹이나 왜구나 약탈과 강간등, 인류애적 시야로 볼때 가장 패악한 집단임에는 동일합니다만 바이킹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에 의해 좀더 고귀해 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용감히 싸워 죽어 발할라라는 전사들의 땅에 가는 것을 그들의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집단입니다 바이킹하면 용맹한 전사라는 공식을 성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아직까지 서구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고 그것은 현시대에도 통용되는 고귀한 가치이기 때문에 문화캐릭터로 등장 할수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왜구는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어떤 가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약탈과 강간등 패악만을 목적으로 한 집단이었습니다 즉 현시대에 통용될만한 그 어떤 가치도 뽑아낼수 없는 집단이었습니다 각 집단을 지칭하는 바이킹이나 왜구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직관적으로도 인식할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의 위인들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면 그들의 공과 과중 공을 과대 포장해, 사람들의 롤모델로 만드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유추 가능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왜구를 문화로 안만드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뽑아낼 가치가 없는 것 뿐만아니라 그들도 수치를 아는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자님 글 읽으면서 느낀것은 기자님도 다 알고 계시면서 일본인들의 수치심을 유발할려는 간접적인 의도,즉 비꼼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만....
동글기자 | 2009/07/02 10:14 | DEL

낙척서생님/좋은 내용 담아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우선 고견 감사드립니다.'사상''가치'의 측면을 짚어주신 점은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저도 국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교육과정을 받아 성장한만큼 비슷한 생각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벗어나야 얼마나 벗어가겠습니까)위의 여러 댓글들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됐나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일부 악플러들의 경우는 단편적 이미지 이상의 정보와 팩트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그게 전부라며 무례하게 나서는 태도가 문제겠지요.)그런 측면에서라면 언급하신 '간접적 의도'가 전혀 없진 않겠습니다만.사실은 그보다는 제가 어떤 답이나 해석을 내놓을만한 판단이 나오지 않은 점이 더 크다고 하겠습니다.고견 감사드립니다.
낙척서생 | 2009/07/02 10:33 | DEL | REPLY

위글,제글에 대한 논거 보충의미로 닌자란 캐릭터에 대해 한가지 더 의견을 개진합니다
암살자 닌자 자객이란 캐릭터는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 사기 자객열전 형가의 예를 보면 알수있습니다 의와 협의 대명사라 할수 있습니다
사실 과거 전쟁을 종식 시키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암살자를 보내어 적의 수장의 목을 취하는 것입니다 기본중 기본입니다
닌자는 이보다 더 특화 되어 있습니다 어둠속에 살며 기술을 닦고 은신을 하며 자신의 본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일본이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군주를 찾고 그 군주를 위해 암살을 시도한다는점등.그 가치를 떠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환타지적 상상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품성이 충분합니다 그 어느 나라 자객보다 환타지적 요소가 많기에 캐릭터화에 성공한 케이스라 봅니다
사실 캐릭터화란 그 특성중 일부 가치를 극대화 시키는 것입니다 닌자의 환타지적 요소,바이킹의 용맹한 전사 이미지,사무라이의 할복에 의한 충성심등, 즉 인류 보편적가치중 일부를 대표할수있는 특성이나, 갈망하는 호기심을 채워 줄수있으면 캐릭터화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즉,뽑아낼수 있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여담입니다만,우리나라에 제대로된 캐릭터 상품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만약 제대로 된 캐릭터화된 문화 상품이 한가지라도 있다면 모기업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란 헛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터인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글기자 | 2009/07/02 10:39 | DEL

낙척서생님/많은 것 배우고,많은 것 생각하게 하는 댓글 감사합니다.비는 많이 오지만 좋은 하루 되십시오.
로즈마리 | 2009/07/02 17:27 | DEL | REPLY

하꼬네 아시호수에 유람선을 타는데 해적선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바이킹이라고 부르더라구요 ~~친구랑 둘이 [얘네들이 해적질하던 왜구의 후손들이라 다르구만]이라고 둘이 씹었던게 생각나네요 ㅎㅎ
동글기자 | 2009/07/02 18:37 | DEL

로즈마리님/재미있는 댓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광해군 | 2009/07/17 00:57 | DEL | REPLY

기자님의 유익한 글 잘보았습니다 ^^ 저또한 역사에 관심이 많고,좋아하는 입장으로서 의견이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네요. 흥미로웠습니다.
동글기자 | 2009/07/19 14:02 | DEL

광해군님/제가 댓글 확인이 좀 늦었내요.좋은 말씀 적어주셔 감사합니다.
ert | 2009/09/29 13:03 | DEL | REPLY

왜구들이 조선에서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는 여자애의 배를 갈라서 마치 삼계탕 닭처럼 만들어 놓고 빈 속에다 쌀을 넣어 그걸 자기들끼리 나누어 먹는 자기들딴에는 운수를 점치는 짓을 했다고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아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정신 상태를 가졌고 개네들을 미화했다간 일제시대 대동아 공영을 부르짓던게 동양에서 왕따 당하기 딱이죠 . 그러고 보면 일본도 한물갔군요 .
동글기자 | 2009/09/29 13:31 | DEL

ert님/적어주신 댓글 잘 읽었습니다.의견 감사합니다.
차이메리카 | 2009/09/30 16:49 | DEL | REPLY

그냥 간단히 동서양의 확연한 차이라 보이네요.
서양은 과거의 시비를 잘 청산하는 역사의 습성이고,아시아 쪽은 각국간의 과거나 자기나라의 과거를 제대로 정리청소를 대충 한다고 다시한번 느껴봅니다!
추신--10월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서울 들어 갑니다!
동글기자 | 2009/10/01 09:25 | DEL

차이메리카님/댓글 감사합니다.고국에서 보내시는 명절 즐겁게 보내십시오.
지나가던 행인 | 2009/11/20 14:08 | DEL | REPLY

왜구는 일본국내에서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과 왜구를 혼동하는데,

국가인 倭=야마토(이후 일본)은 왜구와 전혀 다르다.

왜구는 '일본내에 거주하던 해적 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자 풀이대로 倭(왜)나라의 寇(도적)이다.

일본 조정과 일본의 막부에서도 왜구에 대해선 철저하게 단죄했다.

명과 일본이 연합해서 왜구를 소탕한적도 있다.

일본이 사무라이와 무사도, 닌자같은 아이템을 두고 국가의 골칫덩이였던 왜구를 상업화 시킬 이유는 없다.

또한, 한가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고, 국사책에도 안나오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신라구(新羅寇)다.

신라구는 한반도에서 일어나 일본을 침탈한 해적집단이다.

우리가 신라구를 상업화 하지않듯이 일본도 그럴 이유가 없는것이다.

바이킹이 미화된것은 19세기 초반에 에리크 구스타프 예이예르에 의해서라고 한다.
동글기자 | 2009/11/20 17:27 | DEL

댓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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