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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
예비군을 무조건 늘리고, 예비군을 강화한다고 강력한 군대를 갖게 되고 국방력이 절로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병력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많이 동원하느냐로 국력의 척도를 삼았던, 즉 예비군이 전력의 핵심중의 핵심이었던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도 단지 예비군이 많다는 것은 전쟁의 승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최근 그루지아와 체첸에서 치러진 전투에서 잇따라 약점을 드러내 '알렉산드르2세 이후 최대 군대개혁이 이뤄지고 있는 러시아군의 편제는 19세기식 예비군 제도에 근간을 두고 있다.>
당시 세계 열강 어느 나라 보다 많은 예비군을 보유했었고, 예비군 강화에 박차를 가했었던, 하지만 전장에선 굴욕적 패배가 이어졌던 제정 러시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크림전쟁에서 영국·프랑스 등 서구 유럽 국가들과의 현격한 국력차를 절감한 제정 러시아는 이후 지속적으로 군대 개혁을 추진했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대 개혁’이 이뤄진 것은 1874년. 차르 알렉산드르2세는 멀게는 나폴레옹 군대에서, 가깝게는 1871년 보불전쟁에서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고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프로이센(독일)의 군대를 모델로 한 현대화된 군대를 갖고자, 각종 결함을 드러낸 러시아 군대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하게 된다.
전쟁장관 드미트리 밀류친의 지도하에 군대에 대한 갖가지 개혁·개선안이 잇따라 도입되기 시작한 것. 대표적인 것이 그동안 사회 하층에만 일방적으로 부과되던 병역의무가 이론적으로는 전 러시아인에게로 ‘국민 개병’의 원칙으로 진일보된 형태로 적용되게 됐다.
이와 함께 군복무 기간도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기존에 무려 25년간 의무복무 시키던 무자비한 관행에서 6년간 군복무로 대폭 삭감했다. 이와 함께 프로이센 등의 사례를 모방해 예비군을 창설하게 된다. 여기에 군법에 대한 개선도 이뤄지고 일선 장교들의 자의적인 사병에 대한 처벌도 금지되게 된다.
또 전문화된 군사학교도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개혁으로는 모든 징집된 병사들에게 기초적인 교육이 진행됐다는 점이 꼽힌다.
하지만 의도도 좋고, 목적도 훌륭하고, 겉보기에 빼어난 군제 개혁이었지만 당시 러시아의 재정과 전반적인 사회 인프라, 국민들의 인식수준은 그만큼 따라가질 못하는 상황이었다. 개편된 군대는 러시아 근대화의 상징이었지만 겉보기만 좋은 사상누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이같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군대는 ‘느림보’와 ‘비효율’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실제 성과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1917년까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러시아가 붕괴를 향해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고 평가할 정도.
러일전쟁에 이어 1차 세계대전은 이같은 러시아군의 무력함을 여실히 드러낸 계기가 됐다. 개전 전부터 러시아의 동맹국 프랑스는 러시아의 대 독일 공격작전이 조기에 집행될 것을 원했지만 어차피 현실이 그렇게 원활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1911년 12월에 프랑스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지원 없이 단독으로 독일과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1913년이 되도 이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당시 상트 페쩨르부르그를 방문한 프랑스의 조르프는 “러시아 황제 측근들이 극도의 우정을 표하는 것은 느꼈지만, 러시아 지도층은 프랑스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수코믈리노프 러시아 전쟁부 장관은 형식적으로는 프랑스에 모든 것을 약속했지만 단 하나도 지킨게 없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1차 대전 직전 러시아군의 기동연습은 “전쟁의 현실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열병식에 불과했다”는 게 더글러스 포치 교수의 표현이다.
러시아가 제대로 독일에 대적하기 위해선 일선 동원기간을 15일에 맞춰야 했지만 24-27개군을 동원하는데 23일 이상 걸렸고, 이들 예비병력을 일선에 배치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26일 이상 걸렸다.
실제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는 러시아군보다 훨씬 더 능률적인 독일군을 맞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무기생산과 농업생산을 늘렸지만 군대와 기병대의 마초를 수송하기에도 벅찬 열악한 수송 인프라 때문에 제대로 보급조차 이루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후방의 많은 병력에게 총을 주지 못했고 철로망도 부족해 예비군을 필요한 지점에 신속히 수송할 수 없었다.
비능률적인 소규모 관료조직의 능력을 벗어나는 규모로 전달된 동맹국들이 보낸 전략물자는 무르만스크와 아르항겔스크 부두에 몇 달씩 쌓였다.
결국 러시아는 탄넨베르크에서 25만명의 병사를 잃었고 1915년초 카르파티아 전투에서 또다시 100만명을 잃게 됐다. 이게 끝이 아니라 러시아군은 독일 마켄젠 장군이 지휘하는 독일군과 중부 폴란드에서 접전했을 때 다시 40만명의 손실을 봤다. 1916년 모처럼 브루실로프 장군 지휘로 공세를 벌였다가 루마니아에서 참패로 끝난 작전에선 또다시 100만명을 잃으며 사기가 크게 꺾인다.
1916년 말까지 러시아군의 사상자 수는 360만명에 이르렀고, 포로로 잡힌 수도 210만명에 달했다. 이처럼 러시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예비군들로 구성된 러시아 군대가 쑥대밭이 되자 이전까지 군대 면제 대상이던 가계를 지탱하는 독자들까지 징집되게 된다.
결국 1917년 케렌스키 지도하에 7월 대공세를 펴지만 역시 패배로 귀결된다. 결국 동부전선에서 러시아는 혁명의 여파와 전쟁 수행능력 부족으로 1917년 12월 독일과 굴욕적인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강화조약을 맺게 된다.
당시 러시아 언론들은 자국 군대에 대해 “제대로 급식받지 못하고, 지치고, 초라하며, 분노에 찬 사람들의 대집단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최근 외신들을 통해 최근 러시아가 알렉산드르2세의 군대개혁 이래 최대규모의 군대개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냉전시대 서방에 공포의 대상이었던 러시아 군대가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간 이유는 최근 체첸과 그루지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승전했음에도 불구, 현대전에서 적잖은 약점을 노출했기 때문. 이에 따라 현재 140만명으로 구성된 러시아 군대가 규모나 너무 비대할 뿐 아니라 매우 비효율적으로 편제돼 있다고 판단,100만명 수준으로 줄이고 경량화·기동화를 강화한다고 한다. 특히 장교숫자를 줄이고 대신 ‘콘트라크트니키(контрактники·계약직 전문사병)’라고 불리는 전문화된 프로 사병들을 충원하겠다는 복안이라고 한다.
이같은 군대개혁에 대해 러시아 군사전문가 알렉산드르 골츠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현재 러시아군 편재는 19세기 대량 징집에 따른 예비군 시스템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며 “상당수 부대가 사병은 거의 없이 장교와 장비들만으로 구성돼 있고 유사시에 일반인을 충원해 부대가 유지되는 시스템인데 이같은 예비군 위주 군대편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군사강국 러시아에서 수 백년 묵은 19세기식 예비군 제도를 사실상 폐기(물론 재정적인 어려움에 따른 조치인 측면도 있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 와중에, 국내에서도 국방부의 예비군 강화정책을 둘러싼 사회의 여러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민방위에 들어간 마당에 어찌 보면 큰 상관이 없는 이슈일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의 소위 '개혁'방향이 그다지 상큼하고 개운한 느낌은 들지 않아 예비군 하면 떠오르는 제정 러시아 군대의 역사를 몇자 끄적여 봤다.
<참고한 책>
Nicholas V. Riasanovsky, A History of Russia,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Geoffrey Hosking, Russia and the Russians-A History, Harvard University Press 2001
M.카르포비치, 제정러시아 1801-1917, 이인호 옮김, 탐구당 1992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황건 등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1994
폴 케네디 編, 강대국의 대전략, 손일현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1994
피에르 르누뱅, 제1차 세계대전, 김용자 옮김, 탐구당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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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의 러시아라면 정말 비참하게 졌던걸로 기억하는데말이죠^^
그나저나 요즘 예비군 훈련도 많이 강화됐다고 하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하려는건지 모르겠네요
전투를 진행할 때 기본적으로 100이라는 전투력이 필요하다면 그중에 상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과 예비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있는 겁니다. 상시 전력이 70의 비중을 차지한다면
30의 예비전력이 어울려서 100이라는 전시 전투능력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에 대한 이해나 가지고 단순히 예비군기간 늘리면 강력해 질까 어쩌고 하는것 너무 저능아 적인 생각아닌가요?
국방부의 고민은 예비전력의 전투능력 수준입니다. 전시 100이라는 전투능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제도로 되지 않으니깐 바꾸는 거지요. 군 관련 얼마나 깊이 있는 기사를 쓰시는가는 오늘 처음 봐서 모르겠지만.. 그정도 상식을 가지고 국가 정책을 깔려면 까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정부 까면 호감도 올라가니깐 너두나도 이런식이죠. 거기에 휩쓸리지 마시고.. 올바른 저널리즘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일단 일선 사단에 배치되는 동원병력에 대한 군수지원체계도 잘 되어있고
전시 인력수급이나 군수물자 생산체계도 잘 되어 있으니까요.
흔히 향토 예비군가면 칼빈을 주지만 향토예비군인원은 그저 집근처 경비이고
실지 부대로 배치되는 동원지정 인원에 대한 군장류는 현역급으로 100%
치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칼빈의 탄약또한 생산 중지된 상태이기에
치장해뒀던 칼빈의 탄약 떨어지면 창고 가득 쌓여있는 16으로 바뀌겠죠.
지금 현 예비군 개혁을 한다고 하는데 주 내용은 현역의
보충이나 동내방위에 쓰던 예비군을 점령지 치안에 쓰겠다는 것이죠.
아군지역이 아닌 점령지 치안을 해야 하니 현역수준의 전투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구요. 현재 미군도 예비군이 다수인걸 본뜬거 같습니다.
물론 미군처럼 월급주고 예비군 훈련을 빡시게 시키면 모르겠지만
까까사먹을돈 쥐어주고 훈련 일주일씩 빡시게하면 정말 하기 싫어지겠죠.
계획은 좋은데 그걸 현실화 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