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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전통적으로 중국은 노인을 우대하는 사회였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장유유서의 연장자 우대 전통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풍습과 제도가 그렇듯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변치 않는 문화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중국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공경, 노인중심의 문화도 마찬가지로 예외는 아니었다.
유교 문화가 확립된 이후, 중국을 비롯한 동양사회에선 노인 공경 문화가 오랜 세월동안 깊이 뿌리내렸다. 때로는 ‘공경’의 수준을 넘어 ‘노인 위주’, ‘노인 중심’으로 까지 평가될만한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

<사실상 유목적 삶에 가까웠던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은 '노인문화' 대신 '젊은이 숭배'를 가져왔다.특히 대장정 도중 주워온 어린이들에겐 이전 문화에선 파격적인 표현의 자유를 부여했다. 사진 오른쪽 위는 부모가 모두 국민당군에 죽어 홍군 사이에서 양육됐던 리펑 전 중국총리.큰 사진은 대장정을 마친 직후 연설하는 마오쩌뚱>
이 같은 노인 공경 문화가 계속되면서 중국에선 한때 결코 ‘늙었다’고 할 수 없는 중년의 교양 있는 사람들까지 ‘늙은’ 대접을 받으려 하기도 했다. 바로 호칭에서 존경의 의미로 늙을 ‘老’자를 마치 영어의 ‘미스터’처럼 붙여 불렀던 것.
유명한 중국의 문학평론가 곽말약이 1954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에 있던 중국 학자들이 곽말약을 향해 ‘郭老’라고 부르고, 곽말약도 동료 학자들의 성씨 뒤에 ‘老’자를 붙여 예의를 표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가이즈카 시게키 일본 교토대 교수는 “ 老자를 붙인 것은 지위가 높다는 이유와 함께 노인에 대한 존경이 겹쳐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실 이같은 노인에 대한 우대문화는 중국이 어느 정도 안정적 질서를 갖췄을 때 더욱 성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명한 중앙아시아 전문가 오웬 라티모어에 따르면 중국에선 혁명이나 정치변혁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난 뒤 안정적 질서가 만들어지면 노인지배(제론토크라시)나 연령에 대한 존경의 경향이 강해졌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연장자의 경험이 촌락생활에서 큰 도움이 되는 등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노인에 대한 존중 문화와 관념을 유교가 정리화 하면서 중국 사회에 뿌리내렸다는 것.
하지만 이 같은 노인공경, 노인위주의 사고 패턴과 문화는 불변의 존재가 아니었다. 대격변의 시기에는 오히려 ‘젊은이 숭배’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띤다는 설명.
오웬 라티모어가 1937년 5월 중국 연안에서 공산당 지도자들과 같이 지내던 시절, “장정을 감행하면서 중국 공산군은 이동하는 도중 가족을 잃거나 가족이 죽은 어린이들을 주워 키웠다”면서 “이 어린이들은 (전통 문화와 달리) 어른의 얘기에 참견해도 됐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도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마디로 ‘노인숭배’가 아니라 ‘악동숭배’의 현상이 목격됐다는 것.
노인숭배, 노인정치가 거의 없거나 미약한 유목사회 처럼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던 중국 공산당들의 경우에도 ‘노인 숭배’의 뿌리깊은 중국 문화가 흔들렸던 것이다. 유목사회의 경우, 생존을 위해 계속해서 이동해야 하는 만큼 다른 타이틀이나 명분보다 오직 능력위주로 사회 지배 패턴이 결정되고 육체적으로 건강한 젊은 지도자가 전체 지도자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다.
대장정은 사실상 일종의 유목으로 그런 상황 하에서 지도자의 능력여부와 정신과 육체의 강인성 여부가 집단 전체의 운명을 결정했다. 결국 이런 사실상 유목의 삶을 살아야 했다는 이유 때문에 중국 공산당에선 ‘젊은이 숭배’가 나타나고 전통사회의 ‘노인 숭배’에 대해 수정을 가하게 된다.
처음에는 젊은 공산당원들이 선배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이 같은 변화의 모습은 그러나 이후 각종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과거 사회’의 낡음을 깨는 수준에서 조절된 게 아니라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되면서 또 다른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된 것. 즉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 들의 잔혹하고 겁 없는 폭력의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젊음’과 ‘역동성’을 높게 평가하는 사회와 조직은 변화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강한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조직은 상대적으로 좋게 말하면 안정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체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는 ‘역동성’이 강조되는 사회가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언제나 수위조절, 균형조절이 조직활동의 성공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이 된다. ‘노인 존중’이 지나치면 젊은이들을 짓누르는 질곡이 되듯, ‘젊은이 숭배’도 지나치면 패륜과 무질서로 이어지기 쉽다. 모두 어느 한 순간 극단으로 이어지기 쉽다. 중국사회는 수천년간 ‘노인 존중’이 자주 극단의 형태로 가면서 “죽은자들을 위한 국가”가 되다시피 했다. 20세기 중반 문화대혁명 때는 과거를 모두 부정하면서 반대의 극단으로 나가 중국사회를 수십년 후퇴시켰다.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언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참고한 책>
오웬 라티모어 외, ‘전통중국과 공산중국(좌담)’, 이영희 편역 ,8억인 과의 대화-현지에서 본 중국대륙 中, 창작과 비평사 1993
ps.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글을 읽으신 일부 분들께서 오해하시는 내용들이 있어 기우지만 몇자 적어 봅니다. 우선 블로그 포스트에 적은 글들은 기본적으로 기사가 아닙니다. (간혹 기사화 되는 것도 있긴 합니다.) 기사가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과 의견을 정리하고, 제가 보기에 의미 있는 책의 구절들을 소개해 의견을 나누고자 하는 글들입니다. 제가 직업은 기자지만 그렇다고 제가 쓰는 모든 글이 자동적으로 기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간혹 제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독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쓴글은 “노인을 공경하지 말자”거나 “요즘애들 건방져 못쓰겠어”를 주장하는 글이 결코 아닙니다.중국 공산당을 고무찬양하는 글도 결코 아닙니다.모두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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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키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ㅎㅎ~
오늘도 유익한 글 잘 읽고 갑니다....
동글님... 즐거운 주말 맞으세요 ^^
게다가 개인사업 하러온 싸장님들은 지금 환율이 하도 약세니 장사 안되면 종업원들 임금체불 하구 야반도주?뭐 이런 식의 한국인들이 사실 지금 넘칩니다!중국 현지 언론들도 이젠 한국기사는 주로 씹는 가십으로 처리를 자주 하더군요!!제가 처음 중국에 온 90년대는 중국인의 정서가 주로 친한혐일 이었지만 21세기인 지금에는 반한친일로 많이 전환 됨!어익후 글이 넘 길어지네욫!!다음에 또 방문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