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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사
로마인들로 부터 ‘신의 채찍’이라 불렸고, 스스로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는 나의 노예”라고 ‘오만하게’ 선언하며 로마제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의 최후는 그의 이미지와는 매우 이질적인 소위 ‘복상사’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에게 적대감을 지녔던 서구사회에선 오랬동안 그를 여인의 눈물 속에 침대위에서 부끄럽게 죽어간 인물로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수많은 불명확한 점을 남기고 있어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틸라의 연회와 최후.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및 네이버블로그 aronrealty>
두 번에 걸친 서로마제국에 대한 고격이 실패로 돌아간 뒤 권위를 되살리기 위해 예봉을 동로마제국으로 옮기는 점을 모색하던 아틸라는 일단 AD452년에서 453년 겨울 훈족의 배후지인 헝가리로 돌아가게 된다.
상처받은 권위를 되찾기 위해 이전에 해왔듯 또 다른 정략결혼을 한 아틸라는 게르만족 족장의 딸인 일디코를 아내로 맞았다. 훈족은 신분이 높은 여성을 아내로 두는 것을 특권의 상징으로 여겼고, 그들이 정복한 부족들에게 족장의 딸 등을 공물로 바치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일디코와 결혼한 날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453년초 성대한 결혼식이 끝난뒤 아틸라가 갑자기 죽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이 ‘역사적’인 사건을 전하는 기록을 남긴 역사가 요르다네스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동로마의) 역사가 프리스쿠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틸라는 죽기 직전에 일디코라는 대단한 미인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아내가 수없이 많았지만 일부다처제는 그 종족의 관습이었다. 그는 결혼식에서 환락에 탐닉했다. 술이 취한채 드러눕자, 지나치게 많은 피가 머리로 몰렸다. 정상적으로는 코로 흘러내려가야할 피가 기도로 흘러내려가 그를 죽이고 말았다. 다음날 오전이 지나도록 그가 나타나지 않자 잔치에 참석했던 왕족들은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고 신방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방안에서 그들은 아무 상처도 없는 아틸라의 시신이 흥건하게 고인 피 웅덩이 한가운데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신부는 베일을 쓴 채 머리를 숙이고 울고 있었다.”
신혼첫날밤 피를 흘리고 죽었다는 아틸라의 죽음에 관한 관례적인 묘사인데, 그렇다면 아틸라는 정말 기록이 전하는 데로 과음으로 인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기록이 은근히 유도하듯 소위 ‘복상사’의 가능성도 자연스레 유추할 수 있는데.
일단 기록을 그대로 따라가면 아틸라의 사인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가져온 위궤양이나 문맥 고혈압으로 인한 과다출혈로 짐작된다고 한다. 과도한 음주가 목에 정맥류를 만드는데 누워있는 상황에서 이런 혈관이 하나라도 터지면 피가 곧바로 폐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 만약 똑바로 서 있거나 정신이 있었다면 혈관이 터지더라도 치명적이지 않지만, 정신없이 누워있는 상황에선 그야말로 본인도 모르게 ‘한방에 간’셈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초기부터 이같은 아틸라의 사인에 대해선 의구심이 많이 제기됐다. 거칠고 잔혹한 전장을 누빈 위대한 전사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베일이나 우는 신부, 침묵한 비명, 잠긴 문 등등이 마치 추리소설에나 나올법한 소제들이라는 시각이다.
특히 아틸라에 대한 기록을 제일 먼저 남겼다고 인용되고 전해지는 동로마 역사가 프리스쿠스는 아틸라가 죽는 시점에는 아틸라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정확한 기록을 남겼는지 의심받고 있다. 아틸라가 저세상에 가는 시점에 프리스쿠스는 이집트로 파견돼 있었다는 것. 결국 그의 설명은 2차 또는 3차적인 전해듣고, 건너 건너 알레된 간접 자료에 의거한 것이다.
게다가 아틸라의 마지막을 묘사한 내용들은 프리스쿠스 자신이 449년 잔치판에서 목격한 아틸라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다고 한다. 그는 죽기 몇 년전 아틸라의 모습을 “다른 훈족들은 술에 취해 흥정댔지만 아틸라는 초연한 모습으로 술대신 다른 음료를 마셨다”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기록의 신빙성이 의심받으면서 아틸라 최후의 실상과 다르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당시 로마제국의 기독교도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선 신성모독자인 아틸라에 대해 부정적인 전설을 퍼뜨리는 과정에서 아틸라의 최후가 창조됐다는 시각이다. 즉 아틸라가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화장단을 쌓고 영광스럽게 죽는 것보다는 침실에서 탐욕과 술에 절어 죽는 것이 신의 처벌과 보복으로 적절해 보였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런 시각에서 당대의 기록을 다시 살펴볼 때, 아틸라를 죽음으로 몬 수단으로는 암살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아틸라가 암살됐다고 볼 경우에는 암살배후로는 동로마 황제 마르키아누스가 첫손에 꼽힌다고 한다. 동로마제국에선 언제든 암살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할 준비가 돼 있었고 아틸라를 암살할 동기는 분명했다.
여기에 ‘돈맛’을 알고 있었던 훈족 에데코 처럼 아틸라와 정치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내부의 적들도 적지 않았다. 에데코는 한때 아틸라와 공동지도자였다 아틸라에게 죽은 아틸라의 친형 블레다의 추종자였고, 그가 동로마제국에 포섭됐거나 이중첩자였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아틸라와 함께했던 여인 일디코를 자객으로 보기도 한다.
이밖에 아틸라를 살해한 수단으로는 전통적인 칼 같은 물리적 수단이 아니라 효과가 느리게 나타나는 치명적인 독이 사용됐을 수도 있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결혼 잔치에서 아틸라에게 독을 한모금씩 먹였을 수도 있다는 것.
이처럼 아틸라가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이유는 찾자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정확한 사인은 당대에도 밝혀지지 않았고, 현재도 앞으로도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로마제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위대한 지도자가 갑자기 사라진 훈족은 제대로 된 계승자를 마련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해체돼 다시는 예전의 위세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얼마전 생애 처음으로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 검사를 실시했다. 처음 병원에 발을 들여놓을 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다행이 별다른 이상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 이제 별일 없겠지”하고 있는데 상식적으로는 건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명 축구국가대표 선수가 공개석상에서 갑작스레 실신했다는 뉴스를 접했다.(빨리 원인을 파악해 완쾌하길 바란다.) 그 누구도 자신의 건강을 자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뜩 건강함과 스테미너의 상징이었다가 한순간에 유명을 달리한 아틸라의 최후가 떠올랐다. 정말 아틸라 최후의 진실은 어떤 것일까.
<참고한 책>
프랭크 맥린, 전사들, 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
J. B. Bury, The Invasion of Europe by the Barbarians, Norton 2000
지동식 편역,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는가, 고려대학교출판부 1987
허승일 외, 로마제정사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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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과 물이 있는 곳에 도시를 세우고 살게 되었는데 그곳이 베네치아 라는글을 읽었어요
제가 가본곳중 제일 멋진곳이었는데 그글을 읽고 깜놀했었어요
아틸라 BBC에서 만든 드라마로 봤는데 눈이 퍼런 백인이 아틸라로나오더군요 ;;
재밌게 잘 봤습니다.
우리 나이에 벌써 몹쓸 병에 걸린 사람들이 나오더군요.
얼마전 이원복씨의 먼나라~ 이탈리아편을 보고 로마에 대한 흥미가 생겼는데, 시오노 여사의 책 말고는 아는 것이 없네요.
혹시 잘 읽히는 명저 있으면 하나 소개해주세요..^^
아틸라라고 하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화신이 아틸라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