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김동욱 기자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자는 하루하루 역사를 쓰는 직업이라 매력이 더욱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가는 주제별로 역사관련 글들을 올립니다. 평소에 쓰는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어보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위와 풀의 역사라 부를수도 있을 것 같은데,그동안 읽은 역사서의 인상적인 내용들을 정리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설픈 글이지만 관심있는 독자님들과 의견 나누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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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11-18'에 해당하는 글 1건

소설이 되버린 백주대낮 역사의 현장,아리스토텔레스가 봤다면? [고전읽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현대적인 저술가다.

 정상적인 중등 이상의 교육과정을 거쳤다면 아리스토텔레스란 이름을 한번 듣지 않은 채 학교를 떠나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 외에는 그의 저술을 직접 접할 일이 없을 듯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란 이름은 머나먼 옛날 서양에서 여기저기 건드려보지 않은 분야가 없는 ‘만득이’같은 할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엔 (감수성이 좀 남아있던) 20대 학창시절 “머리털이 곤두서고,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충격을 아리스토텔레스를 접하면서 느끼곤 했다.( 『정치학』중에 나오는 “장애인은 죽여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 조차, 아리스토텔레스의 음성을 통해 듣고 있노라면 바로 나 자신이 철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지목한 장애인인 듯 느껴져 사라져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해 온몸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와 현대 대한민국이라는 수천년의 시간적 간극과 공간적 거리감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접하는 것은 여간 부담스런 일인 것도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여러모로 접하기에 약간은 부담을 덜어주는 책이다. 일단 분량이 매우 적어 두께가 얇을 뿐 아니라(뒷쪽이 망실돼 한참 논의를 진행하다가 갑자기 책이 끝난다.)다루는 대상도 시공을 초월한 문학을 논하는 것이어서 정치학 등에 비해선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도 주장의 유효성을 덜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 재미까지 갖춰 분량과 내용, 재미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게다가 다른 고대 고전들과 달리 『시학』은 첫 페이지부터 수천년전에 쓰여진 책이란 느낌이 거의 들지 않고 오늘날 문학교과서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이란 점도 장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시학』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을 꼽으라면 아마도 역사와 문학의 차이를 논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은 운문을 쓰느냐 아니면 산문을 쓰느냐 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얘기하고, 다른 사람은 일어날 법한 일을 얘기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시(詩)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시학』 제9장)라고 단언한다.

 즉 인간사란 공통의 소재를 언어란 도구를 통해 기술하는 몸이 한데 붙은 쌍생아라 할 수 있는 역사와 문학을 구분하는데 있어,“역사와 문학은 모두 운문으로 쓰여질 수 있지만 역사는 있었던 일을 쓰는데 비해, 문학은 있을 수 있는 일을 쓰는데 차이가 있다”고 구분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단지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역사는 순수한 의미에서 ‘창조’라 할 수 없는데 반해, 문학은 개연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상상력과 기교가 요구된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옹의 일갈인 것이다. 여기에는 역사가 특수적인 것을 다룬다면, 문학은 보편성을 띨 수 밖에 없는데다 창조성이 가미됨으로 문학이 역사보다 더욱 철학적이며 보다 급수가 높다는 해석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여기까진 나름 재미는 있지만 대학시절 교양필수 과목인 문학개론 수업에서 대충 접한 뒤 평생 다시는 뒤돌아 보지 않을 내용일 듯도 싶다. 하지만  얼핏 보면 ‘사는데 아무 도움도 안되는 말장난’ 같은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역사와 문학을 구분하는 노력이 불현듯 떠오르는 일이 오늘 발생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간 공동기자회견이 바로 그것인데.한국을 비롯해 해외 각국이 초미의 관심사를 두고 있는 ‘위안화 평가절상’여부와 관련, 양국 정상이 어떤 의견을 교환해 입장을 정했는지가 이날 회담의 핵심 관전포인트로 떠올랐었다. 그런데 중국이 초대박 ‘사건’을 하나 터뜨려 버렸다. 바로 기자회견 공식 중국어판 발언록과 현장 통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환율’이란 단어를 빼버린 채 번역문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자국 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주는 민감한 문제다 보니 ‘환율’문제를 거론하고 싶지는 않았겠지만, 상대방 정상의 발언에서 ‘환율’이란 단어를 번역문에서 모두 삭제하는 황당한 일을 백주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생히 지켜보는 가운데 자행한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기자회견 모습.이날 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내용중 '환율','민족'등의 단어는 중국어판 대화록에선 삭제되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된체 제공됐다.> 

과연 이같은 중국이 행한 비정상적 정상회담 번역문이 작성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과연 이 사건을 역사의 한장으로 봐야할지, 소설이라고 봐야할지’라는 생각이 순간 절로 들었다. 마침 다시 들쳐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이날의 황당 에피소드에 적용할 만한 구절이 적지 않았다.

  “우스꽝스런 것은 남에게 고통이나 해를 끼치지 않는 일종의 실수 또는 기형이다.”(『시학』제5장)

 이날 중국의 행동은 우스꽝스러운 것은 확실했는데,과연 남에게 과연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었을까?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 하고,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한다”(『시학』제2장)라고 했는데 이날의 해프닝은 과연 희극이었을까, 비극이었을까.

 “한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하여’일어나는 것과, 다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시학』제 10장)라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옹의 말인데, 중국의 이번 행동은 일회성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날 전조일까. 

 역사의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소설이 쓰이는 것을 접하면서, 그 소설이 과연 역사보다 우월한 존재가 될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그런 수준의 돈 많고 힘센 이웃이 우리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줄것이란 생각에...


<참고한 책>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천병희 옮김, 삼성출판사 1993

김윤식, 한국근대문학의 이해, 일지사 1993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창조, 역사, 운문, 개연성, 사실, 중국, 위안화, 번역문
posted at 2009/11/18 01:40:00 댓글(2) l 트랙백(1)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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