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菜根譚 前集001)
棲守道德者,寂寞一時。
依阿權勢者,凄凉萬古。
達人觀物外之物, 思身後之身, 寧受一時之寂寞,毋取萬古之凄凉。
채근담 전집 첫머리 장입니다.
1, 2문장은 완전한 대구(對句)로 돼있습니다. 棲守(서수)와 依阿(의아), 道德(도덕)과 權勢(권세), 寂寞(적막)과 凄凉(처량), 一時(일시)와 萬古(만고)가 각각 마주하고 있지요. 한문은 품사의 구분도 확실치 않고 어렵게 보이지만, 대부분은 이처럼 대칭구조로 돼 있어 문맥만 잡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또 한문이기도 합니다.
“道德을 棲守하는 사람은 一時에 寂寞하지만, 權勢에 依阿하는 자는 萬古에 凄凉하다.” 棲守는 지키며 살다 보다는 지키다, 고수하다 는 뜻이고, 依阿는 기대고 아첨하는 것, 한마디로 빌붙는 모양입니다. 寂寞과 凄凉은 모두 외롭고 쓸쓸한 모양으로, 요새말로 왕따를 당한 외톨이신세를 가리킵니다. 道德은 우리가 쓰는 도덕(morals)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는 진리라고 풀이합니다.
3문장은 “達人(달인)은 물외(物外)의 物을 보며, 身後(신후)의 身을 생각하므로, 一時의 적막을 受할지언정 만고의 처량을 取하지 않는다.”達人은 至人(지인)이라고도 하는데, 達과 至가 모두 ‘~에 이르다’는 뜻이므로 어디에 달했다는 것일까요. 道에 다다랐다는 뜻입니다. 즉 道를 깨쳤다고 해서 ‘道에 다다른 사람’을 말합니다.
物이라는 말은 물건, 사물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현상까지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物外之物은 이 세상을 초월해 있는 것, 즉 세속을 초월한 세계, 이데아계에 속한 진실된 것, 진리를 말합니다. 또 身이란 이 한몸이고, 身後란 곧 이 몸이 사그라진 후, 死後(사후)입니다. 그러므로 身後之身이란 사후의 생명이 됩니다. ‘寧 A 毋 B’는 한문의 주요구문의 하나로, ‘차라리 A 지언정 B 하지 말라(또는 않는다)’입니다.
“진리를 지키는 사람은 한때 외로울 뿐이지만, 권세에 빌붙는 자는 죽어서도 쓸쓸하다. 도에 이른 자는 사물밖의 사물을 보고 죽은 뒤의 나를 생각하므로, 한때의 외로움을 견딜 뿐 죽어서까지 처량할 일을 하지 않는다.”
본래 도덕은 道와 德이 합친 말입니다. 道는 천체를 비롯한 자연계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저절로 움직이는 현상 뒤의 법칙을 말하고, 德이란 사람이 그런 자연의 도를 닮은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道를 닦고 德을 쌓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德이 높다고 하는 것은 자연이 만물을 다 돌보면서 제각각 살게 하는 것처럼 그런 넉넉한 자연의 마음씨를 자기 속에 갖추고 베푸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老子 『道德經』25章>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취지를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自然을 ‘스스로 그러함’이라고 풀이한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정말로 이 세상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즉 바깥의 원인 없이 제 스스로를 동력삼아 생육 변화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自 그럴 然’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초등학교 교과목 자연과는 다릅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150년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은 서양문물을 게걸스럽게 받아들이면서 nature를 어떻게 표현해야 마땅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노장사상의 자연을 갖다붙인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하는 번역의 문제는 최근 매우 재미있는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2008-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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