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로 2가 YMCA 뒷골목에 들어가면 우미관이 있고 그곳에서 피맛골 인사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이면수와 막걸리집이 줄줄이 있었다. 곰발바닥만한 이면수 구이 한 마리에 1000원, 막걸리 한 주전자에 1000원이었다. 막걸리 한 주전자면 네 사람의 배를 채울 정도의 양이다.
인사동 어귀에 있던 전봇대집은 술집 안에 전봇대가 그대로 있었으며 특히 막걸리 맛이 좋아서 단골이 많던 집이다. 그때는 막걸리집에서 젓가락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일도 서로 양해하던 시절이다. 그렇게 술에 취하고 노래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시대를 논하는 거친 숨소리에 분기탱천하던 일행도 11시 무렵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12시 야통에 걸리면 다음 날을 완전 망치기 때문이다.
지하철 1호선. 밤 11시 즈음의 지하철 안에는 승객의 절반 이상이 취객들이다. 그러다가 누구 하나가 끄르륵 하고 트림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객차 안은 막걸리 냄새에 이면수 껍데기, 빈대떡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고, 비위가 약한 사람은 다른 칸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막걸리를 마신 다음날 아침은 정말로 최악이다. 평소 없던 편두통이 오질 않나, 온 머리가 욱신욱신 지끈지끈 쪼개질 듯했다. 머리가 그토록 아팠던 이유는 하나, 막걸리가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잡균이 많아 효모 발생을 훼방하니 술이 소화되지 않아서 그랬다. 그래서 정제가 잘 된 술을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정제가 제대로 된 술은 나라에서 만들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밀주라 불리며 암암리에 팔리곤 했다. 종로3가 밀주집과 숙대앞 밀주집은 당시 젊은 애주가에게 매우 인기있는 프리미엄급 막걸리집이었다.
최근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막걸리 전문점의 첫 번째 특징은 모두 생막걸리를 판다는 점이다. 생막걸리는 우선 좋은 쌀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탁주와 분명한 차이가 있는 웰빙술이다. 예전에는 쌀의 수요가 많아서 남는 쌀이 없었지만 지금은 남아넘치는 게 쌀이다. 그래서 좋은 쌀을 싼값에 공급받아 만들 수 있으니 일단 재료가 좋아진 것이다. 거기에 제조 공정이 위생화ㆍ규격화되고 발효기술도 표준화되어 이제 머리가 아프기는커녕 소화가 잘 되고 장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술로 거듭났으며 그 결과 전국에 막걸리 프랜차이즈가 여러 군데 생기게 된 것이다.
웰빙 막걸리의 핵심은 효모다. 효모는 막걸리의 원료이기도 하지만 인체에도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 나오는 막걸리는 건강한 효모가 살아 있어서 우리 몸에 좋은 약주 구실을 한다. 막걸리에 살아 있는 효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아미노산, 비타민, 무기질 등이 포함돼 젊음을 유지하고 장수를 돕는다. 그러나 30대 이상의 남자들이 막걸리집을 찾는 결정적 이유는 그곳에서 그 옛날 마음이라도 뿌듯하던 시절을 기억하고, 그 기억 속에서 상실했던 자신의 그 어떤 것을 찾기 위함이다.
구일산 보건소 근처의 한 막걸리 전문점에 가면 막걸리 주전자로 만든 입구 조명에 1970년대 인기 가요가 흘러나온다. 손님은 30대 중반부터 50줄의 나이 쯤으로 보이는 남녀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메뉴는 생막걸리와 각종 안주. 생막걸리는 김치냉장고 처럼 생긴 냉장 기계에서 바가지로 퍼서 깔때기로 연결된 주전자에 담아주었는데, 한 주전자에 5000원이니 부담이 없다.
안주는 막걸리와 어울리는 모든 먹을거리가 준비돼 있다. 인기 있는 메뉴는 과메기와 지짐이라는 게 여주인의 말이다.
안주는 7000원에서 1만 원 선이면 무난하게 먹을 수 있으며 양이 많아서 네 사람이 4만 원 정도면 적당한 취기를 느낄 정도의 막걸리를 즐길 수 있다. 1970년대에 4000원이면 술이 떡이 되어 비틀거렸던 시절에 비해 꼭 10배의 계산이 나온다.
인테리어는 역시 7080세대를 겨냥한 빈티지 스타일에 우리나라 고유의 소품을 이용했다. 한자가 가득한 벽지가 그렇고 노란색 양은 주전자가 그렇고 예전의 학사주점을 연상케 하는 마룻바닥도 그 느낌을 물씬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주인 아주머니가 시집와서 매일 시부모님께 밥을 담아 드렸다는 놋그릇 세트도 장식장 한 켠을 채우고 있다.

손님들의 대화 내용을 일일이 들을 수는 없었으나 분위기 때문에 그런지 옛날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옛날에 일산이 논밭 투성이였다느니, 17 대 1로 싸워 이겼다느니, 박통이 죽었을 때 군대에서 바짝 긴장했다느니, 야통에 걸려 파출소에 끌려갔다가 나중에 뒷돈을 주기로 하고 일단 풀려난 뒤에 군대로 도망갔다느니…. 그들의 구라는 밤 새는 줄 모르고 계속된다. 막걸리집의 막걸리 수준과 제조 방법은 모두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단 업체마다 퓨전의 이름으로 차별화 전략을 세우고 있으나 사실 술꾼에게 퓨전막걸리는 별다른 어필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퓨전막걸리는 젊은 층이나 여성 고객들에게 인기있는 편이다.
출처 : 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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