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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발 금융위기에 온 지구가 떨고 있다. 모두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 궁리들이다.

  이러한 와중에도 어떤 이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다. 반면 리스크가 크다. 용감한 자 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듯이 리스크는 기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즐기는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씨는 내려가는 연습만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행기는 자기 의지로 내려가야 ‘착륙’한다. 자기 의지에 반해 내려간다면 그것은 착륙이 아닌 ‘추락’이다. 우리의 삶도 비행기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내려가야 살아남을 수 있고 다시 날아오를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유영만은 “지금, 빨리 흔쾌히 내려가자”고 재촉한다. 요즘처럼 여건이 좋지 않을 때는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낮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실은 낮은 곳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눈높이가 달라질 뿐이다.


  질경이는 척박한 땅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서도 고난의 일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살아남는다. 길거리에서 밟히고 치이면서 자라다 보니 납작 엎드린 자세다. 그러면서도 밟히는 것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한다. 사람의 신발이나 자동차 바퀴에 씨앗을 묻혀 널리 퍼뜨려 자기의 분신을 만들어 나간다. 이러한 삶이 구질구질하다면 대나무와 같은 방법을 택해 볼 만하다.   


  대나무는 씨를 뿌린 후 5년이 지나야 싹을 틔운다. 그런데 싹을 틔운 순간 단번에 솟구쳐 올라 1년 만에 12미터나 자란다. 5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이 만들어낸 역전 드라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를 새로운 기회를 위해 갈고 닦는 수련의 기간으로 삼는다면 우리 스스로 역전 드라마를 창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질경이처럼 낣작 엎드려서 살아남을 것인가? 대나무처럼 역전드라마를 쓸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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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연습  (유 영만 지음, 위즈덤하우스,2008) 


1. 빙하기가 들이닥쳤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선문(先聞, 먼저 도는 소문)이 많으면,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는 뜻이다. 1930년대 미국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던 H.W. 하인리히가 고객 분석을 통해 ‘1대 29대 300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점차 ‘하인리히 법칙’으로 불리게 되었다. 1번의 대형 사고가 났다면, 이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아울러 300번 이상의 징후가 감지되었다는 얘기다. 이 법칙을 우리나라 교통사고에 대입해도 신기하게 맞아떨어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상품에서 치명적 결함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그 이전에 약 29회 가량의 고객 불만이 접수되었음을 의미한다. 직원들 역시 300번 가량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는데, 나중에 커다란 사고가 일어나서 알고 보니,  ‘인재(人災)’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위로 오르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다. 그것도 남들보다 앞서 빠르게 오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어릴 때부터 주입받은 경쟁의식 때문이다.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안전장구까지 팽개치면서 무게를 줄인다. 맨손 암벽 오르기에 도전한다.

모든 산에는 꼭대기가 있는 것처럼, 고도성장 역시 언젠가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일정 규모에 이르면 성장(양)이 아닌, 성숙(질)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패러다임 바꾸기를 거부한 채 오로지 위로, 빠르게, 남들보다 앞서 달려왔다.

처음 유도를 배울 때는 한동안 쓰러지는 연습(낙법)만 한다. 쓰러지는 훈련을 통해 다치지 않는 기술을 충분히 익힌 후에야 공격 훈련에 임하는 것이다. 주식투자의 고수들은 하락장에서 진정한 풍모를 드러낸다. 그들이 진정한 고수인 것은, 오를 때 최고의 수익률을 올려서가 아니다. 내릴 때 빠르게 손을 털어 손실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명장(名將)은 대규모 공격에 앞서 유사시의 퇴로부터 먼저 확보한다. 만일 있을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손실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굵은 땀을 흘리면서 오르고 올라 여기까지 왔다.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해 가시덤불 무성한 숲에 뛰어들기도 했다. 먼저 올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해가 저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밤을 지낼 수 있는 장비가 없다. 애초부터 갖고 오지 않았다.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표를 만만하게 봤는지도 모른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인정해야만 한다. 발걸음을 돌려야만 한다. 갑작스러운 눈발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쳐왔다. 체감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다.

다시 한 번 정상을 보았다. 가슴이 아프다. 저곳에 이르기 위해 고생했던 시간들이 너무도 아깝다. 눈발이 차츰 굵어진다. 곧 해가 저물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상황이 바뀌었다면 우리는 그 상황에 맞춰 목표를 바꾸어야만 한다. 지금부터는 내려가야 한다. 지금 당장, 내려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올라가는 것은 승리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려가는 것은 다르다. 내려가는 것은 ‘살아남기 위함’이다.

하산에 아파해하지 말자. 일단 내려가야만 한다. 그래야 다시 올라올 수 있다.



2. 이제는 내려가라


사람들은 위만 바라보고 위로 오르는 데 익숙해져 있다. 빨리 오르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는다. 어쩔 수 없이 내려가야 할 때가 있다고는 상상도 하기 싫어한다.

  오랫동안 성공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이 언제나 꼭대기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르는 데도 익숙했지만, 내려가는 데도 탁월했다. 내려가야 할 시기가 오면 두말없이 받아들이고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남들보다 일찍 내려갔기 때문에 충분히 쉬고 다시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빨리 올라 정상에 도달했다. 맞설 수 없을 때는 빨리 포기해야 한다.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포기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과거부터 버려야 한다. 섀클턴이 배를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상을 향해 희망의 발걸음을 옮기던 기억을 놓아둔 채 내려가야 한다. 새는 뼛속까지 비워냈기 때문에 높이 날 수 있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한정된 에너지를 집중시켜 더 풍성한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 강물도 자신을 버려야 바다에 도달할 수 있다.


노키아를 구해낸 사람은 요르마 올리라(Jorma Ollila)회장이다. 1985년에 취임한 그가 처음 내린 결단은 ‘버리는 것’이었다. 지난 120년간 노키아를 이끌었던 모든 사업을 포기했다. 고무와 제지, 펄프, 가전, 타이어, 컴퓨터 등을 과감히 정리했다. 그렇게 사업들을 버리는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것이 이동전화 단말기와 정보통신 인프라사업이었다.


  비행기는 영원히 떠있을 수 없다. 하늘을 높이 날지만 언젠가는 내겨가야 하는 것이 비행기의 운명이다.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비행기는 자기(조종사)의지로 내려가야 한다. 그것이 ‘착륙’이다. 자기 의지에 반해 내려간다면 그것은 착륙이 아닌 ‘추락’이다.

우리의 삶도 비행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의 의지로 내려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내려가는 것을 기부하고 끝끝내 버티다가는, 비자발적 의지에 의해 내려감을 당할 수 있다. 이른바 추락이다. 지금, 빨리 흔쾌히 내려가자. 내려가서 다시 오를 기회를 찾아내자.


현재 펼쳐지고 있는 직업세계의 변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로 ‘직’의 시대가 가고, ‘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직(職)의 시대였다. ‘무엇’이 되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전문직이 되면 고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전문직이 넘쳐난다.

이제는 업(業)의 시대다. 업의 시대는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라는 구분법이 적용된다.

업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한다. 프로페셔널의 출발점은 ‘고객의 바람을 이루어준다’는 열망이다. 전문직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프로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프로가 되지 못하는 변호사나 의사는 간판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프로는 고객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고객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고개고가 함께 해결책을 논의한다.

공급과잉이 심화될수록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프로페셔널리즘의 격차가 부각된다.


  TV에서 곰이 사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곰은 자기가 눕기 편안한 구덩이를 찾는다. 그런 다음 나뭇가지를 모아 덮는다. 집을 짓고 자려는 것처럼 보인다. 곰은 그 속에 웅크리고 앉는다. 시간이 흐른다. 하루 이틀 지나도 곰은 꼼짝도 하지 않고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작은 짐승 한 마리가 지나간다. 곰은 전광석화처럼 뛰어올라 앞발로 내려친다. 사냥이 끝난다.

  프로페셔널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다. 지겨워 보이는 단순반복을 거듭하면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이다.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보이기 마련이다. 프로는 기회가 오면 잡아채 그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탄다.


사장은 직원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직원들과 함께 서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정치인들 역시 국민들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상대방의 시각으로 다시 느껴보아야 한다.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20세기의 문맹이라면,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은 21세기형 문맹이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바이올린의 정점, 스트라디바리우스는 가격도 어마어마하지만 다른 바이올린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신비’에 둘러싸여 있다. 음악 애호가들은 지금이 17 ~ 18세기보다 과학기술이 훨씬 발달했는데, 왜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바이올린을 만들 수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최근 식물학자와 기후학자 연구팀이 그 비밀을 밝혀냈다고 해서 주목을 끌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1400년대 중반부터 1800년대 중반 유럽은 ‘소빙하기(Little Ice Age)’라고 불릴 정도로 추운 날씨가 거듭되었다고 한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1700년부터 1737년까지 바이올린을 제작했다. 그가 바이올린을 만들 때 사용한 재료들은 모두 ‘소빙하기’의 극도로 추운 날씨 때문에 내밀하게 자라난 나무들이었던 셈이다. 결국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나무가 자라면서 겪은 ‘진통’을 아름다운 선율로 녹여낸 결정(結晶)이었다.  ‘진통’이 ‘전통’을 만들어낸다. ‘진통’ 없는 ‘전통’은 한순간에 전락할 수 있다.


돼지는 죽을 때까지 하늘을 볼 수 없다. 아주 오랜 기간 땅에서 먹이를 찾다보니 목뼈가 퇴화되었고, 이후 아무리 고개를 들려고 해도 수평 이상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돼지에게도 하늘이 보일 때가 있다. 넘어져서 발라당 뒤집혔을 때이다. 뒤집힌 돼지는 처음으로 하늘을 발견한다. 돼지에게는 신세계가 열리는 셈이다. 세상에는 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높고 아름다운 하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넘어져서 발라당 뒤집히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넘어지고 뒤집혀야만 발견할 수 있는 진실들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다.


쓰러지고 넘어져봐야 비로소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말이다. 실패는 누구나 다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그 실패로 인해 우뚝 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실패를 통해 학습(learning by failure)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남들의 성공은 한결같이 ‘완성형’이다. 그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회의와 좌절, 실패의 흔적은 보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으로 오해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점은, 쓰러질 때마다 기꺼이 배운다는 것이다. 노여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서 도전을 반복하는 것이다.



3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라


잡초는 어떤 상황에도 버티면서 자란다. 씨앗이 어디에 떨어졌든 거기서 희망의 싹을 틔운다. 아무리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그 다음 자신의 생존을 모색한다. 잡초는 위로 자란 줄기와 가지보다 아래로 자란 뿌리가 훨씬 깊다. 잡초들의 질긴 생명력, 그 원천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에 있다.


나이키는 고객들의 불만에 대해 시간 끌기로 버티다가 위태로운 순간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그로 인해 큰 교훈을 얻었다.  ‘소비자에게 절대 맞서지 말고, 소비자가 옳음을 재빨리 인정하라.’

이 교훈을 거울삼아 공격적이고 거칠었던 회사 이미지를 부드럽게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회사 이름표기를 대문자(NIKE)에서 소문자(nike)로 바꾸었다. 고객들에게 다정다감하며 귀여운 이미지를 주겠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일단 해봐(Just Do It)’로 상징되는 캐치프레이즈를 ‘난 할 수 있어(I Can)'로 교체했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오만하게 느껴졌던 회사 이미지를 부드럽고 친근한 분위기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질경이는 비옥한 땅보다는 척박한 땅을 골라 뿌리를 내린다. 작은 키에 보잘 것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질긴 식물이다.  질경이가 척박한 땅을 고르는 것은, 비옥한 땅에서 큰 키의 식물들과 경쟁해봐야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길에 싹을 틔워 밟히고 치이면서 자라난다. 비록 고난은 당하지만, 질경이에게는 자기만의 영역과 자유가 있다.

밟히는 것을 오히려 기회로 활용한다. 사람의 신발이나 짐승의 발, 자동차 바퀴 등에 씨앗을 묻혀 널리 퍼뜨리도록 한다. 질경이는 한계를 기회로 바꾸어 삶을 이어가는 지혜의 풀이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아남고, 밟히는 순간조차 번식의 기회로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회는 자세를 낮추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아이디어 회의를 망치는 여섯 가지 방법

  1, 언제나 상사가 먼저 말한다.

  2. 모두가 말해야 한다.

  3. 전문가가 혼자 말한다.

  4. 장소는 언제나 회의실이어야 한다.

  5. 모두가 열심히 적어야 한다.

  6. 농담금지, 진지한 말만 해야 한다.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흐름을 타느냐, 흐름을 놓치느냐로 갈린다. 삼류와 사류는 흐름에 맞선다.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일류는 흐름을 파악하고, 내려가야 할 때를 가장 먼저 깨닫는다. 감히 맞설 수 없을 때는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다. 먼저 내려가면서 바람의 흐름을 탄다.


일류와 이류의 차이는 도전에 한계를 두느냐, 아니면 한계에 도전하느냐로 갈린다. 이류들은 도전하기 전에 한계를 먼저 그어 놓는다. 그 한계는 물리적 한계가 아니라 심리적 한계다.


세상은 돌고 돈다.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좋은 것을 따라가면, 막차를 탈 가능성이 높다. 지금 좋은 것이지, 앞으로도 좋을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다. 따라서 역전에 성공하려면 지금 남들이 좋다고 하는 방향으로 가면 절대 안 된다.

  대나무는 ‘굼뜬 나무’다. 씨앗을 뿌린 다음, 아무리 기다려도 기척이 없다. 그렇게 다섯 해를 보내야 겨우 싹을 틔운다. ‘어? 싹을 틔웠네?’ 하면서 감탄하는 순간, 대나무는 단번에 솟구쳐 오른다. 단 일 년 만에 무려 12미터나 자란다. 대나무는 그 역전을 위해 무려 5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겉보기에는 벼락출세처럼 보여도 그 이면에는 그보다 몇 배 깊은 인내와 역전 드라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