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공식 홈페이지인 www.jimrogers.com 첫 화면 사진.세계 일주를 함께 했던 노란색 벤츠와 아내 페이지 파커(40)의 얼굴이 보인다. 홈페이지 제목도 'millennium adventure'일 정도로 모험가로서의 그의 고집이 엿보인다. 당시 차량의 엔진 등 부품 사양,심지어 내부 인테리어를 검정색 가죽으로 했다는 내용까지 꼼꼼하게 홈페이지에 기록돼있어 흥미롭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미국 주식시장의 광풍 한 가운데 아무도 반기지 않는 예언자가 나타났다.TV와 경제신문을 통한 그의 메시지는 쌩뚱맞았다.‘주식에서 눈을 떼고 상품에 투자하라’.미국인 가운데 60%가 주식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었고 심지어 직장을 그만두고 데이 트레이딩으로 생활비를 버는 사람까지 나오던 때였다.그에 비하면 원자재 시장은 고리타분할 뿐이었다.1970년대 상품 거래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메릴린치도 더 이상 나올 게 없다며 상품 사업에서 손떼기로 한 터였다.월가의 반응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의 전망은 적중했다.21세기 들어 원자재값은 심상치 않은 곡선을 그리다 지난해부터 기록적 고공행진에 돌입했다.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금은 온스당 1000달러로 아예 자릿수를 바꿨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곡물 시장까지 요동치기 시작했다.콩과 옥수수,설탕과 코코아 등 거의 전 종목이 투자자들의 화두로 떠올랐다.언론은 뒤늦게 예언자를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그의 한마디한마디를 받아적기에 바빴다.‘월가의 신화’‘상품투자의 귀재’,짐 로저스(66·로저스홀딩스 대표)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 10년 먼저 상품투자에 나선 혜안

 그의 메시지는 10년 전과 다를 바 없다.중국 경제의 무서운 성장세가 상품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으며 원자재 붐이 막 시작됐다는 것.얼마전 방한해서도‘주식에는 관심없고 상품 투자에만 올인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그는 상품시장 강세장이 1990년대 말에 시작됐으며 2020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그의 상품투자론이 적어도 10년 이상은 약발을 이어갈 거란 얘기다.

 짐 로저스는 어떻게 상품시장에 문을 두드리게 됐을까.1998년 그는 MS나 시스코 등의 기술주들이 잘 나가는 사이 다른 주식들은 하락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다우지수는 1980년대 이후 10배 이상 상승하고 있었지만 강세장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대신 에너지와 곡물,금속 같은 상품들은 대공황 이후 유례없는 최저치에 달해있었다.모든 사람들이 코웃음칠 때야말로 투자에 뛰어들 타이밍이라는 동물적 감각이 그를 움직였다.

 당시 짐 로저스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를 기념하며 3년간의 세계 일주를 준비하고 있었다.그는 상품 시장의 강세장의 개막을 시베리아나 아프리카에서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그래서 비행기에 타기 전에 상품 시장의 새로운 인덱스 펀드부터 만들기로 했다.이를 위해 당시 알려진 상품지수인 CRB선물지수(현 로이터-CRB상품지수)나 골드만삭스 상품지수 등을 조사했다.하지만 상품 비중이나 구성 등 모든 게 그의 까다로운 눈에는 들지 않았다.다우존스 상품지수를 발표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지인을 찾아갔을 때는 더 기가 막혔다.편집인이면서도 자기 신문에 매일 그런 지수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

 그는 결국 믿을만하고 균형잡힌 상품지수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1998년 8월 1일 35개 상품이 포함된 로저스 인터내셔널 상품지수(RICI)와 이에 기초한 인덱스펀드가 출범했다.짐 로저스가 여행을 다니는 사이 닷컴 거품이 터졌고 주식시장에 파문이 일었다.2001년 그가 미국에 돌아왔을 때 로저스상품지수는 80% 올라있었다.상품투자의 시대가 문을 연 것이다.

◆ 거리에서 투자 정보를 캐내는 '월가의 인디애나 존스’

 
 “상품시장에 신비스러운 것은 전혀 없다.옥수수는 옥수수이고 납은 납이다.금 역시 그것의 공급량이 얼마나 되며,돈을 내고 그것을 가져가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더욱 분명한 사실은 상품가격이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파악하는 데는 아무런 마술도 없다는 사실이다.” *

 그의 상품투자론은 단순간결하다.초등학생도 아는 수요와 공급 법칙이 원자재 투자의 밑바탕이라는 것.하지만 주식시장 광풍 속에서 상품에 눈을 돌린 혜안은 교과서 밖에서 나왔다.그는 1980년 한창 때인 37살에 헤지펀드 퀀텀펀드로부터 공식 은퇴했다.1969년 조지 소로스와 만든 퀀텀펀드로 12년간 3365%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린 후였다.그는 미련없이 여행짐을 꾸렸다.오랫동안 꿈꿔왔던 오토바이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서였다.22달간 52개국,6만5000마일을 달린 것으로 모자라 밀레니엄 기념여행에서는 3년간 노란색 벤츠로 116개국을 쏘다녔다.

 짐 로저스에게 여행은 단순한 모험이나 여흥이 아니었다.그는 여행이야말로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야 할 배움의 과정’이라고 여겼다.중국의 농촌과 몽골의 사막지대,남미의 슬럼을 거침없이 횡단하며 새로운 시장의 지도를 그렸다.
 
 특히 역동하는 중국 경제의 가능성은 놀라움 자체로 다가왔다.그는 21세기 중반이 되기 전에 중국이 세계 제 1의 경제 대국이 될 거라 확신했다.대만의 경제 기적에 감화된 13억 인구가 무서운 경제성장을 이끌어나갈 것이었다.거기다 중국의 1자녀 갖기 정책은 자본주의적 성취욕에 물든 젊은 세대의 약진을 의미했다.에너지와 금속,곡물 등 원자재 수요는 신흥시장 성장으로 급증할 것이 분명했다.꿈틀대는 저잣거리에서 얻어낸 살아있는 정보들이 상품투자론의 살과 뼈가 된 셈이었다.
 그는 지금도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꼽힌다.그가 중국 기업의 주식을 처음 산 것은 20년전 중국 횡단을 할 때였다.당시 비포장도로 앞의 초라한 상하이 증권거래소에서 구입한 그 주식을 그는 아직도 액자에 넣어 자기 집 벽에 걸어놓고 있다.그는 죽을 때까지 보유해 자신의 어린 딸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곤 한다.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중국인 가정부를 채용한 것은 화제가 됐다.최근에는 뉴욕의 집을 팔고 아예 싱가포르로 이사했다.원래는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의 핵심지역으로 옮길 생각이었지만 대기오염 때문에 그나마 가까운 싱가포르를 선택했다는 전언이다.

◆ “상품투자는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

 
 짐 로저스는 이제 막 상품시장의 문을 두드린 투자자들에게 ‘기본에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월스트리트저널의 선물 페이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수학적 모델과 이론으로 무장한 기술적 분석도 그는 탐탁치 않게 본다.짐 로저스에게 중요한 것은 실물 경제를 움직이는 ‘구체적인 현실’이다.상품별로 과거의 강세장과 약세장,현재의 생산능력과 생산량,가동중인 광산의 현황,농산물과 에너지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기상정보까지 파악해야 한다.이 모든 것을 알려면 상품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가 필수다.투자자에게는 꽤나 머리아픈 일이지만 보상은 적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제 당신도 이 세상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어느새 그동안 당신이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던 설탕이나 구리 따위와 관련된 여러 뉴스와 사실들이 당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고,신문을 읽으면 알루미늄이나 비육우 같은 단어가 당신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상품시장에 대해 알게 되면 단지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뿐 아니라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 인용은 다음 책을 참고했습니다.
짐 로저스,박정태 옮김‘상품시장에 투자하라 Hot commodities(2004)'(굿모닝북스)
 
( 월간 MONEY 4월호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

 


- 엑센츄어의 새 글로벌 보고서...신흥국 다국적기업(EMM)의 시대 왔다
- 다극화 시대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틀이 EMM
- EMM의 강점은 어디서 오나. 과제는 무엇인가

- EMM에 국가 성공을 맡겨라

 

인도 타타자동차가 포드의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인수하기 위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30억달러의 자금 조달이 마무리되면 이번주내 인수 계약이 마무리될 전망이다.지난해 2500달러짜리 초저가차 개발로 주목받았던 타타자동차가 이제는 고급브랜드 자동차 진영까지 갖춤으로서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라탄 타타 회장은 앞서 지난 2000년 세계 2위의 영국 차(茶)업체 테틀리를 사들이며 글로벌 인수·합병(M&A)업계의 큰손 자리를 예약했다.2004년에는 5건,2005년에는 10건,2006년에는 무려 20건의 M&A를 성사시켰다.


 신흥시장(이머징마켓)의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 무대로 행진하고 있다.글로벌 M&A 시장을 주도하며 몸집을 불리고 혁신적인 기술로 선진국 시장도 주름잡는다.개도국 기업하면 방탕한 독재자의 둥지나 세습 경영 정도를 떠올리던 서구 기업들도 시각을 고칠 수 밖에 없게 됐다.불과 10년전만 해도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300대 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개도국 업체는 20여개에 그쳤지만 이제는 70개로 불어났다.지난해 새로 이름을 올린 신흥국 기업만 9개에 달했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액센츄어(Accenture)는 최근 발간한 글로벌 보고서 ‘다극화 시대-이머징시장 다국적기업의 부상’에서 개도국의 다국적 기업,즉 ‘EMM’(Emerging Market Multinationals)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했다.김희집 액센츄어 한국총괄 대표는 “이제까지는 이머징 국가의 고성장에 관심을 기울여왔지만 이제는 그 성장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인 개별 기업들이 화두가 됐다”며 “EMM의 시각으로 다극화 시대를 이해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놀라운 성장속도-M&A의 큰손으로


액센츄어가 EMM을 집중 조명하게 된 계기는 놀라운 성장속도다.지난 2005년 이후 선진국 다국적 기업의 매출과 고용이 10% 성장에 머무는 동안 100대 신흥시장 EMM의 매출과 고용은 각각 48%,73% 급증했다.뉴스위크는 지난해 10월 이머징마켓 100대 기업의 총수입이 2005년 기준으로 미국 기업보다 10배,일본기업보다 24배,독일보다는 34배 늘었다고 밝혔다.

 EMM은 최근 M&A를 통해 세계 시장을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업계 59위에 그쳤던 타타스틸은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작 철강회사 코러스그룹을 122억달러에 인수,세계 5위 철강업체로 올라섰다.세계 1위 자리도 유럽의 아르셀로를 320억달러에 사들인 인도의 미탈스틸이 차지하고 있다.브라질 광산업체인 발레(CVRD)는 캐나다 인코사를 127억달러에 인수하며 세계 2위 광산업체로 부상했다.최근에는 스위스 최대 자원회사인 엑스트라타를 900억달러에 사들이겠다고 나선 상태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비롯된 세계적 신용경색은 신흥시장 기업에겐 또다른 기회다.세계적인 투자전문가인 앙트완 반 아그마엘 이머징마켓매니지먼트 회장은 “신용경색으로 서구 다국적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개도국의 대기업들이 세계 경제를 이끄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시장조사업체인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개도국 자본이 주도한 M&A는 총 1280억달러(1~10월 기준)로 2003년 140억달러보다 10배 가까이 늘었다.


◆순발력과 유연성,현지화 능력이 EMM의 성장동력


액센츄어는 즉각적이고 공격적인 성장전략을 EMM의 강점으로 꼽는다.2006년 한해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경제권에서 흘러나온 해외 직접투자 자금중 98%가 또다른 신흥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중국은 자원산업부터 금융 서비스산업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에 대규모 자금을 퍼붓고 있다.중국 공상은행(ICBC)은 남아프리카의 주요 은행인 스탠더드뱅크의 지분 20%를 갖고 있고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화웨이도 선진시장이 아닌 남아프리카 남미와 동유럽 등에 우선 투자한다는 전략을 세웠다.현대자동차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의 성장 동력도 적극적인 해외투자다.지난해까지 베트남 투자 1위 국가는 미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었다.이처럼 선진시장을 먼저 공략하기보다는 이웃의 또다른 신흥시장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성장 속도를 높이는 것이 EMM의 전략중 하나다.

 EMM의 적극적인 수요 창출 능력도 서구기업과 경쟁하는 힘이다.비결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멕시코의 시멘트업체인 세멕스는 직원들을 빈민가 고객들과 하루 10시간씩 1년간 보내도록 하며 소비자 파악에 주력했다.자사 제품을 구매할 수 없는 저소득층을 위해 복권을 발행,당첨된 사람들에게 건축 자재를 제공하는 마케팅도 이때 탄생했다.삼성은 인도에서 전통 의상인 사리를 세탁할 수 있는 특수 기능을 세탁기에 채용해 히트를 쳤다.중국 PC업체인 레노보는 중국을 18개 영업지역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108개 조각으로 분류·분석하는 등 시장 세분화에 심혈을 기울인다.박정택 액센츄어 상무는 “EMM의 경쟁력은 기업 조직이 커졌는데도 작은 조직에서 갖고있던 통찰력과 현지 관리에 대한 집중 전략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배구조의 특수성도 EMM의 성장 과정에서 강점으로 작용해왔다.포천 500대 기업에 속한 70개 EMM중 20%는 국영기업이다.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멕시코 페멕스 등이 대표적이다.국영기업은 투자자의 간섭과 압력이 덜해 서구 기업보다 자율성과 유연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다양한 산업군을 포괄한 재벌 형태도 다수를 이룬다.한국의 CJ SK뿐만 아니라 인도의 릴라이언스그룹과 타타그룹,이집트의 오라스콤 등은 국내 시장과 글로벌 시장의 집중 영역을 차별화함으로써 성장 동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 구축이 과제


EMM의 과제는 빠른 외형 성장에 걸맞는 내실을 채우는 것이다.아시아 EMM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 선정 ‘세계 100대 글로벌 브랜드’에 등재된 브랜드는 한국의 삼성과 현대자동차 LG 등 3개에 불과하다.이를 만회하기 위해 EMM은 R&D(연구·개발) 투자에 미래를 걸고 있다.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과 인도의 R&D 투자는 2006년 전년대비 30% 성장했다.타타자동차는 1400명의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엔지니어링 리서치센터를 인도 푼 지역에 설립한 데 이어 영국 워윅 지역에도 기술센터를 구축했다.

 액센츄어 조사 결과 EMM 경영진들은 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로 인재 부족을 꼽았다.이밖에 △후발 EMM기업과의 경쟁 △현지화 마인드 유지 △국가별 보호주의 발현에 대한 대응 등도 EMM의 당면 과제로 지적된다.김희집 대표는 “‘생각은 세계적으로,행동은 현지에 맞게’라는 슬로건은 EMM이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정신”이라며 “한국이 세계적인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EMM이 10개 이상은 더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08.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