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제대하면 와인사업 같이하자 軍동기와 농담이 씨가 됐죠"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가 와인 문외한에서 8년 만에 국내 최대 와인 유통업체 및 와인 레스토랑 6개를 운영하는 와인 사업가로 변신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대표가 가장 즐기는 와인은 예상 외로 '샤토 보네' '에쿠스' 같은 2만~3만원대 와인들이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국내 최대 와인 유통업체인 '와인나라' 이철형 대표(48)는 지난 1일 본지와의 인터뷰가 예정된 서울 인사동 와인 레스토랑 '민가다헌'에 약속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나타났다. 모처럼 주 말 청평호에서 수상 스키를 타다가 다쳐 다리에 고정 장치를 달고 왔다. 의사는 기브스를 하라고 했지만 최근 7개 매장을 내고 와인 1500만병을 동시 보관하는 보세 창고를 여는 등 '정신없이 바쁜 때'여서 거부했단다. 걸을 때마다 아직 고통스러운지 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서글서글한 미소를 잃지 않았고 때론 호탕하게 웃으며 와인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와인나라가 운영하는 6개 레스토랑 중 하필 서초동 본사에서 가장 먼 이곳을 인터뷰 장소로 택한 이유가 뭡니까?

"이곳은 1936년 건축된 개량 한옥(민두익 생가·서울시 민속자료 15호)인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입니다. 멋진 한옥에서 한국식 요소를 가미한 서양 요리를 내놔 특히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곳에서 와인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동·서양의 멋들어진 문화 융화라고 생각합니다. 대전·대구·광주·부산 등에도 하나씩 열고 싶은데 마땅한 한옥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정 안 되면 훌륭한 목수를 모셔다 못을 쓰지 않는 전통 방식으로 직접 짓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어요. "

―와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언제부터 와인에 관심을 가졌나요?

"솔직히 2000년께 군대시절 친구들로부터 와인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의받기 전까진 와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는 와인이라고는 '마주앙''위하여'와 빵집에서 일명 복숭아 술로 부르던 '오스카 샴페인'이 전부였죠.당시 잘나가는 인터넷 의류 쇼핑몰(패션플러스)을 경영하던 터라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잘 안되어도 조그만 와인 매장이나 하면서 친구들과 와인 잔을 기울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오케이했습니다(웃음)."

―단지 그런 이유만인가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와인 사업이 앞으로 성장할 분야이며,새로운 문화 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확신했고,은퇴가 없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어떤 친구들이 와인 사업을 권유했는지요?

"1985년 석사 장교 시절 함께 훈련받던 우종익 아영FBC 대표(49·성균관대 서양사학과)와 변기호 우리와인 대표(49·연세대 통계학과)입니다. 당시 석사 장교는 4개월 훈련받고 2개월간 '하루살이 소대장'을 하고 나면 전역했어요. 어느 날 종익이가 먼저 '제대하면 와인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기호가 '같이 하자'며 거들었죠.그래서 저도 '나중에 동업하자'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다른 사업 계획이 있었고 와인엔 문외한이어서 관심이 없었어요. 전역 후 종익이는 1987년 11월 국내 최초로 와인 수입 면허를 받아 사업을 시작했고 이어 기호가 1992년 동참했습니다. 결국 저도 뒤늦게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말이 '씨'가 된 셈이죠.아니 인복이 많다고 하는 게 낫겠네요(웃음)."

―와인에 대해 몰랐는데도 장사가 잘됐나요?

"잘되긴요,처음에는 엄두가 안 나 매장도 못 냈습니다. 와인 사업을 하려니 먼저 제 자신부터 와인을 알아야 했고 와인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습니다. 알아야 마시고 마셔 봐야 사니까요. 먼저 와인나라아카데미와 와인 사이트부터 열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는 1년 반 동안 수강료를 안 받았어요. 저도 함께 수업을 듣고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밤새도록 마셔 댔더니 와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지금까지 와인 공부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매일 3~4종의 와인을 맛보고 있습니다. "

―때마침 국내에도 와인 열풍이 불었는데?

"운이 좋기도 했지만 국민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와인 시장도 커질 것이란 예상에 투자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01년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 지하에 와인 판매점 '르 클럽 드 뱅'을 냈고,이어 삼성타운과 광화문 파이낸셜센터 등에도 열었죠.지난달에는 대구에 2개를 더 열었습니다. 현재 '와인나라 아울렛' 9개 점포 등 16개 와인 매장을 운영 중인데 연말까지 5개 더 열 계획입니다. 아직까진 직영점 형태이지만 프랜차이즈 사업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와인 레스토랑도 이곳 민가다헌을 비롯 청담동 '베라짜노',압구정동 '정글짐' 등 6개 갖고 있습니다. "

―사업 전망은 어떻습니까?

"지난해 매출이 190억원인데 올해는 250억원,내년에는 400억원으로 예상합니다. "

―매출을 2년 만에 두 배로 늘린다는 것은 아무리 전망이라도 무리가 아닐까요?

"지난달 28일 용인에 개장한 국내 최대(건평 1만5500㎡) 와인 보세창고 사업으로 내년에 200억원을 벌어들일 겁니다. 지난해 와인 수입량이 전년보다 71% 늘어난 데다 고가 와인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어 보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죠.미래를 보고 100억원 넘게 투자해 항온·항습 시설을 완벽하게 갖췄죠.한꺼번에 와인 1500만병을 보관할 수 있으니 보관 주기(3개월)를 감안하면 연간 6000만병을 취급하게 됩니다. 이는 국내 유통 물량의 60%가 넘습니다. "

―국내 와인 가격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는 싸고 맛있는 와인이 '최고의 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샤토 보네''에쿠스' 같은 2만~3만원대 와인을 즐겨 마시죠.비싼 와인이 맛있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수십 만원짜리 와인을 어떻게 매일 즐길 수 있겠어요.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유럽 국가에서 와인은 생활의 일부입니다. 그만큼 부담 없는 가격이기에 가능한 얘기죠."

―와인 창고사업은 단순히 보관용입니까?

"와인 창고는 품질을 유지하는 목적도 있지만 거품 논란이 있는 와인 가격을 낮추는 역할도 할 겁니다. 수입상과 도매상을 거치지 않는 직수입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간 마진을 없애 가격을 20~30% 낮출 수 있습니다. 대형 와인 창고가 생겼으니 대량 구매도 가능해졌어요. 현재 20여 종의 와인을 직수입하고 있는데 내년 말까지 직수입 와인을 300~400종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

―와인 수입(우종익)·도매업(변기호)을 하는 친구들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실망하겠는데요?

"(웃음) 두 친구 모두 '와인 애호가 1세대'이기 때문에 저와 같은 생각일 겁니다. 가식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알고 부담 없이 즐기도록 하는 게 저희들의 목표죠.제가 건국대에서 와인학을 가르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

―앞으로 와인 시장을 어떻게 보십니까?

"대형 마트는 물론 백화점 특급호텔까지 와인 가격 파괴를 선언하고 롯데 LG 같은 대기업들도 잇따라 뛰어들고 있습니다. 결국 가격 경쟁은 필연적이며 보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많이 파는 '박리다매'로 갈 것입니다. 저희 같은 중소업체에는 힘든 상황이 오겠지만 수만 종의 와인 중에서 좋은 와인을 골라 보다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것이 저희가 할 일이죠."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앤디 워홀도 제가 디자인한 레스토랑에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덕분에 제가 최초의 레스토랑 디자이너로 불리게 됐지요.”
오는 5월에 문을 열 예정인 조선호텔의 지하층 레스토랑 디자인을 위해 내한한 아담 티아니(60)는 9일 기자를 만나 이같이 말했다.1948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티아니는 1973년 이탈리아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생계를 위해 미국에서 5년이 넘게 가구와 액세서리 등을 디자인하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1982년 문을 연 레스토랑 ‘라 쿠폴’(La Coupole)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다.라 쿠폴은 당시 최대 규모의 레스토랑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이 줄에 앤디 워홀도 서있어 큰 화제가 됐다.이후 티아니는 자연스레 최초의 레스토랑 디자이너로 불리며 1980년대의 뉴욕의 레스토랑 붐을 주도했다.미국 라스베가스의 명물인 와인타워가 있는 오레올(Aureole)과 뉴욕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으로 알려진 펄세(Per se) 등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들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고 1991년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명예의 전당(the Interior Design Hall of Fame)에도 이름을 올렸다.
 티아니는 철저하게 현지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의뢰를 받자마자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레스토랑을 고민했습니다.한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신라 하얏트 워커힐 등 호텔 레스토랑은 물론 박물관과 백화점,안동 하회마을까지 정신없이 돌아다녔죠”
 티아니는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을 돌아보며 한국 특유의 에너지를 느꼈다고 말했다.“서울은 아름답진 않지만 에너지로 가득한 도시라는 걸 알게 됐죠.네온사인이 붙어있는 빌딩과 재래시장,전통한옥이 뒤섞여 있는 다양성이 살아있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여기서 이번 디자인의 영감을 얻었죠.”
 그는 처음에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서울과 조선호텔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라는 것에도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조선호텔은 94년을 이어온 전통이 있지만 동시에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공간입니다.전통적인 모습을 반영해야 하지만 집착해서도 안 되죠.”
 이 같은 아담 티아니의 생각은 선이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반영됐다.“호텔 건물이 70년에 지어져 다른 건물에 비해 기둥이 굉장히 많습니다.동선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죠.전 오히려 이를 장점으로 승화시킬 겁니다.디자인은 단순하되 기둥 사이로 요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만드는 거죠.한국 재래시장의 역동성과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시켰습니다.”
 그는 지하층이라는 단점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극복한다.“자연채광도 없고 천장 높이가 2.7m로 일반 건물보다 70~80cm정도 낮기 때문에 판넬 여러장을 겹쳐서 층을 냈습니다.이러면 천장도 높아 보이고 판넬을 통해 빛이 은은하게 비치죠.또 자연의 이미지를 담은 스크린을 천장에 설치해 도심 속 숲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할 겁니다.기대하세요.제가 작업한 것 중 가장 독특한 레스토랑을 보시게 될 겁니다.”
2008.04.10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촌스러운 이름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죠.영어 이름이었다면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에 묻혀 생존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키톤,꼬르넬리아니 등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4층에 한글로 적힌 양복 매장이 눈길을 끈다.명품관의 유일한 토종 남성정장 브랜드인 ‘장미라사’가 그 주인공.이영원 장미라사 대표(51)는 “1998년에 입점해 랑방,크리스챤 디올 등 17~8개 브랜드가 간판을 내리는 10년동안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이라고 소개했다.
 장미라사는 1956년 제일모직의 원단을 시험하는 신사정장 태스크포스팀(TFT) 이름이었다.1977년 스무살의 나이로 삼성물산에 입사한 이 대표는 이듬해부터 장미라사에 몸담아 1998년 대표이사에 올랐다.1970~80년대 장미라사는 미 8군에 납품할 정도로 인정받는 국내 최고 브랜드였다.그는 “우리가 잘 만들었던 게 아니고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 회고했다.
 “장미라사가 탄탄대로만 달린 건 아닙니다.1980년대부터 로가디스,갤럭시,캠브리지멤버스 등 기성복들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맞춤 양복점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죠.1990년대 들어 매출이 급감하면서 업체들이 줄도산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대표는 ‘양복’이 아닌 ‘예술품’으로 위기를 헤쳐나갔다.그는 “다른 업체처럼 ‘기성복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옷이 아닌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19세기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 화가들의 변신을 예로 들었다.‘옷을 만드는 사람이 일류가 아니면 일류 옷을 만들 수 없다’는 그의 지론과도 일치한다.“1995년부터 40여 명의 직원들을 로로피아나 마르조또 등 이탈리아 최고의 정장을 만드는 곳으로 보내 공부시켰습니다.한해 출장비만 1억5000만여원을 지출하죠.”
 장미라사는 지난해 한 벌에 200만원이 넘는 정장 2000여 벌을 팔았다.대학교수 정치인 대기업총수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단골이 2500명에 달한다.특별히 고객 관리를 하지 않지만 아들을 데려와 정장을 맞추는 단골고객의 ‘대물림’도 증가세다.이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20~30대 젊은 마니아들도 생기고 있다”며 “명품이 대중화되면서 특별한 것을 찾던 이들이 장미라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덕분에 최근 3개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가량 늘었다.
 앙드레 김도 철수한 갤러리아에서 토종 브랜드 장미라사가 장수한 이유는 뭘까.이 대표는 “부족하기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있었다”고 답했다.하루하루가 위기라는 생각이 ‘롱런’의 에너지라는 것.“아직도 유럽에 비해 옷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심미안(深美眼)이 부족합니다.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죠.”
 이 대표는 현재 삼성생명 본관과 갤러리아 2곳에 매장을 운영하는 장미라사를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 청사진을 마련해둔 상태다.부산을 비롯해 상하이에도 진출하는 등 5년 내 5개의 매장을 추가로 낼 계획이다.그러나 장미라사의 이름은 그대로 쓸 생각이다.“1988년에 월드 베스트 전략을 선언하고 영어식 이름으로 바꿨다가 단골들이 반발해 1년 만에 원상복귀했습니다.지금도 그분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2008.3.27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