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전산학과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이재웅 사장은 1993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유학을 간다.범상치 않은 이력을 지닌 그는 두 가지 점에서 그 당시-그리고 지금도-인터넷 기업의 대표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녔다.우선 연세대학교 출신으로 ‘비교적’ 인맥이 적은 편이다.지금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과 카이스트 출신들이 인터넷 기업의 주요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이해진 NHN창업자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던 동네 친구이고 새롬기술 오상수 대표를 비롯한 인터넷산업 초창기 멤버와 친분이 좀 있다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홀로 동떨어진 편이다.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는 것도 그의 특징 중 중요한 부분이다.대기업을 거치거나 바로 창업을 시작한 경우와 달리 그는 인문학의 기반이 탄탄한 유럽에서 공부를 했고 거기서 언어학자 촘스키를 알게 됐다.이재웅 사장의 미디어에 대한 생각이나 인터넷에 대한 통찰력은 이 시기에 상당 부분 형성된 것 같다.

◆프랑스 유학과 그의 꿈
 이재웅 사장은 프랑스에서 노암 촘스키의 다큐멘터리 ‘Manufacturing Consent:Noam Chomsky and Media’를 접하게 된다.그는 종종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일화로 노암 촘스키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촘스키의 실천하는 삶 뿐 아니라 영화 내용 자체도 충격적이었다.‘합의를 조작한다’는 제목이 암시하듯 동티모르에서 거대 미디어가 사회적 합의를 조작해 나가는 모습을 고발한 이 영화를 보면서 정치적 논리와 자본의 속성에 휘말릴 여지가 많은 기존 미디어의 문제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재웅 사장의 말이다.

 이재웅 사장이 파리에서 공부할 때 일화들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다만 전후 사정을 종합해 볼 때 그가 훗날 귀국해서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넷 산업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이 그로서는 가장 큰 소득이었던 것 같다.이재웅 사장에 따르면 그는 노암 촘스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기존 미디어-정치적 논리와 자본의 속성에 휘말릴 여지가 많은-의 대안으로 인터넷을 떠올렸다고 한다.인터넷에 대한 그의 젊은 날의 꿈을 짐작케 할 수 있는 부분이다.이때 그가 갖게 된 미디어로서 인터넷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는 이후 다음의 사업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이메일에서 카페로 이어지는 참신함,그리고 혁신성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나 역시 그랬고 내가 아는 사람들,그리고 한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다음의 한메일을 통해서 인터넷이라는 것을 처음 맛보게 된 것 같다.
 이재웅 사장이 26세였던 1995년 한국에 귀국해 설립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초창기 인터넷 갤러리처럼 운영됐다.자본금 5000만원에 이재웅 사장을 포함해 달랑 3명의 직원이 전부였다.그러던 것이 97년 한메일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부터 일반인들에게 인터넷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이메일 열풍에 휩싸이게 만들며 단숨에 토종 인터넷 대표기업으로 부상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은 99년 혁신적인 카페 서비스를 시작한다.인터넷이 단순한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놀 수 있는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카페 서비스의 위력은 엄청났다.지금도 카페에서만큼은 1위 자리를 확실히하고 있는 다음은 이메일을 통해 회원을 확보했고 이메일 사용자들이 고스란히 카페로 옮겨가면서 수백만명이 넘는 충실한 단골 고객을 확보하게 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카페를 계기로 과거 PC통신 중심이던 일반인들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인터넷으로 급속히 이전되기 시작했다.각종 동창회나 모임이 카페에서 형성되면서 나이든 사람들까지 인터넷의 세계로 이끌었고 이해관계 집단들의 모임도 카페에서 만들어지면 온라인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도 맡게 됐다. 

 당초 카페라는 이름은 이재웅 대표가 주창했다고 한다.이재웅 사장의 아이디어는 온라인 상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토론을 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오프라인의 카페와 같은 것을 만들어보자는 거였다.그는 처음에 이 서비스 이름을 노천카페라고 명명했다가 그냥 카페라는 명칭으로 서비스하기 시작됐다고 한다.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유럽인들의 자유로운 카페 문화를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이재웅 사장이 이를 발전시켜 온라인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다음의 혁신성은 카페에서 절정에 달한다.카페 서비스로 탄력을 받은 다음은 결국 이듬해 야후코리아를 제치고 국내 인터넷포털 1위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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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 2007/10/29 13:29 | DEL | REPLY

임원기 기자님,빗속의 한국시리즈를 함께했던 IPRcommuniction의 이명진입니다.그날 이후로 감기는 안걸리셨나요?ㅋ 또한 노트북의 안전은요??ㅋ임원기기자님의 블로그를 가끔방문하면서 오늘 처음글 남기는 것같습니다.

이글을 보니 이재웅 사장님이 촘스키에 영향을 받았었군요..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사람치곤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드물텐데 말이죠..^^;;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학자는 아마 이분이 유일할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날씨가 무척이나 쌀쌀한 요즘입니다.건강에도 유념하시기 바라며 종종 방문해 댓글남기고 가겠습니다.~~
맨투맨 | 2007/10/29 14:26 | DEL

여기서 만나뵈니 더 반갑습니다!!..가끔 방문하시더라도 댓글은 종종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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