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논란에서 벗어난 하이닉스

8시 21분.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하이닉스 반도체 홍보팀이었지요.
"합법이란 결정을 내렸답니다." 통화는 짧았지만 목소리는 들떠 있었습니다. 도대체 뭐가 합법이란 말이었을까요?


이야기는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년 반도체 업계는 '쓰나미'라고 불릴 정도의 가격하락을 맞았습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반도체 회사들이 큰폭의 적자를 냈지요. 반도체 업체들은 돌파구를 '제휴'에서 찾았습니다. 일부는 적자를 못이겨 쓰러졌고, 살아남은 일본과 대만업체들이 속속 손을 잡았습니다.

하이닉스 역시 살길을 제휴에서 찾았습니다.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프로모스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기로 한 것이죠. 하이닉스는 이전에도 프로모스에 기술을 넘겨주며 D램을 생산해왔습니다. 실리콘을 원료로 만든 원판(웨이퍼)를 사용해 얼마나 미세한 공정으로 반도체 만드느냐가 반도체 회사의 생명을 좌지주지하는데 이번에 하이닉스가 넘겨주기로 했던 것은 54나노 D램 생산 기술이었습니다.

54나노? 기술유출?
현재 50나노급의 반도체 생산 기술을 가지고 D램을 만들기 시작한 곳은 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뿐입니다. 그만큼 최신 기술이란 말이죠. 하이닉스는 지난 8일 프로모스와 정식 계약을 맺었습니다. 기술을 넘겨주기로 한 시점은 내년 초. 기술을 넘겨주는 대신 하이닉스는 로열티와 프로모스가 생산하는 제품을 넘겨받기로 했습니다.

기술유출 논란의 시작
하이닉스가 대만업체에 최신 기술을 넘겨주기로 하자 슬며시 기술유출 논란이 일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조선이나 반도체,LCD와 같은 분야에서 기술을 해외로 넘겨줄 때에는 지식경제부 장관의 심의를 받도록 돼 있습니다.
지난 3월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과 김종갑 하이닉스 사장이 만났습니다. 반도체협회 공식행사 자리였죠. 이 자리에서 황 사장은 하이닉스의 기술이전이 '수출'이 아닌 '기술유출'이라고 반박했죠.
"반도체는 수출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황 사장의 문제제기 이후 하이닉스의 기술이전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지식경제부 산하의 산업기술보호 전문위원회에서 심의회의를 29일 열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최진석 하이닉스 부사장과 삼성전자의 이원식 부사장, LG디스플레이의 정인재 부사장이 참석했습니다. 학계에서는 박영준 서울대 교수,박재근 한양대 교슈, 권오경 한양대 교수 등 모두 5명이 참석했지요.

길었던 심의회의
당초 심의회의는 5시부터 시작해 6시면 끝을 맺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원장인 박영준 교수가 늦게 참석하면서 6시께 시작할 수 있었죠. 회의는 장장 2시간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관계자의 입을 빌리면 "국가의 미래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져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졌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이닉스 기술이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거셌다는 말이지요.

심의회에서 "적법하다"는 결론을 얻어냈으니 하이닉스는 숨을 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앞선 기술을 이용해 싸게 D램을 만들 수 있게 됐으니 미래에 시장점유율도 올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구요. 내년 초에는 54나노 기술을 이용한 D램이 중국에서 만들어질 모양입니다. 하이닉스 말대로 기술을 '수출'했다면 좋은 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개운치 않은 걸까요.

대만과 일본이 합종연횡하며 거센 기세로 치고올라오는 사이 우리만 지난 6개월간 아귀다툼을 벌인 것만 같아선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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