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이 출범한지 100일도 안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것을 놓고 기업 최고경영자(CEO)식 국정운영의 한계라는 지적이 많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지적이다.

 

분명 국정을 기업과 똑같이 운영할 수는 없다. 수익 창출이 가장 우선시되는 기업 경영과 사회의 여러 계층과 가치를 통합해 안정되게 이끌어나가야 하는 국정 운영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국민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기업 내에도 정치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CEO와 대통령이 그렇게 다르지만도 않다.

요즘 세상엔 아무리 CEO라고 "내가 옳으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리더십은 먹혀들지 않는다. 회사 생활 해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회사내에도 여러 라인(계파)이 있다. 따라서 여러가지 목소리가 존재한다. 이를 무조건 찍어누르는 CEO는 단명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번 봐왔다.

 

또 기업엔 무엇보다 주주라는 무서운 존재가 CEO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5년에 한번씩,국회의원은 4년에 한번씩 심판을 받지만 CEO는 매년 주주총회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 기업들은 주주와 종업원 외에도 신경써야할 사람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힘이 커짐에 따라 기업에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주주(Shareholder)만 신경쓰면 됐지만 요즘은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를 다 신경써야 한다. 소비자, 정부, 지역사회, 시민단체, 언론 등이다. 이들을 무시했다간 뼈도 못추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삼성 사태를 통해 목격했다. 기업 경영에도 명분이 굉장히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CEO와 대통령의 또 다른 공통점 중 하나는 '운칠기삼'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물론 실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업계의 시황이 어떤 시점에 CEO를 맡았는지 여부가 실력 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할 때도 많다.

아무리 실력 좋은 CEO도 세계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1달러도 안되는 상황에서라면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처럼 회사 안팎의 압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LCD 시황이 바닥을 친 시점(작년초)에 CEO가 된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억수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물론 그는 실력도 갖춘 출중한 CEO라는 점을 밝혀둔다)

 

이런 면에서 이 대통령은 단기적으론 운이 나쁘지만 장기적으론 운좋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둘러싼 시황은 최악이다. 유가가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곡물값도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물가는 통제 불능 상태다. 여기에 원달러환율마저 급등하면서 성장률 전망치는 연일 낮아지고 있고 국민소득도 다시 2만달러 아래로 내려갈 처지에 놓였다. 아무리 CEO출신 대통령이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황에 다운(down)이 있으면 업(up)도 있다는 건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딸이 뜨는 것만큼이나 불변의 진리다. 지금은 시황이 바닥을 다지고 있지만 5년후에는 그 시황이 이 대통령을 도와줄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다.

(정권 초기에 쇠고기 파동으로 혼쭐이 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운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면 되는 시기이지만 3년차쯤 이런 일이 터졌다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을 공산이 크다.)

 

물론 시황이 좋아지기만 바라고 앉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대통령이 할 일은 어떠한 시황에서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묵묵히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다. 

예컨데 교육을 바로세워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해야 하고, 과도하게 제조업 중심으로 짜여진 산업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

요즘 기업 CEO들은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과 체질 개선,이를 통한 선진경영시스템 구축에 관심이 많다. 우리 기업들이 선진 기업 진입을 눈앞에 두고 준비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주식회사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정치부로 발령이 난 다음날 좋아하는 선배가 책 한권을 권했다. 정치부에 왔으니 ‘삼국지’나 ‘한국근현대사’ 같은 책을 추천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선배가 권한 건 마케팅 지침서의 고전으로 불리는 '포지셔닝'이라는 책이었다. 1972년 광고회사 간부였던 앨 리스와 잭 트라우트가 쓴 책이다.초짜 정치부 기자에게 마케팅 서적을 권한 선배의 설명은 이랬다.

“정치도 마케팅이다.정치인들을 만나면 자신을 어떻게 포지셔닝할 지 조언 해라. 그러면 그는 취재원이 아닌 친구가 되어 있을 거다.”
 정신 없이 총선을 치루느나 정치인들과 아직 마케팅에 대해 논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각당 후보들의 유세전을 지켜보며 정치인들이 고객(유권자) 세그멘테이션(세분화)이나 타겟 마케팅과 같은 전형적 마케팅 기법을 사용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작정 ‘찍어달라’며 전화를 돌려대던 과거와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정치는 어느덧 기업을 벤치마킹하고 있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 캠프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한나라당 미디어홍보단(단장 정병국 의원)이 펴낸 ‘대통령 후보를 사선에 올려라’라는 책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대선 당시 기자는 정치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욕쟁이 할머니’ CF를 보며 막연히 ‘한나라당의 홍보전략이 조금 세련되어 졌구나’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었다.
 하지만 책에서 발견한 한나라당의 전략 변화는 그 이상이었다. 두번의 대선 패배를 통해 뼈저리게 체득한 교훈인 듯 했다. 가장 놀라운건 이명박 후보를 상품으로 규정한 대목이다. 홍보단은 이 상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소비자(유권자)에게 팔아먹을 지 고민했고 철저한 전략을 세워 실행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홍보단의 활동은 기업의 마케팅활동과 큰 차이가 없었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온갖 발전된 형태의 마케팅 기법을 모두 사용했다.
 첫번째로 실행에 옮긴 건 내부 커뮤니케이션. 기업들은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앞서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선진적인 회사일수록 더욱 그렇다. 회사가 추구하는 분명한 가치를 확립해 전세계의 임직원들이 공유토록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코닝사의 직원들은 ‘우리의 몸안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고 한다. 코닝의 로고가 파란색인 때문이다. 도요타도 전세계 임직원들에게 도요타 특유의 생산방식이자 경영철학인 ‘도요타웨이’를 체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한다. 한나라당 미디어홍보단도 캠프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국민성공시대’라는 캠프의 핵심가치를 체화시키는 일부터 시작했다.
 두번째는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이는 일. 모두가 ‘잘난’ 정치권에서 광고 카피 하나, 매체 전략 하나에 그 많은 중진들이 ‘감놔라 배놔라’ 하면 될 일도 안될 터. CEO 출신인 이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병국 단장에게 모든 결정을 위임했고, 정 단장은 또 실무진들에게 충분한 재량권을 줬다. 치밀하고 효과적인 홍보전이 가능했던 이유다.
 그리곤 본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했다. 첫번째 과제는 선택과 집중. 미디어홍보단은 일부 당직자들이 주장한 ‘행복’과 같은 컨셉트는 추상적이고 너무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과감히 버렸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이미지에도 맞고 경제에 대한 시대적 관심에도 부합하는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해 소비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노출시켰다. 분명하고 일관된 메시지는 마케팅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전문가들로 구성된 홍보단은 잘 알고 있었다.
 이후에도 미디어홍보단은 최신 마케팅 트렌드를 충실히 따랐다. 스토리에 열광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성향을 간파해 ‘대학 입시 준비 중 만난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야기’ 같은 스토리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욕쟁이 할머니 CF에 대한 논란(할머니가 충청도 사람인데 전라도 사투리를 쓰게 했다는 따위의)은 끊임 없이 유권자들에 입에 오르내려 '노이즈 마케팅'으로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Fun 마케팅’도 활용했다. ‘대통령 후보를 희화화한다’는 일부 당직자들의 볼멘 소리에도 불구하고 TV 연예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우스꽝스러운 이 대통령의 모습을 UCC로 제작해 인터넷에 올렸다. 이명박이라고 하면 ‘불도저’나 ‘차가운 CEO’의 이미지를 떠올리던 젊은 유권자들에게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었던 이유다.
 이 밖에도 미디어홍보단은 기업의 혁신 사례를 방불케하는 발상의 전환, 순발력있는 위기관리 등 기업 마케팅팀에서 배워갈만한 수많은 성공사례를 남겼다.이런 과정을 통해 이명박 브랜드는 그들이 기획했던 대로 '메가 브랜드'로 성장해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권,특히 보수적 성향인 한나라당의 이런 변화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어쩌면 CEO 출신인 이명박 후보였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다. 한나라당은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게 하는 데 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재구매는 다르다.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이 자주 강조하는 ‘고객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고객들은 언제라도 기업과 제품에 등을 돌리게 되어 있다.

 고객가치창출이란 고객이 제품을 사는데 사용한 돈 보다 그 제품을 통해 얻은 가치가 더 크다고 느끼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충성심(로열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5년후에도 소비자(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지갑(표심)을 열게 될 지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5년간 얼마나 '국민가치'를 창출하느냐에 달렸다. 그것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보다 더 중요한 정부의 사회적 책임(GSR)이다.

유창재 기자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의 7년차 기자로 문화부 산업부를 거쳐 2008년 3월 정치부로 발령받았습니다.

기업이건 정당이건 아파트 부녀회건 사람이 모인 곳에는 정치가 있다고 하죠.

그런 측면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는 모든 행위는 정치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프로 정치인들의 세계는 어떨까요?

인간의 선하고 악함, 추하고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결국 정치판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인간군집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정치판을 경제 기자의 시각으로 들여다 볼 생각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자체는 정치행위인 동시에 경제행위입니다.

정치와 경제의 교차점에 서서 저는 독자들과 함께 세상 사는 진리가 뭔지 배워나가 볼 생각입니다.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