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부총리께서 오늘 또 한말씀 하셨대."

 

한나라당의 정책을 총괄하는 임태희 정책위의장을 두고

과천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이 자조적으로 내뱉는 우스개소리다.

실제로 언젠가부터 여권의 정책 방향에 대해

한승수 총리, 강만수 장관보다 

임태희 의장의 입을 쳐다보는 일이 더 많아졌으니

그런 말들이 나올 법도 하다.

최근 한 지인은 기자가 정치판 돌아가는 얘기를 하던 중

무의식적으로 "임태희 의장이, 임태희 의장이"를 반복하자 

"언제부터 여당 정책위의장이 이렇게 힘이 세졌는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그러게 말이다.

과거에도 여당 정책위의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요즘 임태희처럼 모든 정책의 칼자루를 쥐고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9일에는 한국은행이 지급준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 한은을 긴장시키더니

10일에는 한중일 통화스와프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시장이 임 의장의 한마디 한마디를 예의주시한다. 

왜일까?

 

첫째로 과거에 비해 국회의 힘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세졌기 때문이다.

16대 국회까지만 해도 정부가 마련한 법안이나 예산안에 

여당은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17대를 거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과 달라진 사회분위기 탓에

국회의원들의 기세가 시퍼래졌다.

이들이 통과를 안시켜주면 법안이고 예산안이고 다 소용 없으니

정부도 좌불안석이다.

그러다보니 여당에서 정책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임 의장의 입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둘째로 임 의장은 그야말로 실세형 정책위의장이라는 점이다.

인수위 시절 당선자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임 의장은 MB의 측근 중에 측근이다.

당선후 MB가 성북동으로 자택을 옮기려고 하고 주변에서도 적극 권유했는데

임 의장이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자

대통령이 바로 뜻을 접었을 정도로 신임이 두텁다.

그러다보니 5월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 때는 홍준표 대표와 정의화 의원이

서로 임 의장을 러닝메이트로 끌어들이려 러브콜을 날렸었다. 

 

셋째로 정부나 여권 정책 리더십 부재도 임 의장에겐 호재다.

잘잘못을 떠나 어쨌든 강만수 장관이 시장의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임 의장은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지 않은데다 

부드러운 리더십의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4월 총선부터 7월 전당대회까지 3개월간 당 대표가 없었던 상황도

홍준표 원내대표와 함께 임 의장이 '벌떡' 설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러고 보면 기가 막히게 운도 따르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임 의장은 실력파다.

재정부에서 은행장들도 벌벌 떤다는 이재과장을 지냈다.

웬만한 경제현안에 대해선 이론과 현실을 넘나드는 지식을 갖추고 있다.

많이 아는 사람한테 당할 수 없는 건 만고의 진리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임 의장은 요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일부에선 '임태희의 야심이 일반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말들도 나온다.

차차기 대통령 쯤은 노리는게 아니냐는 얘기다.

임 의장도 정치인인데, 욕심 내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아무튼 임태희의 향후 정치 행보도 박근혜 전 대표의 그것 만큼이나

재미있는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

여천 NCC라는 회사와 휴비스라는 회사가 있다.

두 회사 모두 IMF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위한 M&A의 산물이다. 

여천 NCC는 한화그룹과 대림그룹이 각각의 에틸렌 사업을 떼어내서 붙여 만든 회사이고

휴비스는 SK케미칼과 삼양사가 각각의 화학섬유 사업을 떼어 붙여 만든 회사다.

 

그런데 두 회사에는 차이점이 있다.

휴비스는 세계 경기가 좋지 않아 고전해왔지만 

훈훈한 회사 분위기로 종업원들은 행복하다.

여천 NCC는 지난 몇년동안 에틸렌값 급등에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한화에서 온 사람들과 대림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이다.

 

무슨 차이일까?

바로 경영학에서 말하는 M&A 후에 조직의 통합,

즉 PMI(Post Merger Integration)을 잘 했느냐의 차이다.

 

조직문화를 통합하기 위해 양측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세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차이 하나는 대표이사의 숫자다.

여천 NCC는 한화측 한사람, 대림측 한사람 등 두명의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양 대표이사가 서로 자기 사람들을 더 많이 임원으로 승진시키겠다며 서로 소송까지 일삼는 판이다.

반면 휴비스는 SK와 삼양사가 한사람씩 대표이사를 보내고 있다.

보스가 한명이고 그가 일관된 비전을 제시하다 보니 크게 싸울 일이 없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대표이사는 누구인가? 

공식적으로야 박희태 현 대표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다.

그런데 두 세력은 

대선 경선이 끝난지 1년이 넘도록  

PMI는 커녕 아직 M&A도 하지 못하고 있다.

화학적 결합은 커녕 같은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것 조차 꺼린다.

 

문제는 민간 회사들이야 자기 사업이 잘 안되는데 그치지만

여권 내의 두 세력간 갈등이 지속되는 건 나라 경영에 피해를 끼친다는 점이다.

박근혜 지지세력의 이탈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지지부진해

국정을 밀어부칠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계파싸움에 실증이 난 국민들은 정치에 '정'자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박근혜 전 대표가 두문불출하는 이유는

공동 대표이사의 폐해를 경계해서다.

자기가 자꾸 나서면 될일도 안된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생각이고

그건 상식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아무리 조용히 있어도

현실적으로 여권에는 분명히 두명의 대표이사가 존재한다.

 

문제는 여권의 공동 대표이사제를 종식시킬 대안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총리론은 얼마 안되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물론 운용의 묘를 잘 살렸을 때의 이야기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지 100일도 안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것을 놓고 기업 최고경영자(CEO)식 국정운영의 한계라는 지적이 많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지적이다.

 

분명 국정을 기업과 똑같이 운영할 수는 없다. 수익 창출이 가장 우선시되는 기업 경영과 사회의 여러 계층과 가치를 통합해 안정되게 이끌어나가야 하는 국정 운영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국민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기업 내에도 정치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CEO와 대통령이 그렇게 다르지만도 않다.

요즘 세상엔 아무리 CEO라고 "내가 옳으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리더십은 먹혀들지 않는다. 회사 생활 해본 분들은 잘 알겠지만 회사내에도 여러 라인(계파)이 있다. 따라서 여러가지 목소리가 존재한다. 이를 무조건 찍어누르는 CEO는 단명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번 봐왔다.

 

또 기업엔 무엇보다 주주라는 무서운 존재가 CEO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5년에 한번씩,국회의원은 4년에 한번씩 심판을 받지만 CEO는 매년 주주총회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 기업들은 주주와 종업원 외에도 신경써야할 사람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기업의 힘이 커짐에 따라 기업에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도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주주(Shareholder)만 신경쓰면 됐지만 요즘은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를 다 신경써야 한다. 소비자, 정부, 지역사회, 시민단체, 언론 등이다. 이들을 무시했다간 뼈도 못추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삼성 사태를 통해 목격했다. 기업 경영에도 명분이 굉장히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CEO와 대통령의 또 다른 공통점 중 하나는 '운칠기삼'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물론 실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업계의 시황이 어떤 시점에 CEO를 맡았는지 여부가 실력 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할 때도 많다.

아무리 실력 좋은 CEO도 세계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1달러도 안되는 상황에서라면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처럼 회사 안팎의 압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LCD 시황이 바닥을 친 시점(작년초)에 CEO가 된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억수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물론 그는 실력도 갖춘 출중한 CEO라는 점을 밝혀둔다)

 

이런 면에서 이 대통령은 단기적으론 운이 나쁘지만 장기적으론 운좋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둘러싼 시황은 최악이다. 유가가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곡물값도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물가는 통제 불능 상태다. 여기에 원달러환율마저 급등하면서 성장률 전망치는 연일 낮아지고 있고 국민소득도 다시 2만달러 아래로 내려갈 처지에 놓였다. 아무리 CEO출신 대통령이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황에 다운(down)이 있으면 업(up)도 있다는 건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딸이 뜨는 것만큼이나 불변의 진리다. 지금은 시황이 바닥을 다지고 있지만 5년후에는 그 시황이 이 대통령을 도와줄 가능성도 크다는 얘기다.

(정권 초기에 쇠고기 파동으로 혼쭐이 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운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면 되는 시기이지만 3년차쯤 이런 일이 터졌다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을 공산이 크다.)

 

물론 시황이 좋아지기만 바라고 앉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대통령이 할 일은 어떠한 시황에서라도 견뎌낼 수 있도록 묵묵히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다. 

예컨데 교육을 바로세워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해야 하고, 과도하게 제조업 중심으로 짜여진 산업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

요즘 기업 CEO들은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과 체질 개선,이를 통한 선진경영시스템 구축에 관심이 많다. 우리 기업들이 선진 기업 진입을 눈앞에 두고 준비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주식회사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아닌가.